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물과 운하와 곤돌라로 상징되는 도시
2014. 8. 27. 15:20ㆍ여행/여행기
베네치아, 물의 도시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의 명물 곤돌라와 수상택시를 타고 운하를 누비며..)
○ 2014. 5. 16 날씨 : 쾌청한 날씨
○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潟湖:라군) 위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 사이의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독특한 시가지를 이루며,
흔히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 교통수단은 전부 배로 이용되고
베네치아 섬에는 자동차가 1대도 없다고 한다.
베네치아는 원래 습지대였는데, 6세기경 훈족의
습격을 피해 온 이탈리아 본토 사람들이 간척을 시작, 도시를 건설.
697년 초대 총독이 선출되어 독자적인 공화제 통치가 시작되었다.
11세기에는 십자군 원정의 기지가 되기도 했으며,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베네치아는 지중해 동부에서 유럽으로 운반되는 상품의 집산지였을 뿐만 아니라,
중세의 전란으로 사라진 예술과 공예를 그곳 공방에서 소생시키고 있었다.
베네치아의 유리, 양복지, 비단제품, 금, 철, 청동 등의 가공기술은 실로 뛰어났다.
베네치아 공화국이라는 공화국으로 활동하던 베네치아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간의
분쟁을 개신교에 유리하게 중재하여 1606년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하고,
1797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침략을 받아 1805년 나폴레옹 치하의
이탈리아 왕국에 귀속되었다. 1815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1866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명물은 '곤돌라'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베네치아(베니스)영화제', 그리고 봄이 시작될 무렵 열리는 화려한
'베네치아 카니발'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베네치아 인근에서 출발, 30여 분 지나자 베네치아 도착)
(베네치아 위치와 인공 섬의 모습)
모자이크같이 조각 조각 나누어진 118개의 섬은 177개 운하 위에
400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1000년 동안에 만들어진 인공섬.
바다 위에 떠 있는 낭만적인 도시 베네치아.
(과연 베네치아.. 여기 저기에 정박중인 크루즈선들이..)
'바다를 즐기고 하늘과 포옹하고 육지와 사랑하라'는
크루즈 여행. 우리의 정서와 다른 우아한 파티문화가 이질적이기는
하지만 역시 여행은 크루즈 여행. 관광객 유치도 크루즈 선
한꺼번에 몇 천명을 쏟아 부으니 관광 효과도 클 테고..
(산타마리아델라살루트교회(아래))
이탈리아 베네토주 베네치아. 대운하 어귀에 위치한
바로크 양식의 교회로, 1630년에 유행한 페스트로부터 이 도시를
구원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지어졌다고 한다.
(바다에 박혀있는 백향목 말뚝들..)
바다에 수 없이 박혀있는 이 말뚝들은 뱃길을
안내 하기도 하고, 선착장을 이루기도 하지만
567년 이민족을 피해 이주해 온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만 기슭 갯벌에 수 백만 개의 바닷물에 강한 백향목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베네치아의 상징은 운하, 다리, 곤돌라)
(산 마르코 광장 가는 길..)
가면의 도시에서 가면 쓴 모델들의 유혹..
(Rio dei Greci canal - Venice FlinstoneRO)
베네치아의 역사는 567년 이민족을 피해 이주해 온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만 기슭 갯벌에 수 백만개의 말뚝과
돌을 부어 마을을 만든데서 출발한다고 한다.
(베네치아는 지반침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100년 후에는 도시가 물에 잠길 것으로 예상..
도시가 가라앉고 있는 것을 유지하고 보수하는데 많은 돈을 쏟아 붇지만
묘책은 없다고 한다. 바닷물이 차 오를 때 막는 물막이
(베네치아의 우물)
아이러니하게도 물의 도시에서는 물이 귀하다.
빗물을 땅 속에서 모아 정수하여 우물로 길어 올렸다고 한다.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의 우물들을 볼 수 있다.
(노상카페 메뉴와 상점의 기념품들..)
기념품들 중에 조그만 가면들도 빠짐없이 보인다.
(대문은 수로 쪽으로..)
(25)
(두칼레 궁전, 산마르코 성당, 산마르코 광장)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에 힘입어서 동방무역을 확대하고
나아가서 현재 그리스의 여러 섬들을 비롯한 동지중해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한다. 14~15c 초에 해상무역공화국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 무렵 베네치아의 인구는 약 20만명으로 추정. 공화국의 정치 중심이었던
두칼레 궁전이 완성된 것은 15세기. 16c 이후 투르크인에 의해 동부 지중해에서
세력이 약화되었고 따라서 베네치아는 점차 오늘날의 베네토주의 풍요한
농업지대의 중심도시로서의 성격을 띄게 되었으며 도시경제의 쇠퇴와
페스트의 유행으로 16세기에는 인구가 10만으로 감소하였다.
