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 아드리아 해의 진주

2017. 1. 24. 23:33여행/여행기



두브로브니크, 아드리아 해의 진주
(발칸반도의 태양 크로아티아의 꽃)





두브로브니크는
발칸반도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환상적인
풍경으로 '아드리아 해의 진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 여행의 핵심.
중세 시대에는 아드리아 해에서 중요한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크게 성장했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다 1358년 라구사(Lagusa)라는 도시 국가로 탈바꿈한다.
라구사 공화국은 인근의 강대국 사이에서 해상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적절한 균형을 지키는 외교 정책을 통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1667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경제적 기반을 상실하고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1808년 나폴레옹에게 점령되면서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끝난 후에는 크로아티아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를 침공한 세르비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를 포위하고
포격을 가해 도시의 건물 상당수가 파괴되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전 세계의 학자들이 인간 방패가 되어 두브로브니크를 지켰으며
전후 유네스코 등의 지원으로 유적들이 복원되었다.





(필레 문을 들어서면 중세로의 시간여행이..)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서쪽 문.
1471년 건축가 파스코 예밀리체비츠에 의해 건설된 고딕양식의
석조 문. 필레 문은 두 개의 문으로 이어져 있으며 석조 다리와
이어진다. 석조 다리와 필레 문 사이에는 나무 도개교가 놓여 있는데
출입을 통제하며 도시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아치형 문위에는
도시의 수호성인 블라이세의 석상이 있다.







(견고한 성벽)

두 겹의 성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구 시가를 조망하기 위해 자동차 타러 가는 길.
구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스러지 산은
걸어서 오르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거나
자동차를 이용하여 오를 수 있다.













(스러지 산에 올라 구시가 조망)

해발 412m의 스러지 산 정상에서
코발트빛 아드리아 해와 두브로브니크 성벽이
잘 조망된다.





(구시가를 배경으로 한 컷)









(그림 같은 구항구의 모습)









(스러지 산(Srd) 정상의 요새)

나폴레옹 전쟁기간인 1806~1816에 건조된 요새로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때 파괴되었다고..





(다시 성벽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전경과 주요 건물 안내도)

두브로브니크는 7세기에 형성되어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치고 막강한 부를 축적했으며,
지성인들이 모여 문화의 중심지를 이루기도 했다. 1416년에는 유럽
최초로 노예제도를 폐지했을 정도로 시민의식이 성숙했던 곳이기도 하다.
1667년 대지진이 발생하고, 1991년으로 구시가는 훼손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구시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옛 아름다운 해안 도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극작가 버나드쇼, 시인 바이런, 미야자키 하야오 등
세계의 유명 문인들이 칭송한 그 곳,
아드리아 해의 진주, 크로아티아의 꽃이라고
불리는 곳. 두브로브니크의 주요 명소는
구시가에 몰려있다.







(루자 광장)

광장에는 성 블라이세 성당도 있고,
대성당과 높이가 35m나 되는 종탑도 보인다.









(스폰자 궁.. 그러고 보니 기둥만 찍었네)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에서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
스트라둔 거리 끝의 루자 광장에 있다. 성 사비오르 성당과
함께 1667년 대지진에 손상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스폰자 궁은
세관 용도로 지어졌으며 상업의 중심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 후 병기고로도 사용되었으며 17세기에는 문화,
예술, 과학을 토론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롤랑의 노래' 주인공 '롤랑'의 기둥)

루자 광장의 승 블라이세 성당 앞에 있는 기둥.
기둥에는 중세유럽 최대 서사시 '롤랑의 노래' 주인공 롤랑의
조각상이 있다. 롤랑의 오른손에는 칼이 왼손에는 방패가 들려있다.
롤랑이 들고 있는 '듀란달'이라는 검은 천사한테 하사받은 명검이라고..
프랑스 왕 샤를 대제의 조카인 8세기 기사 롤랑의 기둥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사라센 족으로부터 두브로브니크를 지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기 때문이라고..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한 중세 기사의 모범을
보여주는 롤랑의 기둥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깃발이 달려있고
그것은 곧, 두브로브니크의 평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1950년부터 시작된 두브로브니크 여름 축제 때 이곳에
국기를 게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국기를 게양하는 것으로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고 한다.





