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황제가 사랑한 도시 스플리트

2017. 3. 5. 20:05여행/여행기





황제가 사랑한 도시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달마티안의 황홀한 꽃)




인구는 우리의 1/10,
국토 면적은 우리의 1/4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
아드리아 바다만 있어도 아름다운데, 빨간 지붕만 봐도 아름다운데,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아드리아 파란 바다와 빨간 지붕이 어울린 모습,
절정의 모습은 수많은 문인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은 두브로브니크 아닐까!
그기에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는다는
울창한 숲과 호수로 이루어진 플리트비체, 그 같은 국립공원이 무려 8개,
그리고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고대와 중세의 유적. 당시의 역사는
때로는 아픈 상처였을지라도 크로아티아는 분명 축복받은 나라다.
아드리아 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에서 감동도 벅찬데 이번에는
플리트비체 가는 길에 황제가 사랑한 도시 스플리트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기에 황제가 여생을 보내려
이곳에 별궁까지 지었을까?





(크로아티아 공화국)

크로아티아(공식 명칭은 크로아티아 공화국)는
남동유럽에 속한 나라로 발칸 반도 판노니아 평원의 교차점에
자리 잡고 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크로아티아를 흐르바츠카라고 지칭한다.
국토의 면적은 56,542km². 인구는 4,267,558명(2015) 수도는 자그레브.
동쪽과 남쪽으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쪽으로 슬로베니아·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쪽 지중해의
일부인 아드리아 해안에는 수많은 섬이 있다. 해안은 지중해성 기후이고
내륙 지역은 서안 해양성 기후이다.

1918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로부터 독립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직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
편입, 1991년 6월 25일 유고 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해 주권 국가가 되었다.
정부 형태는 단일 국가 의원 내각제 공화국이며 주요정당은 사회민주당,
크로아티아사회진보당, 크로아티아민주연합, 크로아티아농민연합 등이다.
대통령은 의례적인 역할만 하고, 실질적인 권한과 행정은 총리가 한다.

주민은 크로아티아인이 90.4%로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그 밖에 세르비아인이 4.5%, 보스니아인이 0.5%, 기타 민족(우크라이나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헝가리인 등) 순. 크로아티아 전쟁과 보스니아 전쟁
이후 세르비아인 비율은 낮아지고 크로아티아인 비율은 높아졌다. 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크로아티아인들이 보스니아 전쟁을 피해
다수 유입하고 크로아티아에 거주했던 세르비아인들이 세르비아와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언어는 크로아티아어가 공용어이며 폭넓게 사용(96%)되며
세르비아어, 보스니아어, 헝가리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러시아어,
영어 등이 일부 쓰인다. 크로아티아는 지중해 연합의 창립 회원국이며
2013년 7월 1일 유럽 연합(EU)에 2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인당 GDP(2014년) 13,561$, 통화는 쿠나(HRK)를 사용한다.







(은가루를 뿌린 듯 금가루를 뿌린 듯..)

크로아티아 본토(?)와 떨어진 두브로브니크를 가느라
그저께부터 몬테네그로 국경을 몇 번이나 넘나들다 이제 스플릿을 가기 위해
크로아티아 본토에 들어섰다. 아드리아 해를 왼쪽으로 끼고 해안선을 따라
오르는 길은 눈이 시리도록 파란 아드리아 해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때로는 황금빛으로 황홀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언덕 위의 조그만 교회를 지나자)









(수경 재배를 하는 넓은 평야가..)

크로아티아로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이색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푸젠(Opuzen) 지역으로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에서 흘러 온 네레트바 강이 이 지역에서
옥토를 만들었다는데.. 마치 미나리 밭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물 위에 밭을 띄워 놓은 것 같다. 자세히 보니 키 작은
오렌지 나무들이다. 수경재배 지역이라 한다.





(우리 시골집인 줄 착각하게 하는 모습도 보이고..)







(네레트바 강 하류.. 여긴 바다같다)





(드디어 스플리트에..)

