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그 낯선 만남
2016. 4. 12. 00:39ㆍ여행/여행기
페루, 그 낯선 만남
(풀 수 없는 수수께끼들.. 숙제만 더 안고)
2016. 1. 2 ~ 28
(암스테르담 Schiphol 공항)
입출국 수속 시간을 제해도 5시간 정도의 대기시간이 발생한다.
암스테르담 외출을 할까도 했지만 이른 아침인데다
날씨까지 궂어 공항에서 죽쳤다.
(장장 24시간을 날아 도착한 리마..)
상기된 마음으로 내린 리마 공항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커다란 백팩을 짊어진 젊은 여행객들..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 온다. 비행시간만 꼬박 하루가 넘는 24시간 20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약 32시간. 집을 나서 숙소에 도착하기까지는 무려
42시간이 걸렸다. 언젠가는 한 번 가봐야지 하며 꿈꾸던 남미..
꿈만 같다.
남미의 관문 리마 ☞ 사진 클릭
남미 여행의 출발점 리마!
페루의 수도, 역사, 문화, 음식, 페스티벌 등 다양한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잉카제국을 정복한 스페인은
잉카의 수도 쿠스코를 버리고 리마에 페루의 수도를 건설했다.
리마의 시가지는 크게 페루 독립에 공을 세운 산 마르틴 장군을
기리는 구시가지 산 마르틴 광장(Plaza San Martin)과
신시가지 미라폴로네스(Miraflores)가 있다.
(사랑의 공원(Parque del Amor))
리마 젊은이들의 데이트 명소로 유명한 곳.
아모르 공원은 키스하는 연인 조각상이 상징이기도 하지만,
가우디가 설계한 스페인의 구엘 공원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여러가지 색의 타일로 모자이크한 의자까지.. 이름에 걸맞게
담 너머에는 아침인데도 실제로 키스하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시원하게 펼쳐진 태평양과 야자수까지
젊은이들과 여행객들이 많이 찾을 만한 곳.
(아리마스 광장(Plaza Mayor))
구 시가지인 리마 센트로는 리마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기억하는 지역이다. 1535년 수도를
리마로 옮긴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는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리마 시가지를 바둑판처럼 격자형으로 건설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유럽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페인 식민지 초기에
건축된 대통령궁을 비롯하여 대성당, 시청사 등. 스페인풍의 건축물들로
둘러싸인 모습에서 리마의 아픈 과거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르마스 광장과 그 주변부는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건축물로
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정오 대통령 궁에서 열리는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과 수도원)
아르마스 광장에 위치한 대성당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지만 비밀 지하 무덤인 카타콤으로 유명한 곳이다.
좌우로 대칭되는 탑과 정면에 조각되어 있는 성인상이 인상적이다.
실내는 여느 성당들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제단과 성상 등 각종
장식들이 내부를 꾸미고 있다. 수도원과 지하 카타콤은
입장료를 내고 가이드 안내를 받고 입장할 수 있다.
건물 안 어디에 이런 공간이 숨어 있었을까 할 정도로
수도원은 수많은 방과 아름다운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 내부에는 16세기 양피지로 만든 장서들을 비롯해 넓지한 회의장과
성가대실, 벽면을 장식한 초상화, 쿠이를 먹는 회후의 만찬 그림까지..
많은 고서와 가구, 그림들이 각 방에 보물처럼 보관되어 있다.
카타콤은 낮은 천장과 미로로 이루어진 지하 무덤으로 곳곳에
엄청난 양의 해골과 뼈들을 쌓아 놓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듯한 산비탈의 집들..)
(낯선 모습들이 걸음을 이끈다)
(세비체(Seviche))
해산물을 듬성듬성 잘라 레몬즙이나 라임즙에
재운 후 차갑게 먹는 중남미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
페루에 오면 꼭 먹어 보고 싶은 음식중 하나였는데 제일 먼저
맛보게 되었다. 맛있다. 일단은 싱싱한데 회보다는 두툼하여
비감(肥甘)이 느껴지고 상큼하여 좋다.
세비체를 제일 맛있게 먹었다.
(피스코에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오후에 피스코로 가서 하루 밤을 보내고
내일 새들의 천국 작은 갈라파고스 '바예스타 섬'에 갔다가
다시 이카의 와카치나 사막으로 가서 버기카와 샌드보드를
타면서 사막체험을 하고 다시 리마로 돌아 오는 일정.
(피스코 가는 길의 풍경)
리마에서 피스코로 가는 길은 오른쪽에 해안을 끼고
달리지만 끝없는 사막이다. 바로 옆이 태평양인데 이 일대는
안개가 자주 끼어도 비가 오지 않는 기후여서 사막이 되었다.
하루 종일 사막을 사막답게 달구었을 붉은 불덩어리,
피스코 가는 길의 일몰까지 멋있다.
(피스코 첫인상.. 좋다)
도착하니 밤이다, 민생고도 해결할 겸 시가지를
구경하려 카메라를 챙겨 숙소를 나섰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피스코 사람들.. 코리언이라고 하니까 환호하며 반긴다.
환영해 주니 기분이 좋다. 그라시아스!