산 마르코 광장은,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말한 곳으로
베네치아에는 많은 광장들이 있는데 산 마르코 광장에만 Piazza라는
단어를 넣어 다른 광장과 구분할 만큼 베네치아인들에게 애정이 남다른 곳.
산 마르코 광장 안에는 300년이 넘은 '카페 플로리안'이라는 찻집이 있다.
카사노바가 선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곳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괴테,
골도니, 바이런 등 유럽을 대표하는 문학가들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연주를 들으며 차를 마실 수 있는데 음료비와
별도로 1인당 6유로의 연주비를 지불해야 한다고..
(베네치아의 명물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곤돌라.
수로위에 곳곳에 정박되어 있었는데 물의 도시답게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자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이동수단.. 베네치아의 명물 곤돌라를 타고 수로를 따라
관광을 한다. 곤돌라는 슬림한 선체와 평평한 바닥이 인상적이였는데 뱃사공도
이탈리아 남자여서 그런지 남자가 봐도 정말 멋쟁이더라구요.
(비탄의 다리(Bridge of Sighs))
카사노바가 잡혀갈 때 지나갔다는 다리.
비탄의 다리, 탄식의 다리라고 불리는 카사노바가 건넜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유명해진 다리. 두칼레 궁전과 동쪽으로 나 있는 감옥을 잇는
다리로 형을 받은 죄인은 누구나 이 다리를 지나 감옥으로 이송되었는데,
죄인들은 이 다리의 창을 통해 밖을 보며 다시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탄식을 했다고 한다.
카사노바는 베네치아 출신, 1725년 4월 2일 이 곳에서 태어났다.
'생갈트의 기사(Chevalier de Seingalt)'라는 이름은 카사노바를 지칭.
처음에는 성직자·군인·바이올리니스트 등으로 입신하려 하였으나,
추문(醜聞)으로 투옥. 1756년 탈옥한 이후부터 생애의 3분의 2를 여행으로
유럽 전토를 편력.. 재치와 폭넓은 교양을 구사하여 외교관·재무관·스파이 등
여러 직업을 갖기도 하고, 감옥에 투옥당하는 등 그의 삶은 변화무했다고 한다.
그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귀족·문학가·과학자·예술가·희극배우·귀부인·
천민·사기꾼·방탕아)과 두루 사귀었고 계몽주의 사상에도 접하며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보헤미아 둑스의 성에서 발트슈타인 백작의 사서로
쓸쓸히 죽었으나, 그의 저술가로서의 명성은 이 성에서 지루한 나날을
달래기 위해 쓴 "회상록 Histoire de ma vie"(12권, 1826∼1838) 때문.
이 책은 18세기 유럽의 사회·풍속을 아는 데 귀중한 기록이 되었다.
또한 5부로 된 공상소설 "20일 이야기 Icosameron"(1888)는
쥘 베른의 "지저(地底) 여행"의 선구적 작품이라 불린다.
(베네치아의 대중교통은 전철도 버스도 아닌 수상택시)
'바다를 사랑한 도시라'는 말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
크고 작은 섬들도 이루어진 베네치아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도시로
대중교통은 역시 수상택시였다.
(신났다!!)
(기원아 고마워!!)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상징 곤돌라)
곤돌라는 손으로 깍아 만들어 1척을 완성하는데 1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곤돌라 사공, 곤돌리에르가 되려면 자격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시험이 워낙 까다롭고 어렵다고 한다. '문화 전도사'라는
자부심과 그에 못지않은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두칼레 궁전과 종탑, 그 앞의 곤돌라 선착장)
산마르코 광장의 높이 98.6m의 종탑(Campanile)이 우뚝하다.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산 마르코 광장은 3면이 건축물로 둘러 싸여있다.
광장 내에 산 마르코 성당 등의 명소와 베네치아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거의 100m나 되는 종탑 등 볼 거리가 많다.
(공사중인 산마르코 성당)
산마르코 성당 앞 산마르코 광장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베네치아의 구시가지는 지난 날의 공화국 번영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산마르코 성당·두칼레궁전·아카데미아미술관
등은 미술·건축예술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다.
(St Mark's Basilica의 5개의 문 장식)
(산 마르코 광장 주변 건물)
고급 상점들과 카페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화장실은 커피 한 잔, 아이스크림 사 먹고 해결
(아름다운 베네치아)
하늘 빛을 담은 물 빛, 그 위에 떠 있는 도시, 곤돌라
(원래 찍사는 본인 사진이 없는데..)
오늘은 내 사진이 많아도 너~무 많은 것 같다.
카메라맨 3명이 동행을 했으니..
(세계 최고 유리공예의 산실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곤돌라'와 '베네치아(베니스)영화제',
'베네치아 카니발'로 유명한데 여기에 또 하나 베네치아의 명성을
더하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유리'. 산마르코 광장에서 배 버스인
바포레토(Vaporetto)를 타고 40여 분 가량 이동하면 다다르게 되는
무라노 섬은 세계 최고라는 베네치아 유리의 산실.
