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산과 아드리아 해가 아름답게 만나는..

2017. 1. 10. 21:47여행/여행기




산과 아드리아 해가 아름답게 만나는, 몬테네그로
(유고연방 해체 후에도 신유고 연방으로 남았던 나라)





인간이 전쟁을 혐오하지만
전쟁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다고 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핵무기라는 인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가공할 무기의 위력 앞에 공포와 위기를 느끼고,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이루려고
힘쓰고 있으나,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 없는 날이 없을 정도로 전쟁은 계속 중이다.
우리도 전쟁과 멀리 있지 않다. 딛고 있는 발밑에서 전쟁은 꿈틀거리고 있다. 
전쟁의 참화를 겪은 발칸의 세르비아, 보스니아를 거쳐 오는 동안
마음 한켠을 짖누르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떨쳐 내기 어려웠다.
생각하지 않고, 외면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잠시 어두운 생각을 떨쳐 버리고,
곧 펼쳐질 눈 시리도록 파란 아드리아 바다와 유럽의 상징
빨간 기와지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을 즐겨야겠다.
중세 도시 코트르와 작은 두브로브니크라 불리는
부드바는 어떤 모습일까.
카메라부터 챙겨야겠다.






(보스니아에서 몬테네그로로..)

트레비네를 출발한지 30분 정도 달렸을까
벌써 몬테네그로 국경이다. 오늘은 3국의 국경을 번갈아 넘어야 할 것 같다.
솅겐조약에 가입한 나라들도 아니면서 쉽게 국경을 통과시켜 주니 다행이다.
국경도 표나지 않고 검문소도 장난감 같이 느껴진다. 





(몬테네그로(Montenegro))

몬테네그로(Crna Gora, 문화어: 츠르나고라)는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의 아드리아 해 연안에 자리 잡은 공화국이다.
서쪽으로 아드리아 해와 크로아티아, 북쪽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동쪽으로 세르비아, 남동쪽으로 코소보, 남쪽으로 알바니아와 국경을 접한다.
국호 Montenegro는 이탈리아어로 '검은 산'이란 뜻의 로브첸 산을 가리킨다.
수도는 론리 플래닛에도 자세하게 소개되지 않은 포드고리차이며
옛 왕도(Prijestonica, 프리예스토니차)는 체티녜이다.

몬테네그로 역사는 9세기 비잔티움 제국의 제후국이었던
두클랴에서 비롯된다. 초기 두클랴는 보이슬라블례비치 가가 지배했다.
1042년에 보이슬라프 왕은 즉위 25년 만에 바르에서 비잔티움 제국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두클랴는 독립을 이루었다. 두클랴는 보이슬라프 왕의 아들인
미하일로 치세(1046년~1081년)와 보딘 치세(1081년~1101년) 시기 전성기를 누렸다.
11세기부터 이 나라는 제타 공국으로 알려지게 된다. 제타 공국은 라슈카와 통합하여
츠로노예비치 왕조 시대부터 '츠르나고라' 혹은 베네토어로 '몬테네그로'로 불리게 되었다.
중세 말 이래로 공국이었던 몬테네그로는 1878년에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을 인정받았다.
1918년부터 몬테네그로는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되었고, 유고 연방이 해체된 후에도
세르비아와 신유고연방으로 남았다. 2006년 5월 21일 실시된 독립국민투표에 따라
몬테네그로는 그 해 6월 3일에 독립을 선포했다. 독립 당시의 국명은
몬테네그로공화국(Republika Crna Gora)이었으나,
2007년 10월 22일 몬테네그로로 국명을 바꾸었다.
국토 면적은 전라남도보다 약간 넓은 13,812km²이며,
인구는 전라북도 전주시보다도 적은 644,578명(2016년)의 작은 나라.
명목 GDP는 6,373$ (2015년)이고 통화는 유로화(EUR)를 사용한다.
국민의 대다수(72.1%)는 동방정교를 믿으며
무슬림이 19.1%, 가톨릭 3.4% 순이다.









