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29. 19:18ㆍ山情無限/백두대간(完)
일시 : 2005. 11. 12(토)
날씨 : 맑음
구간 : 성삼재 - 묘봉치 - 만복대 - 정령치 - 가재마을 - 수정봉 - 여원재 (20km)
참석 : 백두대간 종주회 35명
누적거리 : 57km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11/12 00:20 명촌 주차장 주유소 앞 출발 (전용 버스 이용)
05:20 성삼재 도착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6:00 산행시작(1070m)
06:37 작은고리봉(1248m)
07:12 묘봉치(1108m)
07:40 ~ 08:00 만복대(1433.4m)
08:29 ~ 50 정령치 휴게소(1172m)
09:09 고리봉(1304.5m)
10:25 ~ 11:25 주천면 고기리 고촌 (점심)
11:55 노치샘(550m)
12:50 수정봉(804.7m)
13:07 입망치
13:28 ~ 35 무덤 (휴식)
13:50 임도
14:05 여원재(470m)
- 진행거리 : 20km, 소요시간 : 8시간 5분
③ 복귀
15:50 여원재 출발
20:15 울산 명촌 주차장 도착
2. 산행기록
자정에 출발하기로 하였으나 인원파악이 늦어져 00:20에 출발한 버스는 한밤을 달린다. 오늘 새로 계약한 버스는 좌석간 간격이 넓어 좋다. 거창에서 승용차로 출발한 산행대장을 비롯한 3명을 태우고 성삼재로 향한다.
05:20에 성삼재 도착. 바깥 기운이 차다. 하늘의 별은 머리 위까지 내려온 듯 가깝게 느껴지고 초롱초롱한 별 빛은 차갑게 반짝인다. 휴게소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버스 몇 대가 성삼재 주차장에 자리하고 있고, 저 아래는 눈에 불을 켜고 힘겹게 기어 오르는 모습도 보인다. 이미 성삼재는 밤새 달려온 차들과 갈 길은 각각이겠지만 그 차에서 쏟아져 사람들로 부산하다.
간단하게 몸을 풀고, 산행준비를 하고는 쏟아지는 별빛을 머리에 이고 06:00 산행을 시작한다. 2구간 들머리는 성삼재(1,070m) 주차장에서 달궁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왼쪽에 입간판과 이정표(만복대 6km, 당동마을3.3km)가 서 있는 곳의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된다.
<2구간 들머리>
오늘은 성삼재에서 시작하여 작은고리봉, 묘봉치, 만복대, 정령치, 고리봉까지 지리산의 위용을 보며 진행하다 고기리 방향으로 내려선다. 고기리와 노치마을은 산에서 완전히 내려서지만 표고가 500m가 넘는 고산지대다. 고기 삼거리부터 가재마을 입구까지 2km 정도 아스팔트 포장길을 통과하여 800m대의 수정봉 능선을 거쳐 입망치를 지나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여원재까지 이어지는 20km 구간이다.
약간은 차가워 더 상쾌하게 느껴지는 새벽 공기가 좋고, 부드러운 육산의 촉감이 1구간 마지막 순간 발바닥을 아프게 했던 돌길과는 대비가 된다. 좌측에는 구례쪽의 불빛이 환하게 비친다.
40분 정도 진행하여 작은고리봉(1,248m)에 닿을 즈음 먼동이 트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반야봉 능선에 햇귀가 돌기 시작한다.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반야봉 부드러운 곡선을 누가 40대 여인의 둔부같다고 했는가?
<반야봉과 지리 주능선이 실루엣으로 나타난다>
07:12 묘봉치(1,108m)에 도착했다. 성삼재에서 4Km 정도 진행한 것 같다. 만복대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대간을 종주하면서 단체생활의 기본은 지켜야 하지만 그렇다고 40명을 틀 속에 가두어서는 안된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선두와 후미가 같은 속도로 함께 이동하자는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각 자 페이스가 다른데 40명이 군대 행군하듯 일렬로 줄을 맞춰갈 수 있겠는가?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기까지는 나름대로 결단이 있었을테고, 완주를 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의 한 축을 대간종주에 두어야 할 만큼 생활의 일부분이 된 중요한 일중의 일이 되고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대간종주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과 얻고자 하는 것이 각자 다를 수 있다.
