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천혜의 자연과 탱고의 나라
2016. 7. 6. 23:21ㆍ여행/여행기
아르헨티나, 천혜의 자연과 탱고의 나라
(신이 선물한 자연, 정열과 낭만이 가득한 도시..)
물리적인 거리만큼 마음이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체 게바라와 메시, 에바 페론의 나라여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큰 국토를 가진 나라로
넓은 국토에 걸맞게 다양한 자연환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안데스 산맥의 남쪽 파타고니아의 빙하에서부터 대초원 팜파스와 웅장한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세련된 모습으로 유명하고 동시에 유럽을 흉내 낸 도시라고 하면서도 많은
설사 가려던 길을 못 가게 될지라도 그 도시는 꼭 들려 보자!
낯선 공간, 낯선 거리의 사람들을 만나 보자.
여행은 설레임과 호기심, 약간의 긴장감으로
(칠레에서 아르헨티나로, 입국신고)
세상에 국경선이 우리 같은 나라가 또 있을까!
정치만큼 비인간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이 또 있을까!
우리가 유별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
정식명칭은 아르헨티나공화국(Republica Argentina).
연방제 공화국으로 면적은 278만 400㎢로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 세계에서는 여덟 번째로 큰 국가. 인구는 4343만 1886명(2015년 현재),
인구의 97%가 유럽계 백인으로, 이탈리아계 35.5%, 스페인계 28.5% 등.
언어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종교는 가톨릭교 85%, 개신교 10%, 유태교 2%.
교육 수준이 높으며 문화적으로는 유럽과 직결되어 예술수준이 높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전통적으로 남미문화의 중심을 이루어왔다.
국토는 남북으로 긴 모습이며, 서쪽의 안데스 산맥과 남쪽의 애틀랜틱 海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북동쪽으로 브라질과
우루과이, 서쪽과 남쪽으로는 칠레와 국경을 접한다. '아르헨티나'는
라틴어로 '은(銀)'이란 뜻이며, 탱고와 목축으로 유명하다. 행정구역은
23개 주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인 1개의 자치시로 되어 있다.
통화는 아르헨티나 페소(ARS)를 사용하며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3271만 달러(2015년 현재)
1516년 발견된 이후 1580년 스페인 식민지가 되었다.
1776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건설되어 유럽과의 항로가 개척되고
무역항으로 발전, 도약하였다. 1816년 7월 9일 독립 영웅 마틴(Martin, S.) 장군의
의회는 임기 6년의 상원과 임기 4년의 하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당은 정의당, 급진당, 평등당 등이 있다.
(엘칼라파테 버스터미널)
오전 8시 반에 푸에르토나탈레스를 출발,
5시간 20분 걸려 엘칼라파테 터미널에 도착했다.
역시 엘칼라파테는 파타고니아 여행의 전진기지답게
터미널에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백패커들이다. 멋있다!!
(엘칼라파테 시가지 모습)
아르헨티나의 남단에 위치한 엘칼라파테는
약 8천여 명이 살고 있는 황량한 벌판 위의 오아시스.
거리의 가로수와 숲이 도시를 덮고 있는 아담한 전원도시. 정겹다.
파타고니아 여행의 거점도시로 파타고니아를 찾아 몰려드는 여행객들로
붐빈다. 칼라파테는 주변으로 환상적인 옥빛 호수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호수 위로 빙하들이 설산을 끼고 펼쳐져 있는 풍경은 그림 같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 웁살라 빙하, 아르헨티노 호수,
또 인근에는 트래커들과 전문산악인들의 로망
피츠로이(Fitzroy)가 있는 엘찰텐이 있다.
(도시의 풍경.. 목가적이다.)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서정적인 느낌.
그렇기도 하지만..
이 작은 유럽풍의 도시가 유명한 것은
바로 모레노 빙하로 가기 위한
전진기지라는 점에서 그렇다.
