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 길을 잃기위해 찾아가는 도시

2015. 12. 8. 16:45여행/여행기

  

 

 
길을 잃기 위해 찾아가는 도시, 페스
(모로코의 신앙, 학문, 예술을 주도해 온 '지적인 왕도')




 

카사블랑카를 출발, 수도 라바트에 들려
하산 5세 왕릉을 들렸다가 라바트의 동쪽 160km 지점에
 위치한 유네스코에 등록된 중세도시 페스에 들리는 일정이다.
이슬람 지성계의 중심지로 유럽 지성사가 암흑기라 부르던
중세에도 이슬람 세계는 찬란한 지성의 탑을 쌓아가고 있었다.
서기 789년, 이드리스 2세가 이드리스 왕조의 수도로 삼은 페스는
13세기 메리니드 왕조(Merenid) 시대에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번성하며
이슬람 지성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857년에 이슬람신학대학과 아랍문예 중심의
알 카라윈대학이 설립되었다. 세계 최초의 대학이 있던 이 도시에서 학문과
기량을 갈고 닦은 수학자와 과학자, 철학자들이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가
유럽의 암흑시대를 깨웠다고 한다.

1276년에 마리니드왕조가 새로운 페스를 건설하였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강가의 옛 도시가 페스알발리이고,
왼쪽의 새로운 도시가 페스알제디드이다. 페스는 오랫동안
모로코의 신앙, 학문, 예술을 주도해 '지적인 왕도'로 불려왔다.
메디나(Medina)에는 여전히 이슬람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다.
페스 시민들은 모로코에서 신앙심이 가장 깊고, 문화적으로 가장 세련되고,
예술적 감수성이 가장 발달한 곳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페스라고 굳게 믿으며
불편해도 이전의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라바트로 향한다)

카사블랑카의 상징 무하마드 5세 광장과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는 하산 2세 사원을 둘러 보고
머문 시간이 너무나 짧아 아쉽지만 쫓기듯 카사블랑카를 떠나 왔다.

인간이 달 나라에 발을 디디는 순간
월계수 나무와 방아를 찧던 토끼가 사라져 버렸듯
카사블랑카에 도착하는 순간 상상 속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지만 그래도 카사블랑카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저 비행기가 떠나고
그와 함께 가지 않으면 당신은 후회할 거야'
'오늘이나 내일은 안 그럴지도 모르지만 곧,
그리곤 평생 후회할 거야.'라며 감동적인
험프리 보가트의 말을 떠올려 보면서..

언제 시간이 나면 카사블랑카를 다시 찾아
마라케시에서 출발하여 아틀라스 산맥의 장엄함도 보며
사하라 사막을 걸어 보고 싶고..







(벌써 라바트에 도착했다)





(Hassan II Tower)

라바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하산탑은
모로코 라바트의 기념비적인 탑으로 베르베르 왕조인
'야크브 알만수르'가 1195년에 계획했던 장대한 모스크의 첨탑.
이 탑은 1199년 그가 죽음으로써 중단되었는데 한 변의 길이가
16m인 정방형으로 44m까지 쌓아 올라가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86m까지 쌓으려던 계획대로 완성되었다면 아마 아프리카 최대의
모스크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탑의 남쪽에는 200개가 넘는
돌기둥이 남아 있다. 미나레트(타워) 내부에는 계단이 아닌 경사로를
설치해서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게 해 놓았다고 한다.
이 타워를 세운 비비르(Jabir)는 자매 답인 세비야 대성당의
종탑으로 변한 지랄타(Giralda) 타워를 설계했고 마라케쉬의
끄투비아 모스크의 미나레트를 설계 했는데
모두 같은 모습이다.

하산탑은 정갈하면서도 깔끔한 모습이
눈과 발걸음을 사로 잡았다. 유럽에서의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있다. 분위기마저 달라서 아프리카의 또 다른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하산 2세 왕릉 천정의 화려한 모습)

1912년 부터 모로코의 수도.
모로코의 북서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고대도시로 2세기 로마 식민도시였던 고대 살라(Sala)는
현재 라바트 교외에 해당하는 셸라(Chella)에 있었다.
지명은 '승리의 병영지'라는 뜻의 라바트엘파티프가 라바트로
변한 것. 여기에서 고대 포럼 주변 일부가 발굴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시가는 12세기경 베르베르 인의 무와히드 왕조에 의해 건설.
1912년 프랑스가 점령한 후 유럽식 시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성벽에 의해 성 안과 성 밖으로 나누어지는데 성내에는
마디나(이슬람 시장 거리)와 밀라(유대 인 거리)가 있고,
신시가에는 유럽풍과 아랍풍의 건조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내 최대의 건축은 하산의 모스크(jama ai-Hassan)로 장방
약 183X139m의 거대한 건물. 하산의 탑이라고 불리우는 탑에
석조 원통형인 미나레트가 있다. 또 국립박물관에는
볼비리스 출토의 브론즈 조각 등이 있다.
농업이 성하여 채소와 과일류를 수출하고,
섬유 공업이 성하여 융단, 모포 등이 생산된다.





