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9. 02:10ㆍ山情無限/백두대간(完)
백두대간 18차 (21구간 : 고치령에서 도래기재까지)
○ 산행일자 : 2007. 3. 17(토) 05:05 ~ 15:00 (9시간 55분)
○ 산행날씨 : 하루종일 눈, 짙은 운무
○ 참석인원 : 백두대간 회원 23명, 게스트 5명
○ 산행거리 : 도상거리/ 26㎞ 누적거리 : 408km
○ 산행코스 : 고치령-미내치-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
○ 소 재 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 봉화군 물야면,춘양면 / 강원 영월군 하동면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3/17 00:00 신복로타리
03:30~04:15 영주 단산면 우등식당 (식사)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4:45~04:55 고치령 들머리 도착 고치령으로 이동(포터)
05:05 고치령 출발
06:00 미내치(830.5m)
07:18 마구령(894m)
09:10 갈곶산(966m)
009:22~32 늦은목이
10:30~11:00 선달산(1,236m) / 식사
12:35~12:45 박달령
14:00 옥돌봉(1,244m)
14:17 550년 철쭉
14:45 진달래 턴널
15:00 도래기재
③ 복귀
15:55 도래기재 출발
20:00 울산 도착
2. 산행기록
6주 만에 나서는 대간 길이 새삼스러운데
이제는 대간 길이 조금씩 부담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는 그냥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태클도 대단해 질 것 같기 때문에 더하다.
버스를 타자 역시 화두는 앞으로 대간 길에 대한 전망이다.
얼마 전 모 신문기자가 잠행취재하여 보도한 국립공원 월악산사무소 직원들의
"백두대간 입체단속 건"과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라는 "산악가이드제도 운영"에 대한
저의를 생각하면서 실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얼마 전까지 사찰 입장료 받아주는 일이나 하던 공단 직원들이 그 일을 그만두니
몇 백명이나 남아돌아 일거리를 찾는다고 단속에 나서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이 안된다.
곰을 풀어놓고 사람의 생명과 재산보다 곰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이…
만약 지리산에 방사한 곰이 야생성을 회복한다면 지리산 전체를 통제시키고
지리산 자락에 사는 사람들 모두를 소개(疏開) 시킬 것인가?
엄청난 돈을 들였지만 방사한 곰들이 야생성을 회복하지 못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연을 보호한다면서 국립공원을 파헤쳐 골프장 짓고 위락시설 만들려는 계획은 또 뭔가?
정작 국립공원을 크게 훼손하는 것은 국립공원 관리공단 아닌가?
자연과 산림을 보호한다는데야 누가 반대를 하겠냐마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탁상공론식 발상과
위인설관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조건 산을 막고 단속하는 것만이 능사인가?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이런 문제는 공청회를 거쳐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여야 할 사안 아닌가?
마녀사냥 하듯 여론몰이 하는 것은 비열하다.
* * * * * * *
오는 길 차창으로 빗방울이 조금씩 비치더니
아침을 먹고 차에 오르니 빗방울이 잦아든다.
고치령 들머리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제법 굵은 비가 되어 내린다.
일기예보는 오락가락 했지만 실시간 구름지도와 춘양지역 기온을 확인하니 -3도,
눈이 올 것 같아 춘설을 맞으며 산행할 준비는 했지만 비가 그치기를 기대해 본다.
(포터로 고치령 바로 아래까지 이동, 산행채비를 한다)
여기서 고치령까지는 약 5km.
지리한 오르막 시멘트 길을 1시간 넘게 오르는 것도 무리거니와
오늘 산행거리가 26km나 되어 시간도 줄일 겸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고칫재 민박집(054-638-4544 서갑수)에서 지원하는 포터를 타고 올라야 한다.
14명씩 2조로 나누고 1진이 먼저 출발한다.
그럼 그렇지!
임도로 들어서 고도를 높이니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고치령까지 실어다 주기로 한 포터도 그 새 내린 눈으로
더 이상 오르지를 못하고 고치령 한참 아래서 짐 부리듯 내려 놓는다.
(고치령에 오르자 눈이 펑펑 쏟아진다)
고치령(770m)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잇는 고갯길.
바로 아래에 사시사철 변함없는 맑은 샘터가 있다.
눈까지 내려 호젓하고 고즈넉한 운치있는 길이기는 하나
예전 금성대군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복위운동을 하며 단종을 만나러 다니던 길.
의풍방향에는 말에서 떨어져 이름 붙여진 마락마을이 있고
단종복위를 시도하다 실패하여 순흥이라는 곳은
피바다가 되고 피가 넘쳐 흐르다 끝난 피끝마을도 있다.