이번 대간종주를 통해 이 땅의 산하를 최대한 보고 기록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특히, 일출 전후 사진빨 잘 받는 그 시간을 이용하여 대간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
<반야봉 일출>
만복대는 멀리서 보면 고래등같은 초원에 억새가 햇빛을 받아 출렁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오르는 길은 억새를 보호하기 위해 등로를 따라 밧줄로 울을 치고 있다.
<멀리 고래등같은 만복대가 보인다>
<만복대에서 온 길을 뒤돌아 보며... 멀리 종석대가 보인다>
<진행할 길, 멀리 바래봉,세걸산,고리봉이 보인다.고리봉에서 좌측으로 가야한다>
조금 진행하니 이정표는 없지만 다름재와 정령치가 갈리는 삼거리가 나왔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는 않은 것 같은데 길은 선명하다. 왼편 발 아래로는 고기리가 아득하게 보이고 진행방향으로는 정령치 배경산인 고리봉도 함께 보인다.
남원 운봉에서 성삼재, 달궁으로 이어지는 861번 지방도가 정령치 고개를 가로질러 가고, 도로 건너편에 정령치 휴게소가 나온다.
08:29에 정령치 휴게소(1,172m)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휴게소는 문을 열지 않았고, 우리 일행 말고는 몇 사람 되지 않았다. 옅은 구름으로 지리 주능선은 가물거린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달궁방향을 바라보며>
정령치 일대는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의하면 기원전 84년 삼한 시대에 달궁(達宮)과 심원계곡으로 들어 온 마한(馬韓)의 한 부족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鄭) 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했고 이후 지리산은 김해 가야국의 영토가 되었다고 한다. 신라의 화랑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기도 하고..., 일대에는 옛날의 역사를 실증이라도 하듯 곳곳에 유적이 남아있고 산 밑을 내려다보면 발 아래 보일듯 말듯 굽어보이는 경치가 그만이다.
정령치 휴게소 뒤 고리봉 오르는 길엔 정령치 안내글이 있고 백두대간 해설판까지 세워져 있다. 또 장승 다섯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재미있게 서있다.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계령암지와 마애불상군 가는 길과 고리봉 오르는 길이 갈린다. 갈림길이 나오고 다시 한번 두 갈림길이 또 나오는데 고리봉까지는 곧바로 진행하여야 한다. 뒤를 돌아본 정령치의 구불구불한 도로가 볼만하다
09:09 고리봉(1,304.5m). 정상 직전 약간의 바위지대를 통과하면 고리봉 정상인데, 넓지 않은 정상부는 입간판이 바래봉과 고기삼거리 그리고 정령치를 가리키고 있다.
사방으로 전망이 시원하게 터진 고리봉은 특히 세걸산(2㎞)과 바래봉(8.6㎞/1,165m)으로 연결되는 힘찬 능선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백두대간은 왼쪽의 낮은 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도와 나침반을 보면서 독도를 잘 해야 한다. 이 곳에서 곧장 바래봉으로 가기 쉽다.
방향표시기로 진행방향을 표시한후 고기리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 구간은 급경사로 길도 사나워 미끄럼에 조심해야 한다. 10여분 후 급경사 길은 완화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염소목장 철조망이 나타나는 등 길 찾기가 까다롭다. 한 시간 동안 고도를 700m나 낮추어야 하는 구간이다.
