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장미와 해바라기의 나라

2016. 9. 9. 12:56여행/여행기




불가리아, 장미와 해바라기의 나라
(발칸반도 여행 2)






불가리아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상념 (想念)에 잠겨서 떠 올려 보는 글귀..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위로 높아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아.
옆으로 넓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바다처럼. 넌 지금 여행을 통해
옆으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그리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니까 ... 네가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사람이 너보다 높아졌다면, 넌 그들보다 더 넓어지고 있는 것이니까!"
김동영 작가의 글이다. 그렇다 죽는 날까지 찾아야 하는 것은 나이고,
완성시켜 나가야 할 것도 나이듯.. 나를 찾고 나를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으로 지평을 넓혀가는 여행도 좋은 방편인 것 같다.
세상은 끝없이 서로의 높이를 경쟁시키지만
넓음은 오히려 그 세상을 포용할 수 있다.






(도나우(다뉴브) 강을 건너 불가리아로..)

도나우 강을 경계로 이쪽이 불가리아의 루세이고
저쪽은 루마니아의 지우르지우. 두 도시를 연결하는 다리 이름은
루마니아어로 프리에테니에이고 불가리아어로 두르쓰바타라고 한다.
대단히 크고 넓고 수량도 많은 누른 흙탕물의 도나우 강이
사진에서는 푸른 도나우 강으로 변해 버렸다.





(강을 건너자마자 국경 검문소..)

이번 여행은 국경을 수도 없이 넘나들어야 하는데
솅겐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가 많다. 불가리아 입국 직전에
자동차가 지체 되길래 역시 국경통과가 까다로운가 보다 했는데
다리를 보수하면서 한쪽 차선으로 통행시키느라 지체되었던 것..
지체는 지체지만 이런 지체라면 좀 낫다.

솅겐조약(Schengen Acquis)은
유럽 각국이 공통의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하여 국경시스템을
최소화 해 국가 간 통행에 제한이 없게 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약으로,
국경에서의 검문검색 폐지 및 여권검사 면제 등 인적 교류를 위해
국경철폐를 선언한 국경개방조약. 1985년 6월 14일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독일ㆍ프랑스ㆍ베네룩스 3국 등 5개국이 국경을 개방하고 정보를 공유하기로 한
국제조약을 룩셈부르크 솅겐에서 선언한 데에서 유래하며, EU 회원국 외의 국민은
솅겐조약 가입 국가에 입국하고자 할 경우, 처음 입국한 국가에서만 심사를 받고,
역내에 들어서면 6개월 이내 최대 90일까지 회원국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2016년 현재 솅겐조약 가입국가는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리투아니아, 리히텐슈타인, 몰타, 벨기에, 스위스, 스웨덴, 스페인,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아이슬란드, 에스토니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체코,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헝가리 등 26개국이며 영국,
아일랜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키프로스, 크로아티아(2016년 가입예정)는
미가입국이다. 반면,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은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솅겐조약 가입국이다.





(불가리아)

정식 명칭은 불가리아공화국(The Republic of Bulgaria).
면적은 11만 879㎢, 인구는 718만 6893명(2015), 수도는 소피아(Sofia).
동부 유럽 발칸반도의 남동부에 있는 나라로서 터키와 접경한다.
터키의 동유럽 진출 통로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1396년부터 500년간
오스만투르크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18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 결과
자치공국이 되었고 1908년 불가리아 왕국으로 독립하였다. 1945년 공산당이
집권하고 1946년 왕정제를 폐지하여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이 되었다가
1989년 동유럽 민주화의 영향으로 공산정권이 붕괴된 후
1991년 신헌법을 채택하여 불가리아 공화국이 되었다.

주민은 불가리아인이 전체 인구의 84%, 터키인이 10%, 그밖에
집시, 마케도니아, 아르메니아, 러시아, 그리스인 등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용어는 불가리아어. 터키어·마케도니아어도 쓴다.
종교는 불가리아정교가 82.6%, 이슬람교가 12.2%, 가톨릭교가 1.7%.
기후는 대륙성 기후로 4계절이 있으며 연평균 기온은 10.5℃ 내외.
중앙의 발칸산맥을 경계로 남부 평야지역은 지중해성 기후이고,
북쪽은 대륙성 기후. 주산업은 농업. 1995년에 출범한 정부는 경제 회복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사유화 및 농업개혁을 적극 추진하면서 효율적인
사회보장 정책 추진 등을 골자로 한 경제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발칸반도에 있는 나라들 중에서 유일하게 평화적으로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로
200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고, 2007년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행정구역은 28개주(oblast)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5년 현재
국내총생산은 516억 달러, 화폐단위는 레프(BGN)
1인당 국민소득은 6,582$(2015년).