그들 조카와 삼촌이 함께 넘을 수 없었던 고개
고치령은 얼마나 한스러웠으랴.
(단종은 북쪽 영월에서 죽고 금성대군은
남쪽 순흥으로 유배되었다가 안동에서 죽었다.)
그 후 순흥 도호부가 안동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예전 한양으로 갈 때는 죽령보다 고치령을 많이 이용했다는데
지금은 작은 비포장 고개로 전락한 것 같다.
05:05 고치령 출발
산행채비를 하고 미끄러운 눈길을 10분 정도 걸어 오르니 고치령.
지난 구간 포터를 기다린다고 떨었던 생각도 스친다.
( 미내치 / 美乃峙 830.5m )
주위는 온통 어둠과 눈까지 내려 어디 시선 줄 곳도 없고
오직 헤드랜턴 불 빛만 쫓아 가는데 벌써 미내치다.
1시간 정도 진행한 것 같은데 약간의 오름은 느꼈지만
길이 순해서인지 발목까지 빠지는 눈 길인데도 속도를 내며 잘 간다.
(바로 따라붙은 길잡이 사무국장)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1시간 반 정도 지났을까 진행하는 속도가 빨라 20여분이나 늦게
출발했을 2진이 궁금했는데 벌써 2진 선두가 따라 붙은 것 아닌가?
과연 준족들이다. 우리 종주대의 특징일 수도 있는 운행방식,
다른 종주대는 선두가 중간 중간 후미와 보조를 맞춰
후미와 거의 동시에 산행을 끝낸다지만
우리는 선두는 선두고 후미는 후미다.
또 치고 나간다. 오늘은 후미와 차이가 많이 날 것 같다.
(갑갑하던 시야가 그나마 훤히 트이는 기분)
1,096봉 (헬기장 봉우리)
조망이 좋을 듯한 곳인데 짙은 구름은 사방을 커튼으로 두른 듯
무대 주변 나무들만 보여 준다. 조망은 없지만 지도를 확인하는 ㅎ님
(가던 길을 멈추고... 산꾸러기님의 망중한)
(키 큰 나무도 춘설이 서러운듯...)
때로는 백두대간을 타고 넘는 산들바람이 간지름 태우고
때로는 이렇게 하얀 눈이 솜처럼 부드러움으로 덮어 주고
산새들과 짐승들과 어울려 산을 지키며 산을 키운다.
( 마구령馬驅嶺 / 894m )
부분적으로 포장이 된 메기재라고도 하는 마구령
남대리로 통하는 도로를 포장 중인데 국립공원, 충북, 강원도
각 지자체간 관할 문제로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제기랄! 합치면 힘이 되어야 할텐데 맨날 모이면 이 짓거리들이니...
고갯마루에는 고치령과 늦은목이, 임곡리와 남대리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그 새 눈을 소복이 맞고 서 있다.
경북 영주시 행정구역이 마구령 넘어 남대리까지 포함하는데
3도와 어울리는 심심산골 남대리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기준으로
고개 너머는 충청도나 강원도에 속하는 것이 주민들 생활에 편리하지 않을까.
마구령을 오르는데 새가 푸드득 하며 날아 간다.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면 산짐승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폐타이어로 외곽을 둥글게 만든 참호가 있는 헬기장에 오른다.
가파른 내리막 길 눈까지 쌓여 조심스럽다.
이번 구간은 이정표가 친절하게도 1km마다 서 있다.
(눈을 맞으면서도 반기는 친절한 이정표)
(뒤질세라 수리취도 눈 꽃을 피우고...)
(오르기만 하면 대간길이 아니지... 애쓴 보람인가)
(어린 소나무도 눈 욕심이 많은듯... 힘겹지 않니?)
( 봉황산 갈림길 / 갈곶산 966m )
오른쪽 능선은 봉황산을 거쳐 부석사로 이어진다.
이정표에는 봉황산 갈림길, 그 위에 갈곶산이라고 적혀있다.
마구령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은 호젓한 8~9부 능선이 계속된다.
( 늦은목이 / 800m )
여기까지가 소백산 국립공원구역이라는데 이유인즉
부석사를 국립공원에 포함시키기 위해 억지를 부렸다나..
왼쪽으로 내려가면 물을 구할 수 있는 샘이 있다.
허기도 들고 선달산까지 500m나 치고 오를 것이 걱정되어
늦은목이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니 선달산 정상까지 가자고 한다.
할 수없이 정말 힘들게 선달산으로 오른다.
