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2. 14:52ㆍ山情無限/백두대간(完)
백두대간 21차 (24구간 : 피재 ~ 댓재)
○ 산행일자 : 2007. 6. 9(토) 05:08 ~ 13:28 (8시간 20분)
○ 산행날씨 : 출발시 흐림, 짙은 안개와 비
○ 참석인원 : 20명
○ 산행거리 : 도상거리/ 25.2㎞ 누적거리 : 469km
○ 산행코스 : 피재-노루메기-건의령-푯대봉-구부시령-덕항산-지각산-자암재-큰재-황장산-댓재
○ 소 재 지 : 태백시 / 삼척시 도계읍, 화장면, 신기면, 미로면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6/08 23:00 신복로타리
6/09 04:35~05:00 화방재 도착 / 식사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5:08 산행시작, 피재(910m) 출발
05:17 노루메기
06:39 건의령(한의령)
07:02 푯대봉(1009.9m) 삼거리
07:30~40 1012봉 안부 / 휴식
08:57 구부시령
09:22~47 덕항산(1072.5m) / 식사
10:20~25 지각산(환선봉/1080m)
10:50 자암재
11:10~45 고랭지 채소밭
11:52 큰재
13:14~17 황장산(975m)
13:28 댓재(820m)
③ 복귀
14:25 피재 출발
19:45 신복 로타리 도착
2. 산행기록
오늘은 대간 가는 날,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지더니 번개가 치고 천둥과 함께 비가 쏟아진다
잠시 눈을 붙인 탓에 갈길이 바쁘다. 집을 나서는데 빗줄기가 제법 강하다
비를 맞고 그냥갈까 어쩔까 하는데 뭔가 좀 허전하다
그래. 지난번 김대장이 지급하면서 꼭 챙겨 다니라는 시에라 컵을 빠뜨린 것이다
시에라 컵이 없으면 종균씨가 준비해 오는 아침과 그 맛있는 오뎅탕을 먹을 수 없다
와이프에게 우산과 시에라 컵을 챙겨 달라는 전화를 하고 집으로 향한다
지금은 산행을 거의 혼자 할 수밖에 없어 늘 미안한 맘이다
신복 로타리에 나갔는데 보여야 할 몇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빠지기 시작한 회원들은 울산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 빠진다
전부 20명, 대간시작하고 제일 단촐한 출정인 것 같다.
(피재에서, 오늘은 20명, 대간시작하고 참석자가 제일 적은 것 같다)
이번 구간은 피재에서 댓재까지로 25km가 넘는다
원래 두 구간으로 계획했다가 다시 한 구간으로 합친 구간
산봉우리들이 100 ~ 250m 높이로 스무번 넘게 출렁이기는 하지만
도중에 구부시령과 덕항산 등 몇 번의 가파른 오름을 제외하면
대부분 큰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숲길이다
지난 구간 하늘이 서너평밖에 되지 않아
앞산과 뒷산 봉우리를 바지랑대 삼아 빨랫줄을 칠 수 있다는
정선 지역을 벗어난 대간길은 오늘은 태백과 삼척 경계로 들어선다
아리랑의 고장 정선은 잠시 이별하였다가 다음구간 다시 만난다
(노루메기, 본격적인 입산이다)
오랫만에 현수막을 펼쳐 단체사진을 찍고 숲에 들어섰는데
얼마가지 않아 나무에 맺힌 이슬이 바지에 스며든다.
10분정도 워밍업하듯 부드러운 산길을 가다 시멘트길 임도로
내려 걷다 노루메기에서 다시 숲속으로 들어섰다
(멋진 초원, 어두워 노출을 길게 줬더니...)
(남쪽보다 한 달가량 계절이 늦은 것 같다)
(가뜩 물을 머금은 숲으로 들어선다)
(寒衣嶺인가 巾衣嶺인가?)
건의령(巾衣嶺)
건의령부터는 숲도 산세도 대간의 위엄을 되찾는다.
여기서 덕항산 너머까지 대간 동쪽과 서쪽 일부가 삼척군인데
이는 삼척군이었던 황지읍과 장성읍이 1981년 태백시로 독립했기 때문.
건의령은 마루의 품새가 넓은 편이어서 쉬어가기에도,
야영을 하기에도 좋은 고갯마루인데
이런 분위기와 달리 고개에 얽힌 사연은 비장하다.
