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세계의 수도 카이로

2014. 4. 2. 23:45여행/여행기

 

 


이집트 카이로
(아랍 세계의 수도)


○ 2014. 2. 10 ~ 11   날씨 : 낮에는 약간 더움
○ 이집트, 카이로






역시 이집트 여행의 적기는 겨울이다.
우기라고 하여도 년평균 강수량이 30mm도 안된다고 하니
큰 비를 만날 일은 거의 없다. 낮 기온이 조금 덥게 느껴질
정도이나 사막성 건조한 기후여서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여 좋다.
미세먼지가 조금 있긴 하지만 날씨가 반겨 주는 듯하다.

카히라(승리)라는 어원을 갖고 있는 카이로는,
나일강 삼각주의 남단에서 약 25km 남쪽 나일강 우안에 있는 아랍권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로 인구는 1700만명, 1월 평균기온 12.7℃,
8월 평균기온 27.7℃, 연평균 강수량 25mm. 카이로라는 이름이 969년부터
불렸다고 하니 상당히 오래된 도시이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는 현재의
카이로 남쪽 교외로 나일강 좌안에 해당하며, 로마·비잔틴 시대에 형성되었다.
바빌론은 지금의 구카이로에 있었고, 아랍인이 이집트를 정복하였을 때
정복자 아므르 이븐 알-아스(Amr ibn al-As)가 바빌론의 동쪽 가까이에 새로운 도시
푸스타트(Fustat)를 건설하고, 9세기에 이집트가 바그다드에 종속되었을 때
이집트의 지배자가 된 아마드 이븐 툴룬(Ahmad ibn Tulun, 868~905)이 푸스타트의
북동쪽 접경 지역에 새로운 카타이(Katai)를 건설한 후로 정치 군사 무역 학술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이집트는 아랍세계의 수도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아랍 연맹의 본부가 있으며, 아프리카와 아랍의 망명 정당 사무소도
설치되어 있어 망명 정치가의 활동이 활발하다고 한다.







(공항 인근 카이로 시가지 풍경)

카이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전략적인 요충지. 경제적인 면에서도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고대부터 도시가 건설되었다.
카히라라는 지명이 되고 나서도 변동이 심했다고 한다.
아이유브왕조(1169∼1250), 맘루크 왕조(1250∼1517)의 지배를 거쳐서
오스만 투르크(Osman Turks) 제국이 통치할 때에는 문화가 정체하였으나,
1798∼1801년 프랑스 점령시대에는 시가가 확장되었고,
영국과 터키의 연합군이 카이로를 프랑스에서 탈환하여
터키의 주권하에 메메드 알리 왕조의 수도가 되어
발전하기 시작, 서쪽으로 확장되었다.





(중심가를 벗어나면 짓다만 집들이 많이 보인다)

카이로는 건물의 준공검사를 받으면 비싼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주택은 준공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주택을 완공할 형편이
안되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기후 또한 집을 여유롭게 지어도 되게 한다.
강수량도 적은데다 공기가 건조하여 짓다만 집도 크게 불편할 일이 없으니
그대로 산다고 한다. 건물모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집들(완공된 집들)은
거의 관공서 건물이거나 공공건물들이라고 한다.







(아기예수피난기념교회와 모세기념교회 가는 길)

1882년 반(反)터키·반영국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서
영국군이 진주하고, 이집트의 영국보호령화(1918), 형식적인 독립
(1922) 등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1946년까지 카이로를 지배하였다.
오늘날에도 카이로에는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시내는 전통적인 구시가(아랍街)와 신시가(이스마일區)로 나뉘며,
신시가에는 정부청사 회사 은행 호텔 등이 들어서 있고, 강 서쪽에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다. 시내에는 옛 성채와 아므르사원,
알아즈하르사원을 비롯하여 많은 이슬람 사원과 궁전 등의 건축물·
박물관, 그 밖의 문화시설이 있어 관광자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서쪽 약 180 km의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하여 포트사이드, 이스마일리아,
수에즈,훌완과는 철도와 국도로 연결되며, 카이로-이스마일리아의 운하 등
나일강과 그 삼각주 지대의 수로에 의한 수운도 발달하였고
교외의 헬리오폴리스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좁은 골목길을 헤집고 다녔다.)







(BEN EZRA SYNAGOGUE.. 이정표를 따라 간다)











(처음 들린 곳은 Sergius and Bacchus Church)

박해를 피해 도망을 왔던 예수, 성모마리아, 요셉의
은신처에 세워진 이 교회는 예수님께서 이집트에 1개월 피난
(마 2:13-15; 19-21)했던 동굴 위에 지어졌다. 동굴은 현재 물에 잠겨 있다.
이집트에서 가장 잘 알려진 콥트교회(Coptic Church)로 성세르지우스 교회나
아부 세르가 교회로 불리는 아기예수 피난교회는 바실리카양식으로 지어져
외관은 비교적 평범한 편이다.

