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스페인에서 가장 스페인다운 도시
2016. 2. 5. 17:08ㆍ여행/여행기
세비야, 스페인에서 가장 스페인다운 도시
(벨라스케스를 배출하고, 세비야의 이발사로 친숙한..)
스페인의 본 모습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곳.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540k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세비야주의 주도.
7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항해가 마젤란이
스페인에서 스페인을 느끼기에 제격인 도시.
(Año 1726. Vista de Sevilla desde Triana ↖사진 클릭)
세비야는 기원전 207년 경,
로마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이미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도시가 되었으며 이후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8C 이후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으나 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서기 711년부터 1248년까지 계속된 무어의 지배는 세비야를 비롯한
전 안달루시아 지방에 크나큰 흔적을 남겼다. 인류 최초로
지구 항해사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시작한 세비야 항은 스페인과
아메리카 대륙간 무역에서 중요한 기지역할을 하며 이베리아
반도의 대표 항구로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세비야는 예술 방면에서도 발전을 하여
대예술가 벨라스케스를 배출했다. 그 후, 300년 흑사병이 돌고
과랄키비르 강에 침적토가 생기며 항구기능을 상실하였다.
대항해 시대의 막이 내리며 세비야도 쇠락하기 시작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면서 부침을 겪었으나
1980년 안달루시아 주의 주도가 되면서 재도약하여,
1992년 국제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1929년 에스파냐-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세워진
에스파냐 광장과 건물들은 세비야의 상징이 되어
관광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세비야 ABADES BENACAZON 호텔)
(시원하게 풍덩 뛰어들고 싶지만..)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은 것이 많이 아쉽다.
말라가 해변에서도 그랬고, 탕헤르 해변에서도 그랬는데
42℃까지 오른 세비야에서 깨끗한 수영장을 보니 더 그렇다.
정원관리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았다.
(여기서 올리브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를..)
정원을 둘러 보고 있는데 스페인과 모로코에서 지겹도록
올리브 밭만 보면서 올리브 열매가 어떻게 달려 있는지 궁금했는데
생각지 않은 호텔 정원에서 달려있는 올리브 열매를 보다니
뭔 보물을 발견한듯 반가웠다. 나 원 참..
(세비야 시내를 관통하는 과달키비르 강)
아랍어로 '큰 강'이라는 뜻의 과달키비르 강은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길고,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가장 긴 강.
하엔 주의 동부 산지에서 발원하여 코르도바, 세비야 지역을 거쳐
대서양 카디스 만으로 흘러간다. 유역 일대는 포도, 올리브, 곡류,
과일, 야채, 목화 등을 산출하는 풍요로운 농업지대를 이루고 있고,
안달루시아 지방의 강 중에서 배가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강과 다름 없어
그 가치가 더욱 큰데 지금은 세비야까지 강을 통한 배의 운항이 가능한데
고대 로마 제국 시대 스페인 지역이 식민지였을 때는
코르도바까지 배가 운항을 했다고 한다.
(황금의 탑(Torre del Oro))
황금의 탑은 1220년 무어인들의 지배 시절 세워진 탑으로
당시 탑 위가 황금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16~17세기에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이곳에 보관하였던 연유로
황금의 탑이라 부른다고 한다.
황금의 탑은 이곳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강 맞은편에 있는 8각형 은의 탑과의 사이에
쇠사슬을 걸어 배의 통행을 제한했다고 한다.
마젤란이 이곳에서 세계일주를 떠난 것이 상징이 되어
지금은 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스페인 광장으로 들어 서는데..)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라는데 입구부터 아름다운 타일로 장식이..
내부는 어떨까 하는 기대로 걸음을 재촉한다.
(1992년 국제 박람회가 열리기도 했던 스페인 광장)
세비야 스페인 광장은 산텔모 궁전의 일부였던
마리아 루이사 공원의 반원형 건물안에 위치한 커다란 광장이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은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카 박람회에 맞춰
지어진 것으로 아니카 곤잘레스의 작품이라고 한다 옛스러워
보이지만 비교적 최근에 건축된 건물이다.
(스페인 각 지방의 지도와 역사적 사건이 타일로..)
바닥에는 스페인 각 지방의 지도를 그려 놓았고,
벽에는 각 지방의 역사적인 사건을 타일 모자이크로 묘사하고 있는데
스페인 58개 지방의 역사부터 인물과 휘장을 모두 볼 수 있다.
타일 장식이 정말 아름답다.
바로셀로나에서 가우디의 작품들에서 타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알람브라 궁전에서 경이로운 모습에 넋을 잃었었다.
남부지방은 타일 장식한 건축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스페인 광장도
건축물 요소 요소를 타일로 아름답게 장식해 놓았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중동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면서
안달루시아만의 느낌을 가진 문양들이다.