잠시 주춤하던 눈이 다시 흩날린다.
궂은 날 주위가 차단되고 아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갇혀서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는다. 자신과 독대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왜 이 길을 힘들여 가는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림이 될까싶어 셔트를 누르다 보니 일행과 거리가 자꾸 벌어진다.
40분만에 오를 수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한 시간 만에 오른 정상이다.
( 선달산 / 1,236m )
정상 황량한 눈 밭에서의 꼴(?)들 하고는…
흔히 하는 이야기로 시켜서 하는 것이라면 이럴 수 있겠는가?
한 때는 일사분란한 군대식 명령이 효율적인 시대도 있었지만
요즘은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군사문화와 개발독재가 판치던 세대와는 격세지감이다.
눈이 흩날리는 선달산 정상 펑퍼짐한 공터
눈밭에 쭈그리고 앉아 먹는 점심도
진수성찬과 고급 식탁에 비할 바 아니다.
뒤 이어 올라온 미스터 안나푸르나 동진씨와 게스트가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눈 밭에서 더 기다릴 수도 없어
천천히 갈테니 뒤따라 오라하고 출발한다.
여기서 박달령까지는 강원도와 경북의 경계를 타고 가다
박달령에서부터 또 멀어진 강원도는 구룡산에서 다시 만나고
부소봉을 지나며 비로소 강원도에 완전히 들어선다.
오늘은 조망을 포기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주위를 조망할 수 없어 아쉽다.
정상을 떠나기 전 셔트 몇 번 누르고 나니
일행은 벌써 꼬리도 보이지 않는다.
(녹지않은 얼음 위에 눈이 덮혀 길이 조심스런 길)
대간 마루금은 선달산에서 다시 동쪽을 향해 굽이치며 뻗어나가고,
굵은 참나무 숲이 이어지는 산길은 부드러운 굴곡을 이루고 있어
걸음은 빨라지는데 얼음 위에 눈이 쌓여 무척이나 미끄럽다.
( 박달령 / )
눈까지 소담하게 쌓여 호젓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키가 두 길이나 될만한 웅장한 표지석이 반긴다.
팔각정에서는 먼저 가던 일행이 휴식을 하고 있다.
왼쪽 가까운 곳에 샘이 있어 옛날 고개를 넘어 다니던 보부상 대신
대간꾼들이 땀을 식히며 쉬어 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되었다.
박달령에서 남쪽 경북 봉화군 방향으로 한 시간쯤 내려가면
옛날 보부상들이 발견한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초정약수로 알려진 오전약수가 있다.
박달령 이름이 좋은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충북 제천 백운면과 봉양면 경계에는
울고 넘는 박달재로 유명한 위치한 박달재가 있고.
함북 명천군 황곡리와 보촌리 사이에 또 다른 박달령이 있다.
누가 대신 가줄 대간 길이 아니어서
호텔 같은 팔각정에서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오늘 또 한 고비인 옥돌봉으로 향한다.
(옥돌봉 3Km, 이 길로 계속 오르라 손짓하는듯...)
오늘 전체 26km. 현재까지 20km를 진행했으니 이제 6km를 남긴 상태.
옥돌봉까지 오르막 3km를 치고 오르면 그 이후 도래기재까지는 내리막.
오늘 두 번째 고비가 힘들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옥돌봉 오르기가 그렇게 힘들 줄이야….
(오름이 없으면 어찌 뫼라 하고 산이라 하겠는가?)
다리는 천근 만근 걸음을 내딛기가 힘이 든다.
쉬어가고 싶은 충동도 받지만 옥돌봉까지 쉬지않고 올라 볼 참이다.
여기서 주저앉는다면 이룰 일이 무엇 있겠는가?
자신과의 싸움!
지금 오르고 있는 것은 산이 아니라
자신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치열하게 싸워 자신을 넘고 싶을 뿐이다.
정작, 이기고 싶은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야생화 한 송이, 제 자리를 지키는 새끼 소나무 한 그루도 힘이 될 때가 있다.)
( 옥돌봉 0.28Km, 고지가 저기다 )
오래 전 하찮게 여겼던 10원짜리 한 개가 모자라
15리 산길을 걸어야 했던 생각이 이 시간 왜 날까?
280m가 이렇게 먼 거리인 것을 제대로 느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돈이든 거리든 시간이든 모두가 나름대로는
절대적 가치와 상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량이 질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눈꽃은 바람과 맞서야 핀다)
( 옥돌봉 / 1,242m )
옥돌봉은 지나온 박달령을 사이에 두고 선달산과
키재기를 하며 마주보고 있는데 옥돌봉이 6m 더 높다.
