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6차(16구간 : 이화령에서 하늘재까지)

2009. 7. 9. 02:03山情無限/백두대간(完)




백두대간 16차 (16구간 : 이화령에서 하늘재까지)



○ 산행일자 : 2007. 1. 6(토) 04:20 ~ 15:00 (10시간 40분)
○ 산행날씨 : 오전 : 눈, 짙은 운무, 오후 : 눈보라
○ 참석인원 : 백두대간 회원 22명, 게스트 5명
○ 산행거리 : 도상거리/18㎞        누적거리 : 357.2km
○ 산행코스 : 이화령-조령산-신선암봉-923봉-조령(제3관문)-마역봉-평천재-탄항산-하늘재
○ 소 재 지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충북 괴산군 연풍면, 충주시 상모면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1/06 00:05            신복로타리

02:50~03:25      문경읍 전주식당 (식사)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3:45~04:20      이화령 도착/출발

05:10~13         조령샘

05:35~40         조령산(1,026m)

07:25            923봉

09:06            깃대봉(844m) 입구

09:30~10:30      조령(제3관문) / 식사

11:03            마역봉(927m)

12:14~21         동문

12:30            부봉 갈림길

13:24            주흘산,하늘재 갈림길

13:40            평천재

14:12            탄항산(856.7m)

15:00            하늘재

③ 복귀

16:15            하늘재 출발

19:20~20:35      울산도착 / 신년회



2. 산행기록



오는 길 문경새재(전주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때만해도 간간히 뿌리던
이슬비가 20분 남짓 달려 이화령에 도착하자 눈으로 변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울산서는 보기 힘든 눈이니 낭만적인 감상에 젖기도 했지만
이 눈이 하루 종일 그렇게 산행을 힘들게 할 줄이야.

사람마다 사는 재미가 다르겠지만 요즘 지나간 백두대간 길에
그래프 그리듯 형광펜으로 채색하는 재미가 보통 아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벌써 포기했겠지만 자신이 좋아서 시작했고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이제는 그것이 설사 고통이라고 해도 즐겨야 한다.

이번 이화령에서 하늘재 구간은 암벽이 절경을 이루고
이화령, 조령, 하늘재 같은 유서 깊은 고개를 가진
18.4km의 비교적 짧은 구간이나 험준한 암벽이 많아 만만찮은 구간이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며 오늘도 대간을 이어간다.)

이화령 출발
원래 5시에 산행을 시작하기로 하였으나,
기다림에 지쳐 4:20분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출발.
우뚝 서 있는 도경계 표지석 옆길로 접어들자 조금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곧 가파르게 치고 올라 주능선으로 붙는다.




(사랑하나 풀어 던진 샘물에는..., 이제 대간길에서는 눈에 익은 정겨운 문구다.)

계속 능선을 따라 오르니 우측에 물 맛좋은 조령샘이다.
줄 서서 졸졸 나오는 물을 바가지에 받아 마시니 속이 시원하다.
이정표는 “조령산 1km, 40分”




(함박눈이 쉴 새없이 내려도 지금은 귀한 눈 맞는 기분이지만..)



(조령산 표지석을 부여잡고..., 지난 구간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었기에...)

조령산(1,026m)
이어지는 계단길을 올라 도착한 조령산은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을 나누는 백두대간 마루능선을 이루는 산이다.
정상에는 “白頭大幹 鳥嶺山”이라 써있는 작은 표지석이 있으며,
그 옆에는 지난 99년 안나푸르나 등정후 하산중에 실종당한
지현옥 산악인의 추모목비가 서있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조령산 넘어 새재를 거쳐 하늘재, 벌재, 저수재 등
오랜 역사와 선조들의 숱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고갯마루를 지나 소백산 죽령으로 향한다.
즉, 충청북도의 괴산, 충주, 제천, 단양과 경상북도의 문경, 점촌, 예천, 영주 등지의
땅과 하늘이 맞닿아 연결되는 곳이다.

조령산에서부터 제3관문이 있는 새재까지는 신선암(937m) 등 성벽같은 암봉들이
줄지어 험준한 요새를 이루고 있어 암릉구간의 묘미를 느낄 수 있지만
눈과 얼음이 얼어있는 암봉의 북쪽 사면은 가파르고 위험하여
겨울철 산행시에는 특히 조심해야 할 구간인데 오늘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사고없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짙은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에 의지하여 진행하는데 양 옆으로는 아찔한 절벽이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금도 딴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 구간이다.
길은 계속 어렵게 이어지고 보이는 것은 오직 몇 m 앞의 눈 쌓인 암릉과 밧줄뿐이다.

