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29. 19:35ㆍ山情無限/백두대간(完)
백두대간 5차 (5구간 : 무령고개에서 육십령까지)
산행일자 : 2006. 2. 4 (토) 06:00 ~ 10:40
산행날씨 : 맑음
산행거리 : 도상거리/12㎞ 누적거리 : 107km
무령고개 - 영취산 - 깃대봉 - 육십령
참 석 : 백두대간 종주회 29명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2/4 00:30 신복로타리 탑승 (전용 버스)
03:30~04:00 88고속도로 함양휴게소, 국밥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6:00 무령고개(920m), 출발
06:25 영취산(1075.6m)
07:26 전망대, 일출
08:40 민령
09:20 깃대봉(1014.8m)
10:00 깃대봉 샘터
10:40 육십령(750m)
12:30 육십령 출발
12:40~14:00 거창 백두산 온천, 온천욕
③ 복귀
14:20 거창 출발
17:35 울산 신복로타리 도착
2. 산행기록
대간 가는 날은 날씨가 춥다. 지난 4차 때도 그랬고 이번에는 입춘 추위로 육십령 지역이 영하 20도까지 내려 간다고 한다. 걱정스런 와이프의 전송을 받고 자정에 집을 나섰다. 오는 길 함양휴게소에서 국밥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출발한 버스는 무령고개 빙판길을 기어올라 05:00에 영취산 들머리에 도착,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보니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이는데 새벽기운이 매섭게 차다. 코 끝과 귀가 시리고 온 몸에 한기가 돈다. 버스 안에서 보온자켓 위에 평소에 잘 입지않던 아웃도어 자켓까지 입고 완전무장을 하였다.
(무령고개, 새벽기운이 매섭다. 코끝이 시리고 귀가 시리다)
06:10 무령고개(920m) 출발, 영취산을 오르기 위해 지난 4차 때 내려왔던 선바위 고개를 다시 오르려니 표고차가 120m라지만 힘을 쏟게한다. 오늘은 무령고개에서 영취산을 거쳐 육십령까지는 채 12km도 안되는 거리에 길도 완만하여 쉬운 구간이다.
지난 수요일 비가 올 적에 이곳에는 눈이 왔는지 무령고개에서부터 우리가 가는 길 쪽으로 2사람의 발자국이 나 있다. 계곡으로 접어들어 바람은 자는데 스틱을 잡은 손이 시리다.
06:30 영취산(1075.6m), 20여분 만에 영취산 정상에 올랐다. 앞서 가던 발자국은 정상에서 무령고개로 내려가고 우리는 육십령을 향해 대간길로 들어 선다. 추운데다 어둡기까지 하여 영취산을 바로 통과하다 보니 정상 표식 사진도 못 찍은게 못내 아쉽다. 사진은 찍고 싶을 때 망설임없이 찍어야 한다. 망설이다 놓친 장면은 두고 두고 아쉽기 마련이다. 영취산은 무령고개 건너 맞은편에 있는 장안산을 거쳐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간간히 급한 내림길에 눈이 쌓여 대간길은 미끄럽고, 발목 깊이까지 빠졌던 눈이 언 위에 새로운 눈이 쌓여 잘못하면 발목을 삐기 쉬운 눈길이지만 랜턴으로 밝힌 길은 야생동물 발자국이 우리를 안내한다. 랜턴을 끌 정도가 되니 백운산 너머로 햇귀가 돌기 시작한다. 억새군락과 산죽 숲을 헤쳐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 내리니 어느새 덕운봉 옆 암봉이다. 일행은 이곳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전망대 조금 전, 일출을 담기위해 카메라를 들고 조금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07:22 덕운봉(956m)옆 암봉
(일출, 햇귀가 돌고 이내 불덩이가 불쑥 솟아 오른다)
07:26 일출, 일행의 모습을 한 컷 담고 앞을 보니 조금 전망좋은 봉우리가 보여 그곳으로 달려가 일출광경을 담았다. 이런 비경은 새벽산행시에만 느끼고 즐길 수 있는 하나의 특권인 셈이다. 사진 몇 장을 연달아 찍었더니 벌써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하기야 오늘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배터리인들 제 기능을 할 수 있겠는가? 배터리를 아낀다고 셔트찬스를 아꼈는데도...
(대간길을 안내하는 야생동물 발자국들...)