(끝없이 펼쳐지는 해바라기 밭)

이웃 루마니아에서도 끝없이 펼쳐지는 해바라기 밭을 봤지만
불가리아는 한술 더 뜨는 것 같다. EU 국가들 간에도 산업이 특화시켜
경쟁력을 키우는데 불가리아는 어떤 산업을 육성 발전시켜야 할지..
주력산업이 농업이지만 벌판에 해바라기를 저렇게 많이 심어서야
농업강국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등과 경쟁할 수 있을까??
해바라기 밭이 보기는 좋다만 걱정스럽다.

장미와 툴립이 불가리아의 국화라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해바라기 꽃 천지..





(점심을 먹은 식당.. 간판을 보고도 알 수 없으니..)

벨리코타르노보에서 산속을 돌고 돌아 올라간 곳
외관은 중세의 성채 같았는데 내부는 무도장(?)같은 분위기.
식사는 요구르트와 볶음밥 비슷한 것을 먹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고, 
식당 이름도 음식 이름도 뭔지 모르겠다.
키릴문자 앞에선 눈뜬장님 신세..





(키릴문자)

러시아 문자의 모체이기도 한 키릴 문자는..
그리스 테살로니카 출신의 메토티우스와 키릴 형제(Cyrill)가
855년 선교를 위해 모라비아(Moravia) 지방에 파견되었다가 그 곳
슬라브족에게 적합하게 고안하여 만든 문자를 글라골(Glagol) 문자라고 한다.
그 후 키릴 형제의 제자들이 불가리아 보리스(Boris) 왕의 요청을 받아
글라골 문자를 더욱 발전시켜 만든 것이 오늘날의 키릴 문자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키릴문자의 원조가 불가리아라는 것.

키릴 문자는 불가리아를 비롯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몽골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폴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도 키릴 문자를 사용하다가 1990년대
개방 이후 라틴어 발음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불가리아에서 첫번째로 들린 아르바나시(Arbanasshi))

고색창연한 빨간 기와지붕이 정겹다.
짓고 있는 집의 지붕도 빨간 기와로 지붕을 이겠지?
35℃가 넘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일에 여념 없는 노동자들..
카메라를 들이대니 포즈를 취해 준다.









(골목풍경)

골목길이 소담하고 담장이 정갈하다.
우리나라 골목길 같은 분위기도 있고, 독일 로맨틱 가도의
로텐부르크 골목길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중간의 사진은 수공예 자수 제품을 관광객을 상대로
판매하고 있는 모습인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골목상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17세기 전통 건축물)

콘스탄트 살리예브 하우스는
불가리아인들의 전통 생활양식과 가옥의 구조를 보여 주는
17세기의 건축물. 지위가 높은 관리가 살았던 주택으로
내부를 공개하고 있는데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PASS







(정겨운 돌담길..)

전통 마을은 분위기가 동양적이고
건축물의 규모나 구조가 한옥과도 비슷한 면이 많다.
돌담. 나무 대문, 샛문, 문고리 등등..









(안과 밖)

아르바나시 마을 중심부에 150채 정도의 집이 있는데
이중 전통 가옥이 80여 채, 그 중 36채가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주민은 500여 명 살고 있다고 하나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골목 쪽 창가에 얹어 놓은 화분이 정겹다.
볼거리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단아하면서도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좋았다.







(넓은 정원의 꽃마차)

정원에는 꽃이 잘 가꾸어져 있고, 옛날에 사용하던
생활용품도 보인다. 담장과 거리의 구불구불한 모양새가 특색인
이 마을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터키 지배시대의 불가리아
전통마을의 모습으로 불가리아 전통문화뿐 아니라,
당시의 건축과 조경 등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1897이 선명하게 새겨진 아치 위 패널)





(저택(?).. 여긴 넓은 정원에 수로까지..)





(전통마을 아르바나시(Arbanasshi) 안내지도)











(벨리코타르노보(Veliko Turnovo)와 안트라 강변의 마을)

아르바나시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이동하여 도착한 벨리코타르노보.
차레베츠 언덕에서 바라 본 시가지와 얀트라 강변 마을 모습. 이 도시는
루마니아 국경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중북부지방 산악지대 얀트라 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데 하얀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벨리코 타르노브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240Km 떨어진 유서 깊은 옛 수도.