피스코(Pisco) ☞ 사진 클릭
리마에서 버스로 약 4시간 거리에 있는 피스코는
페루 이카 주 북서부의 태평양 연안의 항만도시로 페루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연 그대로의 해상을 자랑하는 파라카스 국립공원
가까운 곳에 있다. 파라카스 문화를 키운 인구 5만 6000명의 도시
파라카스의 바예스타 섬을 가기위해 경유하는 곳이기도 하고
피스코술의 산지라고도 한다.
(피스코에서 묵은 호스텔..)
먹는 것, 자는 것, 걷는 것에 거리끼거나 얽매임이
없으니 여행에 대한 부담은 적다. 이번 여행은 숙소와 음식이
불편할 것이라 했는데 도시보다 호스텔은 깨끗했다.
아침까지 해결되는데 호스텔이면 어때..
(바예스타 섬으로 가는 들머리 파라카스 항)
페루의 주요 어항 가운데 한 곳이라지만,
어항의 역할보다 바예스타섬 가는 관광객들로
더 붐비는 것 같다
(보트를 타고 바예스타 섬으로)
항구에서 바예스타스 섬까지는 19㎞, 스피드 보트로 30분 정도
걸린다. 오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이 장관이다.
(피스코의 촛대, 깐델라브로(Candelabro))
바예스타 섬으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파라카스 시대의
지상화 촛대그림은 파라카스 섬에 그려져 있는 문양으로
나스카 라인에 빗대 '작은 나스카'라 불린다고.. 세로 180m, 가로 70m,
폭은 4m, 선의 깊이 30㎝ 정도. 주변에 유기물이 없어 탄소연대 측정도
할 수 없어 언제 만들어졌는지 과학적으로도 규명하기 어렵다는데..
다만, 나스카 라인이 있는 남쪽을 가리키고 있어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할 뿐..
언제, 누가, 어떻게, 왜 그렸을까?
(바예스타 섬으로 달려 가는 스피드 보트)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
하늘과 구분없는 파란 바다를 스피드 보트가 총알같이 달린다.
우리를 태운 스피드 보트도 새들의 낙원 바예스타 섬을 향해
물살을 가르며 신나게 달려간다.
이따금씩 돌고래들이 물고기를 쫓고,
페루비안 부비새들은 수면 가까이 떠오른 물고기떼를 공격하느라
날개를 접은 채 화살처럼 내리꽂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펠리컨들도 경쟁하듯 자맥질에 한창이다.
작은 갈라파고스 바예스타 섬(Isla Ballestas) ☞ 사진 클릭
피스코에서 남쪽으로 20㎞ 정도 떨어져 있는 파라카스 항'.
파라카스를 찾는 대부분 여행자들은 '새들의 낙원','물개섬',
'작은 갈라파고스' 등으로 불리는 바예스타 섬 관광을 하기 위해 찾는다
바예스타스 섬은 바다사자 등 포유류도 눈에 띄지만, 절대 다수는 새들이다.
섬에 서식하는 바닷새는 모두 60여 종. 페루비안 부비새와 가마우지 등이
우점종이고, 훔볼트 펭귄 등 진귀한 새들도 세들어 살고 있다.
100만 마리의 새가 한 자리에 모여 재잘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수 만 마리 바닷새가 동시에 섬 주변을 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곳.
그래서 바예스타 섬을 작은 갈라파고스라 하는듯...
(바예스타 섬에서 볼 수 있는 바다표범)
바예스타 섬에는 160여 종에 달하는 조류를 비롯해
바다표범, 물개, 펭귄 등이 살고 있다. 배가 가까이 다가가자
양지바른 곳에서 졸고 있던 바다표범은 왠 사람들이 와서
방해하느냐 하는듯 고개를 치켜든다.
(과연 새들의 낙원, 백만 마리의 새)
멀리서 보니 섬 상단부가 새까맣다. 자세히 보니
섬을 까맣게 덮고 있는 것은 전부 새다. 겨울 울산에 떼까마귀가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이며 날지만 이렇게 많은 새는 처음 본다.
이런 모습을 보면 철창에 갇혀 날지 못하는 새, 수조에서 사람들의
노리개가 된 돌고래들이 새삼 안스럽다는 생각이..
(새들의 낙원)
수많은 새들이 머리 위를 선회하고, 수면 위를 낮게 나는
새떼가 스치듯 지나갔다. 새들이 지나가면서 간간히 배설물 세례라는
특별한 형식으로 인사를 한다. 배설물을 맞으면서도 이 상황을 즐기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 하듯
여기서는 그들의 법을 따라야 한다.
(이제는 사막 가운데 오아시스 이카(와카치나)로..)
이카 가는 길의 풍경, 노새 타고 가는
촌부도 만나고, 클래식한 노란 버스도 만나고.. 사막을
가로질러 나 있는 길을 따라.. 때아닌 염천에 버스가 달린다.
서울은 엄동설한.. 피한을 와서 피서를 가야할 판..
(이카 가는 길에 들린 레스토랑)
휴게실이다. 이렇게 황량한 사막에 휴게실치고는 특급이다.
주스 한 잔으로 30분 쉼 값을 치렀다.
(모래 사막 속 오아시스 와카치나)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300m 높이의 모래 언덕이
마을을 덮치지는 않을까? 그럴까 봐 정말로 걱정되었다.