(무하마드 5세 왕릉)

무하마드 5세는,
17세기부터 마그레브에 군림한 아라위왕조의 후예로
1912년에 태어나 1961년에 생을 마감한 현 국왕의 조부로.
모로코의 국부. 선왕인 유수프의 죽음으로 1927년 섭정이 되고,
1930년 술탄이 되었다. 그는 프랑스로부터의 완전독립을 꾀하며
민족운동을 지도하다 코르시카섬, 마다가스카르섬으로 추방되었다가
1955년 귀국, 1956년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조인으로 독립을 성취,
1957년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1961년 카사블랑카에서 아프리카
비동맹 중립계 5개국의 수뇌회의를 개최하여 카사블랑카
그룹을 결성하는 등 급진적 대외정책을 취하였다.

모로코인들에게 국부로 숭상받는 무하마드 5세는
카사블랑카 무하마드 5세 광장을 비롯하여 자주 듣는 이름.
수도인 라바트에도 무하마드 5세 거리, 무하마드 5세
왕릉 등을 지어 기념하고 있다.







(멋있는 왕릉 경비병과..)











(200개가 넘는 돌기둥..)

기둥을 보면 모스크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된다.







(왕릉, 광장으로 변한 모스크 터..)

무너진 성벽,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하산 타워
 




(전통복장(?)을 한 물장수)

허리춤에 차고 있는 가죽 주머니에서 물을 따라 준다..
물이라도 좀 팔아 줬으면 같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었을텐데..
카메라를 갇다 대기가 미안했다.







(수도 라바트를 빠져 나와 페스 가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은 도시락으로..)

야외 휴게실에는 천막이 쳐져 있지만
후끈한 열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천막이 주황색이다 보니
열기에 더해 느낌도 더 덥게 느껴진다. 제법 멀리서
배달되어 왔다는 한국음식으로된 도시락은
보기보다는 훨씬 맛 있었다.





(벌써 페소..)











(시내 초입은 깨끗하고 정리가 잘된 신식도시)





(가로수 밑에는 왠 총을 든 군인들이..)





(페스의 구시가지 골목으로 들어가는 문)

모로코의 왕궁이 다섯개의 도시 중 하나인 페스.
이슬람 아랍권도 기마민족이어서 대문의 형태도 말 편자모양이며
정교하다. 말을 타고 세상을 지배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오랫동안 모로코의 신앙, 학문, 예술을 주도해

'지적인 왕도'로 불려 온 페소. 메디나에는
여전히 이슬람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다.
페소 시민들은 모로코에서
신앙심이 가장 깊고,
문화적으로 가장 세련되고,
예술적 감수성이 가장 발달한 곳이
자신들의 도시 페스라고 굳게 믿고
살아간다고 한다.







(도로변 풍경은 다른 도시나 별차 없어 보이는데..)







(전면에 나타난 집들은..)

달동네를 연상케 하는 다닥다닥 붙은 집들..
그러나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호기심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미로.. 이런 곳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겠다)

페스의 메디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복잡하다는 미로와 같은 골목길이다.
14세기에 조성된 골목은 지금도 수백 년 전의 옛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무려 9,000개가 넘는 골목이 미로를 형성하고 있다.
페스의 메디나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이방인은 어쩌면 당연한 일
통과의례쯤으로 여겨야 한다. 딱히 정해진 루트도 없고, 소요시간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그저 마음이 끌리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 된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가다 보면 지붕이 덮인 시장, 오래된 옛사원과
이슬람 학교, 염색장과 궁전, 목욕탕과 찻집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 골목의 유일한 운송수단인 노새몰이꾼의 고함 소리와 호객꾼들의 호객
행위로 복잡한 골목은 소음까지 더해져 더 정신없게 만든다. 아찔할 만큼
높다랗게 짐을 싣고 비틀비틀 걸어가는 비쩍 마른 당나귀가 짐을 나르고 집
한 채값이 나가는 골동품 실크 카펫이 내걸린 가게 옆으로는 한 그릇에
400원하는 콩죽이 끓고 있는 분식집. 온갖 냄새와 소음이 뒤섞여 오감을
자극한다. 인간이 만든 공간 중에 이토록 생생한 삶의 기운을
내뿜는 곳이 시장말고 또 있을까.















(좁고 복잡한 골목..)

떠밀려 가는 느낌이다.
아니 떠내려 가는 느낌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좁은 도랑을 따라 물이 흘러가듯
끝 모를 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페스 구시가지 골목길이 복잡한 것은..)

