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2. 14:57ㆍ山情無限/백두대간(完)
○ 산행일자 : 2007. 8.18(토) 06:00 ~ 16:50 (10시간 50분, 중간기준, 접근시간 제외)
○ 산행날씨 : 흐렸다가 맑음, 소나기후 맑음
○ 참석인원 : 20명 (백두대간 회원 18명, 게스트 2명)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19.7㎞ 누적거리 : 512.6km
○ 산행코스 : 죽령- 도솔봉- 묘적봉- 모시골- 흙목- 싸리재- 시루봉- 투구봉- 저수령(남진)
○ 소 재 지 : 충북 단양군, 경북 영주시 / 예천군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8/18 20:00 신복로타리
8/19 00:48~03:30 (중부고속도로 단양) 교통사고
03:30~04:15 죽령터널 입구(단양쪽) 도착 / 아침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4:15~06:00 죽령터널 입구 ~ 죽령
06:00 죽령 출발
07:55 전망대
08:50~09:35 도솔봉(1315.6m) / 점심
10:40 묘적봉(1156m)
11:17 묘적령
12:51 모시골(헬기장)
13:30 송전탑
13:50 흙목 정상(1033.5m)
14:29 싸리재
15:32 1084봉
16:21 투구봉(1080m)
16:31 촛대봉(1080.7m)
16:50 저수령(850m)
③ 복귀
19:00 저수령 출발
23:45 신복 로타리 도착
2. 산행기록
바닥까지 내려갔던 컨디션이 어느정도 회복되기는 했지만
폭염경보가 발령되는 요즘 악명높은 황철봉 너덜이 기다리고 있는
한계령-미시령 구간을 가기 위해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밤 10시 신복로타리에서 차에 올랐다.
지난 구간 한계령을 갔다 오면서 다음 구간 운행방법을 두고
무박으로 가자는 대원들과 1박을 하면서 가자는 대원들이
격론을 벌이다가 결국 이 달에 그것도 한 구간으로 통과하기로 했다.
계절이 좋을 때는 등산객들로 진행이 어렵고, 조금 지나면 산방기간에 걸리고,
또 겨울에 지나기는 위험하고... 체력의 부담이 있지만 이 달에 가기로 했다.
지난번 집중호우로 무너져 내린 길이 아직 통행이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이번에 한계령 구간을 못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감이 이상했다.
* * * * * * *
(00:48, 상행선 중부고속도로 단양 하의면, 한밤 중에 큰 사고가 났다)
대구를 지나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선 버스는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모두 잠이 들 즈음 브레이크 잡은 바퀴가 미끌리는가 했는데 푸썩하며
뭘 받는 소리와 느낌이 온다. 다행이 큰 충격이 아니었고 2차 충격도 없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창 밖을 보니 택시 1대가 뒷꽁무니가 휴지같이
찌그러진채 반대방향 깊섶에 튕겨나가 있고, 한 대는 앞쪽에 중앙분리대를
받고 서 있다. 아수라장이다. 1명 사망, 4명 부상, 일행중 다친사람이
없는 것을 불행중 다행이라 해야할까...?
(사고수습을 하는 약 3시간 가까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신변 인계를 위해 가던 경찰은 우리를 단양쪽 죽령터널 입구에 내려주었는데...)
(가던 길을 되돌아 나와 5번국도를 따라 죽령으로 오른다.)
친절한 "ㅅ" 경찰관이 중부고속도로 죽령터널 입구에
내려주는 바람에 국도 5호선을 따라 1시간 반 이상 걸어 올라
산에 들기도 전에 진을 다 빼고 말았다.
