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브라 궁전, 그라나다에 피운 이슬람 문화의 꽃

2015. 12. 18. 13:30여행/여행기

 
 

 
알람브라 궁전, 그라나다에 피운 이슬람 문화의 꽃
(그라나다에서 눈이 머는 것보다 참혹한 것은 없다)





아랍과 유럽 문화가 공존하는 에스파냐.
그 중에서도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코르도바, 세비야,
말라가, 우엘바, 알메리아 등 각각 독특한 문화를 가진 지역이 많다.
안달루시아 자치지방의 그라나다州 주도인 그라나다는 서유럽에
아랍 문화의 꽃을 피운 최고의 도시로 꼽는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은 꽃 중의 꽃이고, 구시가지 알바이신 지역은
아랍 문화의 아름다움과 신비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붉은 성'을 뜻하는 알람브라 궁전은 만년설을 머리에 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작은 언덕 위에 솟아 있다.
알람브라 궁전은 여러 시대에 걸쳐 건축되었지만 대부분은 이베리아 반도의
최후의 무어인 무슬림 왕조였던 나시르 조(Nadsrid Dynasty 1238~1492)에 지어졌다.
'중세 이슬람 문화의 결정체', '이슬람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찬사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유럽의 다른 궁전들처럼 거대함이나
휘황찬란한 보석장식, 유명한 그림장식 등으로 화려함을 뽐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특히, 우상숭배를 금지한 이슬람 교리에 따라
내부 장식을 식물과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만 구성하였기 때문에
소박하지만 환상적인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그라나다에서 눈이 머는 것보다 참혹한 것은 없다"
-스페인의 시인 프란시스코 데 이카자(Francisco de Icaza)-
알람브라 궁전을 두고 한 말이었으리라.





(그라나다 가는 길, 보이는 나무라곤 올리브 나무뿐..)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보는 창밖 풍경. 끝도없는 올리브 농장이 펼쳐진다.
멀리 지평선 끝 야산 꼭대기까지 올리브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다.
스페인이 포도주 생산을 제일 많이 하면서도 와인으로 돈을
챙기는 것은 프랑스이듯 올리브유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한다.
스페인은 세계 최대 올리브유 생산 국가이나 전체의 40%가 이탈리아로
수출되는데 이렇게 수출된 올리브유는 이탈리아에서 병갈이를 하여
이탈리아산 올리브유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올리브 최대 생산국 스페인이 뜨겁고
건조한 날씨로 생산이 평상시의 절반으로 줄어 들었고
2위 생산국인 이탈리아도 비가 자주 내리고 초파리까지 
설쳐 올리브 작황이 좋지 않았다고 하니
 올리브유 가격이 폭등하지는 않을지..







(그라나다에서 하루를 묵은 호텔)

자동차 연료는 우리보다 조금 비싼듯..









(그라나다는 해발 738m에 위치한 고대도시)

스페인어로 눈덮힌 산맥이라는 의미를 가진 험준한 산악지역인
시에라 네바다(Sierra Navada) 산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그라나다는,
과달키비르 江의 지류인 베이로(Beiro) 강, 제닐(Genil 강), 다로(Darro) 강이
합류하는 지점, 해발 738m의 고지대에 위치하는 고대도시. 도시 외곽으로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인구는 약 24만 명. 스페인에서 13번째 큰 도시.
남서쪽이 지브롤터 해협에서 약 200km, 코르도바에서 동남쪽 130km,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350km 떨어져 있다.