능선 암벽 날등에서 맞는 바람은 눈이 오는데도 완전 칼바람이다.
볼을 스치는 바람이 침을 찌르는듯하다. 밧줄을 잡는 손도 시려온다.
이 광경을 담고 싶지만 카메라를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밧줄을 잡고 천신만고 끝에 올라서면 여지없이 오른 만큼
내려가야 하는 인정사정도 없이 가파른 바윗길의 연속이다.
아무 생각없이 앞만 보고 걷고 또 걷는다. 때로는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지난 희양산 구간이 힘들다 해도 오히려 이번 구간이
더 위험하고 힘든 것 같다며 한마디씩 한다.




(1999년 4월 29일 안나푸르나 등정후 하산길에 실종된 지현옥 산악인의 추모목비)



(2시간 넘게 암릉구간을 넘고 넘어..., 날이 밝아오려나...)

신선암봉 (937m)
내림길이 거칠어서 스틱이 거추장스럽다.
뚝 떨어지는 내림길을 한참을 내려가 안부에 닿는다.
여기서도 좌측으로 한섬지기계곡을 통하여
수안보쪽 수옥정으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나있다.

923봉을 숨막히게 올라 잠깐 휴식하며 간식을 먹는다.
잠깐 동안인데 그새 배낭끈도 얼고 벗어놓았던 장갑도 꽁꽁 얼어 뻐덩뻐덩하다.
얼마 쉬지를 못하고 후미가 오기도 전에 벌써 출발이다.
오늘 구간은 조망을 즐기기 좋은 구간이나
짙은 운무로 조망의 즐거움은 다음으로 미루고
이 눈길 얼어붙은 암릉길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이 당면의 문제다.




(사진을 찍는다해도 폼잡을 여유가 없다. 절경을 담아야 하니까)



(길을 여는 이택명 사무국장과 그 일당들...)



(부봉이 어슴푸레 보이기 시작한다.)



(절경을 조망하는 즐거움은 다음으로 미루고...)



(설경이 절경이지만 절경에 마음을 뺏길 수 없는 것은...)



(보이는 것은 병풍같이 둘러쳐진 암벽뿐이다.)



(주흘산 방향 터진 구름사이로 햇살이 비치면서 하늘이 붉게 물든다)

923봉을 지나 밧줄을 잡고 내려와 한참 호젓한 길을 길을 걷는데
구름이 옅어지면서 멀리 부봉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온다.
구름이 열린 틈 사이로 햇살이 비치면서 주흘산 방향이 붉게 물든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봉과 주흘산 능선의 위용)



(이 기세라면 백두산까지 이어갈 것 같은데...)



(이제 가야할 능선들이 제법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757봉 도착
급경사를 내려와 다시 한 봉오리를 오른다. 757봉인 듯하다.
전방에는 옅은 구름 사이로 마역봉이 어렴풋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부봉과 능선이 다가선다.




(발걸음도 가볍게...)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찬란하다)



(대간종주회의 살림살랴 선두에서 길을 열랴 항상 수고가 많은 사무국장. 멋있다!!)



(깃대봉 갈림길, 갔다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깃대봉 입구
잠시 휴식을 하며, 1km 거리에 있는 깃대봉을 갔다 오느냐 그냥 가느냐로
의견이 갈리지만 지금까지 진행속도가 늦은 관계로 그냥 가기로 하고 출발.
이어지는 길은 호젓한 낙엽송 우거진 육산 내림길이다.




(언제 그랬냐는듯 조령 내려가는 길은 양같이 순하다.)



(조령약수, 얼마나 가물었는지 물이 말랐다.)



(조령 시비)

문경새재(조령3관문 / 650m)
점심을 어디서 먹을 것이냐가 문제다.
한편에서는 마역봉을 오른 후 점심을 먹자 하고,
한 편에서는 조령에서 먹자고 하는데 결국은 조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것도 산막에서 막걸리까지 곁들여 먹는 바람에 1시간이나 걸렸다.
물론 그새를 참지 못하고 3명은 이미 출발을 한 터다.




(조령 / 성벽, 그리고 영남 제3관문)

조령(鳥嶺)이라 부르는 문경새재는,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로서,
새들도 쉬었다 넘어가는 산마루에는 조선 숙종 34년(1708)에 세운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이 묵묵히 지키고 있다.