(마침내 도착한 "죽령(竹嶺 689m)", 백두대간 표지석)
죽령은 지리산 천왕봉 깃점 약 400km에 위치한
백두대간의 큰 고개로 문경새재, 추풍령과 함께 영남과 기호지방을 통하는
관문의 삼형제라 할 수 있는데 연대나 위치 높이 구실로 보아 그 맏형격.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에 신라 아달라왕 5년인 서기 158년에
"죽죽(竹竹)"이라는 사람이 처음 길을 열었다는 사연이 많은 고개.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쫓고 쫓기며 엎치락 뒤치락 불꽃튀는 격전장이기도 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말년(서기 470년경) 신라 진흥왕 12년(서기 551년)
왕이 거칠부 등 여덟 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 죽령 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으며, 그 40년 뒤인 영양왕 1년 (서기 590년) 고구려 명장 온달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등의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당시 죽령이 얼마나 막중한 요충이었음을 짐작할만한 하다.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록한 지점에 자리한 죽령.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잇는 5번 국도와 "또아리굴"로 유명한 중앙선 철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현재는 중앙고속도로의 터널이 뚫려 한적해진 고개 길은 구름도
쉬어가는 아흔아홉 굽이로 한 때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이자 오랜 세월 영남과
기호 지방을 넘나드는 유서 깊고 이름난 관문이었다.
(죽령 백두대간 들머리, 처음으로 죽령에서 벌재방향으로 남진이다.)
(영주쪽은 아침 해가 붉게 물들이고...)
(죽령출발, 도솔봉에서 묘적령까지는 산행금지 구간이다)
계속 북진하던 대간길이 생각지도 않은 교통사고로 남진을 하게 되었다.
오늘 구간은 올해 초 통과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그 때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한창 대간길 통제구간을 단속할 때여서 할 수없이 하벌재에서 죽령까지
2구간을 건너 뛰었는데 오늘 그 한 구간을 땜빵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하벌재나 벌재에서 북진하면 좋았을텐데..,
교통편이 연결되지 못할 상황에서 경찰이 버스에 타고 우리를 안내하는데
통제구간 하벌재나 벌재에 간다고 말할 수가 없어 만만한 소백산을 간다니까
친절하게도 죽령터널 입구에 내려주어 죽령에서 남진을 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산객을 반기는 동자꽃)
(벌써부터 후끈한 열기가 온 몸을 휘감는다. 오늘도 대단할 것 같다.)
(저 앞이 출발한 죽령, 몸은 벌써 산행끝날 즈음의 상태다)
컨디션이 썩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아닌 밤 중에 홍두깨 맞은 듯, 잠도 못 자고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몸이 무겁다.
한계령까지는 차편 연결도 어렵고 차편이 연결된다고 해도
일찍 산에 들어야 하는데 이미 너무 늦어 구간완주가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지난번 산행금지 구간이어서 건너 뛰었던 이 구간으로 올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하긴 하지만... 산에 든지 아직 2시간도 안되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제 컨디션이 아닌 것 같다.
(그나마, 아름다운 산길이기에 가 볼만한 것 아닌가?)
(길섶의 하얀 구절초도 힘을 불어넣어 주고...)
(이런 맛에 또 산에 드는 것 아닌가?)
(도솔봉, 저기를 넘어야 한다고...)
죽령의 표고가 696m고 도솔봉의 높이가 1324m니 고도차가 600m가 넘는다.
그러나 지나오면서 벌써 삼형제봉을 비롯한 몇 개의 봉우리를
올랐다 내렸다 했기에 고도차 600m는 큰 의미가 없다
도솔봉을 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넘어야 한다.
(끝없이 내려가는 계단, 등로정비를 잘 해 놓은 것 같다.)
(도중에 내려서는 길이 반갑지 않은 건...)
(지난날 화려했던 시절은 이제 추억 속에 묻어두고...)
(도솔봉을 오르다 만난 왜솜다리(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는 세 종류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솜다리는 한라산과 중부 이북에 자라고 노란색의 5개의 꽃을 둥글게 피우고
산솜다리는 설악산 이북의 높은 산에 자라고 노란색 꽃 6~9개가 둥글게 달린다.
왜솜다리는 소백산 이북에서 자라며, 회백색 7~9개의 꽃이 둥글게 핀다.
(천국으로 오르는 구명줄인가?)
(도솔봉 정상에서, 용철씨와...)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의 국립공원소백산 남쪽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도솔봉은 산 전체가 전반적인 육산으로 이뤄져 있으며 산세 또한 험하지 않아
봄 철쭉과 겨울 설경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운치있는 산으로 소문 나 있다.
소백산 비로봉에서 남쪽의 형제봉과 더불어 가장 한적한 산으로
육산이지만 정상일대는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고 너덜 지대로 위험이 따르기는 하지만
소백산 전체를 조망하며 조릿대와 키가 넘는 연속되는 잡목터널과 지천으로 핀
야생화는 산객들이 땀을 흘리고 오른 보상을 충분히 해 주고도 남는다.
