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3차(3구간 : 여원재에서 복성이재까지)

2009. 6. 29. 19:22山情無限/백두대간(完)

백두대간 3차 (3구간 : 여원재에서 복성이재까지)

 

 

일시 : 2005. 12. 10(토)

날씨 : 흐렸다가 눈

구간 : 여원재-합민성터-고남산-매요리-사치재-88고속도로-아막성터-복성이재 (20km)

참석 : 백두대간 종주회 31명

누적거리 : 77km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12/10 00:30          신복로타리 탑승 (전용 버스 이용)

     04:30          여원재 도착, 도시락(떡) 식사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5:50          산행시작

                       마을통과

                       길찾기 어려움(합민성터)

        07:34          무덤

        07:47          암릉지대

        07:58          고남산(846.4m)

        08:11~:30      휴식(중계탑)

        09:12          소나무 숲 눈길

        09:32          고개, 매요리

        09:40~10:00    매요 휴게실

                       618봉

        10:46          사치재(아실재)

        10:50          88 고속도로 통과,

        11:00~:40      식사

        11:50          산불 난 능선 억새밭

                       697봉                    

        12:38          소나무 마구 베어낸 길

        12:46          오름길, 암릉

        13:20          허릿길

        13:25~:45      781봉(선두합류,휴식)

        14:03          아막성터

        14:25          복성이재

                       성리마을, 흥부소공원

 
③ 복귀

        15:00          복성이재 출발
                       식사

        21:30          울산 신복로타리 도착

 

 

 

2. 산행기록

대간은 거의 대부분 무박산행인데 벌써 이동중 잠자는 것이 만만찮다. 잠을 청해 보지만 잠 잘 시간이 지나서인지 TV소리 때문인지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경구정준호가 주연한 공공의 적 2을 다 보고 그럭저럭 하다 보니 벌써 04:30 여원재에 도착했다. 호남지방에 내린 폭설과 날씨가 많이 추울 거라는 예보가 신경 쓰였는데 별로 춥지도 않고 길섶에만 발목이 빠질 정도의 눈이 쌓여있다. 떡으로 아침을 때우며 모두들 6 산행시작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유서 깊은 여원재(女院峙 470m)

 

이번에는 여원재에 대해 공부를 조금하고 왔다. 대간을 뛰지 않았으면 여원치, 연재라고도 부르는 여원재를 어떻게 알았으랴. 대간을 타면서 역사와 문화도 살펴보고 공부할 수 있으니 이건 순전한 덤이다. 여원재는 남원에서 오르는 산길과는 달리 운봉 쪽은 비옥한 논밭이 넓게 펼쳐진 평탄한 고원지대다. 수정봉과 고남산을 연결하는 이 고갯마루는 오랜 세월에 깃든 역사와 삶의 애환을 담고 있다.

 

예부터 한양과 진주를 오가는 길목이었다는데 중산리, 장터목을 거쳐 마천의 백무동과 인월, 운봉을 지나 여원재, 남원까지 닷새 길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왜구가 이 길을 이용해 상당히 신속하게 내륙까지 진입하였다고 한다..

 

판소리의 고장으로 불리는 '운봉'(雲峰)은 말 그대로 구름에 덮인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은 고원지대로, 산에서 바라보는 넓은 벌판은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역사의 숱한 곡절과 한이 서린 비전마을의 강변에는 판소리 동편제의 시조인 송흥록(宋興祿 1780~1863년경)의 생가와 동상이 조성되어 있다. 지리산 정기를 받아 태동한 동편제는 섬진강 동쪽 지역인 남원, 순창, 곡성, 구례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서, 서편제의 슬픈 가락인 계면조와는 달리 씩씩한 가락인 우조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감정을 절제하며 장단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05:50 여원재 들머리).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 간다. 특히 차 안에서 생 시간 죽이기는 더하다. 노느니 장독 깬다고 6가 한참이나 남았는데 산행준비가 다되어 10분을 더 못 채우고 05:50김영진 산행대장이 산행을 시작하자고 한다. 버스정류장 조금 지나 시그널이 만국기같이 달려있는 들머리에 들어서자 마자 눈밟히는 소리가 제법 뽀드득 뽀드득 거린다. 눈 덮인 대간길 찾기가 처음부터 만만치 않다. 마을로 내려가다 길을 조금 벗어났다가 이내 바로 잡고 오솔길을 빠져 나왔다.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 길을 따라가다 마을이 끝날 즈음 왼쪽 길로 들어섰다가 곧바로 오른편 산으로 난 길로 올라섰다.