엘칼라파테는 칠레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안데스 산맥 꼭대기를 뒤덮은 만년설과 푸른 숲이
끝없이 이어져 있고, 빙하 호수와 빙하가 47개나 되며
60만ha의 면적 중 30%가 빙산과 빙하로 덮여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국기의 색깔이 왜 하늘색과 흰색이
섞여 있는지 이곳 엘칼라파테에 와 보면 알 수 있다.
국기는 칼라파테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아르헨티노 호수
(Lago Argentino)의 풍경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하늘색은 옥빛 호수, 흰색은 호수 뒤로 보이는
만년설에 덮인 설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Glaciar Perito Moreno))
빙하의 붕락을 잡는 것도 쉽지 않다.
이따금 '우르르 꽝' 하는 천둥소리같은 굉음이 나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면 이미 붕락이 일어나 물보라가
일어나고 있다. 붕락이 생각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니
카메라에 제대로 담기가 쉽지 않다.
빙하가 줄지어 무너져 내리며 장관을 이룬 붕락은
2000년, 2003년에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크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하기 어려운 것은 계절적으로는
겨울인 7월, 시간적으로는 새벽에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빙하가 하루에 2m씩 밀려 내려온다니 작은 붕락은
쉼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리는 빙하)
잡기 힘든 장면을 잡았다.
소리가 들리고 난 다음 카메라를 대면
이미 상황 끝.. 여기다 싶어 카메라를 고정하고 있으면
미동도 없다가 어느 순간 '우르르 꽝!' 하면서
빙하가 무너져 내린다.
빙하가 흰색과 푸른빛을 띄고있는데..
흰색은 내린지 오래지 않은 것이고 푸른색은 흔히
만년설, 만년빙이라고 부르는 눈이 딱딱한 얼음으로 변한 것.
(이번에는 빙하 트래킹을 위해 배를 타고 이동)
엘칼라파테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레노 빙하 트래킹을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아침에 여행사에서 나온 버스를 타니 버스는 호텔을 돌며
투어객들을 태워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대행사를 통해서
예약을 하는데 숙소에서 빙하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
버스는 예약된 호텔을 방문하여 탑승시키는 것 같다.
미니트레킹은 1천500페소 + 국립공원 입장료 260페소.
우리 돈으로 하면 16만원정도다. 비싸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어 여름이 시작되는
12월부터 신청자들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빙하로 덮여 있는 파타고니아의 모습)
하얀 부분이 만년설과 빙하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위치한 곳은
빙하국립공원(Los Glaciares National Park)으로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호수인 아르헨티노 호수가 공원
남쪽에 있다. 공원 북쪽에는 비에드마 호수가 있다.
이 공원은 1937년 만들어졌고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가이드에게 우리말 가르치기)
여행을 하면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일 것이다.
여행지에서 한글을 보거나 우리말을 들으면 또 기분 좋다.
요즘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가끔 일본말로 인사를 걸어오는
현지인들이 있었다. 그럴 때 "난 한국인이다"며 바로 잡아 주기는
했지만.. 국력의 차이라고 인정을 하더라도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가이드가 "Let's go! 어서 가자" 한다. 하여, "어서 가자"는 낮춤말이니까
"어서 갑시다"로 해야 한다는 등 몇 가지 인사말과 높임말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대접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르치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는 일.
여행 다니면서 그 나라 말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고
우리말을 가르쳐 주는 것도 보람이 있다.
(빙하 크레바스)
심연으로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 일 정도로..
순수한..
(페리토 모레노 빙하 트래킹)
무게가 1kg이나 됨직한 투박한 아이젠을 차고
빙하를 오른다. 아이젠이 무거워 걸음을 걷기 쉽지 않긴 해도
무게중심을 잡아 줄 정도로 무거워 태풍이 불어도 날려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빙하 골짜기에 샘도 솟고 개울같이
물도 흘렀다. 조심할 것은 크레바스.. 빙하 트래킹은
특별한 경험이어서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12월부터 여름이라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찬바람이 계속 불어 영하의 기온은 아니더라도
엘칼라파테의 체감온도는 겨울에 가까웠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 ☞ 사진 클릭
(빙하를 넣은 위스키 한 잔)
눈이 내려 쌓이고, 그 쌓인 눈이 얼고,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려 쌓이기를 반복하며 만들어진
시간의 결정체. 모레노 빙하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크기도 크기려니와 하루에 2m씩 호수로 밀려 내려오고 있기 때문.