(?봉, 뒤에 우뚝솟은 봉우리가 연화봉인가?)
(도솔봉 정상의 "세월" 시그널, 세월님을 만난듯 반갑다)
(도솔봉 건너편 헬기장에서 영근씨)
왜 그럴까? 여기 헬기장에 또 도솔봉 정상석이 떡하니 서 있다.
조금 전에 들렸던 도솔봉하고야 운치와 분위기는 비교도 안되지만
돈은 엄청 많이 들었음직한 정상석이 하나가 버티고 있다.
혹시, 헬기로 옮겨오다 여기다 방치해 둔 것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러다가 주변과 잘 어울리며 운치있는 정상석을 빼어버리고 저 볼품없는
공동묘지 비석같은 정상석으로 바꾸어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어찌 정상석 하나에도 공무원 냄새가 풀풀 나는지...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산줄기를 타고 넘는다)
(묘적봉/1148m)
묘적봉은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국립공원 최남단에 위치한 산.
일반적으로 소백산국립공원과 동떨어진 산으로 생각하나
죽령 남쪽 약 10km거리인 묘적봉 일원까지가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도솔봉을 지나 1185봉을 지나 묘적봉으로 가고 있는데
먼저 간 종구씨와 영근씨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1185봉에서 그냥 직진하는 바람에 대간길을 벗어난
일행을 구출(?)하여 오르막 길을 힘들게 올라 온다.
덕분에 우리도 30여 분 달콤한 휴식을 가졌다.
그리고, 얼마를 갔을까
또, 한 대원이 더 멀리까지 내려갔다기에
김대장을 비롯한 몇 명이 남아서 그 대원을 챙겨 오겠다기에
묘적봉에 남기고 먼저 출발하였는데...
(단풍취)
(송장풀)
(묘적령, 진행방향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사동리다)
출입금지구역을 벗어났다.
도솔봉에서 이 곳 묘적령까지는 출입금지구간으로 지정해 놓았는데
왜 출입금지구역으로 정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단양이나 영주쪽으로 내려설 수 있다.
(물봉선)
(그렇게 기복이 심하지 않은 것 같은데 걸음이 무겁다)
(눈꺼풀은 천근만근... 정신없이 걷다가 사진도 한장씩 남겨야 하고...)
(오늘은 모두가 정말 힘든 산행을 하고 있다)
오는 길 잠 한 숨 못잔데다 날씨까지 무더워 모두 지쳐있다.
오는 동안 얼마나 졸면서 걸었는지... 대간 시작하고 이렇게 힘든 산행을
한 적이 있기나 했는지...? 오늘 벌재까지 가기로 했지만 벌써 몸이 늘어져
저수령 너머 옥녀봉과 문복대를 넘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
건각 종구씨도 가는데까지 가 보자 한다.
(나무 위에서는 태양이 작열하고...)
(둥근이질풀)
(참취)
(원추리)
(모싯대)
(씀바귀)
(송전탑)
(더위에 지쳐 바람도 잠자는가? 찬 바람이 나올만한 이런 곳 마저도...)
(목하, 오총무는 가던 길에 주저앉아 미숫가루 음료 제조중)
(흙목/1033m)
(은분취)
(흙목 정상부 시그널, 시그널을 지나 좌측길로 들어서야 한다)
이름도 특이한 흙목을 지나 조그만 봉우리에 올라
후미에 있는 김대장과 간신히 연락이 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길을 잘못든 **씨를 이제사 만났단다.
도중에 기다린 탓에 선두와 우리도 1시간 정도 차이가 나는데
후미는 또 우리와 약 3시간 가까이 차이가 나는 거리...
오늘 이런 상태라면 아무래도 저수령에서 끊어야 할 것 같다.