(12세기 불가리아 왕국의 성채였던 차레베츠 언덕)

벨리코타르노브의 명물인 차레베츠 성(Tsarevets Citadel)은
12세기 불가리아 왕국의 성채로 얀트라 강 위에 있는 차레베츠
언덕의 출입구 다리를 지나야 성채에 들어갈 수 있는 천혜의 요새였다.
차레베츠 언덕은 제2차 불가리아 왕국(1185~1396)의 수도로 슬라브
문화의 중심지가 되며 불가리아의 아테네라 부른다고..





(제1성문)

양쪽으로 수십 길 아찔한 절벽 위로 건설된 다리.
거위목 같은 좁은 입구를 통하여 성에 올라갈 수 있다.
다리 입구에는 십자 무늬의 방패를 든 돌사자 상이 있고 그 지점을
지나면 제1성문. 성문 앞에는 통로를 차단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제1성문만 차단하면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차단된다. 제1성문을
지나서 조금 더 진행하면 제2성문이 나온다. 제2성문을 지나서
야트막한 언덕 꼭대기에는 성모승천 교회가 있다.

12세기 불가리아 왕국의 성채인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는 얀트라(Yantra) 강에 둘러 싸여 있다. 원래는 5세기에
비잔티움제국의 요새로 지어졌으나 12세기에 증축하였다고 한다.
트라키아 언어로 Yantrus는 "매우 빨리 흐르는"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Yantra 강은 말편자 모양으로 굽이친다.





(성 입구에 있는 차레베츠 성 안내도)

얀트라 강이 사방으로 감싸며 요새를 섬같이 만들어
외적을 방어하기에 지형적인 조건이 거의 완벽하다.





(성모승천교회 올라가는 길)







(성모승천교회)

성모승천교회 내부의 천장과 벽에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고통스러운 과거를 현대 종교
미술의 대가인 테오판 소케로브가 제자들과 2년여 동안 종교적인
성인을 그리지 않고 불가리아 역대 왕들과 귀족들을 그려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은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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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트라 강 주변의 고즈넉한 풍경)





(투석기, 복원한 것인지??)

성벽 너머로 피해를 주거나 성벽 자체를 부수는 데
이용되었으며, 던지는 돌에 불을 붙여 소이 효과를 노리거나,
사체 등을 던져 넣어 세균전, 심리전에도 이용하였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4~5세기 춘추전국시대부터 지레의 원리를 이용한 투석기가 사용되었으며,
서양에서도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투석기가 존재했다고.. 중세 이후 화포가 발달해
투석기를 완전히 대체한 근세까지 공성병기로 이용되었으며 사용되어 온 기간이 길고
다양한 문명권에서 이용해 온 만큼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제2성문을 나서며..)





(뒤돌아 본 차레베츠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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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신나게 내리더니 곧 개였다.)

차레베츠 성 오를 때부터 구름이 잔뜩 내려앉아
비가 올 것 같더니 다행히 차르 타고 이동하는 중에 소나기가
한 줄기 시원하게 내렸다. 무더운 날씨에는 비가 약이다.
한 참을 구름 속으로 달린다. 기온이 많이 낮아졌다 했는데
드문드문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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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입성)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를 떠난지
약 12시간 40분 만인 20시 10분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물론 도중에 전통마을 아르바나시와 12세기
불가리아 왕국의 성채였던 차레베츠 성채도 들리긴 했지만
강행군이다. 저녁 먹고 나면 밤 9시는 되겠다.
소피아 야경을 볼 수 있으려나..





(호텔에서 바라 본 Cherni Vrah(2,290m)산 방향)

Black Peak라고도 하는 Cherni Vrah는 불가리아에서
4번째로 높은 산이나 소피아 시의 고도가 550m니까 산 정상과
고도차가 1740m밖에 나지 않는데다 가깝고 산 정상부근까지 도로가 나 있고
케이블카도 설치되어 있어 휴식을 위해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고 한다.
산 정상에는 기상관측소가 있다. 비가 그쳤는데
산 정상부는 아직 구름이 덮여 있다.











(소피아 도로변 모습)







(C2H5OH라면.. 메탄올을..)

