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7차(20구간 : 죽령에서 고치령까지)

2009. 7. 9. 02:07山情無限/백두대간(完)





백두대간 17차 (20구간 : 죽령에서 고치령까지)



○ 산행일자 : 2007. 2. 3(토) 04:45 ~ 14:00 (9시간 15분)
○ 산행날씨 : 눈보라, 짙은 운무
○ 참석인원 : 백두대간 회원 26명, 게스트 5명
○ 산행거리 : 도상거리/ 24.83㎞        누적거리 : 382km
○ 산행코스 : 죽령-연화봉-주목군락지 대피소-비로봉-국망봉-늦은맥이재-마당재-고치령
○ 소 재 지 : 경북 영주시 풍기, 순흥, 단산면 / 충북 단양읍, 가곡, 영춘면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1/06 00:00            신복로타리

03:20~04:00      희방사 지구 폭포식당 (식사)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4:35~04:45      죽령 도착 / 출발

05:50            연화봉 / 중계소 갈림길

06:25            천문대 입구

07:25            제1연화봉(1,394.4m)

07:50~08:35      주목군락지 감시초소(휴게소) / 식사

08:45            비로봉(1,439.5m)

09:50            국망봉(1,420.8m)

10:10            상월봉(1,394m)

10:41            늦은맥이재

12:54            마당치

13:34            형제봉 갈림길

14:00~15:00      고치령

③ 복귀

15:40~16:45      식사 / 영주 옥대리 출발

19:30            울산 도착



2. 산행기록



이번 제17차 구간은 경방기간 관계로 19,20 구간을 먼저 진행하기로 하고
겨울산행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소백산 구간을 가게 되었으니 잘 되었다.
거의 북쪽 방향으로 향하던 대간길은 속리산부터 구봉산까지 북동진을 하는데,
이번 구간 죽령~고치령 구간은 각도를 더 틀어 거의 동진한다.

입춘을 코 앞에 두고 봄날 같던 날씨가 이틀 전부터 기온이 내려가고
이번에 이어갈 소백산에는 눈까지 왔다니 다행이다.
겨울 소백산은 아름답게 설화를 피우는 혹독한 바람에
가끔 사고가 발생하는 지역으로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하긴 이렇게 소백산 칼 바람을 맞고 담금질을 제대로 해야
또 한 해를 정신차리고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소백산국립공원은 충북과 경북의 도계를 이루는 고산준령으로
최고봉은 비로봉(1,439m)이며 1967년 12월14일 14번째로
국립공원(320.5㎢)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정상 비로봉 부근의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244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수철리 폭포식당)

수철리 폭포식당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죽령 가는 길 버스 안에서는
소백산 매서운 바람을 맛본 탓에 모두들 산행 채비가 한창이다.
바라크라바를 쓰는 등 완전무장을 하지만 체감온도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 속에 칼 바람을 맞으며 하루 종일 걷기란 말 그대로 극기가 아닌가?

죽령. 고구려와 신라를 잇던 소백산 고갯길.
신라 아달라왕 5년인 서기 158년에 (죽죽/竹竹)이라는 사람이
처음 길을 열었다는 죽령은 사연이 아주 많은 고개로,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잇는 5번 국도와 '또아리굴'로 유명한
중앙선 철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현재는 중앙고속도로가 뚫려 한적해졌지만
구름도 쉬어가던 아흔아홉 굽이 고갯길은 한때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이자
오랜 세월 영남과 기호 지방을 넘나드는 유서 깊고 이름난 관문이었다.




(올해 1월 1일부터 국립공원 매표소가 시인마을로 이름이 바뀌었다)

죽령 출발 (해발 696m)
차에서 내리자 차가운 바람이 볼을 때린다.
휴게소 옆에는 대간 안내도와 그 옆으로 난 콘크리트포장도로 위로
죽령매표소였던 시인 마을이 있다.

매표소란 간판대신 '시인마을'로 간판을 바꿔 달고 시집을 빌려주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7년 1월 1일부터 전국의 국립공원 매표소 69곳 문패를
모두 '시인마을'로 바꾸고 자연을 노래한 유명 시인들의
시집을 비치해 놓고 탐방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시인마을' 현판은 시인 김지하 님의 글씨란다.

위겸씨가 사진을 찍자고 하지만
카메라 배터리가 신경 쓰이고 너무 추워 그냥 출발한다.




(연화봉-중계소 갈림길)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눈길이 미끄럽다.
눈 보라가 랜턴불빛에 마치 불꽃놀이 하듯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리한 눈길,
얼마나 올랐을까 오른편으로 불빛이 반짝인다.
풍기읍쯤 되나 보다. 폭포식당에서 아침 먹을 때만 해도
하늘에는 둥근달이 떠 있었는데 어느새
두터운 구름이 하늘을 덮어 버렸다.

제2연화봉 (1,357.3m)
랜턴 불빛을 따라 지리한 길을 뽀드득 뽀드득 거리며
얼마나 올랐을까? 제2연화봉인가 보다.
갈림길에서 좌측길로 들어서니 한참을 내려간다.