(부분 부문이 대단한 작품들이지만)
자세하게 뜯어 볼 시간이 없어 주마간산식으로 큰 그림만
대충 훓어 본다. 일찍 들렸더니.. 그림자가 시샘을 하여
아름다운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벽면, 의자, 심지어 다리 난간까지도 타일로 장식이..)
광장에는 4개의 다리가 있는데,
4개의 다리는 중세 가톨릭 왕국인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광장을 반달 모양의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것도 서인도를
향해 두 팔을 뻗고 있는 의미라고 한다.
(가족 나들이인듯.. 행복한 모습을 옆에서 살짝 한 컷!)
(한 눈에 담기 힘든 넓은 광장)
일반 카메라의 작은 사각틀에 제대로 담을 수가 없다.
파노라마로 담아야 제대로 담을 수 있겠다.
(69)
(CD도 두 장 샀는데.. )
남미 안데스의 전통악기 산뽀니아(대나무로 만든
팬파이프 일종)와 께나로 지나가는 바람소리 같은 애수 띤
안데스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구입한 CD의 음질은 별로..
(80)
(무리요 공원의 콜럼버스 항해 기념탑)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지 5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으로 한편엔 그를 후원해주었던 이사벨라 여왕의 부조와 이름이
다른 한 편엔 콜럼버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탑이 세워져 있는
무리요 공원은 세비야에서 마리아 루이사 공원 다음으로 큰 공원으로
17세기 세비야의 종교 화가 무리요를 상징한다.
탑 중앙에 배가 산타마리아호이다.
(세비야 대성당을 배경으로..)
(세비야 대성당 바로 옆에 우뚝 선 세비야 알카사르(Alcazar))
알카사르는 12세기 후반 이슬람교도에 의해 지어진 모스크 자리에
지어진 스페인 특유의 이슬람 양식인 무데하르 양식이다.
※무데하르 양식은※
13~16C에 걸쳐 에스파냐에서 발달한 이슬람풍의 그리스도교 건축양식.
8C 에스파냐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대부분의 국토를 빼앗겼다.
그 뒤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이 기독교도들을 중심으로 일어나 15세기에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로마네스크 건축과 고딕 건축이 이슬람풍과 섞여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에스파냐 고유의 기독교 건축 양식이 만들어졌다.
로마네스크의 평면에 타일 장식을 한 이슬람풍 장식을 특징으로, 벽돌이나 석고를
구조체로 하여 화려한 아라베스크 무늬와 말굽 모양의 아치가 있는 특이한
공간구조를 연출하였다. 세비야의 알카자르(성곽풍 궁전)와 톨레도의
산티아고 데 알라바트 교회, 과달루페의 수도원이 대표적인 건축물이며
19C 말에는 가우디의 건축에도 영향을 끼쳤다.
8C 이슬람의 지배 아래 있던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의 지배를
피해 북부로 도망한 그리스도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건축양식은
모자라베 양식(Mozarabic architecture)이라 하며, 로마네스크 양식에
앞선 양식(프리 로마네스크)으로 중요하게 취급받고 있다.
(89)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세비야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은 원래 회교사원이었던 것을 사탑만 남기고
모스크를 헐고 1401년부터 1528년까지 100년이 넘게 건축되었기 때문에
고딕양식, 신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과 이슬람의 흔적까지 혼재되어 있다.
성당 내부 규모 만으로는 세계 최대,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라고..
(거대한 대성당의 모습을 제대로 잡을 수 없다)
(스페인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는 세비야 대성당)
원래 있던 이슬람 모스크를 허물고 1402년 1세기에 걸쳐
건축했다.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으로 폭 116m, 길이 76m 규모.
예배당에 있는 격자무늬의 목제 제단은 세계 최대규모로,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장면들을 황금으로 섬세하게
조각해 화려함을 더했다.
예배당 안쪽으로 높은 아치기 끝나는 곳이 왕실 예배당
(Capilla Real)이며 좌우에 알폰소 10세와 모후 베아트리스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주제단 중앙에는 세비야의 수호신인
역대 왕의 성모를 모셔 놓았다.
성당 남쪽의 산 크리스토발 문 근처에는
4대 스페인 왕국인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4개의 거인상이 메고 있는 콜럼버스 묘가 자리잡고 있다.
성당 북쪽 분수대 중심으로 오렌지 나무가 심겨 있는데 중정
나무 위로 세비야의 랜드마크 하랄다 탑이 보인다.
(성당 내부 규모로는 세계에서 최대로 기네스북에..)
"우리는 교회를 갖게 될 것이다. 건축 과정을
보는 이들이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할 만한 그러한 교회를.."