동트기 전이라 랜턴에 의지하여 진행하지만 제법 많은 눈이 대간 길을 덮고 있는데다 지나간 흔적이 없어 길 찾기가 제법 힘들다. 조망이 되지않아 5만분의 1 지도는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 선두에서 택명씨와 시그널과 경험에 의존하여 길을 찾는다. 비탈진 눈 길에서 엉뚱한 생각하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는 멀리 진주 남강으로 향하는 광천이 흐르고, 다리를 건너면 바로 앞에 황산대첩비와 휘하 장수들의 이름을 바위에 새긴 어휘각이 있다. 흔히 황산(695m)이라는 이름 때문에 백제 계백장군의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실은 왜구를 크게 물리친 이성계(李成桂 1335~1408) '황산대첩'(荒山大捷)으로 유명한 곳이다.

 

고려말인 1380(우왕 6) 8월에 500여 척의 배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온 왜구들이 금강 입구인 진포(鎭浦 지금의 장항, 군산)로 침입하여 약탈과 살육 등 만행을 저지르다 퇴로가 막히자 16살에 불과한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대장으로 한 수 천명이 경상도를 우회하여 상주, 함양 등지를 약탈한 후 팔량치(八良峙)를 넘어 인월에 진을 치면서 한양으로 진격한다고 소문을 퍼트려 민심이 흉흉할 때 삼도(양광, 전라, 경상) 순찰사 이성계 장군이 장수 이두란, 배극렴 등과 함께 남원에서 여원치와 운봉을 지나 황산 북서쪽의 협곡에서 적장을 활로 쏘아 죽이고 왜적을 섬멸시켜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1577(선조 10)에 세웠던 황산대첩비는 일제때 비문이 전부 긁혀지고 처참하게 파괴되었으나 1957년에 새로 만든 비가 세워져 있다.

 

황산대첩 당시 깜깜한 그믐밤에 밝은 달빛을 끌어와 환하게 비쳐준 곳이라는 인월(引月)이성계가 바람을 몰고 다니며 싸웠다는 뜻을 가진 인풍(引風)이라는 지명이 재미있다

 

임도를 따라 가는데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 가다 보니 오른편에 샛길이 나있어 그 길로 가니 길이 아닌 것 같아 뒤따라 오는 일행을 잠시 쉬게하고 택명씨와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 임도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도 시그널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다시 처음 길로 되돌아 나와 몇 기의 무덤을 지나 길 같지 않은 오르막을 오른다



 

(여기까지 오는 길 찾기가 힘들었다)


07:34 무덤, 확실치 않은 길을 찾아 이리저리 한참을 헤매며 힘들게 오른다. 나무를 마구 베어 놓은 비탈길을 조금 올라가니 밀양박씨 묘가 나왔다.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로 들어서니 상쾌한 아침 산행의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눈 쌓인 암벽도 오르며...)


07:47 로프,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에 눈까지 적당히 쌓여 호젓한데 사람 발자국은 없고 야생동물 발자국이 대간 길을 안내하며 앞서가고 있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어 김해 김씨 묘를 지나 올라간다. 잡목이 우거진 가파른 길이다. 전망 바위에 서니 바람도 시원하고.. 희미하지만 지나온 무명봉-수정봉 능선이 멀리 조망되고 고남산도 멀지 않은 곳에 다가온다.

 

갈수록 암릉이 심해지더니 제법 큰 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바위 위에서 로프가 내려져 있다. 택명씨는 전속사진사가 되어 로프잡고 오르는 한 사람 한 사람 다 찍고 있다.



 

(고남산 정상 직전 맞은 일출)


07:52 일출
눈으로 덮힌 암릉이 미끄러워 조심 조심 걷는데 소나무 숲 사이로 태양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일출을 찍으려면 빨리 전망이 좋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눈 쌓인 너럭바위를 조심스럽게 건너 일출 광경을 촬영했다.

 


 

(작은 봉우리 너머 88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눈 덮힌 운봉 일대의 아늑한 정경은 고향 마을같은 풍경인데 뒷쪽은 수십길 절벽이다. 정겨운 조그만 봉우리 너머 88고속도로는 운무로 흐릿하게 조망된다.



                                                                (가야할 능선, 봉우리들)

시그널이 수없이 매달려 있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고남산을 오르기 위해 다시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 오면서 보기에는 야트막한 산으로 보였으나 봉우리들간의 오르내림이 제법 힘을 쓰게 한다.





                                                                          (고남산, 846.4m)

가파른 암릉을 타고 올라 작은 바위들이 있는 고남산(846m) 정상에 도착한다. 여기서 매요리까지 4.0km 남았는데 지금부터는 마을뒤로 난 호젓한 야산 소나무 숲길로 마을까지 내려간다.