(천문대앞 갈림길에서)

소백산 천문대는 입구에서 천문대쪽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내려섰다. 길도 없는 것 같은데 길잡이 택명씨는
어둠 속에서도 제1연화봉으로 가는 길을 잘 찾아 이끈다.

제1연화봉(1,394.3m)
나무계단을 한참 오르니 오른쪽으로 전망대가 있다.
봉우리와 능선에 큰 나무가 없어 조망이 좋다고 하지만
오늘은 하늘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구름 때문에 조망이 없다.
함백산과 태백산은 고사하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제1연화봉 이정표를 지나 작은 오르내림의 능선길이 이어지는데
왼쪽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은 고개를 45도 정도 돌리고 걸어야 한다.
능선의 왼쪽은 바람이 눈을 다 날려 버렸는데
오른쪽에는 두툼하게 쌓여 있다.
능선에는 하얀 눈꽃이 만발했는데 보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된 소백산 주목(朱木) 군락지에는
약 200~800년 된 주목들이 3,000그루 이상 자라고 있는데,
해발 1,200m 이상의 고원에서 설경과 함께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주목 군락지 감시초소(휴게소) / 중식)

천동리 내려가는 이정표에서 왼쪽 초소가 있는 길로 들었다.
바람이 밀어 부치는 힘이 얼마나 센지 겨우 초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미 중무장한 산객 몇 사람이 불을 지피고 식사준비에 한창이다.

앞에서 길을 끈 사무국장의 머리에는
하얀 눈꽃이 만발하여 에스키모인 같아 보인다.
혹한과 매서운 바람 탓에 식사하기에 마땅할 곳이 없을 것 같아
시간이 이르기는 하지만 초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뜨거운 라면 국물을 마시고 나니 몸이 풀린다.




(한걸음 한걸음 지리에서 백두까지...)

주목 군락지 감시초소(휴게소) 출발
서둘러 배낭을 꾸리고 초소 밖으로 나와 종구씨가 힘들여 지고 다니는
현수막을 펼치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바람은 얼마나 세차고
추운지... 지체할 새도 없이 비로봉을 향한다.




(비로봉 정상, 이 사진을 찍고는 바테리가 얼어 작동이 안된다)

비로봉(해발 1,439.5m)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에 몰아치는 바람은 과연 매서웠다.
왼쪽 뺨을 사정없이 때린다.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그나마 점심을 따끈한 라면국물로 몸을 덥혔으니 다행이지...
고래등 같은 정상에 올라서니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카메라를 내어 사진을 찍으려는데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다.
겨우 한 컷을 담았다. 이번에는 정상석을 찍으려는데
그 새 배터리가 얼어 작동이 안된다.
배터리 교환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카메라를 색에 넣고나니
얼마나 멋있는 풍경이 펼쳐지는지...

(비로봉부터 국망봉까지는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하여
질고지님과 사무국장님이 찍은 사진으로 대신 채운다.
카메라가 없으니 내 사진 몇 장이 생겨 다행이라면 다행.)

비로봉에 정상석 뒷면에 새겨져 있다는
서거정의 시 "소백산"을 확인할 엄두도 못 내고 대신 옮겨본다.

소백산

小白山連太白山 /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他百里押雲間 /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았네
分明畵盡東南界 /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地設天成鬼破 /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檀紀四三二六年(西紀一九六三) 十月 日




(끝없는 눈길, 눈이 쌓여 지형이 바뀔 정도다)

비로봉을 지나 국망봉을 향하는데
눈꽃이 만발하여 턴널을 이룬다.
또 심설구간은 눈은 얼마나 쌓였는지…
카메라 작동이 안되니 더 아타깝다.




(바람이 잠잠한 곳에서 배터리를 교환했으나...,)





(심설구간을 지나면 또 나타나는 계단들)





(순례객의 행렬같이)





(러셀하는 선두 사무국장의 수고가 대단하다)





(13)





(14)





(15)





(16)





(17)





(국망봉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오르내림이 반복되다가 가파르게 오르면
국망봉을 300미터 남겨놓고 초암사 삼거리에 닿는다

소백산의 영봉과 국망봉으로부터 흘러나온 개울이
순흥 땅을 돌아 흐르는데 아름드리 소나무와 산림이
하늘을 뒤덮고 옥이 구르는 듯한 물소리를 내며,
백운동으로 흘러 사천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바로 죽계천이다.

이황은 이 계곡의 아홉 구비에
1곡은 백운동 취한대,
2곡은 금성반석,
3곡은 백우담,
4곡은 이화동,
5곡은 목욕담,
6곡은 청련동애,
7곡은 용추비폭,
8곡은 금당반석,
그리고 9곡은 중봉합류라 하여 죽계구곡이라 명명하였다.




(국망봉 가는 길)

바람에 날렸는지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다.



(국망봉 정상석을 부여잡고...)