이 교회는 A.D 303년 로마황제 맥시밀리안 때
시리아의 알라사파에서 순교한 서지우스(Sergius)와 바쿠스(Bacchus)를
기념하여 세운 교회이며, 매년 6월 1일 이들을 기념하는 성인 축일이 지켜지고 있다.
길이 17m, 폭 15m, 높이 3m의 현재 건물은 10-11세기에 재건한 것이다.






(Abu Serga Church, 같은 교회이다.)

콥틱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 교리를 갖고 있고,
사도 마가가 세운교회이기 때문에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기독교이나,
그리스도론에서는 개신교나 가톨릭처럼 '칼케돈 교회회의(Council of
Chalcedon)'에서 결정된 교리를 따르는 교파들과 차이가 난다.
칼케돈 회의에서 결정된 교리는 양성론(兩性論)이라고 해서
그리스도를 완전한 인간이요, 완전한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교리이다.
하지만, 콥틱교회는 칼케돈 회의에서 결정된 교리를 따르지 않고,
단성론이라고 해서 그리스도의 신성만 인정하고, 인성을 부정하여
칼케돈회의를 계기로 양성론을 따르는 로마 교회로부터 독립했다.
결국 콥틱교회는 교리적 차이로 동방정교회와 갈등을 빚다가, 이집트가
이슬람화되면서 대다수의 콥틱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거나,
무거운 세금 징수라는 탄압을 견디면서 신앙을 지킨다.

현재도 이집트에서는 주교회의에서 선출된 교황이 지도하는
콥틱교회가 유아세례를 집전한다. 콥틱교회 신부들과 주교들의
수도원 운동 등으로 이집트의 기독교 신앙을 유지시키고 있으나,
이슬람의 물질공세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거나
극우 이슬람교도들의 교회 습격 등으로 기독교의
신앙을 지켜나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아기예수피난교회 내부 모습 / 빌려 온 사진)

이집트는 약 2000년 전 아기 예수와 요셉, 마리아가
헤롯왕을 피해 피신한 곳. 그보다 앞서 야곱과 아들들이 기근 때문에
요셉을 따라 떠난 곳이 이집트이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온 곳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성경 속에는 이집트(애굽)과
관련된 역사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는 '아기예수피난교회
(The Church of Abu Serga)'로 기독교 집성촌인 구카이로에 있다.
콥트교 소속인 피난교회는 아기 예수와 요셉, 마리아가 이집트로
피난했을 때 숨었던 지하 동굴 위에 세워졌다. 지금은 물이 차 있어
들어가 볼 수 없다.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외관은 평범하나
내부에는 아기 예수 등 많은 성화가 있다.







(BEN-EZRA SYNAGOGUE / 모세기념회당)

처음에는 알무 알라카 교회의 부속건물로서 AD 4세기에 지어져
AD 9세기까지는 미카엘 교회(성 미카엘교회) 또는 가브리엘 천사 교회로 불렀다.
이집트의 이슬람 왕조인 이븐 툴룬 왕조(AD 868~905) 때인 이집트의 제 56대 교황(주교)
미카일 3세때 아흐메드 이븐 툴룬이 '이븐 툴룬 모스크(Ibn Tulun Mosque)' 건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독교도들에게 금 2만 디나르의 고액의 세금을 부과하자 몇 개의 예배당을 매각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를 유대인들이 매입하여 회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알하킴 (AD 996~1021)때에 다시 파괴되었다.

1115년 예루살렘에서 랍비 아브라함 벤 에즈라가 방문한 이후에
재건하여 이 이름이 유래되었고, 당시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까닭에 아라베스크
문양을 하고 있다. 이후 이 회당은 현대의 아랍,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심화되던
AD1965년까지 천여년 동안 유대인공동체의 중심자 역활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 이집트 잔존 유대인들의 수는 100여명 정도이고
이들의 약간이 시내 중심지의 샤리아 아들리(아들라가)에 있는 회당에서
모이고 있다. 이 회당이 다시 지어진 당시에는 주위에 29개의 사원과 20개의
예배당이 존재하고 있었다. 133,000명의 무슬림들과 10,000명의 콥틱 기독교인,
42명의 유대인들이 올드 카이로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











(모세기념교회, 내부촬영 금지여서 빌려온 사진들로..)