두 시간에 이르는 투어가 끝날 즈음 가이드들이 미리 준비한
위스키에다 빙하를 캐어 넣은 이름하여 빙하주를 한 잔씩
돌린 후 빙하 트래킹을 자축하는 건배를 한다.
분위기에 휩쓸려 크~아. 색다른 경험이다.
(고사목에 새긴 목각..)
(엘칼라파테 시내 모습)
(평화로운 도시의 모습.. 그 이면에는..)
도시도 평화롭고 시위도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곳의 노동자들의 생활도 녹녹하지만은 않은 듯..
자본주의적 발전이란 모든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많은 빈민들은 그 부자들을 위해서 더 많이
일해야 하지만 생활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
문명도 결국 불평등의 유지인 것을..
(50)
(트래커들과 전문산악인의 로망 피츠로이)
상어의 이빨처럼 하늘을 물어뜯을 듯
솟아 있는 산괴의 중앙에 있는 피츠로이 산은
거칠고 바람이 거센 남부 파타고니아의 최고봉(3405m)이다.
거대한 빙하들 위로 우뚝 솟은 뾰족한 산의 주변에는 언제나
구름과 눈이 흩날리므로 이 산에 최초로 정착한 원주민들은
피츠로이 산을 연기를 뿜는 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악명 높은 강풍에도 목숨을 걸고라도
정상을 오르려는 전문 산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산기슭까지 걸을 수 있어 아름다운 산 피츠로이는
트래커들의 로망. 그곳에 가고 싶었다.
엘칼라파테에서 피트로이가 있는 엘찰텐까지는
200km 조금 넘는 버스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마침 엘칼라파테에서의 마지막 날이 프리데이여서 혼자서라도
가 보려고 현지 여행사에 알아 봤지만, 15시까지 칼라파트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데 칼라파트 도착 시간까지 딱 2시간이 모자란다.
(피츠로이 전망대 코스는 엘찰텐에서 왕복 8km, 고도 770m를 올리는
중급코스) 여기까지 와서 지척에 있는 피츠로이를 못가다니..
꼭 바로 위 정상을 두고 발길을 돌리는 심정이랄까
딱 2%만 부족한 것 같은 심정이어서 더 아쉽게 느껴진다.
전날 18시 막차를 타고 엘찰텐에 가서 새벽 일찍 피츠로이
전망대까지 갔다가 오더라도 첫차(08시)는 도저히 안 되고,
다음 13시 출발 버스를 타고 칼라파트에 돌아오면 16시.
공항으로 직행해도 1시간 반이 부족한 상황.
(엘칼라파테 공항에서..)
아쉬움을 안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피츠로이는 꼭 가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가려고 했던 것도
아니니 마음을 비우자. 언제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때는 다른 곳을 빼더라도 피츠로이 트래킹은
꼭 해 봐야지..
(첫날 묵은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구식)
조금은 불편해도 옛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한편으론 멋있다. 사람이 다 타든 타지 않든 문이 저절로 닫히고
직접 닫아야 스위치가 눌러지는 엘리베이터는 구식이긴 해도
(이곳 샐러리맨들의 아침 시간은 우리와 별 차이 없는 듯..)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파라나 강 하류의 모습)
브라질에서 미나스제라이스 주에서 발원, 파라과이를 거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파라나 강은 길이가 3998km로 남아메리카에서 아마존 강 다음으로
긴 강.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약 1300km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구아수 강과 합류하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3국의
접경지대에 이구아수 폭포가 위치해 있다.
(이구아수에서 묵을 숙소)
(세계 최대의 폭포 이구아수)
넓은 밀림의 대지를 가르던 커다란 물줄기가
어느 한 지점에서 약 300여 개의 폭포로 나누어져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 그 소리가 너무나 웅장해서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굉음을 느낄 수 있다는 이구아수.