(산죽숲과 눈이 뒤엉겨 대간길을 숨겼다)
코 끝이 찡할 정도로 매서운 추위 서북풍을 받으며 또다시 눈 쌓인 산죽밭과 암릉구간을 오르내리니 작은 암봉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논개의 생가가 있는
영취산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어지던 산죽은 덕운봉을 지나면서 키를 부쩍 키운다. 조금 더 진행하자 아예 눈과 뒤엉겨 대간길을 삼켜 버렸다. 대간길에 나 있는 야생동물 발자국과 아무도 흐트러지지 않은 설경을 담느라 바쁘다. 어렵지 않은 길이지만 때로는 한길 넘는 산죽이 길을 숨겨 도중에 길 찾기 어려운 곳도 있었다.
(멀리 우뚝 솟은 백운산, 영취산, 장안산과 지나온 능선이 한 눈에 펼쳐진다)
오던 길을 뒤돌아 보니 멀리 왼쪽에 백운산(1279m)이 보이고 영취산(1076m)과 그 오른쪽에 장안산(1237m)이 보인다. 앞으로는 깃대봉이 보이고 멀리 덕유산이 멀리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가야 할 능선은 지그재그의 모양으로 펼쳐져다.
(양지바른 곳 솔가지에 앉은 눈도 북서풍 매서운 바람에 몸을 사린다)
08:33 전망대/북바위,
이 곳은 백제와 신라가 이 지역에서 전쟁을 할 때마다 승리한 나라의 군사들이 이 바위 위에서 북을 쳤다해서 북바위라 부르는데 얼어 거울같은
잘 알다시피, '주논개(朱論介 1574~1593)는 장수 태생으로 천품이 영리하고 자태가 아름다웠으며 마을 훈장이었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작은 아버지가 돈을 받고 김풍헌의 백치 아들에게 민며느리로 팔아 넘겼다. 이 사실을 안 논개 모녀가 완강하게 반대를 하자 김풍헌은 장수현감에게 소장을 올렸고, 우여곡절 끝에 방면이 된 모녀는 관사에 머물면서 당시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수현감
이어 칠월 칠석날 왜적들이 촉석루에서 승전 술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논개는 기생으로 변장 왜장을 유인하여 촉석루 아래 바위 절벽에서 열손가락에 반지를 낀 손으로 그를 단단히 껴안고 넘실대는 남강(南江) 푸른 물 속으로 몸을 던져 함께 죽었다. 훗날 그녀의 의로운 정신을 기리어 그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논개 생가가 있는 주촌을 보고 있노라니 논개에 대한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다.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찾아서(義妓 논개에 얽힌 황당한 이야기 셋/
논개가 끌어안고 죽은 상대는 가토기요마사가 아니라 그의 부장인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다. 게야무라라는 자는 부당하게도 지금 임진왜란 때 세운 공로로 일본 기타큐슈에 나고야(名古屋) 소재의 희전신사(喜田神社)에 제신(祭神)으로 모셔져 있다. 6만명이 넘는 우리 조상을 죽이고 그 공으로 귀신이 된 자인데 그런 자에게 한국의 잔 다르크 논개를 바쳐야 하는가.
기타쿠슈에 있는 그의 커다란 가묘 옆에 논개의 작은 가묘를 만들어 마치 두 남녀가 정사라도 하듯 나란히 정답게 누워있다는 것이다. 이런 고약한 만행이 어디 있는가?
더욱 가관인 것은 駐 후쿠오카 총영사 박임수(朴任洙)가 1995년 비문을 써 주고, 1997년 그 제막식에 후임 총영사 임상재(任相宰)가 참석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요즘도 이런 친일파가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
무엇이 그리 좋다고 비석에 글을 써 주고 그 제막식에까지 참가했는가 말이다. 앞으로는 외무고시 응시자는 먼저 건강검진도 철저히 해야겠다. 간,쓸개가 제대로 달렸는지…
또한 진주남강에서 게야무라와 논개의 넋을 건져 올리는 의식을 진주시에서 도와주고 모래와 나무, 흙은 진주에서 돌은 논개의 고장 장수에서 가져다가 논개의 무덤을 꾸미고 진주 촉석루 옆 “의가사”에 걸린 논개영정을 똑같이 만들어 가져갔다고 하며 게야무라와 논개를 모신 사당인 “보수원” 준공식겸 합동진혼식 때 이러한 행위를 도와준 진주유지들이 부부동반으로 참석하고, 당시 진주시장이 이러한 행위를 한 우에스카라는 일본인에게 감사장을 주었다고 한다.
