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산 너머
2015. 2. 23. 22:28ㆍ시,좋은글/詩
사라진 산 너머 / 반칠환
한때 이곳도 인절미처럼 쫄깃쫄깃한 노란 별똥이 내리던 밤이 있었으리라.
개똥벌레는 한껏 개똥불을 켜고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먼산 너머로 날아가곤 했으리라.
덩달아 몇몇 산골아이들의 꿈도 개똥불에 얹혔을 테지만 개똥벌레는 한층 우쭐거렸으리라.
그 중 몇 아이가 자라 도시로 갔을까. 어쩌면 다만 그뿐,
가난한 아이들은 곧 가난한 어른이 되어 다시 가난한 아이들을 낳고 가난하게 늙었으리라.
낙엽과 열매를 모두 떨군 겨울나무가 스스로 가난한 줄을 모르듯이.
이제 이곳엔 별똥을 달아 수은등을 세우고, 개똥불을 박아 자동차를 굴린다.
머잖아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먼산 너머 같은 미신은 사라질 것이며,
아이들은 더 이상 궁상스레 개똥불에 꿈을 태우지 않아도 된다.
어둠은 남김 없이 빛이 될 것이며 꿈은 곧 현실이 될 것이므로
불운한 몇몇 아이들을 빼고 부유한 아이들은 곧 부유한 어른이 되어
다시 부유한 아이들을 낳고 부유하게 늙어가리라.
아무리 채워도 허기진 욕망처럼 아무리 따 먹어도 줄지 않는 과일나무가
눈 속에서도 붉게 열매 맺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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