가히 세계 최대의 폭포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자연의
위력 앞에서 그 누군들 경외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옛 원주민들이 성지로 추앙했다고 한다.
이구아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에
위치하고 있어서 양국 국경을 넘나들며 관광을 한다.
브라질의 관광 거점은 포스 두 이구아수라는 마을이며,
아르헨티나에서는 푸에르토 이구아수라는 마을에서
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남아메리카코아티(긴코너구리과))
이과수 국립공원은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수천종의 동식물이 이구아수 폭포를 더 빛내고 있는 것 같다.
조심해야 할 동물들도 있는데 바로 이 넉살좋은 코아티다.
먹이를 주지 말고.. 이빨이 사나우니 조심하라고 하지만
이 녀석들은 사람들에게 먹이를 요구한다.
(이구아수 관광지역 내에서는 걷기도 하고,)
기차를 타기도 하고, 배를 타기도 하고,
버스를 타기도 하고, 지붕 없는 트럭 같은
무개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나이아가라,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손꼽히는 이구아수 폭포(Las Cataratas de Iguazu)는 1984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밀림 속에 있는 폭포로
브라질 쪽과 합해 300여 개에 이른다. 폭포의 길이만도 4km에 달하니
(천지가 개벽을 하는 듯..)
남미와 유럽.. 모두 매력이 넘치지만
유럽은 인간이 신을 향해 일으킨 문명이라면
남미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보따리 같다는 생각이다
척박하고 위험하며 갖춰진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많은 남미대륙이지만 그 어느 대륙보다 더 매력적이다.
풀 한 포기 없는 광활한 사막, 만년설과 빙하, 굉음을 내면서
땅이 무너져 내리듯 쏟아지는 폭포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한다. 대자연 위력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경외감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이구아수의 장엄함이여!)
이구아수 폭포 ☞ 사진 클릭
(폭포 샤워)
이번에는 보트를 타고 악마의 목구멍
근처까지 가는 일명 폭포샤워 보트를 탔다.
보트를 타기 전 받은 물에 젖지 않게 소지품은 나눠준
큰 비닐 백에 모두 넣고, 구명조끼를 입고 수경까지 끼고
단단히 준비를 하니 보트는 악마의 목구멍 근처로 다가간다.
악마의 목구멍에 다가갈수록 굉음과 함께 물안개가 몰려온다.
물안개를 뒤집어 써도 수경의 효과는 톡톡히 보았지만 어느 순간
폭풍우가 몰아치듯 안개비가 급습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물벼락을 맞으니 시원하긴 한데 몰골은 완전 물에 빠진 새앙쥐꼴.
이구아수에서 사용하려고 카메라 방수 팩까지 준비했는데
이카 사막에서 카메라를 고장내는 바람에 DSLR을
비닐 봉투로 싸서 도촬하듯 조심조심 찍어 본다.
(폭포를 배경으로..)
물보라가 날려서 폭포에서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악마의 목구멍)
이구아수란 과라니어 즉 파라과이 원주민의 말로
'큰 물'을 의미한다는데 과연 큰물이다. 이구아수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가장 큰 폭포인 '악마의 목구멍'
악마의 목구멍이 엄청난 양의 물을 끝도 없는 바닥으로 쏟아붓고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배경으로 장엄한 폭포가
인상적이었던 영화 '미션'(1986). 영화 포스터에 나온 폭포가
바로 이구아수의 심장인 '악마의 목구멍'이다.
미니기차에서 내려 강 가운데로 향한 철제 다리의
끝이 가까워지자 심한 굉음과 함께 하늘로 솟은 물보라에서
비가 쏟아진다. 끝부분 전망대에 이르자 순간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본 적없고 볼 수 없는.. 오직 이구아수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
큰 입을 쩍 벌려서 사람들의 영혼을 유혹하는 악마 같았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면 물보라가 소나기같이 퍼부을 때는 눈을
뜨기도 힘들지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와 물보라는 환상적이다.