<고리봉, 대간길은 좌측 고기리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09:30 고리봉에서 1km쯤 지나자 솔가리가 쌓여 급경사 길이 더 미끄럽지만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 큰 전나무 숲길이다. 지나간 발자취도 없이 수북이 쌓여있는 황금빛 솔가리가 쌓여 있는 길을 걷는 것도 호젓하다. 고기리 도착하기 직전까지 수더분한 이런 길은 이어진다.
<솔가리가 가득내린 호젓한 대간길>
10:25 주천면 고기리 3거리(고촌). 고리봉에서 1시간 조금 더 걸려 지리산 끝자락인 고기리 3거리(고촌)에 도착했다. 완전히 평지 마을이다. 마음씨 좋은 할머니 집 앞 단풍나무에 시그널을 달고 정성들여 닦아주는 평상을 마다하고 도로에서 전을 펼치고 점심을 먹었다. 막걸리 안주로 나온 고사리와 치나물이 얼마나 맛있던지… 맛있다고 하니 할머니는 푸짐한 시골인심까지 듬뿍 담아 한 그릇 더 가져다 주신다.
11:25 식사를 마치고 노고단에서 정령치를 넘어온 737 포장도로를 따라 2km 정도 대간길인가 의아해 하며 포장도로를 걸어간다. 대간 줄기에는 무수히 많은 고개가 있기 때문에 종주를 하다 보면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거나 어쩔 수 없이 길을 따라 우회하는 곳이 많지만, 이처럼 차 다니는 도로 위를 걷는 경우는 여기가 유일한 곳이 아닐까?
예전엔 소나무 숲이었다는 도로를 벗어나 덕치리 가재마을(※지도에는 가재마을로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노치마을이라고 부른다)로 들어서는 길은 오른쪽은 남원 운봉이고 왼쪽은 주천면의 경계선인데, 물길이 양쪽의 논으로 분명하게 갈라져 흐른다고 한다. 산골의 평탄한 마을 길을 경계로 섬진강과 남강으로 물길이 나뉜다는 사실이 예사롭지가 않다. 백두대간의 중심개념인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즉,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는 말이 실감난다.
<대간길인가 의아하다. 오른쪽은 남강으로, 왼쪽은 섬진강으로 물길이 갈린다>
김성배 님의 대간종주기에 보면 이곳 지명과 관련하여 "옛날에는 이 지역 일대가 물에 잠긴 바다였기 때문에 저기 정령치 날망(정상)까지 배가 들어왔다."는 전설같은 말을 노인들한테 여러 차례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리봉에는 아직도 배를 매어놓았다는 고리같은 큰 바위가 있으며, 그래서 앞 동네 이름도 '배마을'이라는 뜻의 주촌(舟村)이라 하고, 가재 마을 역시 '바닷가재'에서 따온 이름이 아니겠느냐는 아주머니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고 쓰고 있는데…. 그렇다면 고기리도 고기와 관계가 있단 말인가? 얼핏 낮은 평지처럼 보이는 이 곳이 해발 500m가 넘는다니 실감이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운천교회와 보건소를 지나 가재마을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마을에는 몇 백년이나 됨직한 느티나무 그늘 아래 백두대간 유래에 대한 구조물을 만들어 놓았다.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유일한 동네라는데 자긍심이 대단한듯하다.