(눈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과 아드리아 해)

몬테네그로로 넘어와 야트막한 산길을 달리니
전방으로 흐릿하게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자 눈이 시리고 가슴까지 시원할 정도로
청명한 하늘과 파란 바다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지중해 페라스트 마을을 지나..)

두 개의 인공 섬으로 유명한 페라스트 마을을 지난다.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있는 성 조지 섬(st. gerge island)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지만, 성모 섬(our lady of the Rocks)은
페라스트 마을에서 보트 투어로 들어가 성당까지 둘러볼 수 있다.
섬에는 흰 등대와 작은 성당이 있고 성당안에는
예배당과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성모 섬에 전하는 전설은,
1452년 2명의 베네치아 어부 형제가 이곳을 지나다
조난을 당했는데 그 때 그 자리에서 icon(성모상, 성화)을 발견하여
그로부터 550년 동안 돌을 실어 날라 이곳에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매년 7월이면 남자들이 각자의 배를 타고 와서
이 섬 옆에 커다란 돌을 던진다고 한다.
  그래서 섬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코토르 올드 타운으로 들어가는 서문(Sea Gate))

코토르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중에서
가장 중요한 통로인 서문. 바다를 향해 있어서 Sea Gate라고 한다.
구시가지의 정문인 이 바다의 문은 코토르가 베네치아 제국이 코토르를
통치하던 시절(1420~1797년)에 지어졌다. 베네치아의 상징인 날개달린 사자가
벽에 새겨져 있는데 이런 사자 부조는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문 위에 새겨진 숫자는 1944년 11월 21일은 코토르가 유고 연방으로 편입되면서
나치로부터 해방된 날이고, 그 위의 문장은 "우리는 남의 것을 원하지도 않고
우리 것도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라는 티토 대통령의 인용문이다.

코토르 올드 타운 서문 입구 관광안내소에서
한국어로 된 지도도 구할 수 있다. 근래 크로아티아를 찾는
여행객이 늘면서 인근인 코토르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입구의 높다란 벤치가 특이하다.









(문을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올드 타운이..)

독특한 고성곽과 구시가지로 이루어져 있는
코토르는 로마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다는 항구도시로
몬테네그로 코토르 만에 위치하고 있다. 베네치아공화국의 오랜 통치를 받은 결과
도시 곳곳에서 베네치아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들이 세워져 있어 올드 타운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시계탑 앞에 세워져 있는 뾰족한 탑 같은 기둥은 수치의 기둥으로
죄인들을 묶어 두어 수치를 느끼게 했던 곳이라고 한다.
시계탑과 붙어있는 '피마 궁전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피마 가문이 살았던 저택으로 코토르에 남아있는 궁전 중
가장 아름다운 궁전이다.





(성 트리폰 성당)

코토르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가톨릭 성당이며
내부에는 수호성인 트리폰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62)





(그늘에 앉아서 쉬거나, 갈 길을 찾아보거나..)







(지진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잘 복구하여..)

1979년 몬테네그로 해안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올드 타운의 건축물 50% 이상이 파괴되었으나, 이후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그 결과 잘 중세도시 전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고..











(올드 타운은 전략적 요충지)

올드 타운 뒤쪽은 바위산이 병풍처럼 쳐져있고
해자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면 예전부터
전략적인 요충지였다는 것이 짐작된다.







(전망대 중턱까지라도 가보려 했으나..(빌려온 사진))

부족한 것은 시간..
일리리안 요새(전망대)에서 아드리아 바다와 어우러진
구시가지 조망이 장관일 것 같은데 갔다 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산중턱까지라도 올라갔다 와야겠다고 나섰는데
수문장 같이 길목을 지키고 있는 요금소.. 입장료까지 내고 중간에서 돌아오기는
좀 그런 것 같아 아쉽지만 입구에서 발길을 돌렸다.
위 사진은 일리리안 요새(전망대) 올라가는 길,
아래 사진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올드 타운











(골목은 이동의 공간.. 그 때 그 시절로까지 데려다 준다)









(진열장의 재미있는 모습들)

고양이도 많고, 자세히 보면 고양이 형상의
그림이나 마스코트가 많이 보인다.

