자동차 연료로 청정연료 메탄올을 쓴다면
불가리아의 자동차 문화가 우리보다 앞섰다는 이야기.
미세먼지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지구 최대의 재앙이 될 것으로
예견되는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위해서 자동차 매연과 공장과
화력발전소의 매연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켜야 한다.
우리나라도 저공해성 연료와 전기차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가는 곳마다 공원이 참 부럽다)





(꼬마 트램)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중교통으로 이용하고 있는
궤도전차 트램(Tram).. 트램의 칼라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소피아 공중목욕탕(Sentralna mineralna banya))

1913년 건설되어 1988년까지 공중목욕탕으로
사용하던 것을 개조하여 현재는 소피아 시립 역사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외관은 옛 목욕탕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면서
흰색 대리석에 붉은색 장식을 넣어 화려함을 더했고 그 위에
둥그런 돔을 얹어 예술적 아름다움을 더했다고 한다.

불가리아가 위치한 발칸반도 중앙 지대는 고대로부터
자연 경관이 아름답고 다양한 종류의 온천이 많기로 유명하였다.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소피아 시내 중앙에 온천 대중탕도
운영되었다고.. 전국에 크고 작은 온천이 1,0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온천 자원이 풍부하다. 대도시를 비롯하여 지방 도시들에도 온천 지대가
형성되어 있어 휴양과 치료를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이 갈수록
증가 추세라고 한다. 최근에는 주요 호텔들도 온천수를 이용한
스파 설비를 갖추어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스파 관광을 육성하고 있다고 한다.





(온천 음수대)

물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이 물을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직접 마시며 물맛 좋다는 듯 엄지를 치켜들기에
호기심에 나도 따라 마셔 봤는데 미지근한 게 별 맛은 없었다.

수도인 이곳 소피아(Sofia)는 로마시대부터 시내 중앙에
온천물을 이용한 수도시설을 설치하여 일반 시민들이
식수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Banya Bashi Mosque)

오스만 투르크(터키)의 지배를 받던 1576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 최고 건축가 미마르 시난(Mimar Sinan)에 의해
지어진 바냐 바시 모스크는 현재 소피아에 있는 이슬람 교인의 유일한 모스크로
온천 위에 지어진 독특한 사원. 전체적으로 붉은색 돌을 사용했고, 15m 높이의 돔과
1개의 첨탑(미나레트)이 인상적이며 평상시에는 700명 정도의 무슬림이
이 사원에 모여 기도도 하고 모임을 갖기도 한다.
현재 소피아에는 3만 명 정도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고 한다.
Banya Bashi라는 이름은 모스크 옆에 있던 공중목욕탕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일반 관람객은 입장이 안 된다고 한다.
여신의 이름을 가진 소피아는 종교유적지가 많다.









(지하철 공사 중 발견되어 현재는 보존하고 있는 유적지들..)









(복원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성 소피아 여신상 / Transliteration)

소피아는 지혜의 여신 소피아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성 소피아 여신상이 있던 자리에 공산주의 시절에는 레닌의 동상이
있었으나 공산주의 붕괴 후 2001년 레닌 동상 대신 소피아의 수호신인
성 소피아 동상을 세웠다. 오른손에는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왼팔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가 앉아있다.
성 소피아 여신상의 높이는 무려 24m.





(구 공산당 본부 / Largoto)

사회주의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
건물을 크고 웅장하게 지어서 위압감을 주어야
한다고 한다. 구 공산당 본부 건물의 양식은 네오클래식.
현재는 의원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성 페트카 지하교회(Sveta Petka Church))

오스만의 지배를 받지만 종교를 버릴 순 없다!
14세기에 지어진 불가리아 정교회로 페트카 성인에게
바쳐진 교회다. 왜 이름이 지하교회일까? 바로 지금 이 교회가
있는 곳이 도로 밑이기 때문이라고.. 소피아 시내는 특이하게 도로가
층층이 나있는데 페트카 지하교회는 그 중간층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서유럽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국가가 아니기에 교회 문화가
융성하였고 교회 건물도 위용을 떨칠 수 있었다.
하지만 불가리아는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서 그들의 종교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불가리아인들은 이슬람의 감시를 피해서 지하에
토굴을 파고 교회를 만들었는데 바로 그 교회가 다른 곳보다
낮은 곳에 있는 이 성 페트카 교회이다. 불가리아에게 불가리아
정교회는 불가리아의 문화 뿌리이자 얼이었던 것이다.
비록 작고 허름한 교회지만 이곳에 깃든 그들의 마음만큼은
다른 교회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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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비친 집시를 찍다)









(소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성 게오르기 교회(Rotunda Sveti Georgi))