태백시문화원에서 정리해 놓은 전설에 따르면
고려 말 삼척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 망국 유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면서 관모와 관복을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로 나가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개 이름이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관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이 됐다는 것이다.
대동여지도에도 분명히 건의령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의 5만분의 1 지도에는
한의령(寒衣嶺)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어떤 산행 지도에는 푯대봉 지나 한의령이 표기되어 있고,
산림청에서 세운 이정표는 아예 한의령으로만 표기되어 있다
의미가 다른 고개 이름이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한 가지로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시그널이 50여개나 달려있는 공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삼밭골 방향, 부산에서 강릉시에 이르는 35번 국도)
부산 북구에서 강릉까지 이어가는 길이 421.1㎞의
전국 25개 남북노선중 하나로 각 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부산광역시에서 14번, 울산시 언양에서 24번,
경북 경주시∼영천시에서 4번, 안동시에서 5번·34번,
경북 봉화군 법전면∼강원도 태백시에서 31번·38번,
강원 강릉시에서 영동고속도로(고속국도 4)와 중복한다.
35번 국도는 피재와 석병산 지나 삽답령에서 백두대간을 지나고,
통도사와 건천 아화와 피재 조금 전에서 낙동정맥을 넘는다.
(대간길은 푯대봉을 약간 비껴 오른쪽 길로 진행한다)
(안개가 걷히는가 했는데 다시 숲을 덮는다)
(스틱도 손에서 해방되어 잠시 단체로 휴식을 하고...)
(꼽꼽한 길, 걷기는 좋지만 이미 옷은 다 젖었다)
(1055봉 오름길, 후미가 치고 오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고개가 높으면 고개너머 산은 더 높다
허리를 곧추세우던 1055봉이 정상이 가까워지자 벌떡 일어선다
(오르내림이 고만고만한데다 평지같은 구간도 많아 걷기 편하다)
(구부시령/九夫侍嶺)
태백 하사미의 외나무골에서 삼척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 고개 동쪽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 살았는데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고하여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홉 남편을 모시고 산 여인의 전설에서 구부시령이라 하였다고 한다
(구부시령에서 전을 펼치는 서울의 대간꾼들...)
넓은 풀밭에 이끼 낀 돌무더기가 있는 구부시령은
전설의 고향이어서일까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우리와 역방향에서 오다 마주친 서울 대간꾼들이 전을 펼친다
우리는 덕항산 정상쯤에서 전을 펼쳐야 할 것 같다
구부시령이 오늘 구간의 중간지점쯤 되는 지점
(마치 물위로 올라왔다가 잠수하듯 하늘 한번 보고 다시 숲으로 든다)
(숲 입구에는 꽃들이 환영하듯 반기고...)
(약간 트인 시야로 볼 수 있는 것은 안개 자욱한 숲뿐...)
(덕항산/1071m)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태백시 하장면 사이에 있는 산
북쪽에 두타산(1353m), 남동쪽에 응봉산(1303m)이 있고
지각산(환선봉)과 능선을 나란히 하고 있다.
동쪽 비탈면은 경사가 가파르나 서쪽 비탈면은 완만하다
동남으로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병풍암이 펼쳐져 있고
하늘로 우뚝 솟은 촛대봉 외에 깎아놓은 듯 반듯한 암석과
거대한 암벽들이 수려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계곡을 따라 동쪽으로 약 12Km 길이의 무릉천이 흘러 오십천에 합친다
주변에는 너와집, 굴피집, 통방아 등 많은 민속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지각산을 마주보고 북사면 산중턱에 있는 대이동굴(환선굴)은
천연기념물 제178호로서, 동굴 일대는 군립공원이자
국가중요 민속자료(제221~2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십천 계곡에는 영동선 철도가 지나고
서쪽 계곡에는 강릉~태백 국도가 지난다
옛날 삼척 사람들이 이 산만 넘으면
화전을 할 수 있는 땅이 많아 '덕메기산'이라 하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德項山'이 되었다 한다
(덕항산 정상의 산불감시 초소)
덕항산 정상, 하늘을 가리던 숲은 걷혔지만
여전히 낮게깔린 구름으로 조망은 기대할 수가 없다.