저 모래언덕이 무너내리지 않고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황량한 사막 속의 오아시스 이카(Ika) 와카치나(Huacachina) ☞ 사진 클릭
이카(Ika)시 외곽에 위치한 와카치나 오아시스.
오래전에는 인근에 7개의 오아시스가 있었으나, 오아시스의 물을
농업용수로 끌어다 쓰는 바람에 지금은 2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건조한 기후 탓에 오아시스가 계속 말라가고 있어 지방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물을 채워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고 한다. 현재는
50%만 용출수이고, 50%는 공급되는 물이라고 한다.
(빨간 버기카가 모래 언덕을 치오르고 있다)
가파른 모래언덕을 치오른 버기카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내려꽂힐듯 산 아래로 내달리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질주하는 차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은 순간의 연속이다.
스릴에 비명이 터지고 염천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애들 마냥 즐긴다.
(와카치나 사막, 사막이 아름답다)
카메라한테는 미안하지만 가져 가기로 했다.
모래바람을 등지고 셔트를 누르는 것마저 스릴있다.
샌드보드는 카메라 땜에 탈 수 없어도 카메라를 잘 가져갔다.
지구가 사막화 되어가는 것은 큰 일이지만..
황량한 사막도 아름다웠다.
(신나게 버기카를 타고, 샌드보드 타는 모습)
파라카스 인근에 자리 잡은 와카치나 사막 역시
매력적이다. 온 몸으로 모래 위를 미끄러지는 샌드보딩을 비롯해
놀이동산의 범퍼카를 연상시키는 사륜구동 버기카를 타고 사막을
질주하는 재미가 색다르다. 일행을 태운 버기카가 파도치는듯한
사막의 모래언덕 속으로 신나게 달리다 멈춘 곳은 아래가 까마득한 비탈.
이번엔 샌드보드다.. 잠시 주저하는 것 같더니 너도 나도 보드를 타고
비탈을 쏜살같이 내려간다. 아이들처럼 신났다.
(사막의 강자 버기카(buggy car))
사막의 롤러 코스터. 철제 빔으로 차체를 감싸고 있어서
달리다 어지간히 굴러도 크게 부서질 데가 없어 보인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버기카들..)
와카치나 사막에서의 버기카 투어는
한 번 해 봄직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직접 운전대를 잡고
질주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다시 리마로..)
이카에서 리마까지는 버스로 5시간 거리.
리마로 가는 버스는 최신식 대형버스. 실내에 화장실도 있고,
버스 안내원도 동승하여 빵과 음료를 들고 다니며 판매하기도 한다.
버스는 대형에 최신식이다. 좌석간 간격이 너무 좁다. 긴 다리는
불편하기가 말이 아니다. 앞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많은데..
그럼 버스 탈 때마다. 감수해야할 고통의 전조??
다 이러면 곤란한데.. 살짝 신경이 쓰인다.
(밤 10시 반경 숙소에 도착)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바다와 사막을 누빈데다
장거리 이동까지.. 피곤하여 버스를 타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자고 나니 리마. 참 바쁘게 보낸 하루였다.
(와~ 한글이다!)
리마를 돌아 보고 피스코, 이카를 거쳐
이제 세계의 배꼽 쿠스코로 가기 위해 리마 공항가는 길,
누군가 "와~ 한글이다!" 하는 순간 옆을 보니 눈에 익은 그림들..
63빌딩과 이순신 장군 동상, 그 뒤로 '나랏말싸미..'로 시작되는
훈민정음 언해본 문장이.. 우리나라 반대편에서 근래
천대받고 있는 한글을 보니 새삼스럽다.
(Wyndham Costa del Sol Lima Airport(윈드햄 코스타 델 솔 리마 에어포트)
이제 그렇게 고대했던 마추픽추가 있는
쿠스코로 간다. 첫선 보러가는 심정이랄까?
기대와 셀렘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까지..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궁하면 통하기도 하지만 에스파냐어를 할 줄 알면
더 세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늘에서 본 쿠스코)
그렇게 와 보고 싶었던 쿠스코가 눈 아래로 펼쳐진다.
(첫 인상부터가 범상치 않은..가이드)
여태 여행에서 만난 가이드중 제일 멋있는 분인듯..
쿠스코가 주는 분위기 때문일까 여유롭고, 설명은 늘 함축적이다.
시적이고 철학적이다. 궁금증에 대한 답은 고사하고 힌트도 없다.
오히려 생각할 꺼리만 던진다. 무엇하나 확실하게 규명된 것이 없는
잉카의 신비롭고 수수께끼같은 문화와 분위기가 흡사한 것 같다.
질박한 모습까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세계의 배꼽 쿠스꼬 ☞ 사진 클릭
우리가 '잉카', '잉카제국'이라고 하지만
'잉카제국'을 '타완틴수유'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16세기까지만 해도 타완틴수유는 동쪽으로는 아마존, 서쪽으로
태평양, 남쪽으로 칠레, 북으로는 에콰도르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나라였으며 그 중심에 쿠스코가 자리잡고 있었다.
'INCA'는 왕을 뜻하니까 '잉카제국'은 '왕의제국'이란 뜻이된다.