(중세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골목풍경)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만나는 모습들..
무작정 골목길을 따라 걷는 여행객들도 보이고
지도를 보며 일일이 골목길을 찾는 여행객도 보이지만
얼마되지 않아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구경하기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을 느낄 것이다. 골목길만 걷는다면 말이다.
코토르는 다른 곳보다 유난히 고양이가 많은 곳 같다.
상점에도 골목에도 고양이가 종종 눈에 띈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난 루카 광장의 성 루카 교회)

성 루카교회는 12세기 말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1979년 일어난 지진으로 코토르가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그 지진에도 손상되지 않고 버텨준 유일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1195년 처음에는 가톨릭 성당으로 역할을 하다가 전쟁으로 인해
정교회가 들어오자 정교회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으나 두 종파가 같이
사이좋게 교회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내부에는 제단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가톨릭, 하나는 정교회용이라고 한다. 교회 내부에는
원래의 프레스코화가 아직도 남아있다.









(광장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기념품을 만들거나)





(회전목마의 원형(?))

더 세게.. 힘을 더할수록 아이들의 재미는 더 하겠지?









(부드바 가는 길의 풍경)

재미있는 것은.. 이 먼 나라와 일본 간에 몇 년 전까지도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 이름하여 일본-몬테네그로 전쟁.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vs 러시아. 서로 한반도와 만주를 차지하려고 전쟁을
일으키자 러시아 제국의 동맹국이었던 몬테네그로 공국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일본은 몬테네그로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라(?) 선전 포고를 무시했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공식적으로는 전쟁 중이었지만 양국 간에는
러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양국 간에 단 한 차례의 교전이나 무력 충돌도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할 때 러시아와 일본이 몬테네그로를 참가시키지 않는
바람에 공식적으로 일본과 몬테네그로 간에는 여전히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태로 몬테네그로가 제1차 대전 후 신생 국가였던 유고 연방으로 합병되면서
일본과 몬테네그로 두 나라 간에는 아무런 종전 조약도 체결되지 않았던 것.
이후, 유고 연방이 해체되면서 몬테네그로가 독립을 선언하자,
그제서야 일본과의 종전 조약 문제가 부상되면서
2006년에 종전 조약을 체결, 비로소 전쟁이 종결되었다.
하긴, 남북 간에도 전쟁 중 잠시 휴전 중이니..









(부드바 (BUDVA))

몬테네그로 남쪽 해안에 위치한 해안도시.
몬테네그로 관광의 가장 중심 지역.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의 아들로 누이동생 에우로페가 제우스에 의해 납치되자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누이동생을 찾으러 방방곡곡을 헤맸지만 누이동생을 찾지 못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나중에 테바이의 왕이된) 카드모스에 의해 도시가
처음 건설되었다고 한다. 부드바는 2500년의 역사를 가진 
 아드리아 해 연안의 도시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19년과 1979년 두차례의 큰 지진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복구를 통해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재현했다고 한다.
부드바 올드 타운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베네치아 양식으로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베네치아 공화국에 400년 동안
통치를 받은 흔적이 아니겠는가!





(부드바 올드 타운으로 들어가는 문)





(직진하면 바로 비치로 통한다)















(몬테네그로에서 여름이 가장 뜨거운 도시, 부드바)

러시아인들이 지은 호텔과 카지노가 곳곳에 세워지고,
할리우드 스타들도 이 나라에 별장 사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특히 미녀들이 엄청 많다는데.. 유럽에서 미녀들이 많은 순서로는
일반적으로 헝가리, 체코,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옛 오스만트루크왕조 때 술탄의 妾들은 죄다 발칸반도 출신
미녀들이었다고 전해진다.