두브로브니크에서 거의 3시간 반을 달려
달마티안 지역의 황홀한 꽃이라고도 하고 황제가 사랑한 도시라고
부르는 크로아티아에서 수도 자다르 다음 두 번째로 큰 도시 스플리트
시내로 들어서는데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마치 요새에 들어서는 느낌..
발칸반도는 기온의 변화가 심한 것 같다. 며칠 전 세르비아에서는
초겨울 날씨였는데 자동차가 도시 근처로 오자 기온이 34℃에서
35℃로 올라간다. 여기가 북위 43도를 넘어섰는데도..





(스플리트(Split))

스플리트(Split)는 크로아티아 서남부 스플리트달마티아 주에 있는
인구178,102 (2011)의 아드리아 해에 접한 항구 도시이며, 수도 자그레브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스플리트는 역사가 깊은 도시로, 기원전 그리스의
거주지로 건설되었다. 그 후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후 305년 이 곳에 거대한 궁전을 지어 본격적으로 도시로 발전하였다.
7c에 슬라브족이 이곳으로 들어와 궁전에 정착. 그 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궁전은 비잔틴, 고딕 건축 양식 등의 화려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이 도시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로
개발되어 근대적인 항만시설이 갖추어 달마티아 지방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비롯한 유적이
많아 관광객이 많이 몰려든다. 기후가 온화하고 디나르알프스 산맥과
아드리아 해가 조화를 이룬 경치가 아름다워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두브로브니크가 고성으로 유명하다면 스플리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으로 유명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네로보다 더 체계적이고
확실하게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황제 궁전의 성벽)

아드리아 해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가르는
스플리트의 메인 거리인 리바(Riva) 거리. 노천카페와
1,2층에 카페테리아, 레스토랑,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궁전의 성벽 모습.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 같은데 유적지에 온통 상업시설이..
황제의 궁전에 인간의 일상적인 삶이 공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궁전(Diocletian's Palace)) 현재 모습과 당시의 모습 상 상도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별궁.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고자 로마가 아닌
스플리트 해변에 건축한 궁전으로 고대 황제가 머물렀던 궁전 중에서도 가장
보존이 잘 된 역사적 가치가 큰 건축물이라 평가 받아 1979년 세계 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궁전은 295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305년 완공되었다.
궁전은 높이 25m의 성벽이 둘러싸고 16개의 탑이 세워졌으며 4개의 구역으로
나누었다. 크게는 황제가 거주하던 궁전 지역과 군사 지역으로 나뉠 수 있다.
정사각형 모양의 궁전은 삼면이 육지와 이어져 있고 각각 종쪽은 은의 문,
북쪽은 금의 문, 서쪽은 철의 문 등의 성문이 자리한다. 남쪽은 지금의 보행자
거리인 리바 거리 대신 바다와 바로 접해 있었다. 디오클레시오누스 황제는
왕위를 물려주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려 했지만 완공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 후로도 수천 명이 거주하며 역사를 이어갔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뒤를 이은 통치자들을 통해 시간이 흐르며
고대 건축이 약간씩 변형되고 지금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이
혼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궁전 안에는 열주 광장, 성 돔니우스 대성당,
황제 알현실, 지하 궁전 등이 남아 있으며 약 17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역사적인 장소에서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통해 고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리바 거리에서 남문을 통해 들어가면 궁전 지하로 연결.. )

지하궁전인 중앙 홀, 기념품 상점들이 홀을 메우고 있다.





(대리석으로 짠 양탄자를 밟고 지나서..)















(황제 알현 대기실(vestibule))













(열주광장(Peristil)의 성 돔니우스 대성당)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라틴어: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추정245년~추정312년)는
284년부터 305년까지 로마 황제였다. 이른바 3세기의 위기에 빠진 로마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황제 중심의 통치 체제를 회복시켰다. 제국의 방위를 위해
사두정치체제를 창안하고 여러 가지 개혁으로 제국의 쇠퇴를 막아보려 했다.
그의 일환으로 기독교를 탄압했다. 하지만 사두정치체제로 인해 카리칼라부터
파탄나기 시작한 국가 재정이 더욱 망가졌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성 돔니우스 대성당(St. Dominius Cathedral)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영묘 위에 세워졌다. 성 돔니우스는(?~304년)는
로마시대에 달마티아 지방의 주도인 살로나(Salona)의 주교였으나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로 참수되어 순교한 그가 기독교 박해로
유명했던 로마황제의 영묘 위에 만든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성 돔니우스는 현재 스플리트의 수호성인.
(위키백과 참고)