시간적으로나 몸의 상태로나 저수령을 지나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옥녀봉과 문복대를 지나 벌재까지 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하늘재-벌재 구간도 27km나 되어 저수령까지 한 구간으로
진행하기는 어렵고..., 종균씨가 언제 기회를 만들어
벌재-저수령 구간을 단합대회겸 와서 메꾸자 한다.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시루봉인줄 알았던 유두봉/1059.3m)
대간길이 일반 산행보다 힘든 것은 거리도 거리지만
힘이 소진할 즈음 나타나는 높은 산들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대신 가줄 수도 없는 길
힘들더라도 이렇게 이어가기로 작정한 대간길인 것을...
(싸리재/900m)
멀리서 들리던 천둥소리가 이제 제법 가까운데서 들리고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서늘한 바람이 스쳐간다. 곧 소나기가 올 모양이다.
배낭카바를 씌우고 가파른 유두봉을 힘겹게 오르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우두둑 쏟아진다. 보통 때는 태양이 우리에게 힘을 주지만 이럴 때는
소나기가 힘을 준다. 불덩이 같던 몸도 쏟아지는 소나기에 식으면서
힘이 솟는다. 그렇게 중압감으로 다가왔던 유두봉 가파른 길도
힘든 줄 모르게 오른다. 이런걸 단비라 하는 것 아닌가?
(소나기 한 줄기가 지나가고... 그 뒤로 낮은 구름이 골을 타고 흐른다.)
(1084봉, 힘내세요. 둘산악회)
막판에 오르내림이 제법 심하다.
투구봉인줄 알고 올랐는데 유두봉이었다.
그럼 그 다음 봉우리가 투구봉이겠지 했는데
이번에도 아니다. 1084봉이다.
그 투구봉은 언제 나타날 것인가?
(머리위 태양은 작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간길을 이어간다)
(이제사 나타난 투구봉/1080.7m. 반갑다 투구봉아!)
여기가 투구봉. 투구봉도 소백산 자락이지!
사람 마음이 참 편리하다는 생각이다.
벌재까지 가기로 했을 때는 저수령 너머에 있는 옥녀봉과 문복대
오를 것이 신경쓰였는데 오늘 산행을 저수령에서 끝내기로 하니
마지막에 솟아있는 투구봉이 기다려졌었다.
날씨가 무덥고 힘들다고 날머리가 옮겨 오고
높은 산봉우리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대간길에서 날머리가 쉽게 나타나는 것 본 적이 있는가?
우뚝 선 봉우리가 낮아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산은 그대로 인데 변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다.
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산이 좋아 산에 들어 조금 힘들다고
산을 빨리 내려가려는 것은 산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다.
어차피 나타날 날머리인데 조바심 갖지말고
산에 있는 동안 산을 더 느끼며 즐기자.
(참취)
(곧이어 나타난 촛대봉/1080m)
(키 큰 잣나무 숲을 지나)
(구름에 뒤덮힌 옥녀봉)
(드디어 저수령(低首嶺,850m))
저수령(低首嶺)의 유래(由來)
이 곳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경계로 한 도계(도계)지점으로 경북과 충북을 넘나드는 이 고개 이름은
옛부터 저수령(해발 850m)이라고 불리워 왔다.
저수령이란 이름은 지금의 도로를 개설하기 이전에는 험난한
산 속의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여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뜻으로 불리워졌다고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수령에서 은풍곡(銀豊谷)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外敵)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의 도로는 지방도 927호로 1994년에 개설 완료하여
충북과 서울 강원지방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광, 산업도로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남쪽(예천방향) 1.6km아래 지점에는 멀리 학가산이
바라보이는 아늑한 산 자락에 경북도와 예천군에서 쾌적한 휴게공원을
조성하여 이곳을 지나는 많은 길손들의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 * * * * * *
그동안 아무 사고없이 잘 이어가던 대간길이었는데 오늘 사고가 났다.
일행중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이나 사상자가 난 사고여서 안타깝다.
졸지에 유명을 달리하신 분의 명복을 빌며, 부상당한 분들도 빨리 쾌유하시기를...
그런 와중에도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ㅅ"경찰관에게 감사드린다.
남은 8구간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오늘 원래 가려던 구간도 못가고, 모두가 무거운 마음만큼이나
무거운 발걸음 힘든 산행이었지만
애쓰고 수고한 대원 모두가 고맙고 감사하다.
오늘의 좋지않은 기억은 털고 다음구간을 준비하자.
그래도 백두대간은 이어가야 하는 것.
울산 백두대간종주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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