이기주소/이기주소/죽여주소/죽여주소/왜놈들을 죽여주소
아직도 불리우는 진주민요의 일절이다. 전북 장수의 논개 생가와 경남 함양의 논개무덤 둘 다 훌륭한 유적지임에 틀림없으나 한국인의 무식함 그리고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으로 논개의 숭고한 뜻을 훼손하고 두 번 죽이는 일을 저지른 이 사람들은 속히 반성하고 잘못된 일들은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심산 김창숙의 의기암을 요즈음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한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빼어나다 우리역사에
창가의 여인으로 의암을 남겼구나
한심하다! 고기로 배부른 자들
나라를 저버리고 아직도 무얼 탐하는가
사랑은 의암 위 벼랑에 우뚝하고
강물은 의암 아래 못으로 잠기네.
요즘 탐욕스런 무리들
이 의리를 아는 이 적으리라.
(의기암 / 심산 김창숙)
(태양 빛을 받아 빛나는 안부의 억새, 매서운 바람에도 춤춘다)
08:50 민령, 북바위을 출발하여 한 길이 넘는 키 큰 산죽 지대를 한참이나 헤쳐 나가면 아늑한 고개가 나오는데, 좌측으로는 '논개 생가'로 내려서는 길이고, 우측 길은 논개와
(깃대봉, 1014.8m)
09:20 깃대봉(1014.8m), 깃대봉 정상에 서니 조망이 좋다. 앞으로는 우리가 가야 할 할미봉, 서봉, 남덕유산의 웅장한 자태와 기백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백운산과 지나온 영취산이 구부구불한 능선위로 보이고 그 오른쪽에는 장안산이 보인다. 멀리 백운산 너머는 지리산 천왕봉이 아스라히 보인다. 그리고 서로는 백화산 등으로 둘러 쌓여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논개의 넋이 억새와 함께 잠든 산이기도 하다.
(깃대봉에서 바라본 할미봉, 서봉, 남덕유산)
여기서 육십령까지는 하산길 2.5km여서 채 한시간도 안되는 거리다.
(깃대봉에서도 멀리 지리산이 조망된다. 지나온 길은 눈이 덮혀 하얗게 보인다)
(무엇일까?, 대간길에 핀 새털같은 눈 꽃송이)
(헬기장에서 후미를 기다리다..., 위에 보이는 봉우리가 깃대봉이다)
(과연 추운날씨다. 완전무장을 해도...)
바라크라바로 중무장한 산꾼 눈썹에도 얼음이 맺혀 마치 광고에 나오는 모습같기도 하다.
20분을 기다려 후미가 합류되자 완만한 봉우리를 올라 넘어서니 산비탈 전체가 참나무로 우거져 있는데 눈이 발목까지 빠질 정도의 설원이 펼쳐져 있다. 아무도 어지럽히지 않은 순백의 설원에 발자국을 남기는 기분도 좋다. 물론 야생동물이 대간길을 먼저 가면서 안내를 하고 있지만...
(온통 참나무 숲이다. 호젓한 눈길을 걷는 선두)
오른쪽에는 깃대봉 약수터가 나타났다. "약수터에서 목을 추기는 길손이시여! 사랑 하나 풀어 던진 약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깃대봉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
아마도 대간길 바로 옆에 샘터가 있는 것은 거의 드물지 않나 싶다. 시원한 약수 한 잔씩 하고 출발한다.
(눈이 녹다가 추운 날씨로 나무가지에 얼어붙은 눈)
(나무에 얼어 붙은 눈꽃송이)
(육십령이 다 되었나보다, 이어질 덕유산 구간 남덕유산까지 8km는 제법 힘든 구간이다)
조금 더 내려가보니 우측에 비닐하우스와 육십령에서 들려오는 차량소리가 오늘의 종착점에 거의 다 왔음을 알린다. 저 아래 육십령 버스 주차장에 빨간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게 보인다.
(육십령 표지석에서...)
10:40 육십령(750m), 최근 고속도로가 개통되는 바람에 통행 차량이 부쩍 줄었다는 겨울이어서 조금은 적막한 분위기의 육십령에 서서, 4백년 前 진주성 사수의 결연한 의지를 품고 그곳으로 향하는
육십령 휴게소 공터로 옮겨 일행이 시산제를 지내는 동안 버스 안에서 조용히 모두가 무사히 완주할 수 있도록, 그리고 산을 닮고 배우며, 우리 산하를 조금이라도 더 깊이 알고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시산제 끝난후 오뎅과 라면탕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가조에 있는 백두산 온천에서 온천욕을 하고 울산으로 향했다. 17:35 신복로타리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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