교회의 위치도 특별하다.
주변은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지 터가 자리 잡고 있고,
교회를 쉐라톤 호텔과 대통령 집무실이 둘러싸고 있다.
제일 현대적인 건물과 소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건물의 조합이라니 이질적이면서 묘한 풍경이다. 크고 웅장한
유럽의 유명한 중세 교회들과는 달리 4세기경 로마시대에
건축된 역사적인 건축물. 규모도 작고 낡았지만 내부를 보면
특별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9세기부터 디아클레티아누스
때 박해를 받다 죽은 성인 게오르기를 추모하기 위해서
성 게오르기 교회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교회 내부의 성화는 불가리아 정교 양식으로
그려져 회화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미사 중이어서 성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빌려 온 사진)
1183년까지 불가리아의 수호성인 이반 릴스키의 유해가
모셔지기도 했고, 한때 주교좌성당이 되는 등 번성했으나,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 쇠퇴하였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을 지키는 근위병들)

매일 정오에 거행하는 근위병 교대식도 볼거리라는데
시간이 맞지 않다. 근위병 교대식은 역시 빨간 제복을 입고
악대가 연주하는 그 뒤로 말을 타고 행진하는 영국 런던의
버킹검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이 일품이었지.
대통령 집무실 현관 앞까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불가리아가 부럽다.









(대통령궁 인근에 있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

고대 유적과 문화유산 연구를 하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어서 그런지 건물 주위에는 고대의 주춧돌을 비롯한 기둥,
각종 석조 건축물의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벽돌로 포장한 광장 바닥)

예쁜 벽돌을 깔아 놓은 광장 바닥이 보기는 좋은데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은 미끄러워서 조심을 해야 한다.
바닥이 미끄럽다는 민원이 많다고..





(요소요소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심 공원이 정말 부럽다)





(알렉산드르 네프시키 성당이 나타났다)





(사무엘 왕의 동상)

불가리아의 왕, 재임기간 997년~1014년
비잔틴의 바실리우스 2세가 불가리아를 침공하여
1만 5천명의 포로들을 100명 단위로 줄을 세워 맨 앞의
한 명은 한쪽 눈을 뽑고 나머지 99명은 두 눈을 모조리 뽑게 한 뒤
불가리아의 수도로 보내니 불가리아의 사무엘 왕은 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 큰 상실감에 빠져 심장마비로 죽었다. 이로 인해 바실리우스 2세에게
'불가르족의 학살자(불가록토누스)'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불가리아는 사무엘 왕이 사망한 후 4년을 더 저항했으나
1018년 항복했다는 슬픈 이야기..





(석상.. 무슨 작품인지??)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교회 앞 광장)

포도가 아스팔트로 덮은 도로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다른 느낌 외에도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도심에 숲도 많고 도로도 아스팔트로 마냥 뒤덮지 않으니
석유화학
부산물로 인한 환경 공해도 없고, 태양이 내리쬘 때 복사열도 줄여 주고,
큰 비가 쏟아져도 빗물을 고스란히 토해내지 않겠고..
포도마저 도시를 정겹게 한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교회 / Saint Alexander Nevsky Cathedral)

비잔틴 양식의 최고 건축물 중 하나로 소피아를
찾는다면 꼭 찾아 봐야 할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교회는
네오 비잔틴 양식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 주는 것 같다.
12개의 돔 지붕을 금박으로 입혀 놓아 소피아에서의 본 비잔틴 양식 건축물 중
가장 화려한 것 같다.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터키) 간 전쟁(1877-78)에서 불가리아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20만 명의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러시아가 지어준 교회로,
1882년에 착공하여 1912년에 완공되었다는데 높이가 60m, 5000명이 함께 예배할 수 있다.
러시아의 수호성인 황제 알렉산더 2세의 이름인 세인트 알렉산더 네프스키에서 유래한다.
불가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년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을 탄생시켰고, 이때부터
친소 노선으로 기울었다고 한다.





(실내 모습)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살짝 한 장만
가져왔다. 외부의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에 압도당하다 보니
어두운 분위기의 실내는 감동이 덜한 것 같다.





(금빛의 돔과 곡선의 미)

이 교회는 외관이 특별하여 360도로 한 바퀴를 돌면서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데 비가 와서 전면 사진밖에 찍지 못한 아쉬움에
컴퓨터에서 랜드링으로 건물을 회전시켜 본다. 교회의 치장은 덜하지만
돔 형태의 외형이 곡선미를 보여주어 평온한 느낌을 주고 교회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멋을 풍기는 것 같다. 현재 발칸반도에서 최대 규모지만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짓고 있는 교회가 완공되면 최고의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 같지만
역사성과 전통은 이어가지 않을까.