정복자들이 '타완틴수유'를 한 왕실의 나라로 폄하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마치 일본이 500년 이상 이어 온 조선을
'이씨조선(이조)'이라 하며 이씨가문의 역사로
축소시켜 폄하한 것 같이..
'타완틴수유'의 옛 수도이자 스페인군이 가장 먼저
정복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건설했던 쿠스코. 산으로 둘려싸인
해발 3300m의 고산도시. 지형상 자연적인 요새를 형성하고,
우루밤바 강이 흘러 비옥한 농경지가 있어 '타완틴수유'의
수도로 안성맞춤이었던 곳. 남미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마추픽추가 있는 도시인 쿠스코에서 희비가
엇갈렸던 옛 '타완틴수유'의 자취를 찾아 본다.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배꼽'을 의미한다.
(태양의 신전과 산토도밍고 교회)
신과 종교를 명분으로 내세워 파괴와 약탈을
서슴치 않았던 스페인 침략자들의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이 바로
'태양의 신전'을 파괴하고 세운 '산토 도밍고 교회'라고 할 수 있다.
피사로와 스페인 군대가 처음 쿠스코에 왔을 때 태양이 반사되어
빛나는 황금의 신전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곧 신전의 안팎을 장식하고 있던 황금을 모두 약탈하고 신전을
부순 자리에 세운 것이 바로 '산토 도밍고 교회'로
희비가 엇갈린 두 문명의 흔적이다.
(Gold Shield, Star Map이라고도 하는데..)
현지인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기는 하지만..
스페인어라 알아듣기 어렵다. 그림을 살펴보면 제일 상단에
오리온 자리 리겔과 베텔게우스, 그 아래로 왼쪽 중상부분이 태양신,
오른쪽이 지구 신, 가운데 신들의 공간, 그 아래로 혜성, 은하수, 일곱별,
황소자리, 행성 등 별자리, 오른쪽에 구름, 퓨마, 지구 등이 그려져 있다.
신들의 공간과 지구 영역이 양쪽으로 나누어져 있다.
중앙 아래 쪽에 있는 남자와 여자가 마주 보고 있고
중앙 하단의 격자 모양은 COLLCAMPATA(ALMACENES)라고
주기가 달렸는데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
이게 무슨 용도? 방패는 아닌 것 같고...
(볼 수록 감탄!!)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노래 했는데..
여기서는 자세히 보면 감탄스럽고
오래 보면 혼란스럽다.
모서리 돌은 'ㄱ'자로 다듬었다.
여기는 또 제일 작은 돌.. 앙징맞다.
그러나 그냥 끼워 넣은 것이 아니다.
무엇을 의미할까?
(쿠스코 시내 곳곳에는..)
화려한 색상의 전통복장을 한 여인들이
뜨게질을 하고 있고, 라마도 심심찮게 보인다.
쿠스코의 색다른 모습이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화려한 전통복장 판쵸를 걸친 연주자들이
전통음악으로 흥을 돋구고, 뒤질세라 전통복장을 한 종업원이
코카차를 따뤄주니 분위기가 고조된다. El Condor Pasa,
El Eco.. 여기서 들으니 실감난다.
페루의 전통의상들은 주로 화려한 색채와 안데스의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의상은 산악지역으로 갈수록 화려한 원색계열의 색채를 사용하고
재료는 알파카의 털이나 모직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페루의 대표적인 전통의상은 판쵸. 판쵸는 상반신부터 무릎까지
감싸는 망또 같은 옷인데 모포 가운데 구멍을 낸 형태로 뒤집어
쓰면 겉옷이 되고, 벗어서 모포로 이용한다고 한다.
(부에노스 따르떼스!)
웃으며 인사하는데 누가 싫어 하겠는가?
좁은 띠에 무늬를 넣는 모습이 손놀림도 빠르고 신기하여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 웃으며 '원더풀'하며 관심을 보였더니..
호감을 보이며 굳은 살이 박혀 있는 손을 보여준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돌담)
타완틴수유(잉카)의 발달된 여러 문명과 기술 중에서도
정교한 건축솜씨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를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잘 나타내 주는 것이 잉카의 돌담이다. 조그마한 틈새도 없이
아귀를 맞추어 촘촘히 쌓아 올린 벽은 수백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큰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니
정말 견고한 건축물이다.
크기와 모양의 서로 다른 돌들을 쌓으면서도
틈새을 정확하게 맞추어 쌓은 형태가 정말 튼튼해 보인다.
6각, 8각, 10각 등 바위가 생긴 모양대로 각을 맞추어 쌓은
아름다운 돌담에다 돌을 깔아 조성한 길 위를 걷노라면
도시 전체가 귀중한 유적지라는 것이 실감난다.
돌담에서 가장 많은 각으로 여러 돌들과 잇대어
있는 돌이 바로 그 유명한 12각돌이다.
(저녁 먹을 식당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메뉴판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해 놓으면 음식 고르는데
도움이 될텐데. 음식도 생소한데다 음식이름을 모르니..
몇 집 돌다가 한 곳을 찍고 들어갔다.
(삭사이와만(Saksaywaman)의 원래 모습은 어땠을까?)