(성 돔니우스 대성당 설명)







(열주광장 계단에 앉아.. 저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

스플리트 구시가의 중심이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궁전의 안뜰.
시원하게 오픈된 공간에 동서에 각각 6열, 남쪽에 4열의 열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서 열주광장이라고 부른다. 광장의 주변은 성 돔니우스 대성당,
황제 알현실, 지하 궁전으로 이어지는 황제의 구역이다. 로마 건축물에서는
보기 힘든 건축형태라 하여 보존가치가 높다고 한다. 당시 평민이 황제를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광장 주변으로
상점, 카페, 여행안내소가 자리하고 이다.





(열주의 장식은 화려한 코린트 양식)







(로마군 복장을 하고 북문(황금의 문)을 지키고 있는 수문장)

8척은 안 되어도 7척은 충분할 것 같다.





(그레고리 닌스키 주교 동상)

왼손엔 성서를 들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궁전의 북쪽, 황금의 문 앞에 있는 4.5m 높이의
고레고리 닌스키 주교상. 크로아티아의 위대한 종교 지도자라 추앙받는 닌스키는
크로아티아인이 모국어인 크로아티아어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한 10세기 대주교.
당시 라틴어로만 행해졌던 예배는 일부 지식층을 제외한 대다수 서민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크로아티아어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종교회의에서 로마교황을 설득했다고 한다.





(북문 쪽에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종탑..)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 파리도 미끄러지겠다.)









(시계탑 광장(?))







(과거와 현재가 공존)

오래된 골목길은 동서양 누구나 좋아하나 보다.
이런 곳에서는 어깨가 부딪쳐도 대수가 아니다.







(성 돔니우스 대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높다란
성 돔니우스 대성당 종탑은 스플리트의 랜드 마크!





(역사를 알면 잔인한 곳이 되는 스플리트)

악명 높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말년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곳, 선택한 곳 스플리트에 지은 궁전이 바로 이 궁전!
기독교도들을 핍박하고 무자비하게 죽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을까? 억울한 영혼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을까?













(이곳은 아직 복원 중인 듯..)









(좁은 골목에도 각종 상점들이 즐비..)

구시가는 미로 속에 숨은 밀실같다.
가던 골목이 막히는가 싶으면 다른 골목을 만나고
골목을 꺾어 돌면 고만고만한 골목이 또 얼굴을 내민다.
사람도 꼭 여우굴에 사는 것 같다.







(여긴 와인하우스도 있고..)





(벽의 저 철편들은 무슨 용도인지?)











(길.. 좁은 길로 가라?)







(헤집고 다니다 보니.. 어딘지 잘 모르겠다)





(동쪽문인 은의 문)

은의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전통시장과 연결된다.

궁전에는 사방으로 문이 나 있는데
북쪽 문은 금의 문
동쪽 문은 은의 문
남쪽 문은 동의 문
서쪽 문은 철의 문
이라고 한다.









(사뭇 진지한 일본인들..)







(다시 남쪽 문을 통해 궁전을 나오면 리바 거리..)

원래는 지금과 같이 도로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바로 바다와 접해 있었던 문이었다고 한다.





(어~ 신 선생님하고 함께 찍힌 사진까지..)







(유명 관광지답게 여객선과 크루즈 선이 떠 있다.)







(호텔에 도착하니 20시 30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궁전에서 40분 정도 달린 것 같다.









(오늘이 보름이구나)

호텔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을 겨우 찾아
5분쯤 내려가니 해변에는 벤치가 놓여있다. 하늘엔
휘영청 밝은 보름달과 맞은 편 섬에서 반짝이는 불빛 사이로
조그만 보트가 물결에 일렁이고, 여객선이 고동을 울리며 떠나간다.
어디로 가는 밤배일까? 나도 떠나고 싶어진다.

아! 보름달이 뜬 걸 보니 오늘이 보름이구나
그래, 가끔은 날짜도 잊고, 시간도 잊고
그렇게 살아보자.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황제) / 1 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