(소피아여 안녕! 언제 다시 올 수 있으려나..)

소피아에서의 일정은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교회를 돌아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소피아를 떠나 이제 제2차 세계대전 후 티토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던 구 유고슬로비아 연방의 수도였던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향한다. 정말.. 피아에서는
점만 찍고 떠나는 기분이다.





(전통복장으로 장미축제에서 장미를 수확하고 있는 노인 / 빌려온 사진)

장미 수확 시기가 지나 장미축제를 볼 수는 없었으나
불가리아를 떠나기 전에 불가리아의 상징인 장미와 요구르트,
장수에 대해서 살펴보면.. 불가리아는 장미와 장미유로 유명하다.
5월 말에서 6월 초 이른 아침 이슬이 맺혀 있을 때 수확한 장미로 연간
3톤 정도의
장미유를 생산하여 1㎏당 6,000유로(750만원)에 수출한다. 장미유 수출국 1위는 터키,
 불가리아는 2위. 장미유 1g을 생산하려면 3.5㎏의 장미꽃, 즉 1500송이가 필요하다.
매년 5월 말 ~ 6월 초 장미계곡을 끼고 있는 옛 트라키아(Thracia) 왕국의 수도였던
'카잔루크(Kazanluk)'에서 열리는 국제 장미 축제가 유명하다.
불가리아 국화는 장미와 튤립이다.

불가리아는 오랫동안 유제품을 생산하고 개발한
낙농국가로 특히 불가리아 요구르트는 건강식품으로 유명하다.
불가리아 요구르트를 '키셀로 믈랴코(Kiselo Mlyako)'라고 부르는데,
이는 '시큼한 우유'라는 뜻. 요구르트의 시큼한 성분의 '불가리쿰(Bulgaricum)'은
불가리아의 자연 환경에서만 생성 가능한 매우 독특한 것이라고.. 불가리아 지역의
기후, 토양, 온도가 불가리쿰 생성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불가리쿰을 수입하여 요구르트를 생산한다.

그리스 국경과 가까운 불가리아 중남부 지역에 위치한
스몰랸(Smolyan) 시를 중심으로 한 산간 마을에는 100세 이상의
장수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이 마을들은 산간에 둘러싸여 있어
일교차가 심하지 않으며, 우유와 요구르트를 비롯하여 채소 등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장수를 위한 천혜의 자연 환경이 주어진 곳.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불가리아 중부 지역 마을에 상당수의
일본 노인들이 정착하여 거주하고 있다고..





(왠 독일국기와 불가리아 국기??)

불가리아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것은
장수 국가와 요구르트의 영향도 있겠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이 있는 역사가 깊은 나라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차창밖 벌판을 노랗게 물들인 해바라기가 영화 '해바라기'와 교차되고.
여주인공 소피아 로렌과 수도 소피아가 기가 막히게 오버랩되기도 했다.
빌딩 숲속의 고대유적들이 화이부동(和而不同) 부조화 한 것 같으면서 조화를 이루고,
큰 건물도 위압적이지 않고 고풍스런 건물들마저 정겹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나라 불가리아!
선한 눈빛에서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 부모 앞에서 프로포즈를 하고, 이혼하면
복잡한 일이 많아 3 ~ 6개월 살아 보고 결혼한다는 그들, 안경을 썼거나 뛰거나 뚱뚱하면
불가리아인이 아니라는 건강한 사람들. 러시아가 사회주의의 모범답안이라고 했던 불가리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키릴문자! 그러나 온통 키릴문자로만 쓰여진 간판, 메뉴, 안내 글들..
아라비아 숫자도 없고, 영어 알파벳 같으면서 아닌 아무 것도 모르겠지만 이런 것들이
여행의 재미, 이국의 맛을 확실히 느끼게 하는 것 같아 흥미롭다. 여행은 설렘과 약간의
불안이 공존하는 낯선 곳에서의 시선이기에 더 낯설고 새롭게 다가오는 불가리아!
'푸른혁명'으로 민주화를 이뤘듯 유순하면서도 복잡한 느낌이 들지 않고
도시마저 복잡함과 소음, 공해로부터 한발짝 비껴서 있는 듯한 느낌.
그 곳을 가 보았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소박하고 정겨운 매력에
배낭 하나 둘러 메고 두어 달쯤
무작정 돌아 다녀 보고 싶은 곳.
불가리아!

세르비아 국경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