<자긍심 대단한 대간마을 느티나무 아래 백두대간 조형물>
노치마을 뒤쪽으로 병풍같이 둘러쳐 있는 산릉이 수정봉 능선이다
11:55 노치샘(550m). 백두대간 줄기가 마을을 통과하는데 마을이 끝날 즈음 사철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 좋은 샘터 노치샘이 있다. 지나가는 대간꾼들의 마른 목을 축이는 고마운 샘에서 물 한 바가지 떠서 벌컥벌컥 마신다. 노치샘을 지나 대간길을 따라가면 산 어귀에 연륜을 자랑하는 몇 백년이나 된 듯한 멋진 노송 네 그루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서있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백두대간의 높은 마루금도, 때로는 사람들 사는 세상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노치샘, 물맛이 좋고 수량이 풍부하다>
12:50 수정봉(804.7m)에 도착했다. 정상석이나 표지판도 없는 작은 공터가 나온다. 지도로 수정봉인 것을 확인하였는데 왼쪽 소나무에 수정봉이라고 쓰여 있는 어느 산악회 조그만 표지기가 달려 있다. 우측으로는 도로가 보이고 닭 우는 소리, 사람 소리까지 들린다. 동쪽으로 보이는 공안리 벌판은 황산대첩 현장으로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이성계가 왜군 아저발도를 격퇴시킨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577년(선조 10년)에 세운 황산대첩비(전북 남원군 운봉읍 화수리에 소재)는 사적 제10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망이 좋지 않은 길을 계속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잡목이 우거진 사이로 운봉면 소재지와 동네들이 간간이 보인다.
13:07 입망치. 우측으로 우마차길과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앞에는 산이 막아 선다. 수정봉부터 계속 우측 머지않게 마을을 끼고 왔기에 입망치쯤을 여원재일거라 지레짐작했는데 앞에 산이 나타나 지도를 다시 확인하니 높지는 않지만 아직 몇 봉우리를 더 넘어야 여원재다.
능선길이 어렵지는 않은데 입망치쯤에서 산행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탓인지 이어지는 오르내림길이 힘들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입망치를 지나 올라선 능선 길 우거진 숲 사이로 남원시가 내려다 보인다. 오른편의 운봉 읍내와 마을 풍경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끝날 것으로 생각했던 오르내림 길이 계속 이어지자 이름 모를 봉우리 무덤있는 곳에서 배낭을 내리고 잠시 휴식을 한다(13:28~35).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사방을 살펴봐도 전망이 좋지 않으나 잡목 숲 사이로 멀리 지나온 수정봉 능선이 수줍은 듯 조금 모습을 드러낸다.
13:50 마을이 가까워질 즈음 붉은 속살을 드러낸 임도가 나타나는데 시그널은 임도를 피해 오른쪽 숲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임도로 나왔다가 이제는 왼쪽 숲길로 들어간다. 산을 내려온 길은 잠시 마을 농로를 따라가다 얕은 숲으로 들어가 여원암 이정표를 지나 운성대장군(雲城大將軍)이라 쓰여있는 석상이 있는 여원재에 닿는다.
14:05 여원재(470m). 이정표에 “여원재”해발 470m, 그리고 장동마을, 봉송황토마을 1km의 푯말이 있다. 여기서 대간 2차 2구간 8시간의 산행을 맺는다.
<여원재, 울산까지 가는 24번 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장교마을 가족들과 함께 김장하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 집으로 우루루 몰려가 수돗가에서 땀을 씻어내고, 기사께서 솜씨자랑하며 맛나게 준비한 오뎅탕과 라면탕을 겸하여 모두들 하산주(?)로 하루 긴 여정을 정리하는데 아주머니에 뒤질세라 아저씨까지 김장김치를 한 양푼 들고 나와서 길손의 입맛을 돋구고 정까지 더해 주신다. 어릴적 시골풍경 같아 감동되지만 우리는 아무 것도 준 것없이 분답스럽게 서둘러 갈 길을 챙긴다. 오늘은 너무 많은 사랑의 빚을 진 것 같다.
15:50 여원재 출발하여 88고속도로를 거쳐 20:15 울산에 도착했다.
3. 마무리 하며
후미가 등로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고기3거리 직전 다른 길로 들어섰다. 갈림길에서 진행방향으로 시그널을 달았는데 보지 못하고 큰 길로 들어선 것 같다. 시그널의 효용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대간길에 시그널이 공해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3차에는 방향표지기 활용을 높혀야 할 것 같다. 선두에서 방향표시를 하고 후미가 거두어 올 수 있게 10매 정도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코팅하면 좋겠다. 시그널을 최소화하고 중간, 후미 그룹도 독도하며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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