경상도 문경에서 새재로 오르는 길은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와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조선시대의 한글 표지석인 "산불됴심"비가 남아있으며,
옛날 영남의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과거보러 다니던 유서깊은 고개로,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는 금기가 있지만
새재를 넘으면 장원 급제라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聞喜/ 문경의 옛 지명)하여
땀 흘리며 넘나들던 과거(科擧) 길이다.

허나 어찌 그뿐이겠는가!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중요한 고개로서
사회 전반과 군사적 전략의 요충지였다. 중앙집권을 실시한 조선왕조는
한양을 중심으로 전국에 X자형으로 9개 대로를 국도로 설치했으며
그 중 제4로가 새재를 지났다고 하는데,
그 후 조선왕조 5백년 동안 한양에 이르는 이른바 영남대로가 지나던
자연 경관이 빼어난 백두대간의 으뜸고개였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년) 당시 부산포에 상륙하여 약 18,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밀양, 대구, 상주를 거쳐 문경새재로 쳐들어온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천혜의 요새인 이곳에서 아무런 저항도 없이 무사히 넘어갔으며,
결국 허수아비 초병을 세워둔 채 새재를 포기하고 청주의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친
신립(申砬, 1546~1592) 장군이 이끄는 8,000여명의 농민군은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같은 연유로 약 6.5km 거리에 이르는 협곡 중간에 1594년 제2관문인 조곡관을 세우고
훗날 제1관문인 주흘관과 제3관문을 세우게 된 것이다.




(눈이 소담스럽게 쌓인 조령은 목가적인 풍경이다.)



(마역봉 지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으나 식사하기에 이만한 곳이 있을까)



(다시 마역봉을 향해...)

새재 군막터를 뒤로하고 가파른 마역봉을 오른다.
점심을 먹고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몸이 무겁긴 해도
시장한 상태로 무리하여 오르는 것 보다 낫다.




(언제나 대원들을 위해 헌신적인 기획담당 배종균 씨)

마역봉 (927m)
드디어 암행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걸어놓고 쉬었다 하여
마패봉이라고도 하는 마역봉이다.
모두들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쁜데 사진 몇 컷만 찍고는
이어지는 눈길이 정겨워 그냥 진행을 하였다.
종균씨는 넘어진 부봉, 3관문 이정표를 세우느라 애를 쓴다.




(북문 이정표, 여기서 부봉까지는 3km)

마역봉에서 15분 정도 내려가니 북암문이라는 오래된 성터가 나온다.
계속 아름드리 장송이 우거진 숲길을 40~50분 걸어가면
다시 동암문이라는 특이한 성벽 형태가 잘 보존된 곳에 도착한다.
우측으로는 새재로 올라가는 동화원과 좌측의 미륵리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산성에도 눈이 소담스레 쌓이고...)



(대간길은 하얀 눈이 주단같이 깔려 있고...)



(조령을 출발한지 1시간 45분만에 도착한 동문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동암문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산성을 따라
가파른 산과 절벽길을 오르는데 날씨가 심상찮다.




(부봉 갈림길)

암릉길이 끝났는가 했는데 여기는 또 다른 암릉이다.
조령산에서 조령오는 구간은 밧줄을 잡고 오르거나 내려서면 되었는데
여기는 완전히 아슬아슬한 바위난간을 안고, 돌고, 기어 올라야 한다.




(온 길을 뒤돌아 보니...)

길 가는 도중에는 몰라도 뒤돌아 보면 참 많이도 왔구나 싶고
저 길을 어떻게 지나왔냐 싶기도 한데... 저런 봉우리들을 넘어 왔다니...




(산죽은 눈으로 이불을 덮은듯)

겨울의 무채색 공간을 생기를 더하는 산죽
산죽은 꼭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 같다




(주흘산 3.2km, 갔다오기는 너무 먼 길이다.)

그동안 잠잠하던 바람이 거칠어 지기 시작한다. 바람이 매섭다.
얼굴을 때리는 눈보라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게 한다.
바위봉인 부봉(916m)을 약간 비껴지나 절벽지대를 오르면,
주흘산 하늘재 갈림길이다.




(눈보라가 아니라 이건 완전 돌풍이다. 사람이 날려갈 정도로 바람이 세차다.)