쿠스코의 북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타완틴수유(잉카)의
성채로 알려진 삭사이와만이 있다. 각기 다른 모양의 거대한
돌이 조화롭게 쌓인 모습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외계인의 작품'아닐까 할 때.. "그럴리가' 했는데
이 현장에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으니 나 역시 그런 생각이..
현재 삭사이와만은 24% 정도 복원된 모습으로 형태만 남아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이곳의 돌을 가져다 쿠스코 시내에 교회와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더 이상 복원은 어려울듯..
(어떻게 이동하고, 자르고 다듬었을까?)
철을 다루지 못했던 타완틴수인들은 어떻게
저 무겁고 단단한 돌을 무 깍두기 자르듯 절단하고 다듬어서
종잇장 한 장 들어갈 틈이 없도록 정교하게 원하는 대로 쌓았을까?
더군다나 성벽을 쌓은 돌들은 다른 곳의 채석장에서 운반해
온 것이라는데 어떻게 저 큰 돌들을 옮겨 왔을까?
스페인군에게 살해당한 타완틴수유 황제의 동생이 이끄는
병사 2만여 명과 스페인군이 삭사이와만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스페인군은 신식무기와 기동력을 갖춘데다 타완틴수유인들의 해가
진 뒤에 전투하는 것은 태양신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신앙심으로 인하여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군이 영국군에게 기사도를 발휘한 것처럼)
야간전투를 피하는 바람에 스페인군에게 궤멸당해
삭사이와만 언덕에는 수많은 잉카병사들의 시체와
독수리 떼로 뒤덮였었다고 전한다.
(땀보마차이(Tambomachay))
티켓 한 장에 쿠스꼬 지역 유적지 삭사이와만,
켄코, 푸카푸카라, 탐보마차이가 다 들어 있다.
삭사이와만과 제례장 겐코를 거쳐 들린 땀보마차이는 우기나
건기에도 항상 같은 양의 물이 흐르고 있어 목욕탕이었던 곳으로
추정하는 곳. 수원을 찾기 위해 강과 인근 연못에 색소를
풀어 보기도 했으나 수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 녀석 카메라를 들이대니..)
고개를 쭉 빼며 포즈를 취한다. 한 두번 해 본 모습같지 않다.
옆에 전통복장을 한 페루 원주민이 있으면 모델료를 내야 하는데
안 보인다. 그런데 저 목을 조이고 있는 목줄은..
(성스러운 계곡)
피삭에서 부터 오얀타이땀보, 우루밤바,
아구아스 갈리엔테 등을 거쳐 마추픽추까지 연결되는
계곡을 성스러운 계곡이라 부른다. 쿠스코보다 해발고도가
500m ~ 600m나 낮아 기후가 따뜻하고 온화하다고 한다.
피삭과 오얀타이땀보는 중요한 군사 전략지 중에
하나였으며, 후에 잉카족이 에스파냐인들과
결전을 벌린 장소이기도 하다.
(피삭의 계단식 밭)
높은 산을 구비구비 돌아 차가 갈 수 있는 데까지
오르면 그 이후부터는 온전히 도보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높은 신분의 사람만이 오를 수 있었다는 좁고 험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추픽추의 축소판이라 일컬어지는 피삭의 유적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 한쪽의 3분의 1이상을 계단식 밭으로
개간해 놓은 것을 시작으로 정교한 성벽과 요새,
신전 등이 남아 있다.
(페루에서.. 음식이 늦게 나와 독촉까지 하고..)
차에서 내리니 찬 기운이 스친다. 껴입을 옷을
가지러 차에 갔다 온 사이 젊은 선생님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맛집을 미리 공부하고 온 모양이던데..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다가 한 집에 들어 가니 교수님 가족,
송선생님과 원장님이 먼저 식사중이시다. 뭘 먹을까?
아직도 음식 고르기가 쉽지않다.
(음식을 재촉한 덕분에..)
식사를 빨리 끝내고 재래시장에 과일 사러 갔더니
그 사이 문을 닫았다. 과일을 사 가지고 저녁 먹으러 갈껄..
시간이 여유가 있어 광장을 둘러 본다.
오늘 축제에 참여했던 사람들 같다.
(막차인데 열차는 갈 생각을 않고..)
피삭에서 오얀따이땀보까지는 버스로 이동하였지만
여기서 도로가 끝나기 때문에 아구아스 갈리엔테까지는 열차로
이동하여야 한다. 소요시간은 1시간 반. 막차를 예매한 바람에
정상적으로 가도 밤 숙소에는 밤 11시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열차는 갈 생각을 않는다. 1시간 넘게 연착하는 바람에
숙소에 도착했을 시간에 겨우 출발. 하긴 계획한 대로만
다닐 수 있으면 그건 여행이 아니지..
(자정이 넘어 호텔에 투숙)
와이나픽추를 올라야 할 우리만 새벽에 먼저
출발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마추픽추팀과 함께 출발하여
와이나픽추 올랐다가 마추픽추를 자유롭게 볼 수 있으니
아침시간도 벌고 부담도 없어 좋다.
(이 정도일줄은 몰랐는데..)
어젯밤 오는 길 어둠 속에서도 열차가 협곡을
달리고 있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아구아스 갈리엔테는 완전 협곡에 있었다. 새벽에 비가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계곡에 물 내려 가는 소리에 깨었다. 여기까지
와서 마추픽추도 못 가는 것 아닌가 했는데 구름이 걷히면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협곡 속에서 보는
손바닥만 하늘이지만..