식사를 하고 막 출발하려는데 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맑은 날 산불감시 초소(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파노라마로 한번 담아봤으면 좋겠다.
(쉼터, 좌측으로는 예수원, 우측으로는 환선굴 가는 길, 대간은 직진)
(환선봉 오르는 길의 김 대장)
(열린 숲 사이 제법 먼 곳까지 조망이 트였다)
(발 아래가 그 유명한 환선굴, 그나마 일대를 조망할 수 있어 다행이다.)
삼척이 자랑하는 덕항산 '환선굴'(幻仙窟)은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세계적인 규모의 석회석 동굴로서
경이롭고 신비로운 동굴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한다
약 5억3천만년 전에 형성된 굴 내부에는 수천명이 모일 수 있는
높이가 약 30여m 이르는 넓은 광장과 계곡, 폭포 등이 있는데
굴의 전체 규모는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각산이라고도 하는 환선봉/1080m)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명봉이었는데
요즘들어 환선봉과 지각산으로 병기하고 있다.
이전부터 산 이름을 그렇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환선굴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부터 그렇게 불리는 것 아닐까?
정상석도 최근에 세운듯하다.
지각산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광동댐 부근에도 있던데...
(양탄자가 깔린 것 보다 더 멋진 숲, 바람은 좋겠다)
(큰앵초)
(벌개덩굴)
(여태 상상만 했던 모습, 오늘은 팀 산행이 되는 것 같다)
(열린 틈사이로, 구름이 걷힌 자리에는 산이 있었다)
(자암재)
좌측으로 내려서면 조탄동을 거쳐 광동호,
우측 길은 환선굴 가는 길인데 굵은 밧줄이 쳐져있다.
(나뭇잎은 빗방울 하나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은대난초)
(이름모르는 꽃 a)
(광동이주단지, )
자암재에서 조금 걸으면 광동댐 공사로 인해 수몰된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귀네미골의 고랭지 채소밭이 나온다.
옛날 화전이었다지만 능선 비탈을 온통 파헤쳐 개간한 곳으로
얼마나 광활한지 넓이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북한의 국화(國花) 함박꽃)
흰색으로 탐스럽게 피는 꽃이 크고 향기도 좋아서
예로부터 사람들에 널리 사랑받아 이름도 아주 많군요
옥처럼 깨끗하고 소중한 나무라고 "옥수",
옥 같은 꽃에 난초 같은 향기가 있다고 "옥란",
난초같은 나무라고 "목란",
나무에 피는 크고 탐스런 연꽃이라고 "목련",
꽃봉오리가 모두 북쪽을 향했다고 "북향화",
꽃봉오리가 붓끝을 닮았다고 "목필"...
(순례자의 행렬같은 대간꾼들의 엄숙한 걸음 걸음!)
(홀씨를 다 날려버린 )
무거운 몸으로는 갈 길이 너무 멀어
백발성성 머리칼까지 뽑아 날리고는 부활을 꿈꾸는 민들레
노아의 홍수를 피할 때처럼 감사하는 민들레
(무우꽃, 길섶에 지천으로 피어있다)
(큰 비가 내리면 다 쓸려내려갈 것 같은 산비탈, 발가벗은 산)
(고광나무 ?)
(컴프리)
(이름 모르는 꽃 b)
(큰재, 삼거리길 대간은 큰 길을 버리고 우측 숲길로 들어선다)
고랭지 채소밭을 오를 때부터 비가 계속 내린다
비를 맞고 걷는 것도 괜찮지만 카메라 쌕 때문에 자켓을 걸치고
진흙탕길을 터벅터벅하며 얼마나 걸어 내려왔을까
운동장만큼 넓직한 수풀이 무성한 곳에서 길이 갈린다.
후미를 기다리며 속도를 늦춘 바람에
선두와는 거리가 더 멀어져 꼬리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산행날머리 댓재까지는 여기서 5km
이제 2시간 이내에 황장산을 거쳐 댓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후미와 합류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부려본다
(큰재에서 숲에 들어서자 반가운 세월산방 시그널이...)
대간길에서 간간히 만나는 "세월산방" 시그널
마치 세월 산방 님들을 만난듯 반갑다.