오늘 구간 중 한꺼번에 고도를 500m나 높인 선달산 오름길보다
오히려 산행후반에 나타난 옥돌봉 오름이 훨씬 힘들었다.
고작 250m 정도 고도를 높히는데도…
옥돌봉 정상에는 펑퍼짐한 헬기장이 있고 잡목이 우거진 둔덕에는
봉화군에서 세운 옥석산과 봉화산악회에서 세운 옥돌봉 정상석이 있다.
누구 말처럼 옥석인지 옥돌인지 옥석을 가려야 할 것 같다.
(550년 된 보호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쭉이란다)
주변은 온통 철쭉군락지다.
(마치 밤새 장독대에 눈이 쌓인듯...)
(가지는 가늘어도 흰색보다 무거운 눈을 소담스레 받아안고...)
(진달래 터널, 눈꽃 턴널이다.)
여기는 또 진달래 군락지인데 100m는 될 구간에
양쪽으로 키보다 큰 진달래 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잎보다 먼저 피는 진달래도 피기 전
가는 겨울이 아쉬운듯
춘설이 꽃을 피워 길손을 맞는다.
진달래 만발할 때 왔으면 정말 좋겠다
( 2-4, 이제 도래기재까지 500m 남았다는 뜻 아닌가?)
산이 좋아 산을 찾지만 어느 싯점이 되면
언제 날머리로 내려설까 하는 생각들로 가득찬다.
마치 산을 내려오기 위해 산을 오른 것 같이...
물론, 산 아래 사랑하는 가족과 따뜻한 집이 있고
오늘 하루에 할당된 목표여서 이기도 하겠지만
산이 좋아도 내려 갈 시간이 기다려 지고
산을 오르기 위해 내려간다.
( 도래기재 / 750m, 다음구간 구룡산 길이 열려있다 )
진달래 터널을 지나 절개지 나무계단을 타고 내리니
춘양과 영월을 잇는 도래기재가 나타나고 맞은편으로는
다음구간 이어갈 구룡산 오르는 길이 열려 있다.
고갯마루에서 춘양 쪽으로 100m 정도 내려가면 일제시대
금광의 금을 실어 나르기 위해 팠다는 금정터널 입구와 정자가 있다.
춘양이 얼마나 추운 곳인지 춘양(春陽)이라 이름짓고 긴긴 겨울을
'따뜻한 봄볕'을 기다리며 보냈던 것 같다.
도래기재는 서벽리 북서쪽 2km 거리에 있는
마을이름에서 유래되어 도래기재라고 한다고 한다.
도래기 마을에는 조선시대에 역(驛)이 있어 역촌마을이라 하여
도역리(道驛里)라 부르던 것이 이제는 도래기재로 통용된다고 한다.
또 재 넘어 남한강 발원지 우구치 계곡이 있다, 우구치(牛口峙)는
골짜기 모양이 소의 입모양이라 해서 우구치라 불린다고 한다.
( 베이스 캠프, 터널 위는 동물이동 통로 )
산행이 좋은 점이야 일일이 나열할 바가 아니지만
특히 백두대간 길을 가면서 느끼는 감정은 특별하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책마다 다른
태백산맥, 소백산맥, 노령산맥을 외우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가?
고서점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잊혀져 가던
산경표를 (이우형 선생이) 되살려 내지 못했다면
천동설을 믿듯 지금도 미친짓하고 있을 것 아닌가?
백두대간(白頭大幹)!
일제가 강점하면서 100년간이나 사라졌던 이름.
그 '백두대간'이라는 용어를 접하면서 감전되었다.
한민족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고,
역사와 산과 강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고
지방간 언어와 문화와 풍습이 다르거나 같을 수 있는 것이
벼리에 그물의 코가 꿰어 있는 것 같이
엮여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새가 하늘에서 보듯이
백두대간은 오천년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이어져 온 한민족의 공간적 터전이다.
그래서 사정이 허락하면, 아니 형편을 만들어서라도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두 발로 걸으며
이 땅, 이 산하를 더 알고 느껴 보고 싶었다.
지금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백두대간 일부 구간을 폐쇄하고 통제하지만
폐쇄하고 통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백두대간을 고속도로 같이 만들려는 집어 치우고
백두대간 길을 열어 주기 바란다!
백두대간이 그런 어설픈 장단에 놀아나기에는
너무나 숭고하고 깊은 뜻 의미가 있다.
오늘도 아무 사고없이 대간길을 이어갈 수 있어 감사하다
그러나 발걸음보다 마음이 더 무겁게 내려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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