(셔틀버스를 타기위해 늘어선 줄)
7시에 갔는데.. 마추픽추를 가기위해 셔틀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셔틀버스가 아침 6시반부터 시도 때도 없이
사람만 차면 출발하는데도 줄은 계속 이어진다.
아구아스 갈리엔테 ☞ 사진 클릭
마추픽추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잉카 트레일을 따라 꼬박 나흘을 걷거나, 우루밤바강을 따라
마추픽추 마을인 아구아스 갈리엔테(2050m)까지 기차로 간 다음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잉카트레일이 시작하는
자동차 도로는 피사쿠초에서 끝난다.
(아마존 강의 최상류 우루밤바 강)
우루밤바 강이 흐르는 협곡을 따라 낸 좁은 도로로
셔틀버스가 다닌다. 마추픽추로 가는 동안 구름이 산 중턱에 걸려
요동치고 있다. 하늘은 높은 산에 가린데다 구름까지 가리고 있어
손바닥만한 하늘은 보였다 숨었다 숨박꼭질하듯 한다.
타완틴수유인들의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 ☞ 사진 클릭
마추픽추를 가장 절절히 표현하는 말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하지만 본다고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고,
보면 볼 수록 신비로움만 더 해가는 불가사이한 현상.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현실.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오두막 전망대에서)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가득한 시간을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는 타완틴수유(잉카)인이 건설한 도시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유적. 인티우아타나를 비롯하여
태양의 신전, 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관개 수로 시설에 관한 자료는 ,
물론이고 언제, 누가 건설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마추픽추에
관하여 알고 있는 지식들은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수수께끼로 가득한 마추픽추는 당분간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할 유적지로 남아 있을 것 같다.
(태양의 신전)
태양의 신전은 마추픽추 유적지에 있는 200여 개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독특한 모양이다. 커다란 바위 위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돌을 쌓은 탑 모습으로, 태양의 신전에는
2개의 창문이 있다. 동남쪽 창문은 동짓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창문을 통과하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은 태양의 후예라는 사실을
커다란 자랑으로 여겼던 타완틴수유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였을 것 같다.
(광장 한 켠에서 독야청청하는 사시나무)
(이제 와이나픽추로..)
와이나픽추는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위험해서
출입시간과 인원통제를 엄격하게 하는 것 같다. 입산은
사전에 예약된 시간에 따라 오전 7시와 10시에 각각 200명씩
게이트로 통과 시키고 14:00까지는 전원이 돌아 오게 하고 있다.
우리는 10시 출입 예정이어서 오두막 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서둘러 반대편 와이나픽추 출입구까지 와서 기다리다
통제소에서 제일 먼저 사인하고 통과했다.
(와이나픽추(2750m)에서 내려 다 본 마추픽추)
장관이다. 거대한 바위산들에 둘러싸인 마추픽추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추픽추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 바로 이곳.
마추픽추는 페루 원주민의 언어인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
와이나픽추는 '젊은 봉우리'란 뜻이다.
와이나픽추에 오르길 잘 했다. 아니 신청하기 잘했다.
마추픽추는 하루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이 2,400명으로 제한되어 있고
와이나픽추는 올라 갈 수 있는 인원이 400명, 하루 두 차례 200명씩만
오를 수 있도록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 사전에 신청을 해야 가능하다.
정상적으로 신청이 되었지만, 우리가 가기 며칠 전 내린 큰 비로
와이나픽추 출입이 통제되었다고 하여 가슴 졸이기도 했는데
다행히 오를 수 있었다. 일행중 4명이 신청하였는데
착오가 있었는지 박선생님은 오르지 못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현실)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누가? 왜? 이런 곳에 이런 건축물을?..
이 당시 아직 철기시대도 아니었다는데
어떻게.. 생각은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보는 것은 경탄스럽지만
생각은 온갖 상상만 난무
(무슨 작물을 경작했을까?)
가파른 산을 깎아 만든 계단식 경작지는
마추픽추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건축물이 세워진 지역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만들어 놓은
비탈의 경작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이 계단식 경작지에서는 옥수수, 감자, 마약의 일종인
코카를 재배했던 것으로 추측할뿐 전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마추픽추가 한 눈에 들어오는 포인트에서)
마추픽추, 마추픽추가 특별한 것은
1911년 미국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1875∼1956)이
마추픽추에 오르기 전까지 페루 정부도 마추픽추의 존재를 몰랐고,
300여 년 페루를 통치하는 동안 잉카 문명 대부분을 초토화시켰던
스페인도 600년쯤 전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는 이 산중도시는 발견하지
못했다. 마추픽추 유적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이럼 빙엄에 의해 마추픽추가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는 마추픽추에서
5,000점이 넘는 유물을 빼간 뒤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
사진 속의 마추픽추보다 눈 앞의 모습이 더 비현실적이었다.
2,450m 산 정상에 축구장 크기의 고대 도시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현실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하나의
세상이 끝난다. 하여 마추픽추는 세상의 끝이었다.
세상의 끝에 걸려있는 비밀한 도시였다.
(잉카 브리지..)