이슬람교도들의 마지막 거점이기도 했던 그라나다
711년 경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해 왔던 이슬람 세력은
후우마이야 왕조가 몰락한 후에 군소왕국으로 분열하는데, 군소왕국들의
내분으로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기독교 세력들이 이슬람 통치지역들을
하나 둘씩 점령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1238년 나사이레 가의 알 아마르는
그라나다에 이슬람 왕국인 나스르 왕조를 세웠다.
그 후 1492년 기독교도의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가 완료될 때까지
250여 년간 그라나다는 이슬람교도들의 마지막 거점이 되어 번성하게 된다.
그라나다 카데드랄(대성당)에는 레콩키스타 이후 스페인 통일을 이룬
이자벨 여왕과 그녀의 남편 페르난도 왕이 함께 잠들어 있다.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세력을 축출함으로 스페인 통일을 이룬
연유로 그라나다에 묻힐 것을 희망하지 않았을까?











(식생이 한국과 비슷하다)

호텔주위에 심겨 있는 나무들..
자귀나무, 무궁화, 측백나무, 석류나무.. 등 낯설지 않다.







(알람브라 궁전 건축순서 & 알람브라 궁전 모습. 바로 위 사진 ☜ 클릭)

스페인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도시 그라나다.
800년간 찬란하게 꽃피웠던 이슬람 문화와 꾸밈없고 성실한
가톨릭 문화가 융화되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알람브라 궁전. 집시 동굴마을인 시크로몬테,
언덕위의 하얀 동네 알바이신 등 매력 넘치는 볼거리가 풍부하여
안달루시아 지역의 보석이라 불릴만하다.

이슬람 왕조 그라나다의 이븐 알 아미르 왕자는
나사리 왕조를 세우고, 도시 방어를 위한 요새로써 알람브라 궁전을
새롭게 쌓는다. 궁전의 이름인 알람브라는‘알칼라 탈람브라’에서 온 것으로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 궁전(La Alhambra)의 성벽은 2km이고
길이가 740m, 넓이가 220㎡에 달하는 마지막 무슬림의 섬광과도 같이
그들의 혼이 절정을 이룬 건축물이다. 나사리 왕조의 번영기였던 14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주로 세 개의 정원, 즉 맞추카의 정원, 코마레스의 정원,
그리고 라이온의 정원을 기본 축으로 하여 설계된 정원 형식의 건축물이다.
내부는 왕궁, 카를로스 5세의 궁전, 헤네라리페 정원,
알 카사바(성채)로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왕국인 나사리 왕조의 보아브딜 왕은
스페인 국민의 국토 회복 운동에 굴복하여 평화적으로 알람브라 궁전을
가톨릭 왕에게 건네주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때가 1492년 1월 2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이기도 하다. 이로써 스페인은
1238년부터 시작된 약 8세기 동안의 이슬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가톨릭을 국교로 하는 근대 스페인이 탄생한 것이다.





(사이프러스 나무 숲길을 걷는다. 상쾌하다)













(헤네랄리페 저층 정원)

'천국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직사각형의
긴 연못과 분수주위에 잘 가꾼 사이프러스 나무와 장미,
빈센트 반 고호가 생각나는 사이프러스 나무로 미로같이
아름답게 꾸며놓은 정원이다.





(알람브라 궁전이 숲속에 숨겨져 있는데..)

궁전 안뜰도 숲이다. 나무들을 잘 조경해 놓았다.











(아세키아 중정과 정원의 분수)

 왕의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천국의 정원)에 있는 아세키아 중정.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개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건축 당시의
시설이 많이 변형되었다고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앞쪽에
아치형으로 물을 뿜는 분수와 아담한 정원을 볼 수 있다.

물이 귀한 땅 중동에서 살아온 이슬람교도들의
오아시스에 대한 열망인지 궁전 곳곳에 연못과 분수를 만들어 놓았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카레가'는 아세키아 중정의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영감을 얻어 '알람브라의 추억'이라는
불후의 기타 명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미로같은 길을 돌아 나간다.)

파르탈 궁전 뒷쪽으로 구시가지 알바이신 지구가 조망된다.





(궁전 구석구석으로 연결되어 있는 수로)

궁전 구석구석을 우리 몸의 혈관의 피같이 돌고 있는 물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물을 지하 깊숙한 곳으로 비밀통로를 만들어
궁전 안으로 끌어들여 물줄기를 연결시켰다고 한다.