압도당한 정신은 어떤 방식으로도 이 상황을 표현할 수 없다.
카메라로도 그 생생한 모습을 제대로 담을 수가 없었다.
이구아수 악마의 목구멍은 그런 곳이었다.
(돌아 갈 적에는 장거리 심야버스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구아수로 올 때는
항공으로 왔는데 돌아 갈 적에는 특별한 체험으로
18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버스를 타고 간다.
이런 장거리 버스는 버스 내에 화장실이 있으며 조수 겸
교대 기사가 2명 동승하며 2끼의 식사도 제공한다.
장거리 버스의 좌석 등급은
클라시꼬, 세미 까마, 까마, 프레미움 까마 등으로
나뉘는데 클라시꼬는 한국의 시외버스 좌석, 세미까마는
고속버스, 까마는 우등 고속 그리고 프레미움 까마는
비행기 비즈니스 석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장거리 버스는
대부분 2층 버스로 2층 전체에 프레미움 까마 좌석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보다는 2층엔 까마석, 1층엔 프레미움
까마석으로 구성되는 게 일반적이다.
버스는 상당히 고급기종이다.
(18시간 동안의 버스 이동)
호수 위에 뜬 달이 잠시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야간 장거리 버스의 낭만을 느껴보려 했는데 간간히 보이는 불빛만 보다
아르헨티나는 고속도로 주행 최고속도가 130km.
산티아고에서는 MAPS.ME가 작동을 안 해서 숙소도 못 찾고
(산텔모 거리, 진귀한 물건이 즐비한 벼룩시장)
5월 광장에서 레사마 공원을 연결하는
'없는 것 빼고는 다 판다'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갖가지 신기한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다. 남미의 영웅
'체 게바라'를 활용한 상품부터 용도를 알 수 없는
진귀한 물건들까지 구경할 만한 것들이 너무 많다.
오늘은 이 길을 세 번이나 지나갔으니..
(아르헨티나 하면 탱고, 축구, 그리고 마테차..)
아르헨티나 특유의 전통 중 하나로 마테라는 것이 있다.
마테는 작은 통에 마테 잎을 넣고 물을 부어서 봄빌야라고 불리는
빨대로 빨아 마시는 전통 차. 마테 통에 달린 하나의 마테 빨대로
여러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함께 마신다. 남이 빨던 빨대를 사용하여
마시는 것이 비위생적으로 보이지만, 마테는 돌아가면서 함께 마시면서
동질감과 우의를 느낀다고 한다. 마테는 혼자서 마실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함께 나누어 마시며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고
환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마테는 식당 메뉴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차이면서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인 음료'라 할 수 있다.
마테는 케추아 인디언의 말 Mathi에서 유래하는 '작은 호박'이라는 뜻.
작은 호박이 마테를 마시는 통이고, 그곳에 예르바 마테(yerba mate)라고
하는 마테 잎을 넣고 더운 물을 부어서 빨아 마시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성행한 마테는 티백 형식으로 만든 것이었지
아르헨티나에서 마시는 식의 마테 꼬시도(찻잔에 잎을 직접 넣은
마테)도 아니었고, 마테 꼰 봄빌야(빨대로 마시는 마테)도
아니어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마시는 마테 문화는
전혀 전달되지 못했다 할 수 있겠다.
남미에서 가장 매혹적인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 사진 클릭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함부로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예정했던 다른 여행지들을 포기하고 이곳에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기에.
통제할 수 없는 열정에 종종 휘말리는 사람들은 이 도시를 피해 갈 것.
이 도시에 빠져 외사랑을 시작할 수 있기에..
(아르헨티나 정치 경제 문화의 1번지)
부에노스(Good) 아이레스(Air)는 좋은 공기.
1510년 멘도사가 개척한 이래 시가지는 1534년~1536년에
창건되었으나 인디오의 공격을 받아 1541년에 방치되었다가,
1580년에 재건되었다. 파리를 모델로 '5월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
도로로 정비했다. 18세기에 식민지 수도가 되면서부터 크게 발전하여,
1810년 이후 독립전쟁 때는 요새로써 독립 쟁취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80년 연방직할지구가 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주민은 주로 이탈리아계와 에스파냐계 이민의 자손이다.