올드 타운 안에 오밀조밀하게 나있는 골목길과
저마다 위치하고 있는 카페, 바, 레스토랑, 기념품점들..
밀짚 파라솔 밑으로 펼쳐져 있는 백사장은 아드리아 바다의
따가운 햇살을 실컷 맞아도 좋을듯하다.





(발레리나 (일명 부드바의 댄서))

Mogren Beach 가는 길에서 만난 유명한 발레리나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이 시내를 활보..)

생각보다 치안이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현지 여인들은 한밤중에도 외길을 혼자 걸어 다닌다고 한다. 
 이름난 관광지인데도 치안유지가 잘 되는듯..







(산타 마리아 교회(Santa Maria in Punta))







(아드리아 해 저 건너편에 이탈리아가 있겠지)













(골목을 기웃거리며.. 중세로의 시간 여행)











(130)









(걷거나 쉬거나 여행..)











(삶도 여행도.. 아름다운 것)

성벽 안에서 사는 그들의 일상이
여행자에게는 놓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여행은 삶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또 다른 저편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며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













(햇살이 따가운 시간 성벽길에 올랐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 중세성벽을 걸어볼 수 있겠는가!
성벽 길이 좁아 걷는 방향은 시계반대방향으로 일방통행(?)
지금은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성벽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가끔 지나가는 구름이 태양을 가려주기도 하고
시원하게 펼쳐진 아드리아 바다가 마음까지 상쾌하게 해주지만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은 별개..
붉은 기와지붕들이 그림 같다.









(성벽 길에서 내려다 본 풍경들)

400년 동안 베네치아공화국의 지배를 받은 증거(?),
구시가지엔 베네치안 양식의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유명 관광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불편한 것도 많을 듯..)









(부드바 마리나)





(물리적인 거리는 가까워도 각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레페테인(Lepetane)-카메라리(Kamenari) 페리)

레페테인에서 카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
아드리아 바다 해안은 피요르드 지형이 많아 내륙 깊숙이까지
지중해를 이루기도 하는데 이곳도 그런 곳. 도로는 해안선을 따라
빙 에둘러 가지만 페리를 타면 카메라리까지 거리가 많이 단축된다.
레페테인(Lepetane) 항구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차를 탄 채로 승선한다. 요금은 승용차 1대 4.5유로,
자전거는 1유로, 사람은 공짜. 정말 싸다.









(몬테네그로를 잘 대변하는 모습들(빌려온 사진))

이제 곧 국경인데..
전라북도 크기 밖에 안 되는 몬테네그로이지만
그마저도 일면만 보고 크로아티아로 넘어 가려니 아쉽기만 하다.
수도 포드고리차는 론리 플래닛에서 조차 수도의 여행정보가 소개되지
않을 정도여서 그렇다 치더라도, 국경인근 보스니아에서 트레비네에서 잠입하듯
해변마을 헤르체고 노비로 들어가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코트르, 부드바까지
여행한 것이 전부이니 험준한 산악이 대부분인 몬테네그로의 다른 한 면만 본 것 같다.
타라 리버 협곡 정도는 가봐야 하는데 말이다. 몬테네그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나라인데다 인근 두브로브니크을 여행하면서 등달아 알려진 면이 있으나 
관광자원을 활용하여 관광산업을 발전시켜야 할 것 같다.