(헤네랄리페에서 보는 모습)

산타 마리아 성당과 멀리 벨라의 탑이 보인다.
키 큰 사이프러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건물의 외관은 그렇게
특이하게 보이지 않는다. '붉은 성'이란 뜻의 알람브라 궁전의
성곽은 세월의 흔적인지 오히려 황토색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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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너머의 알바이산 지구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일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내로 들어오자 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궁전 내 건축물의 외관은 특별히 화려한 것 같지 않은데
실내에 조각된 장식은 과히 충격적.. 눈을 의심하게 했다.
그러나 이것도 전조에 불과했으니..













(나사리 궁전, 멕수아르 방 벽면.. 경이롭기만 하다!)

나사리 궁전은 유수프 1세때 짓기 시작해
무하마드 5세가 완성한 것으로 알람브라의 핵심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볼 수록 정교하고 신비한 모습에 매료된다.
아! 정말 경이롭다, 경이롭다는 말밖에는 할말을 못찾겠다.

무어 인 출신의 시인들은 궁전을
"에메랄드 속의 진주"라고 표현했다.
건물의 반짝이는 광채와
고급스러운 배경 때문이겠지.







(코마레스 궁 아라야네스 중정(Court of the Myrtles))

알람브라궁전에서 가장 뛰어난 중정(中庭)으로
손꼽히는 아라야네스의 안뜰은 정확한 대칭구조를 이루는
건물 중앙에 직사각형의 연못이 있고 연못 양옆으로
아라야네스(천국의 꽃)가 심어져 있다. 카메라로
찍기만 하면 작품이 된다는 곳이다.

회교 건축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공간의 이용,
곧 자연과의 조화인데 특히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는
물과 그림자의 조화는 놀랍다. 이 아라야네스의 파티오에는
큰 직사각형의 연못이 있고, 그 녹색 수면 위로 반영되는
대리석 기둥에 받쳐진 일곱 개의 아치, 붉은 코마레스의 탑,
그리고 안달루시아의 맑고 푸른 하늘의 조화는
수백 년 후의 방문객에게도 놀라움을 준다.
이 궁전은 3세기 후 인도의 타지마할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경이롭다는 말밖엔..)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아마도 비슷한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실내 장식이 아닐까.
자세히 보면 타일 하나하나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비슷한 것도 없다.
붉은 빛의 아라베스크(아랍 문자, 식물, 기하학적인 문양이 혼합되어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무늬와 문양)로 장식된 벽, 금빛 문자와 장미꽃 무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타일 바닥, 그리고 나무에 섬세한 조각이 새겨진 천장 등
모든 곳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대단하다.
경이롭다! 어떤 말로도 표현을 못하겠다.













(어느 한 곳도 눈길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이 곳도 봐야 하고 저 곳도 봐야하고..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지만 부족한 것은 시간.
사나흘 정도 머물다 가면 제대로 볼 수 있으려나..









(회랑에서 본 사자의 정원)

정원 한 가운데는 시간을 알리는 12마리의 사자상이
분수대를 떠 받들고 있다. 궁전 곳곳에 연못이 있고 구석 구석으로
물줄기가 연결되어 있는 것도 그렇거니와 분수대는 과히 파격적이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물을 땅속 비밀통로로 끌어와 혈관처럼
이용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수압차를 이용하여 분수를
만들었다니 자연을 다루는 방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용된 타일의 종류들..)

좌로부터.. 아라비아식 도자기로 만든 타일, 돌을 부조한 타일,
목재를 이용한 격자무늬 타일, 그리고 석고 판넬 타일..















(아벤세라헤스의 방(비극의 방, Hall of the Abencerrages))

방의 이름은 비극의 방이라지만 벽면과 천장의 장식은
눈을 의심하게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4원색의 아라베스크 문양과
모사라베 양식이라고 하는 종유석 모양의 천장, 레이스 장식은
소박하지만 환상적인 모습이 숨을 멎게 할 정도다.