                                             (운봉읍 임리 전경, 매요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송신탑 오르는 길 눈 위의 산짐승 발자국들)

08:11,KTF 송신탑,   고남산 정상에서 KTF 송신탑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철조망을 통과해 송신탑 턱밑 시멘트 포장길에서 후미와 합류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데 또 막걸리 몇 병이 작살난다. 뒤 따라 오면서 이미 1차를 한 것 같은데 왠 대간을 술 힘으로 하겠다는건지





                                                   (후미와 합류하기 위해 휴식하며 담소)

어쨌거나 길도 미끄러운데 술을 절제했으면 좋으련만 마시는 사람은 걱정없이 즐기는 것 같은데 주위사람 걱정이 크다. 20분 정도 휴식하고 후미와 합류하여 임도를 따라 부지런히 매요마을로 향한다.




                                                        (소나무 우거진 눈길은 호젓하다)

09:12,   입리와 매요리 뒷산을 끼고 돌며 적당히 오르내리는 소나무 숲 눈길이 상쾌하다. 매요리까지는 조망이 거의 없는 길로 마을에 가까울수록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갑자기 닥친 강추위는 처마에 고드름을 만들고...)


09:32,
마을입구 고개를 넘어서자 높은 곳에 교회당 십자가가 보이고 마을이 눈앞에 나타난다. 드디어 매요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니 몇 일간 지속된 강추위로 고드름이 한 발이나 되게 주렁 주렁 매달려 있다. 




                                                                 (매요리 백두대간 휴게실)

09:40~10:00  매요 휴게실,  백두대간 타는 사람이면 필수코스로 알려진 매요휴게소로 들어간다 마당에 있는 나무에는 형형색색의 표지기들이 달려있다.

 

그 유명한 신순남 할머니가 우리를  반겨 맞아준다. 물을 시원하게 들이키고 앉으니 할머니는 일찍 도착했다고 대단하다고 한다. 휴게소를 그냥 지나가랴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 잔이 또 오고 간다.  





                                                                                 (     )

매요마을 교회를 지나 창고와 목재소 사이로 난 묘옆으로 대간은 이어진다. 왼쪽으로 표지판과 리본들이 보인다. 표지판에 해발420m, 여원재10.4km-복성이재9.6km라 적혀있다운성초교 폐교건물을 지나 5분 정도 내려가면 운봉-번암간 도로가 있는 유치삼거리다

오르막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고.. 김해 허씨 묘지를 지나 내려선다. 결코 물길을 건너는 법이 없는 백두대간은 마을을 통과하고 삼거리에서 계속 야산같은 618봉을 넘어가면, 놀랍게도 대간의 능선을 가로막는 자동차 소리도 요란한 '88올림픽 고속도로'가 나온다.

구기자 같이 생긴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하게 달려있길래 열매 몇 개를 따서 입에 넣었다. 맛이 새콤하다

 


 

(사치재, 바로 밑이 88고속도로다)


10:46
사치재(아실재), 
88고속도로의 사치재에 도착하니 건너편에 대간 마루금이 있는데 왕복 2km정도를 돌아 가라고 이정목에는 표시되어 있다. 이 지점이  사치재(아실재)인데 위험을 무릅쓰고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할 것인가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20~30m 정도 떨어진 '지하 농로'로 건너갈 것인가가 문제다. 사치재에서 복성이재까지 거리는 이정목에 4.8km 라고 나와 있으나 여러 사람들의 거리표에는 6.9km라고 나와 있다.

10:50, 88 고속도로 통과지하로 가려다 그만 차도 별로 다니지않아 후다닥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했다. 길가에 서서 한숨 돌리고 고속도로의 질주하는 차량들을 보니 보통 빠르게 달리는게 아니다. 뒤따라 오는 대원들에게 지하통로를 친절하게 안내해도 요령껏 무단횡단이다. 대간을 가로지르는 88 고속도로는 광주와 대구의 영호남을 연결하며, 여기서 오른쪽으로 1km 정도 걸어가면 지리산 휴게소가 나온다.

 

11:00~:40  식사, 마땅한 자리가 없을 것 같아 지하통로 위 넓직한 공터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미 식사가 끝나 가는데 한쪽에선 버너가 켜지고 라면 끓는 냄새,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계속 걸을 때는 몰랐지만 날씨가 보통 추운 것이 아니다. 손이 곧아 젓가락질도 쉽지 않고 체온이 내려간다. 동절기 산행은 땀을 흘리지 않아야 하고 휴식을 길게 하지 않아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데... 윈드 스토퍼을 내어 입었다.



