소금광산, 비엘리치카

2013. 7. 9. 23:59여행/여행기

 

 

 

 

 

 

동유럽 여행자들이 폴란드 크라쿠프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비엘리치카와 아우슈비츠 때문 아닐지?
크라쿠프시 동남쪽 15km 쯤에 위치해 있는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은
1978년 유네스코 자연 및 문화유산에 최초로 등재된 곳.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은 지하 80m에 형성된 자연동굴로
문헌에 남아 있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광산 중 하나로
13세기에 처음으로 비엘리치카에서 암염이 발견되어, 폴란드의 왕과
권력자가 소금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하여 중세부터
1992년까지 꾸준하게 소금을 채굴하는 작업이 이어져 왔다.
광산은 9층 갱도까지 뻗어 있으며, 지하 327m까지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소금광산 안에는 소금을 채굴한 공간인 2,040개의 방이 있고,
갱도의 길이는 300㎞가 넘으며 26개의 표층 갱도, 그리고 아홉 개의
층에 걸쳐 파낸 굴을 연결해 주는 갱도가 180개나 있다고 한다.
비엘르츠카 소금광산이 경이로운 것은 규모도 규모지만 소금광산 안에
예배당과 성스러운 예술 작품들이 소금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작품들 모두가 이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의 작품이라는 것.
언제 죽을지 모를 위험 속에서 일하던 그들의 간절했던 신앙심은
지하 110m에 '성 킹가 성당'을 만든 것이 그 결정체가 아닐까.
광산 내부는 가이드 투어로만 볼 수 있으며 2시간 정도 소요되나
이 투어로 볼 수 있는 것이 전체의 1%에 지나지 않는다니
얼마나 방대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다던데..
오늘은 찾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다.







매표소, 아래는 퇴역 광부들.. 가이드를 하기도 한다고..





까마득한 계단

끝없이 빙글 빙글 돌며 앞사람 꽁무니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 온 관광객들은
소용돌이처럼 구부러져 돌아가는 좁은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378 계단을 내려서니 지하 65m. 울퉁불퉁한 암벽과 천장에는
하얀 소금꽃들이 피어 있고, 얼음같이 붙어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 미로같은 갱도를 찾아 가는데
중간 중간에 기압조절 칸막이 문이 달려 있는데 뒷쪽 문을
닫은 후 앞쪽 문을 여는데 기압의 차가 느낄정도..










채굴된 소금 이송용 장치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같은 갱도





태양을 멈추고 지구를 돌게 한 사람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방. 그가 크라코푸에서 공부하던 중
1439년 이곳을 방문하였는데 1973년 그의 방문 500주년을 기념하여
암염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조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설의 방에 세워진 킹가 공주의 조각상(제일 왼쪽).
소금광산 개발을 시작하게 한 헝가리 출신 킹가 공주는
비엘리츠카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전설적인 인물.






소금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하는데
광부들은 수시로 횃불로 천장에 모인 메탄가스를 태우는 작업도
해야 했다고 한다. 어둡고 메탄가스까지 나와 생명을 위협하는
이 열악한 환경에서 광부들은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다.






소금 채굴하는 광부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금을 바다에서 채취하나 실제로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소금의 60%는 바다가 아닌 광산에서 나오는
암염이라고 한다. 암염은 지각 변동에 의해 바다가 육지로 융기한 후
오랜세월을 거쳐 염화나트륨 결정체로 남은 것, 세계 12대 관광지인
이곳 비엘리츠카 소금층도 180만년~200만년 전에 형성되었다가
바닷물이 증발하고 소금만 남아 소금바위(암염)이 되었다는데
소금층은 10km에 걸쳐 두께는 500~1500m에 이른다고 한다.








아차! 플래쉬를 챙겨 왔어야 하는데..
뿐만 아니다. 나름 프라하 야경을 담아보려고 삼각대를
챙겨 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작 카메라를 부착할 퀵슈를
빠뜨리고 오는 바람에 속상했는데.. 여기서는 미처 생각도 못한
플래쉬 땜에.. ISO를 최대로 높혀보지만 광량이 약하다.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담기도 어려울 것 같아 또..










천정과 버팀목, 벽 가리지않고 피어있는 소금꽃
손가락으로 소금을 찍어 맛을 보니 간간할 정도.






소금 운반을 위해 이곳으로 들여온 어린 말은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평생 햇빛
한 번 보지 못했다고 한다. 가여운 말들..
맘이 짠하다. 먹이는 제대로 줬을까?








군데 군데 전시실도 꾸며 놨는데..