당시 큰 세력을 과시하며 궁전에서 살았던 아벤세라헤스
가문이 있었는데, 정적이던 헤네테스 가문에서 아벤세라헤스의
귀족이 왕의 후궁과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때문에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젊은 남자 30여 명이 이 방에서 처형당하고
이들의 피가 방과 연결된 수로를 타고 흘러 안뜰의
사자상의 입에서도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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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어빙이 살던 집)

알람브라 궁전은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Wasington Irving)의
에세이 모음집 "알람브라의 이야기"에 소개되면서부터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 책은 궁전에 대한 이야기와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한데 엮은
모음집으로, 어빙은 이곳에 살면서 책을 썼다고 한다.

타레가가 작곡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알람브라 궁전에 가 보길 꿈꾸게 만들었을 테고..









(이런 곳이 오랜기간 방치되어 있었다니..)

오랜 기간 동안 많은 피해를 받았음에도
알람브라 궁전은 무어 예술의 극치를 나타내는 곳으로 남아 있다.
대부분의 건물은 폐쇄적인 건축을 지양하여 작은 전각도 중앙을 향해
드러나도록 하고 있다. 외부는 언덕의 굴곡을 없애 평평하게 했고
대신 내부에는 웅장함을 가미하기 위해 고도 차이를 이용하였다.
내부에는 대리석 기둥과 아치형의 건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급수탑, 메디나 유적지를 지나..)





(꽃은 시들고, 잎은 쉬이 마른다.)

한 시대를 하려하게 장식했던 알람브라의 이슬람 문화가
쇠퇴했듯.. 우리의 인생의 화려한 날도 이내 막을 내리겠지만
유한한 인생이기에 현재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알람브라 궁전 경내에 있는 알람브라 호텔)









(산타 마리아 성당과 공중목욕탕(Bano de la Mezquita))













(카를로스 5세 궁전의 외벽)

스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라고 한다.
카를로스 5세가 이슬람 건축에 대항해 16세기 초중반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설된 건물이다. 원형 중정을 에워 싼 회랑이 있으며, 특이한 것은
1층은 도리아식 기둥, 2층은 이오니아식 기둥이다.
알람브라 궁전 내 다른 건축물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설계되어 팔라초 양식의
건축물들과 비슷한 모습인데.. 팔라초 양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 가문의 리카르디 궁전 등 귀족들의 대저택에 사용된 바로 그 양식이다.

 

1층 외벽의 투박한 큰 돌덩이와 말고삐를 매는 청동걸이는

 

피렌체의 건축물들과 흡사하다. 너비 63m, 높이 17m 규모의
파사드는 황제의 전쟁 승리 및 왕가의 상징 등을
원형 메달에 조각하여 장식했다.













(지금은 공연장, 박물관,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카를로스 5세 궁전. 외부는 정사각형,
안으로 들어가면 원형으로 가운데가 뻥 뚤려 파란하늘이 보인다.
건물의 한 가운데서 소리를 지르면 마이크가 없어도 홀 전체에 퍼진다.
확성기를 이용하지 않고도 소리가 골고루 퍼져서 작은 소리도 잘 들린다.

 
어떤 가이드는 저 위치에서 멋지게 노래를 불러 주기도 하던데
박수를 쳐보며 확성 현상을 실감했다.





(와인의 문을 지나 알카사바 지역으로 가는 길)







(알람브라 궁전에서 제일 높은 누각, 오메나헤 탑)

오메나헤 탑 앞은 알히베스 광장..
9세기경 지어진 건물인 알카사바는 알람브라 궁전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붉은 성'이라는 알람브라의 어원도
바로 이 알카사바에서 왔다고 한다.