아기예수피난교회와 이웃하고 있는 모세기념교회는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당 중 하나. 이곳은 모세가 물에서 건져진 곳이기도 하며,
모세가 이집트를 떠나기 전 마지막 기도를 올렸던 곳으로 전해져 '모세기념교회'로
불린다. 또 모세가 백성들과 함께 이집트에서 출발할 때 표식을 남겨 뒀다고
전해진다. 실내 촬영을 금지하여 사진 몇 컷만 빌려와 올린다.

또, 이곳에서 1890년에 발견된 퀘니자(Geniza)
이 교회 안에는 '구에니체(Guenizeh)'또는 안전한 보관소라고
불리는 특별한 장소가 있었는데, 기원전 475년 사슴 가죽에 쓴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를 보관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발견된 문서는
11~12세기 당시 유대인들의 생활상이 담겨있는 귀중한 자료로
그 분량이 무려 25,000쪽이나 된다고 한다. 회당 뒤편 계단으로
내려가면 '메크바'라고 하는 샘이 회당 밖 지하로 연결되어 흐르는데
나일 강 변에 버려진 모세를 바로의 공주가 물에서 건져낸
곳이라고 전해져 '모세의 샘'이라 부른다.







(낯선 문자의 이정표를 따라..)







(고대 이집트인들이 벽을 쌓은 모습)

돌 사이에 나무를 넣고 쌓았다. 이집트인의 지혜를 엿본다.











(구카이로 길 거리 풍경)

카메라를 보더니 사진을 찍으라고 'V'자를 그리며,
'코리언, 코리언 댕큐!'하며 호감을 표시한다.











(이집트 카이로 국립박물관 가는 길)

아기예수 피난교회에서 이집트 박물관까지는 거리는 7km 남짓.
그러나 70km를 달린 만큼 시간이 걸렸다. 카이로의 교통체증은 무질서가 주원인.
자동차의 깜빡이는 끼어들고 난 다음에 하였는데 이건 끼워줘서 고맙다는 인사인지??
나중에라도 넣어주는 깜빡이는 그나마 양반, 역주행도 다반사니..
그렇게 굼벵이 같이 섰다가다를 반복하더니 아예 꼼짝달싹을 않는다.
이제 박물관 입장 마감 시간이 다되어 가는데..
카이로까지 와서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을 못 보고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 차에서 내려서 막 달려가고 싶었는데..
다행히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집트 카이로 국립박물관)

3시 50분, 문닫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입장하여
전세낸듯 번잡하지 않게 박물관 관람도 하고..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은 다음 편에..





(나일강변에서.. 사색에 잠긴 이집션)











(나일강변으로 이동하여 펠루카를 타고..)

펠루카는 이집트의 돛단배로 오래 전부터 나일강의 교통수단으로
활용되었고, 현재는 이집트 관광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펠루카를 타고
2박 3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크루즈도 개발되어 있다고 한다.















(석양이 질 무렵 나일강 펠루카를 타고 유람을 하였다)





(저기 보이는 교회가.. )

중요한 교회라고 했는데.. 생각도 안 나고.. 찾을 수도 없다.







(나룻터에 정박중인 펠루카들..)

이전에 이집트 관광이 한창일 때는 나일강을 수 놓은
펠루카로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이집트 정국혼란으로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펠루카도 그렇게 많이 뜨지 못한다고 한다.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는데 오늘 일정까지 다 마치고
시간맞춰 식사를 하니 편안한 마음이다.











(집을 나선지 35시간 만에 숙소로..)

시외곽에 있는 Sheraton 호텔. 부지가 얼마나 넓은지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들어왔다. 호텔입구의 경비견까지 동원한 
삼엄한 경비초소를 통과(?)해서 드디어 숙소 도착.
 
전날 오후 3시 반에 집을 나서 꼬박 하루 하고도 11시간이
지난 시간에 여장을 푼다. 여행은 힘 있을 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
옛 선인들의 말씀이 틀린 것 하나 없는듯..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여행도 특히 젊을 때 힘든 곳을 먼저 가고,
나이 들어서는 선진국을 가는 것이 순서.











(밤 늦게까지 불야성을 이룬 드림랜드와)

새벽에 돌아본 수영장..
진작 알았더라면 수영이나 한 번 하는 건데..
물도 수영하기 딱 알맞게 물안개가 피듯 김이 모락모락..
첨벙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뒷쪽의 드림랜드와 수영장 방향)

어젯밤, 버스가 호텔입구를 통과하고도 한참을 곡예하듯 돌아
방향감감을 잃었는데.. 해가 호텔 뒷쪽방향에서 뜬다.





(이집트에서 첫날 아침..)

일출은 못담고, 미세먼지가 가리기는 하지만
이집트의 아침 풍경을 담아본다

오늘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나고
수에즈 운하를 건너 광야를 거쳐 시내산 밑까지..
출애굽의 행로를 따라 가는 여정. 또
16시간 동안의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