(편안한 길 비를 맞으며 여유를 부려본다)
솔 잎에 맺힌 빗방울들이 하도 멋있어
카메라를 꺼내어 얼른 한 컷만 찍었는데도 카메라가 수난이다
주인을 잘 만나야지. 카메라를 너무 혹사시키는 것 같다
(이제 산 너울 몇 개만 넘으면 황장산)
(49)
(노린재나무)
(1059봉, 대간길은 우측길)
산에 들어 느끼는 피로감은 행복감을 동반한다.
바로 이런 기분 때문에 산길을 걷는 것 아닐까.
일상에서는 한 순간도 문명의 이기를 떠나서 살 수 없지만,
하루 이틀만이라도 그것을 거부하는 즐거움은
현대의 신이 되어버린 문명에 대한 가냘픈 몸부림이다.
이런 맥락에서 에머슨(1083-1882)의 통찰은 얼마나 슬픈가!
"문명인은 마차를 만들었지만, 발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지팡이로 몸을 떠받치지만, 근육의 지탱력은 잃어 버렸다.
그는 훌륭한 제네바산 시계를 갖고 있지만,
태양으로 시간을 알아보는 재간은 없다.
마지막 1온스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
(52)
(날씨가 좋으면 동해까지 볼 수 있으련만...)
(황장산/975m, 댓재까지는 10분 거리)
황장산 정상은 이름만큼이나 품새가 나지않고
정상을 표시하는 정상석은 덕항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청타산악회에서 세운 조그만 정상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백두대간 월악산 구간 문경의 황장목으로 유명한 황장산과 동명의 산이다.
다음 구간의 두타-청옥산의 모습이 잘 조망된다는 곳인데...
(오늘은 예외다. 황장산에서 날머리까지 10분 거리라니...)
대간길을 가면서 깨닳은 것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날머리를 쉽게 생각했다가는 낭패를 당한다는 것이다
날머리 재까지 수없이 이어지는 산너울들...
이제는 끝이겠지 할 때 가로막고 서는 봉우리는 힘을 2배로 뺀다
그래서 마지막이 가까워오면 아예 날머리까지 봉우리 10개는
더 남았다 생각하고 가는 것이 마음 편하다.
저 아래 댓재로 오르는 꼬불뽀불한 길이 숲사이로 보이고
차소리도 크게 들린다. 댓재가 바로 나타났다
(맞은 편으로 두타산 안내판이 다음 구간을 벌써부터 설레게 하고)
(날머리 댓재)
424번 지방도로인 '댓재'(820m)는
삼척시 미로면과 하장면을 연결하는 고개로서
동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밑이 안보일 정도로 험한 고갯길이다
산행을 잘하고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않은 것은 고갯마루에 삼척시에서
세운 철 조형물, 이런 곳에 저런 조형물이 어울리기나 하는가?
지난 삼도봉에 있던 삼도민화합기념탑도 마찬가지고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그런 자연스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고갯마루 공터 한 켠에는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가 기다리고
그 뒤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종균씨가 준비해 온 오뎅탕이 끓고 있다
힘든 산행을 하고 내려와 먹는 이 오뎅탕!
여태 먹어 본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 2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댓재에 철모르고 피어있는 진달래)
(붉은토끼풀)
맞은편 개울에 땀을 훔치려 가는데
야생화들이 만발하여 발걸음을 붙잡는다
안타까움, 너들은 그렇게 반겨주지만 이름도 모르니 어쩌지?
야생화 박사님들이 가르쳐 주면 늦었지만
그 때 이름표를 달아주마.
(붉은토끼풀 2)
(염주괴불주머니)
(조팝나무)
(쥐오줌풀)
(범의꼬리 ?)
(미나리 아재비)
백두대간! 어떤 의미가 되어가고 있는가?
밤을 새우며 달려 신새벽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힘들고 배낭이 돌덩이보다 더 무거운 무게로
어깨를 지르눌러도 중독된듯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고 또 가는 길
산이 그냥 산으로 보이지 않고 산줄기가 그냥 산줄기로 보이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백두대간" 이라는 네 글자를 접하면서 부터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보았던 글이 답이 아닐까?
이미 백두대간은 그냥 백두대간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큰 의미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도 무사히 한 구간을 종주할 수 있어 감사하다.
12시간을 예상했지만 8시간 반도 안되어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조망이 아쉽긴했지만 촉촉히 내린 비도 한몫 했으리라
수고한 모든 대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다음 구간은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울산백두대간종주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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