그냥 조그만 나무다리. 하지만 엄청난 암벽에
돌을 쌓아 길을 만들고 중간에 나무로 연결해 놓았는데
유사시 걸쳐놓은 나무만 치우면 다리가 끊겨 마추픽추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차단되게 되어 있었다.
잉카 브리지는 와이나픽추 반대편 마추픽추 상단부분을
지나 5분 정도 오르면 나오는 체크포인트에서 이름과 나이, 성별, 국적,
출입하는 시간, 서명을 해야 출입시킨다. 잉카브리지는 체크 포인트에서
20분도 채 안 걸리는 비교적 짧은 거리에 있지만 가는 길이 위험하여
나가는 인원과 들어 오는 인원을 체크하는 것. 물론 나올 때도
체크포인트를 통과하는 시간을 기록하고 서명해야 한다.
(하이킹 코스로 걸어 내려가는 사람들)
걸어서 올라 오지는 못했지만,
걸어서 내려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만류도 만류였지만.., 마추픽추에 오래 머무는 바람에
저녁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서 할 수 없이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다행히 제일 앞자리에 앉아 전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셔틀버스를 이용할 경우.. 제일 앞자리에 앉거나,
오를 때는 왼쪽 창가에 앉아야 조망이 좋다.
(아르마스 광장)
저녁 먹으러 가면서 지나간 아르마스 광장.
조그만 시골 마을이지만 중앙광장은 번화가였다.
저녁을 먹고 아르마스 광장 구경을 하려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아르마스광장 구경을 접어야 했다.
날씨 치고는.. 정말 변덕스러웠다.
(악기점)
께나, 삼뽀냐(Zampona), 만도린, 봄보 등
잉카 전통악기들뿐만 아니라 전통음악 CD까지..
종류도 많다.
(새벽 일찍 잉카레일로 다시 자동차 도로가 있는 오얀따이땀보로..)
새벽, 5시 반차다.
이번엔 제 시간에 출발했다.
마추픽추 마을에서 2박을 했지만 첫날은 자정 넘어서
숙소에 도착했고 마지막 날은 새벽 5시에 숙소를 나왔다.
마추픽추 포함 채 30시간도 머무르지 못한 것 같다.
하긴, 오얀따이땀보에서 아침 차로 왔다가
저녁 차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더니..
다음에 갈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나도 무조건 오얀따이땀보에서 출발이다.
잉카 트레일로..
(지붕에 난 파노라마 돔으로 하늘이 훤히 보인다)
깎아 지른듯한 협곡사이로 아찔한 모습으로 달리는
진청색의 잉카레일.. 지나는 동안 지붕의 파노라마 돔으로
보이는 고산 설산이 장관이다.
페루레일은 객실이 3칸.
가는 도중 차와 과자, 빵도 제공한다.
(오얀따이땀보 역)
늦은 밤 진청색 페루레일을 타고 떠났다가
3일만에 다시 찾은 오얀따이땀보 역
(본의 아니게 오렌지 주스 한 잔!)
오렌지 껍질 벗기는 모습이 꼭 곶감만들 때
감 껍질 깍는 모습과 비슷하여 카메라를 갖다 댔더니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사줬더니
이제는 포즈를 취해준다. 사람이 들어간 색다른 모습을
찍으려면 동전을 준비하고 다녀야 한다.
(안데스 전통의상 챠오를 두른 원주민들..)
(원룸, 집안에 해골까지 모셔놓고..)
원주민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잠깐 엿볼 수 있었다.
한 방에 꾸이로 부르는 기니피그도 같이 거처를 하고
가족들 해골도 모셔져 있고, 라마 박제도 있고..
하여간.. 색다른 모습..
(전통 복장의 이 소녀는..)
우리가 다가가자 골목 모퉁이에 서 있던
전통복장의 소녀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토속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 감상했으니 감상료. 사진 찍은
사람은 모델료.. 당연히 지불해야 되겠죠.
(이 거대한 판석의 정체는?)
계단식밭을 끝까지 올라가면
돌담이 둘러진 광장이 나오며 그 가운데에
높이 4m 넓이 10m가 넘는 6개의 거대한 돌들이
얇은 돌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 거대한 판석이 신전의 일부라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고 한다.
어디 타완틴수유인들은 글을 남기지 않았다지만
어느 깊숙한 동굴에서 고문서라도 한 뭉치 찾아야
가는 곳 마다 나타나는 수수께끼들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의 석축은?)
복원한 것일까? 복원한 것 같지는 않은데
지금까지 쿠스코에서 봐왔던 석축의 모습과
다른 모습이다. 왼쪽 윗부분은 전통적인 방법이나
나머지 부분들은 큰 돌 사이에 작은 돌들로
틈을 메운 형태다. 특이하다.
오얀따이땀보 ☞ 사진 클릭
쿠스코에서 마추픽추 가는 중간 지점
성스런 계곡에 위치하고 있어 중요한 요충지로 요새가 있다.
(전통 모자를 쓴 원주민 여인들이)
길거리 뙤약볕에서 뜨게질을 하면서
만든 물건을 팔고 있다.