(알카사바(Alcazaba))

알카사바는 9~13세기에 지은 요새로
알람브라 궁전 내에서 가장 먼저 건축된 건물이라고 한다.
전성기 때는 24개 망루와 군인 숙사, 창고, 목욕탕까지 갖추었지만
현재는 그 자취만 남아 있다. 알카사바 요새 중앙에 위치한 벨라의 탑에 오르면
알람브라 궁전 내부와 알바이신 지구, 그라나다 중심부 일대의 수려한 경관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발 아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축된 2중 3중의 장벽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다.







(벨라의 탑)

알카사바에서 가장 높은 감시탑인 벨라의 탑
(Torre de las Vela)으로 향한다.







(알카사바 벨라의 탑에 올랐다)

알카사바는 알람브라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 중
한 곳으로 9세기경 짓기 시작한 군사적 성곽 겸 요새이다.
알카사바의 가장 높은 곳 벨라의 탑에 올라 오니
알람브라 궁전 전역은 물론이고 사방으로 조망이 트인다.
작은 종탑과 스페인 국기, 유로 깃발 등이 계양되어 있다.
바로 아래로는 알카사바 유적지가 펼쳐 보인다.











(그라나다 대성당도 보이고..)

카사 블랑카(하얀집)가 여기에 있었다.
서쪽 바로 코 앞 흰벽에 밤색 지붕으로 이어진 마을이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알바이신 지구이다.
7세기에 이곳으로 온 무어인은 1492년 알람브라 궁전이
기독교도에게 넘어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벨라의 탑에서는 그라나다 시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그라나다 센트르, 그라다나 대성당도 보이고,
멀리 동남쪽 방향으로는 만년설에 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까지 조망된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좋다.)

여유로운 모습 머리 위에 보이는
 하약색 둥근 돌들은 전쟁 때 실제 사용하던 돌폭탄이라고..
흙과 벽돌, 돌로 지은 성채지만 지금까지도 이렇게 건재한 것을 보면
정말 튼튼하게 지은 것 같다.







(알카사바를 나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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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브라 궁전 매표도 하고 가이드도 한 ??)

인사를 하면서 통성명을 했는데 이름이..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가이드인듯..
특이한 것은 이 가이드한테 입장권을 사면, 가이드가
알람브라 궁전을 관람하는 동안 내내 동행하면서 안내를 한다.
꽤나 재력가라는데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와 다른 것 같다.
안경을 떼었다 붙였다 나는 것이 신기하다 했더니
분해 조립하는 것을 직접 보여준다.





(궁전에 배치되어 있는 대포들..)

1238년 그라나다 왕으로 독립한 나사이레 가의 알 아마르는
알바이신에 있던 왕궁을 '붉은 언덕'을 바라보는 곳으로 옮길 것을 결심하고,
다음 해부터 건축에 착수했다. 알람브라 궁전(붉은 궁전)은 현재 '알카사바'라고 하는
부분의 성루부터 건축하여 대를 이어 확장하였다. 특히 14세기 유스프 1세와
그 아들 모하트 5세 시대에 증축에 힘을 써 현재 궁전의 심장부라고 전해지는
고마레스의 궁전, 라이온 궁전 등이 그 시대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또 이곳에 많은 자취를 남긴 왕은
16세기 스페인 황금 시대의 정점을 이룩한 카를로스 5세로서,
사라센 양식 궁전에다 르네상스 양식 궁전과 포르투갈에서 맞이한 왕비를 위해,
산타 마리아 예배실을 건축했다. 이렇게 건축된 알람브라 궁전은
18세기부터 도적이나 불량배들의 소굴로 전락했다가
1870년 이후부터 관리되기 시작했다.








(알람브라 궁전의 평면도와 조감도)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운 야경)

알람브라 궁전의 마지막 왕인 보압딜(Boabdil)왕은 전쟁에 패해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5세에게 도시를 넘겨주는 조약을 맺은 후
약 800년전 그들의 조상들이 점령하러 왔던 그 길을 통해 쫓겨 가면서
"스페인을 잃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알람브라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원통하구나" 라고 개탄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는 말로
유명한 알람브라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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