(82)
(가면의 도시 베네치아)
골목에서 크고 작은 가면들로 가득한 가면 가게들을 볼 수 있다.
중세에 서민이 가면을 쓰고 귀족 놀이를 하면서 기분을 달래던 것이
유래해 풍습이 이어지고 중세 이후 부터는 귀족에게까지 퍼져 신분을 숨기기 위해
1년 내내 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가면이 인기가 높아 졌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가면 모양은 '카사노바 가면'과 '페스트(흑사병)의사' 가면인데
재밌는 이야기는 당시 남자들이 카사노바 가면을 쓰면 매력적인 남자로 변한다고
여겼다 한다. 주둥이가 새처럼 나온 모습의 페스트 의사 가면은 실제로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 의사들이 사용한 가면으로 주둥이 부분에 향신료를 채워
가면을 쓰면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의사들이 믿었다고 한다.
이런 가면을파는 상점들이 많았다.
베네치아는 해마다 이탈리아에서도 최대 규모의 축제가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어 열리는데 가면축제가 카니발의 꽃이라고 한다.
그래서 베네치아를 가면의 도시라고 하기도..
(수상택시 승선장)
이번에는 수상택시를 타고 곤돌라로 돌아보지 못한 곳을 돌아본다
(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 Venezia)
(황금으로 채색한 듯.. 베네치아에서 제일 비싼 집?)
(97)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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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크고 가장 튼튼한 리알토 다리(Rialto Bridge))
"베네치아에서는 리알토 다리를 보아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다리.
예전부터 리알토 다리 주변은 상권의 중심가였다. 12세기 경,
넘쳐나는 상품들과 한쪽 둑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요를 배가 감당하지 못하자 다리 건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16세기가 될 때까지 제대로 된 다리 없이 나무 다리를 임시로
사용하다가, 16세기 말 안토니오 다 폰테가 돌로 된 최초의 다리를 설계·
건축하였는데 그 다리가 바로 리알토 다리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1854년 아카데미아 다리가 지어지기 전까지
대운하를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다.
이 다리가 유명하게 된 것은 베네치아의 첫 번째 다리이기 때문,
아치 모양의 아름다움, 다리 위에 화려하게 장식된 아케이드 점포들..
대운하에서 곤돌라를 타고 보는 모습이 아름답고 계단식 다리 위는
귀금속과 가죽 제품 등을 파는 점포들과 그것을 구경하는 관광객,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카날 그란데(Canal Grande), 베네치아 운하이름)
(기원이 이쁘다!)
그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네 꿈을 펼쳐봐!
내 사진도 많이 찍어 줘서 고마워!!
함께 한 여행 즐거웠어..
(126)
(배 버스 바포레토(Vaporetto))
베네치아 해상 교통수단은 배인데
배도 제일 적은 곤돌라로 부터 택시, 자가용,
그리고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
(118개의 섬, 400개의 다리로 연결된 물의 도시 베네치아)
567년 이민족을 피해 이주해 온 롬바르디아의 피난민들이
만 기슭 갯벌에 수 백만개의 말뚝을 박아 마을을 만든데서
출발한베네치아는 6세기 말에는 12개의 섬에 취락이 형성되어
리알토 섬이 그 중심이 되고, 이후 리알토가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이 지역은 일반 주거지구)
섬에 취락이 형성되어 리알토섬이 그 중심이 되고,
이후 리알토가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처음 비잔틴의 지배를 받으면서 급속히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성장하여
7C 말에는 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도시공화제 아래 독립적 특권을 행사하였다.
10C 말에는 동부지중해 지역과의 무역으로 얻은 경제적 번영으로 이탈리아의
자유도시들 중에서 가장 부강한 도시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십자군 원정에 힘 입어 동방무역을 확대하고, 나아가 현재 그리스의
여러 섬들을 비롯한 동부지중해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14세기 ~ 15세기 초에 해상무역공화국으로서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 무렵 인구는 약 20만으로 추정.
(날렵한 곤돌라는..)
좁은 수로, 배들 사이로 빠져 나가기도 유리하지만
곤돌리어의 노 젖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대 운하를 빠져 나오면서..)
(베네치아여 안녕~)
물을 사랑한 도시 베네치아의 낭만을
느리면 느린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바다 위에 도시를 건설하고
그 도시에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베네치안이라니 믿기지 않을 정도.
우리만 이렇게 여유없이 바둥거리며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 베네치아도 지구온난화와 지반침하로
100년을 버티기 어려운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하니 안타까움..
이 또한 인간들이 뿌린 씨앗이 부메랑으로 돌아 오는 것일테지.
아름다운 베네치아! 공해배출이 다른 도시보다 적은 청정바다에서
서유럽 여행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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