잦은 전쟁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골목길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페스는 1981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라마단 기간)

이 복잡한 골목에 없는 것이 없는데
있어야 할 것중 제일이라면 사원일테다.
그들의 신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올해는 6/18 ~ 7/16일까지라고 한다.
이슬람교도는 이 기간 일출에서 일몰까지 의무적으로
금식하고, 날마다 5번의 기도를 드린다. 이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뿐만 아니라 담배, 물도 금지된다.
라마단의 마지막 10일간은 가장 최고로 헌신하는 시간으로
이슬람교도들은 그 기간 사원 안에서 머물게 된다. 보통
27번째 되는 날을 '권능의 밤'이라고 하여 밤새워 기도한다.
라마단이 끝난 다음날부터 '이드알피트르'라는 축제가
3일간 열려 맛있는 음식과 선물을 주고 받는다.





(가죽 냄새가 난다 했더니..)









(마주오는 사람 비끼기도 힘든 좁은 골목도 지나고..)

길을 잃어 보아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이방인에게 페스는 보물을 찾아 나선 탐험과 같다.
지상 최대의 호객꾼과 유일무이한 세계 최대의 미로, 소매치기와
상인들의 대공세 속에 인내력을 시험 받은 후에야 페스는 그 매혹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페스를 찾을 때만이라도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보자.
인생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 페스의 미로를 헤매며 길을 잃어 보자.
인생에 정해진 길은 없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듯
페소는 새로운 길을 찾는 법을 가르켜 줄듯하다.





(페스 골목길을 안내한 현지 가이드)

구시가지 골목길은 안내 지도도 없는 모양..
하긴 있어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루종일 길을 잃고 골목길을 헤매 보고도 싶지만
인생이 유한하듯 페스에서의 시간도 한정되어 있고,
중세도시에서도 시간은 현재시간이니 빠르기만 하니
어쩔 수 없이 안내를 받으며 시간을 벌었다.

















(생소하면서도 한편으론 눈에 익은 모습..)

구시가지 메디나는 1200년 전의 이슬람 왕조시대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슬람 세계의 종교와 예술, 학문의 중심지였던 페스는 모로코
독립운동의 중심지였으며, 변화를 갈구하는 중심이 되어
지금도 모로코의 심장으로 여전히 뛰고 있다.

















(그림이 좋아 숨 멈추고 셔트를 눌렀을 소재지만..)

셔트를 누르려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무리 오래된 전통이고, 천연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몸에는 해롭지 않다지만 그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악취부터 공해인데.. 저 온갖 잡탕범벅한 것이
몸에 해롭지 않을리 있겠는가?











(전통적인 방법이라지만..)

메디나에서도 삶을 향한 열기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곳은
단연 가죽 작업장이다. 페스의 골목길을 걷고 있으면 청년들이
지갑 혁띠를 비롯한 가죽제품들을 가지고 따라붙는다. 페소는 예로부터
"테너리(tannery, 무두질 작업장)" 가죽제품이 유명한 곳. 북부 아프리카와
남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의 중계도시로서 발달한 페스는 수천 년 전부터
가죽을 생산해왔다. 세계 최고 품질로 꼽히는 페스의 가죽은 '말렘'이라고
불리는 장인의 손에 의존해 털을 벗기는 일에서 무두질과 염색까지
중세 시대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무두질 작업장이 잘 보이는
테라스에 오르기 전 가게주인은 박하잎 한 줄기를 나눠 주는데 이유가 있었다.
비둘기 똥이나 소의 오줌, 재와 같은 천연재료를 염색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냄새가 상상을 초월한다. 박하잎으로 코를 틀어막고 작업장을 구경한다.
열악한 환경, 그 악취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애잔함과 알지못할 슬픔이 몰려온다.
저 노동자들의 삶은 어떤 삶일까?













(무두장을 보고 이어 간 곳은 가죽제품 판매장)

페스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의 디자인은
세련되지 못하나 가죽 수제품이어서 가격은 만만찮다.
전통적인 방법이어서 가죽의 품질이 최상이라는 말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더라도 애쓰고 정성들인 부분만큼은 인정을 해줘야
할 것 같다. 제품판매가의 얼마가 저 열약한 환경에서 무두질하는
노동자에게 돌아갈까 싶기는 하지만, 와이프 가방을 구입하면서
네고를 더 해도 될 것 같았지만 무두질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밟혀 적당한 선에서 네고를 했다.







(페스 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 같았다.)

생활모습 곳곳에서 그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초록색 지붕이 세계 最古의 大學 '카라윈 대학교'를 상징한다.







(시가지 가까운 구릉에 있는 공동묘지..)













(페스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올라..)

페스를 나오는 길에 언덕에 올랐더니 구시가지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벽 흔적도 보인다.
초록색 지붕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라윈 대학교.
여기선 메데르사(Medersas)라고 부른다.
구시가 언덕 뒤로 보이는 곳은
프랑스인이 세운 신시가지.





(페스에서 탕헤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