비로봉에서 1시간만에 도착한 국망봉(國望峯/1,420.8m)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왕자인 마의태자는 신라의 국권을 회복하려다가 실패하고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여기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쪽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하여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21)

국망봉 일대는 봄이면 철쭉이 만발하고
8월 중순경에는 여기서 상월봉에 이르기 까지
온통 야생화들이 향연을 벌리는 곳이기도 하다




(시그널도 없는 눈길을 정말 잘 찾아간다)





(23)

13:25 상월봉(해발 1,394 m) 상월봉으로 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이다.
오른쪽으로 커대한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얼어 붙어 미끄러운 상월봉 바위를 타고 내리니
급격한 경사지대에 무릎까지 쌓인 눈은 걷는 것 보다
아예 썰매를 타며 미끄러져 내리는게 낫다.

대간길은 계속 고도를 낮추면서 늦은맥이재로 향한다.




(24)





(25)





(26)





(27)





(늦은맥이재)

이정표에는 율전 5.0km, 국망봉 2.1km, 비로봉 5.2km,
마당치 6.5km(고치령 9.3km), 구인사 8.1km
늦은맥이재에도 눈이 적은 곳은 발목이 빠질 정도지만
많이 쌓인 곳은 심설구간이다.
조망도 없고 어디가 대간길인지 분간도 어려운데
사무국장은 앞에서 길을 잘도 이끌어 간다.




(29)





(30)

이어 대간길은 늦은맥이재를 지나
1265봉에서 오른쪽으로 꺽어 완만한 능선길로 이어간다.
오른쪽 길은 바둑판 바위가 있다는 신선봉 가는 길이다.




(31)





(32)

칼바람이 좀 잦아든듯 하다.
오른쪽 하늘이 열리면서 이름 모를 봉우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33)




(신선봉 삼거리)

신선봉 삼거리를 좀 지나면 형제봉 9.5km란 이정표가 있다.
완만한 내리막 길이다.

잠시 후 바람을 막고 햇볕이 따뜻한 곳에 앉아 쉰다.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앉아 쉬기는 처음이다.
각 자 배낭에서 방울 토마토며 귤이며 바나나까지 꺼낸다.
이곳까지 무거운 먹거리를 지고 오다니 감사할 뿐이다.

휴식을 끝내고 능선길을 걷는데 형제봉 10km란 이정표가 나타났다.
형제봉 9.5km란 이정표를 지난지 한참 되었는데…,
대간길이 무슨 고무줄도 아니고…
조금 더 진행하니 다시 형제봉 8km란 이정표가 나왔다.
왜 이렇게 이정표가 들쑥날쑥인가?




(연화동 갈림길에 이르자 열린 하늘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

연화동 갈림길 (해발 1,015m)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단산면 연화동에 닿을 수 있다...
눈 덮힌 평평한 봉우리를 지나면
오르내림이 가파른 경사길이 이어진다.




(선두를 멀리 보내고)

갈림길에서 비탈길을 거침이 없이 내려서지만
무릎에 무리를 주지않으려 조심하니 내려가기가 더 힘들다.

마지막으로 교환한 배터리 상태가 좋다.
사진을 찍으며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서다 보니
선두와 간격이 벌어진다. 따라 잡으려다 무리하지 않는게
좋겠다 싶어 내 페이스로 가기로 했다.
덕분에 고치령에서 1시간 넘게 떨긴 했지만…




(웬 하얀성벽인가 했더니 눈이다)





(바람이 만든 눈길 단애, 조금만 벗어나도 위험하다.)





(마당치)

1031봉을 지나 몇 개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넘어
안부에 도착하니 마당치다. 다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얼마나 갔을까 드디어 형제봉 갈림길(1,032m)

미스터 안나푸르나 오 총무와 동진씨가
양지바른 굴참나무 숲 비탈에 전을 차려놓고 유혹한다.
과메기를 먹다가 술을 찾는데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지...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제 30분이면 고치령이다.




(고치령 / 해발 760m)

고치령이다.

포터부터 찾았으나 앞서 내려온 두사람이 도착하기전
선두 9명만 태우고 가버린 것 같다고 한다.
차를 2번만 운행하기로 계약했다니 후미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30분 정도 되었을 즈음 기사가 올라와 차가 못 올라 온다며
내려가서 기다리라고 하기에 적재함에 타고 시간만 죽인다.

마침 경찰 순찰차가 고치령을 오르려다 되돌아 오길래
마을까지 태워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타라고 한다.
인원수를 줄이기 위해 3명이 경찰차를 타고 내려왔다.
조금 있으니 포터가 일행 모두를 태우고 내려온다.

고치령은 영주시 단산면과 단양군 의풍을 잇는 고개다.
세조의 동생이자 단종의 삼촌이었던 금성대군이
경북 영주의 순흥 도호부 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이며 고개를 넘나들던 곳이다.
정상까지 시멘트 포장 길이어서 옛 정취가 많이 사라졌지만,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길을 내려 오면서 경찰로부터
단종복위를 위해 몸을 바친 선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상황을 짐작해 본다.

옥대리 xx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고 울산으로 출발!

칼바람과 심설지역인 소백산 구간을 한 사람도 낙오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함께 수고한 모든 대원들이 자랑스럽다.
울산백두대간좋주회 화이팅!!





시나브로 블로그 / http://blog.dreamwiz.com/click21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