당시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가톨릭 세력은 그들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세계 최대 성당을 짓기 원했고, 알모아데 모스크(이슬람 예배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비야 대성당을 세웠다. 그리하여 세비야 대성당은 미친자들의
성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규모도 규모이거니와 스페인에서
가장 화려한 성당이기도 하고, 스페인의 역사를 알 수 있어서 더 기억에
남는 성당이다. 식민지에서 수탈한 금으로 장식했을 화려한 모습이
감탄스럽기보다 오히려 하느님이 이런 곳에 마음 편히
계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대성당의 중앙 돔과 천장 모습)
대성당 곳곳을 고야, 무리요, 수르바란 같은 유명화가들의
명화가 장식되어 있어 웬만한 미술관 못지 않다.
(113)
(대성당 성물 보관실에 있는 귀중품들..)
황금왕관을 비롯하여 진귀한 보물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어
마치 박물관, 미술관을 관람하는 기분이 들 정도..
황금왕관의 아기예수 몸통 부분은 천연진주인데
세계 최대 크기라고..
(119)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러 세비야 대성당을 찾아 오지 않았을까?)
콜럼버스의 무덤, 4명의 거인은 스페인의
4대 왕국인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한다는데
앞의 두왕은 콜럼버스를 지원해 줘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고,
뒤의 두왕은 콜럼버스를 지원하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이탈리아 사람이었던 콜럼버스는 카스티야 왕국 이사벨 1세 여왕의
파격적인 후원을 받고 신대륙을 찾기 위해 항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중앙 아메리카 등 신대륙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독의 지위까지
수여 받았으나, 그의 강력한 후원자 이사벨 여왕이 죽고 나자,
콜럼버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페르난도 2세는 그간의 지원을 끊고
그의 재산을 몰수하고 지위까지 박탈했다. 1506년 5월 21일
55년의 세상을 뒤로 하고 눈을 감았다.
콜럼버스,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일까?
1506년 죽을 때까지 자기가 발견한 땅을 인도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의 대서양 항로 개척으로 아메리카 대륙이 비로소 유럽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현재의 미국이 탄생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지만, 4차례에 걸친 탐험에서 인디언에게 저지른 만행 등
부정적인 면은 숨겨져 있고, 위대한 탐험가로만 포장하여 알려지고 있다.
콜럼버스와 그의 부하들은 역사가들에 의해 '홀로코스트(집단학살)이라고
명명되는 만행을 저질렀다. 타이노 원주민은 조직적으로 노예화되고 살해되었다.
수백 명이 유럽으로 노예로 팔려갔고 다수는 그 과정에서 죽어갔다.
나머지 인디언들은 활당된 금을 가져오지 못하면 수족을 잘랐다.
실제로 금이 그렇게 많이 생산되지 않아서 많은 원주민들은 도망갔고,
에스파냐 인들은 이들을 사냥의 방식으로 죽였다.
원주민들은 저항하기도 했으나 무기가 훨씬 우수한 정복자
에스파냐인들을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고, 유럽에서 옮아온 전염병은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 절망 속에서 원주민들은 자식과 동반집단자살하였다.
25만 명에 달하던 타이노 원주민의 수는 2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콜럼버스는 잔혹한 정복자, 인디언 노예정책을 만든 최초의 인간으로
도덕이 제대로 서지않은 금에 눈 먼 잔혹한 정복자였다.
그러니까 아즈텍 문명의 파괴자 코르테스와
잉카 문명의 파괴자 피사로의 롤모델이 콜럼버스였던 것 아닌가?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 아니라 객관적인 윤리로 쓰여져야 한다.
콜럼버스는 잔혹한 정복자, 문명파괴자로서의 모습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122)
(아 정말 정교하고 화려하다. 아름답다는 말밖엔..)
(목각과 대형 파이프가 특징인 오르간)
(금으로 장식된 중앙제대)
철문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제단화가 안에 있다.
목판화에 금을 입혀 화려한 장식으로 수놓았다.
현란한 금장식은 식민지 약탈의 반증이겠지.
(128)
(129)
(131)
(세비야 대성당 종탑, 히랄다 탑까지 올라가 본다)
히랄다 탑은 이슬람 지배 당시, 사람들이 어디서나
보고 기도할 수 있도록 세운 모스크의 첨탑인 미나레트였다.
이후 대성당을 지으면서 꼭대기에 전망대와 풍향계를 설치하면서
'풍향계'라는 뜻인 '히랄다'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34층까지 올라가는 탑은 계단을 만들지 않았는데
그건 말을 타고 올라가기 위해서라 한다.
(히달다 탑 꼭대기의 풍향계, 히달디요의 모습)
히달다 탑 꼭대기에는 한 손에 방패를,
다른 한 손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히달디요가 있는데
그것과 똑 같은 모양이 성당 정문 입구에도 있다.
(104m 높이의 히랄다 탑에 오르니..)
대성당 지붕을 비롯한 다닥다닥 붙어있는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세고비야 시내의 모습도 보인다.
발 아래로 아름다운 오렌지 중정도 보인다.
(종탑을 내려 오면서 보는 대성당의 모습)
(북쪽문을 통해 오렌지 중정으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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