소금 광산 내부에는 180개 이상의 갱이 있고
2000여 개의 채굴이 끝난 빈 방들이 있으며, 갱도의 길이가
300㎞에 이른다고 한다. 700년 동안 약 2600㎦의 암염이 채굴되어
폴란드 왕국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되어왔는데 17세기부터
소금 채굴량이 줄면서 소금광산으로서 의미는 퇴색했으나,
수백 년 채굴 과정에서 형성된 독특한 광산 내부 자체가
관광자원이 되어 연간 8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바위로 된 소금? 소금으로 된 바위..









텅빈 공간









계단을 따라 끝없이 내려간다





뻥 뚫린 천장









소금과 물을 올리는 장치와 기구





지하 110m에 위치해 있는 '축복받은 킹가 교회'.
1896년부터 70년이 걸려 1963년에 완공된 킹가 성당은
첫 눈에 들어오는 샹들리에부터 역대 왕들의 조각까지 다양하고
섬세하고 정교한 작품들이 많다. 킹가 성당의 작품들은 700년된
소금동굴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킹가 교회는 헝가리에서 폴란드로 시집오면서 소금광산을
지참금으로 가져왔다 하여 마을의 수호신처럼 숭배되는
킹가 공주를 위한 공간. 길이 55m, 폭 18m, 높이 12m의 공간은
여느 지상의 예배당과 다를 것이 없다. 제단과 촛대는 물론,
성서의 중요 장면들을 묘사한 부조와 기독교 성인들의 조각상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 소금으로 만든 아름다운 샹들리에와 섬세한
부조들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데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든
조각상들이 모두 이곳에서 일하던 광부들의 손에 의해
조각된 것이라니 더욱 놀랍다. 더구나 음향효과도 뛰어나
콘서트를 개최해도 될 정도라고 한다.








최후의 만찬, 광부인 안톤 비로테크가 1935년에 만든 작품.
원근감까지 표현한 실력이 정말 놀랍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
이 모두가 소금으로 만든 작품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55)





폴란드 출신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소금광산 모든 작품들 유일하게
이 작품만 전문 조각가 만들었다고 한다.






소금광산 지하 110m에 있는 킹가 성당을 만든 세 광부 장인.





스타니슬라프 스타시츠(1755~1826) 조각상
그는 폴란드의 계몽주의 사상가이다.






소금광산은 1978년 유네스코 자연 및 문화유산에 최초로 선정되었다.





천장





그 안에는 바위 소금(암염) 전시실도 있다.





광산 안에 있는 여러 개의 예배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바로크 양식의 성 안토니우스 예배당으로,
이곳에서는 1698년에 첫 미사가 거행되었다고 한다.
예배당 여러 곳에 새겨진 부조 작품과 여러 개의 제단 이외에도
소금 덩어리를 조각해 만든 여러 개의 조각상이 있는데,
이 중에는 성모 마리아와 금속을 캐내는 광부들의
수호성인인 성 안토니우스의 조각상도 있다.








소금으로 만든 샹들리에와 최후의 만찬 부조가 걸린
예배당만 있는 것이 아니라, 휴양목적의 호텔, 식당,
연회장 등도 있는데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소금 채취의
기능을 끝내고 세계문화유산으로 거듭난 곳이다.
소금광산이 관광자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광산노동자들이 채굴 뒤 남은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면서 예술작품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마치 일출같은 모습도 보이고..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지하 130m에서 지상으로
올라 올 때는 옛날 광부들이 타고 다녔다는 3층 엘리베이더로
40초 정도 걸리는 것 같았다.






중세의 크라쿠프가 동유럽 문화의 중심이 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부의 상징이었던 소금광산!
그러나 그 지하 암흑속 열악한 환경과 그 속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광부들의 마음은 얼마나 절박했을까? 그 절박한 상황들이 신심을
더하게 하고 그로 인해 예술혼을 불태우며 꽃 피울 수 있었으리라.
폴란드의 소금생산과 비엘리치카가 유명해진 것은 그들의 예술혼도
한 몫을 했을테고.. 이 엄청난 규모의 소금광산은 관광지로도 유명해져
코페르니쿠스와 괴테를 비롯한 유럽 문화예술가들이 많이 다녀 갔겠지.
부의 상징인 소금은 왕족과 귀족들만의 독점물이 되었겠지.

중국 만리장성 그 웅장한 모습을 보면서도 감탄만 할 수
없었던 것은 그 공사에 강제로 끌려와 열명중 여덟명 이상이
불귀의 객이된 피로 이룬 역사라는 사실에 가슴이 메였듯
어린 망아지로 끌려와 죽을 때까지 밝은 햇빛 한번 못 보고
고된 일만 하다 죽어간 말들.. 그 말과 별반 다를 것 없었을 광부들의
일생을 생각하니 역시 가슴이 메인다. 광부들의 고된노동과 애환과
손길이 머물렀을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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