5월 광장을 중심으로 1873년부터 건립하기 시작한 로코코 양식의
핑크빛 대통령궁 Casa Rosada를 비롯하여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스페인 총독부, 국방부, 중앙은행, 경제인협회, 국세청,
은행 등이 있고 코리엔테스 가로에는 은행 상사,
플로리다 가로에는 상점이 집중되어 있다.
팜파스 평원으로 뻗는 철도와 도로도
이곳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5월 광장', 이 도시가 품고 있는 과거의 상흔은
대통령 궁 앞 넓은 광장이 바로 '5월 광장'이다.
1810. 5. 25. 이 광장에서 자치정부 설치와 독립선언을 했고
수많은 시민들이 독립의 기쁨에 환호했던 5월 혁명이 있었다.
요새 광장, 총리 광장 등의 옛 이름을 거쳐 이 혁명이후로
'5월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혁명 1주년을 기념해 세운 5월의 탑이 우뚝 서 있다.
내 자녀들은 어디에 있는가?
군부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7년 4월 30일,
이 광장에 14명의 어머니가 비델라 대통령에게 아이들의 행방을 묻는
그러나 이러한 조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머리에
이렇게 실종자의 어머니들은 대다수의 무관심 속에 '오월광장 어머니회
그 후 말비나스 전쟁의 패배로 군사정권이 퇴진하고 1983년 12월에
알폰신 정부가 들어서자, '오월광장 어머니회'는 민주화의 상징이 되었다.
이들은 1986년 군사정권의 인권탄압에 책임있는 상당수의 지휘관에게 책임을
이들을 의미하는 흰 수건 그림이 바닥에 그려져 있다.
(새 분비물(?) 공격을 당했으나..)
일행 중 한 분은 산티아고에서
핸드폰을 날치기 당하고, 또 한 분은 이 곳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핸드폰을 날치기 당했다.
그들의 수법은 간단하다. 나이가 들어 보이거나 혼자 다니는
어스름 녘 숙소로 돌아가고 있는데
기분 나쁘게 진득한 물질이 날아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중년 여인 2명이
달라 붙으며 이물질을 닦아 주겠다는 것 아닌가.
그들이다 싶어. 큰 소리로 "No Touch!"하며
그들의 접근을 막고 무사히 빠져 나왔다.
유럽 여행시에는 돈이 든 지갑을 특히 조심해야 하고,
남미에서는 지갑은 물론 핸드폰이나 카메라 같은
고가의 물품도 조심해야 한다.
(엘 아테네오(El Ateneo) 서점)
이렇게 아름다운 서점이..
엘 아테네오는 1919년 오페라극장으로 문을 연 후
1929년부터 영화관으로 사용되어 오다 2000년부터 서점으로
리모델링하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중 하나가 되었다.
극장의 의자들을 떼어 내고 책장을 설치하고 무대는 작은 카페로
개조하여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서점으로 새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엘 아테네오는 유명세만큼이나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구석구석에 독서삼매경에 빠진 사람들,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카페에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여행의 여백을 만드는 사람들.
책이 배경이 되기도 하고 주인공이 되기도 하면서 서점을 찾은
세계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무언의 소통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엘 아테네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물의 구조나 진열된 책, 멋진 조명이 아니라
구석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
(플로라리스 헤네리카(Floralis Generica))
나시오네스 우니다스 광장에 있는
특이한 조형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징이 된
Floralis Generica. 건축가 Eduardo Catalano가
18톤의 스테인리스 스틸과 알루미늄을 이용해 제작했다고 한다.
태양이 뜨면 피고 해가 지면 접히는 금속으로 된 꽃.
환경과 과학, 예술의 절묘한 만남 같다.
(에비타! 에바 페론 여기에 잠들다)
아르헨티나에서 유명하다는 사람들은 모두
모였다는 이곳에서 가장 찾는 사람이 많은 묘가 바로
'에비타의 묘. 에비타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자라
배우가 된 후 페론 대통령의 부인이 된 에바 두아르테의 애칭.