몬테네그로는 여러모로 세르비아와는 가까운 나라다.
지금은 母語인 몬테네그로 어를 공용어로 헌법에 명시하고 있지만
과거 세르비아 어를 사용하였고, 유고연방이 해체될 때에도 끝까지 남아
세르비아와 함께 신 유고연방(세르비아-몬테네그로 연방)을 구성했을 정도로
세르비아에 우호적이었으나 정작 세르비아인들은 몬테네그로 인들을 차별하였다.
그러자 몬테네그로 인들은 국민투표를 거쳐 2006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했다.
그 바람에 세르비아는 바다를 모두 잃어버리고 내륙국으로 전락했다.
몬테네그로가 독립하면서 내륙국이 되어버린 세르비아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제 우리도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고, 통합을 이루어 
우리의 아들딸들이, 바닷길로, 하늘 길로, 중국을 러시아를 거쳐
전 세계로 웅대한 꿈을 펼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남북분단으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누구일까?
우리 평화를 이야기하고 통일을 만들어 가자.
왜 통일비용만 생각하고 겁 먹는지 모르겠다.
  통일편익은 통일비용에 비교할 바 아닌데..









(눈부신 아드리아 해)

아드리아 해, 해를 등지고 내려 갈 때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였는데 올라 올적에는 황금빛으로 빛난다.

검은 산'이라는 뜻의 몬테네그로는 그 이름답게 국토의 90%가
산악지대이며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안의 절경을 107km 정도 끼고 있다.
일찍이 시인 바이런이 "땅과 물의 가장 아름다운 조우"라 부른 땅이기도 하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우리에게는 낯선 나라이지만 해양관광과
레저 등 휴양지가 잘 발달되어 있고 물가도 저렴하여
여러모로 여행하기 좋은 나라인 것 같다.







(Franjo Tudjman Bridge)

보이는 도시가 아드리아 해의 진주로 불리는
브로브니크. 오늘은 그냥 지나왔는데 내일 두브로브니크에 간다.
크로아티아의 상징이라는 두르로브니크는 어떤 모습으로 맞아줄까?
어떤 여행자는 고성에 둘러싸인 붉은 기와지붕에 이끌려
한달음에 왔다던 곳 아닌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다시 크로아티아에서 보스니아로..)

오늘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몬테네그로로,
몬테네그로에서 크로아티아로, 이번엔 크로아티아에서 보스니아로..
같은 도시는 아니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

전망 좋은 숙소에서 여장을 풀었다.
드브로브니크 가는 도중에 물가 싼 곳에서 하루 머물다
가는 곳 정도로 알고 왔는데 와 보니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맘을 사로잡는다. 안온함에 마음이 무장해제당한 기분이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만큼 네움의 역사가 녹녹한 것은 아니다.
세계의 화약고 발칸반도에서 이런 평화를 느끼다니 아이러니다.
전쟁도 평화도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유고 연방시절 티토 대통령이 민족 통합을 위하여
크로아티아 땅이었던 네움을 내륙국인 보스니아가 해양으로 통할 수 있게
보스니아에 주어 버린 것. 네움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국토가 양분되어 버린
크로아티아는 네움을 되찾아 보려 하지만 보스니아가 응해 줄리는 만무한 것.
그래서 크로아티아는 바다로 약 2.4km나 되는 다리를 놓아 국토를 이으려고
돈도 마련하고 교량 설계까지 마쳤는데.. 보스니아는 아드리아 해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인 24㎞ 남짓한 해안선이 교량 건설로 접근권이 방해받을 수 있다며
대형 선박이 보스니아 해안을 진출입 하는데 지장 받지 않도록
교량의 상판 높이가 최소 60m는 되어야 하고, 교각 간 거리도
최소 500m가 되게 하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노을과 불빛이 일렁이는 네움의 밤바다)

보스니아에서의 이틀째 밤이자 마지막 밤을
아름다운 노을과 불빛이 일렁이며 춤추는 밤바다에서 낭만을 즐긴다.
작은 나라 몬테네그로는 스쳐지나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지만 아름다운
해변과 그림 같은 산, 고대 유적지 등 볼거리가 많아
짧은 시간 여행한 것에 비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은어로 속삭여 주던 그 날 네움의 그 밤바다와 함께..

여행은 낯선 만남을 기대하는 설렘이다.
떠나기 전의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좋고
돌아와서는 아로새긴 추억과
그리움이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