(점심을 먹은 Agusto 호텔)
점심 먹으러 간 우루밤바 Agusto 호텔은
깨끗하고 정원도 예쁘게 잘 꾸며 놓았다. 이런 곳에 이 정도의
호텔이 있나 할 정도로.. 정선생님의 능력으로 점심을 안 하는
이 고급호텔을 전세내어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엉뚱한 음식이 나오기도 했지만 기분좋은 경험..
바쁘게 왔다 가기에는 아쉬울 것 같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하루쯤 묵었다 가고 싶은 호텔이다.
우루밤바 ☞ 사진 클릭
염전으로 가는 길은 해발 5,400m의 설산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우루밤바 고원을 지난다.
고원을 지나는 길은 아름다운 길로 가이드 정선생님의
사진작가 친구와 하루종일 걸었던 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대관령과 분위기가 비슷하기도 하지만 설산과
구름이 연출하는 고산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흙색도 고동색에 가까운 황토다.
(이런 길은 하루 종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뒤로 보이는 안데스 산군들..)
저 뒤에 보이는 산이 Pumahuanca(5330m)인듯..
근처에 Chicon(5,530m), 우측으로 Conque Cruz(5,818m),
페루레일로 이동하는 동안 투명한 천장으로 보였던 설산은
Salkantay(6,270m).. 완전 고산군이다. 현재 위치가
3,500m가 넘는다. 안데스 산군이다.
(아 살리네라스 염전)
해발 3,000m가 넘는 이 곳에 염전이 있다는 그 자체도
신기하지만 이런 고산지대에 소금물이 흐른다는 것을 발견하고
산비탈에 염전 연못을 만들고 실핏줄 같이 수로를 연결하여
소금을 생산한 고대인들의 지혜가 참으로 놀라웠다.
사진으로 많이 알려져 낯설지는 않은 모습이나
실물이 훨씬 멋지고 감동적인 곳이었다. 어떤 곳은
실물을 보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이곳을 비롯하여
페루에서 만나는 모습들은 기대 이상이다.
(물 만난 고기마냥 헤집고 다녔다)
독특한 형태와 색감이 어우러진 살리네라스 염전.
고소증을 우려하며 천천히 다니라고 했지만 이 좋은
소재를 두고 어찌.. 마구 헤집고 다녔다.
살리네라스 ☞ 사진 클릭
해발 3,000m 산속에 위치한 염전 살리네라스.
타완틴수유의 수도였던 쿠스코에서 약 50km 정도 떨어진 이곳은
해발 3,000m의 거대한 언덕 비탈에 다랑이밭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염전이 인상적인 곳인데 타완틴수유 이전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곳이라니 가히 타완틴수유인들의 고된 땀과 노동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실핏줄같이 연결되어 있는 수로)
오래전 바다였던 이곳이 융기하면서 이런 지형이 생겨났는데
지하에서 조금씩 뿜어져 나오는 짠 소금물을 시핏줄 같은 통로를
통해 약 2,000여 개의 염전에 서서히 공급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건기에는 약 한 달 정도 물을 가둬놓으면 점점 투명한
하얀색의 소금이 생성되는데 이때 염전당
700kg의 소금이 생산된다고 한다.
(해발 3000m가 넘는 곳에 이렇게 정취있는 길이..)
(마라스를 거쳐 모라이로..)
(저 아래 무엇이 있길래..)
잉카인들이 농업기술을 연구하던 모라이의 원형 계단식 밭 ☞ 사진 클릭
타완틴수유인들은 특유의 석조기술을 이용해
급경사에 원형의 계단식 논을 만들었다. 동심원 형태의 계단식 밭은
점점 작아지면서 아래로 내려간다. 모두 24개 층으로 구성됐다.
일반적으로 고도 100m 올라갈 때 기온은 약 0.65도 낮아 지는데
모라이는 맨 아래 밭과 맨 위 밭의 높이 차가 140m 정도 인데도
온도는 5도나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만큼 기온변화가 심하다는
것인데 이런 지형적인 비밀을 어떻게 알아 냈을까?
우연이 아니라면 누가 알려줬을까? 볼수록 파고들수록
궁금증을 더해가는 타완틴수유인들의 신비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산악 바이크를 몰고 모라이에 온 청년들..)
(다시 고산 마을 마라스를 지나..)
(Cesar Acuna Peralta 선거 홍보 벽보)
후지모리-톨레도-Ollanta Humala- ??
아마 올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듯..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아쿠나 진보연합 후보군요.
리베르 타드 주지사 출신, 대충.. 그 정도. 벽보가 벽에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가는 도중 많이 보였다.
(다시찾은 쿠스코, 산 페드로 시장풍경)
쿠스코로 돌아왔다. 오후 6시에 문을 닫는
전통시장.. 그저께는 늦어서 들어가지 못했는데
오늘은 간신히 6시 전에 도착하여 시장을 둘러
볼 수 있었는데.. 파장분위기..
(쿠스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쿠스코의 밤 공기가 차기도 했지만
그저께 와카치나에서 수영을 하고 난 다음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다.
(페루를 떠나 볼리비아로..)
지구로 여행 오는 외계인이라면 아마도 페루를 가장 먼저 찾지 않을까?
2/4 볼리비아 ☞ 사진 클릭
3/4 칠레 ☞ 사진 클릭
4/4 아르헨티나 ☞ 사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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