영부인이 된 이후에도 가난한 민중을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했던 이 여인은 여전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골뜨기 가출 소녀, 삼류 단역배우와 같은 밑바닥 삶을
전전하다가 페론과 결혼한 후, 페론 못지않은 카리스마와 열정으로
1949년까지 페론 정부의 2인자가 된 에비타는 노동, 보건, 자선 분야의 일을 맡아
그녀의 사망은 아르헨티나를 비탄 속에 빠트렸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한 달 동안
그러나 1955년 페론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군부는,
전시된 에비타의 시신이 노동자들의 봉기에 상징으로 이용될 것을 우려하여
(죽음과 삶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레콜레타)
수도원이란 뜻을 가진 레콜레타(Recoleta).
묘지 바로 옆에 레콜레 수도회의 수도원이 있다.
산 마르틴 광장에서 약 1km 정도 북서쪽에 위치한 최고급 묘지로
레콜레타는 구역 이름이지만 에바 페론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 노벨상 수상자를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사진의 주인공들은 세상에서 제일 욕심 많은 부인과
그럼 자식들이 이런 무덤을 만들었단 말인가?
(거리에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모습)
(마라도나의 보카주니어 축구경기장)
아르헨티나는 신의 손 '마라도나'의 나라.
축구역사에서 전설적인 선수였던 디에고 마라도나가 뛰었던
보카 주니어스 홈구장.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남성들이 열광하는
보카 지역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1905년 창단된 이 클럽은 상류층에게
경기장은 약 6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보카주니어 팬들은 가족, 학교,
경기가 없는 날이어서 구장 내부를 구경하려 했더니
스타디움 유료투어를 신청하라고 한다.
마라도나와 한 컷..
(보카 지구 카미니토)
강렬한 원색의 집들이 매력적인 곳.
보카 지구에 들어서자 베란다에 나와 환영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곧 카를로스 가르델, 에비타, 마라도나.
보카 항 근처에서는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진 집들이 늘어선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빨강, 파랑, 노랑 등 좀처럼
건물 외벽에 쓰지 않는 원색을 사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예전 보카 항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그들은 집을 지어도
도색을 위한 페인트를 구입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선박에 사용하고 남은 원색 페인트를 구해 건물 외벽에 칠을
했다고 한다. 카미니토 지역은 탱고의 발상지로 유명하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탱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이곳 선술집에서 보카 항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는데..
("서울서 왔느냐?"고..)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나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이런 사람 만나면 기분이 좋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인 것을 알게 된다.
(보카 지구에서 탱고를..)
탱고하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하면 탱고가 태어난 라 보카를
빼놓을 수 없듯 거리에는 반도네온의 슬픈듯 격정적인 탱고의 선율에
탱고의 발상지인 라 보카는 위험하기로 이름 높은 동네지만
활기로 반짝이는 거리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집들과 탱고를
공연하며 사람들을 끄는 식당들, 거리의 화가들로 생기 넘친다.
멋진 모습이다 했더니 관광객들을 상대로 포즈를 잡아 주는 것.
일행들의 성화에 못 이겨 떠밀리듯 나도 포즈를 잡아 본다.
이날따라 반바지를 입어서 폼은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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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공연을 보러간 Cafe Tortoni)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 토르토니는
이 도시 명사들의 단골 카페다. 1858년에 문을 연
이 카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화계의 과거이자 현재다.
여덟 살에 단편 소설을 쓴 천재 작가 보르헤스가 즐겨 찾던 곳..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장으로 일했던 보르헤스는 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으나 결국 책읽기로 시력을 잃고 말았다.
탱고 음악에 가사를 붙인 탱고 칸시온의 개척자이자 전설적인 가수
까를로스 가르델과 시인 알폰시나 스토르니 역시 이 카페의
단골 고객, 아인슈타인, 가르시아 로르까, 힐러리 클린턴도
이곳을 찾았다고 하니 이 기품 있는 카페에서 마시는
꼬르타도 한 잔은 지적 허영심을 가볍게 충족시켜준다.