주흘산, 하늘재 갈림길
대간길은 능선길을 버리고 급경사 북사면을 내려서야 하는데
날씨는 갑자기 어둑어둑해지고 점점 세차지는 바람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다.
이건 태풍수준이다. 급경사 내리막길에 쳐진 밧줄을 잡고 미끄러지듯 내려서니
어떤 곳은 무릎까지 눈이 차는가 싶더니 어떤 곳은
바람이 눈을 다 쓸어 가버리고 맨땅이다. 후미가 걱정된다.




(앞서간 길은 지우개로 지운듯 흔적도 없어지고...)



(그 많이 쌓였던 눈도 다 날려 보내고..., 바람맞은 얼굴에는 감각이 없다)

특이한 지형지물이 없는 평천재. 바람만 세차다
왼쪽으로 동암문, 오른쪽으로 평천리로 내려서는 길이 보인다.




(탄항산 / 856m, 하늘재가 얼마 남지 않은듯 하지만...)

월항삼봉이라고 하는데 문경읍 평천리 월항마을 뒷산으로
봉우리가 셋이어서 월항삼봉이라고 한다.
날씨가 급변하여 그냥 정상석 사진만 찍고 다시 갈길을 재촉한다.




(노송과 눈, 소나무는 겨울이 있어 더 멋있는 것 같다.)

이어 탄항산을 지나면 아름드리 노송들과 전망대 바위가 나온다.
언제봐도 눈과 소나무가 참 잘 어울린다.




(시야가 조금 트이는가 했더니 우뚝 솟은 포암산이 눈 앞에 나타났다)

전망대에 서자 엷어진 구름에 가리긴 했으나 우뚝한 포암산이 다가선다.
소나무는 겨울이 있어 더 빛나는 것 같다. 길도 바람도 많이 순해졌다.
잠잠하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나무 위 눈은 다 날아가 버렸는가 했는데... 소나무와 눈은 참 잘 어울린다.)

제법 순탄한 길이다.
우측으로 넓직한 헬기장에 눈이 소복이 쌓여있고
그 주위에 쳐진 철조망에도 눈이 쌓여있다.
대간길은 철조망 옆으로 이어진다. 울창한 숲길에 눈이 펑펑 쏟아진다.
카메라를 꺼내었더니 이내 눈을 뒤집어 쓰고 범벅이 된다.




(하늘재, 문경쪽은 포장이 되어있지만 충북 쪽은 비포장 좁은 길이다.)

하늘재(525m),
고개의 역사가 아주 깊은 계립령(鷄立嶺)이라고도 하는
하늘재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눈으로 덮여 적막감마저 감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왕 3년인 서기 156년에 북진(北進)을 위해 개척한 길이자
남진정책의 고구려와 대치한 접경지대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미륵리에서 수안보를 거쳐가는 충주(忠州)는 삼국시대에 국토의 '중원'(中原)이었던 요충지로서,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가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고개를 통해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서로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쟁의 길목에 위치한 곳이다.

한 왕조가 한강유역을 차지했던 시기는 그 왕조의 전성기와 일치하는데
한강유역은 원래 백제의 상지였다.

또, 하늘재는 평강공주와의 로맨스로 삼국혈전사의 한 장을 빛낸 온달장군이
신라에게 빼앗겼던 계립현과 죽령 서쪽 땅을 되찾기 위해 출전했다가
단양군 영춘면 하리 소재의 아단성(온달산성이라고 불리는 석성)에서 전사한 바 있는
바로 그 계립현으로서 충북 충주시 상모면 석문리와 경북 문경시 관음리를 잇는 고갯길이다.




(포암산 오르는 길, 소백산 구간을 먼저 진행하고 두달 후에 다시 오를 길)



(베이스캠프, 퍼 붓는 눈..., 긴급 뉴스로 대설주의보가 내렸다지만...)

버스를 타자 중부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고 연신 긴급뉴스를 전한다.
이제 막 탄항산을 통과했다는데 후미가 걱정이다.
김영진 산행대장이 후미를 맡고 있으니 안심이 되기는 하지만...
후미가 도착하자 버스는 울산으로 내달려 신년회로 호계 주왕산 삼계탕 집에서
저녁을 먹고 환담을 나눈 후 제16차 백두대간 산행을 마무리 지었다.

오늘도 아무 무사히 구간종주를 마칠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이 기세로 마지막 구간까지 완주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하루빨리 북녘땅 대간길이 뚫여 백두산까지 이어 갈 수 있기를
새해 첫 대간길을 다녀오며 간절히 소망해 본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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