 

(큰 산불로 억새만 무성하다)

11:50, 식사를 마치자 마자 코가 땅에 닿을 듯 경사진 비탈을 한참동안 치고 올라가면 광범위한 산불지대가 나오고, 계속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능선이 이어지는 대간길은 잡목 때문에 길을 헤치며 가야하는 곳도 나온다

한숨 돌리고 오른쪽을 보니 88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와 팔각정이  시야에 확 들어온다. 능선을 따라 저 높은 곳에 697봉이 자리하고 있다. 지나온 능선과 가야 할 697봉쪽이 크게 보인다
            


 



(가파른 암릉 길... 힘이 든다)

11:50분, 새맥이재와 시리봉을 지나면 키 큰 철쭉 군락지대가 나타나는데 어찌나 무성한지 이곳을 통과하는데 배낭을 마구 잡아당겨 여간 힘들지 않다. 더군다나 팔을 반쯤 걷고 산행을 하다보니 팔뚝은 이미 철쭉과 잡목 나뭇가지에 많이 긁혔다.

          

12:38분, 한참을 오르자 밑둥이 마구 잘린 소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간벌을 한 것 같지는 않고, 재선충 때문인 것 같은데 자꾸 이런 식으로 숲이 황폐해진다면 보통 우려되는 일이 아니다

12:46분,  시리봉 정상을 우측에 놓고 좌로 꺾어 작은 나무 숲 사이를 헤쳐서 오름길로 781봉으로 향한다. 가루같이 날리던 눈이 이제는 제법 눈 같은 모습이다. 전망은 흐려지고 오로지 앞만보고 눈 길을 간다. 울산에서 보기 어려운 눈인데 지겹도록 눈길을 걸으며 눈을 맞고 산행을 하다니...

 

13:20, 계속이어지는 길은 심하지는 않지만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발 목까지 빠지는 눈도 그렇지만 얼굴부위까지 엉켜 터널을 만드는 잡목 숲이 몸 균형잡기도 힘들게 하고 갈 길도 더디게 한다. 잡목숲을 통과하려다 또 엉덩방아를 찧었다. 벌써 대여섯번은 미끄럼을 탄 것 같다.

아이젠을 차기로 했다. 배낭에서 꺼내기 싫어 여기까지 왔는데 왜 그렇게 바보같은 짓을 했는지... 산행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이다.


13:25, 아이젠을 차고 걸으니 제대로 힘이 주이고 균형잡느라 애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 훨씬 걷기가 편하다. 암릉 오름길을 오르는데 사람소리가 들린다. 781봉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선두를 만났다. 불이 옆으로 번지지않게 조심하면서 후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뿔사 대원 1명이  팔에 골절상을 입고 나타났다. 큰 부상이 아니길...




    (아막성터, 많이 허물어졌는데 눈까지 쌓여 흔적만 확인된다)

13:45, 781봉 출발, 선두 쏜살같이 내 달린다. 눈 쌓인 급경사길을 아이젠도 차지않고 산악마라톤하듯 달린다. 덩달아 달려본다. 한참 달리다보니 내가 왜 달리는지 모르겠다. 주위에 카메라에 담을 풍경도 많고 찬찬히 봐야할 풍경도 많은데 그리고 세월 대간선배 산꾼들의 조언도 대간길 급하게 다니다가는 나중에 남는 것은 무릎고장 밖에 남지 않는다는 조언이 생각났다. 그래 내 페이스로 가자.

 

14:03, 아막성터키 작은 철쭉과 싸리나무들이 진행을 방해한다. 나무숲을 빠져나오니  백제와 신라가 주도권 쟁탈전을 벌였다는 아막산성 터가 나온다.  복성이재가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 오른쪽 아랫마을로 내려가면 흥부가 제비가 물고 온 박을 타서 큰 복을 받아 잘 살았다는 남원 아영면 성리의 복덕촌(복성) 이다.





(다음구간 들머리 복성이재)

14:25,복성이재한편 판소리 '흥보가' 중에, "경상도는 함양이요 전라도는 운봉인데, 운봉 함양 두 얼품에 박씨 형제가 사는지라, 형 이름은 놀보요, 아우 이름은 흥보라" "흥보가 어디에 살았는고 하니 팔량치 재 밑에 살았것다" "연재를 넘어 비전을 지나 흥보집에 당도하니”로 등장하는 흥부네 집은 남원 인월면 성산리를 가르킨다.

 

복성이재는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군 아영면의 경계이다. 짓재라고도 한다. 해발550m.

골절상 당한 "ㅂ" 대원을 사무국장과 함께 119 앰블런스로 남원으로 후송하고, 일행은 흥부공원이 있는 탐라가든에서 추어탕으로 전라도 음식의 진수를 맛보며 저녁을 먹고 남원에서 일행을 태운후 울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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