카페의 탱고 공연 역시 명성을 잃지 않고 있다.
(춤추는 슬픈 생각 탱고는 여행과 닮았다)
잠시 뜨겁게 사랑하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모습이..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까를로스 가르델의 명곡 '뽀르 우나 까베사'에 맞춰 탱고를 추던 알 파치노가
세상에 이토록 슬프고 격정적인 춤이 또 있을까.
영화 '해피투게더'의 양조위가 일하던 '바 수르'에서 즐기는
탱고든, 최고급 백화점 갈라리아스 퍼시피코의 대형공연이든,
밀롱가의 보통 사람들의 탱고든, 이 도시에 와서 탱고를 보지 않고
떠난다면 그건 범죄다. 이 도시에 온 많은 이들이 탱고에 빠져
과거를 잊고 새 삶을 시작했다. 탱고는 여행과 닮았다.
20분간 뜨겁게 사랑하고 헤어지는 밀롱가의 탱고처럼
길 위에서 우리는 순간에 마음을 열고
미련을 남기지 않고 돌아선다.
(7월 9일 거리(Avenida 9 de Julio))
아르헨티나의 독립과 통일을 기념하는
7월 9일 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중심 대로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폭 144m의 도로이며
도로 한복판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제정 400주년을 기념하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현재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가는 시민들의
낙천적인 표정에서 화려했던 과거의 흔적이 엿보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장 상징적인 '7월 9일' 거리의
고층빌딩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노동자들과
서민의 성녀 에비타의 모습도 보인다.
(단장중인 한인마을)
오늘은 꼭 하루 중 오후 3시 같은 기분이다.
일을 시작하기에는 늦고, 그렇다고 하지 않기에는 시간이 많은..
오벨리스크를 보고 콜론 극장까지 갔다. 이제 어디로 갈까?
10km 밖에 있는 한인촌까지 걸어가서 점심으로 얼큰한 짬뽕
한 그릇하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구 반대편에서
짬뽕을 먹긴 먹었지만 갈 때도 택시를 타고 올적에도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니 기사가 한동안 막 뭐라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인촌은 외곽이라 치안이 많이 불안해 보이긴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얼마나 볼거리 많은 도시이고,
300km 밖에는 축구의 전설 마라도나가 자신의 후계자라고
선언한 리오넬 메시와 남미 전체의 혁명을 위해 볼리비아로 떠났던
그런데.. 왜 한인촌으로 발길이 향했을까?
이런 것이 인생이고 여행이겠지 뭘
(또 시간이 더 생겨 스타벅스에서 망중한을..)
(오늘 출발을 하긴 한다)
갑자기 파리 공항 관제탑 파업이라니..
제 날짜에 갈 수 있는 표를 몇 장 밖에 확보하지
못했다고 하여 일찌감치 귀국일정이 바쁜 선생님들한데 양보하고는
(지구의 반대쪽을 가다)
어느 곳이 새롭지 않겠냐만 남미는
더 그랬다. 마추픽추와 쿠스코에서는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 신과 인류가 공동으로 빚은 작품이라고 얼버무리며
갈증이 날 때 소금물을 마신냥 더 많은 궁금증을 안고 돌아서야 했고,
황량한 우유니 사막 5,000m를 오르내리며 고소와 모래바람과의 싸움은 극단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파리보다 덜 세련되었지만
슬픔에 빠져들게 하면서도 희망을 주는 것 같았다.
여행! 떠난다는 것만으로 설레고 아름답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있다."고 마르셀 푸르스트는 말했고,
아나톨 프랑스는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대척점에 있는 남미는 인생에서 큰 실패를 했거나 큰 결단을 위한 사람들만
분모는 공통이어서 우리와 별반 차이없는 곳.
당신과 나의 인생이 그렇듯 말이다.
1/4 페루 ☞ 사진 클릭
2/4 볼리비아 ☞ 사진 클릭
3/4 칠레 ☞ 사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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