(시청사 앞의 마린 드르지치)

16세기 크로아티아 최고의 극작가.
동상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사람들의 생각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것 같다.
우리나라 돌하르방이나 별반 차이가 없으니..
아이들에게는 좋은 놀이터인 듯







(렉터 궁전(Rector's Palace))

렉터 궁전 대리석 계단에서 휴식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사랑놀이를 하거나.. 자유!

렉터 궁전은 1435년 화약고가 폭발하면서
크게 훼손된 건물을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이가
1층은 르네상스 양식, 2층은 후기고딕 양식으로
설계하여 재건했다.















(골목길은 좁아도 곧은 편이다)

2시간 동안
중세의 골목을 더 돌아 볼 것인가?
성벽 길을 걸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약속장소이자 휴식처인 오노프리노 분수)

동물과 사람의 입을 표현한 수도꼭지에는 수도에서
연결된 물이 나온다. 유럽여행에서 생수와 화장실 사용은
대부분 유료인데 오노프리노 분수에서 음용수가 공급되니
좋은 약속장소이자 휴식처가 되고있다.





(성 사비오르 성당)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내의 대표적인 르네상스 건축물.
1520년 발생한 지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감사의 마음으로
지금의 성 사비오르 성당을 지었다. 건축가 Petar Andnijic가
설계했다. 그로부터 147년 후 수천 명의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에도 성 사비오르 성당은 그 피해를 면했다고 한다.
현재 구시가지에서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성벽 길은 성 사비오르 성당 옆으로 오른다.
성벽 길로 go!

















(성벽 길에 올라..)

성벽 길에 오르자 마자 한 순간에 올드 타운의
붉은 지붕들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어느 곳으로
눈길을 줘야할지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필레 문에서 이어지는
구시가의 메인 거리인 스트라둔 거리를 지나쳤다. 다시
돌아가서 한 컷 남길까 하다가 그냥 간다.







(이 꼬마친구들.. 살짝 포즈를 취해준다)

성벽 길에서 만나는 풍경들..
교회의 종탑도 만나고, 주홍색 지붕도 만나고,
파란 하늘, 파란 바다도 만나고,
그리고 또 꼬마친구들도 만났다.







(주홍빛 지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켜켜이 나이테처럼 쌓인 빛바랜 지붕
기왓장 사이 스며든 것은 먼지가 아니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이고
크로아티아의 역사이며
발칸의 역사다.

역사가 덧칠된 듯 빛바랜 기왓장을 보니
숙연한 마음이 든다.









(성벽이 높다. 아래를 보면 아찔할 정도)

성벽은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를 방어하는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며 높이는 최대 25m, 두께는 성벽 안쪽으로 4~6m,
바다 쪽으로는 1.5~3m에 이르는 불규칙한 모양이다.
유럽의 성벽 중에서도 가장 완벽하고 견고한 성벽으로
도시를 보호했으며 보존상태가 좋아 구시가를 비롯해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총 길이 1940m의 성벽을 모두 둘러보는 데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성 밖으로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짙은 푸른빛의 아드리아 해와
안쪽으로 주홍빛 지붕들의 향연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어 성벽 걷기는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로브리예나체 요새)

성벽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아드리아 바다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성벽에 둘러싸인 고색창연한 주홍색 지붕의 건물들과
짙푸른 아드리아 바다만이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마도 두브로브니크를 가장 멋지게 여행하는 방법은
바다를 끼고 성벽 길을 유유자적, 풍경을 음미하며
거니는 것 아닐까 싶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흔이..)

간혹 건물이 복구되지 않은 모습도 보이는데..
1991년 10월 유고연방군과 몬테네그로 예비군이 두브로브니크를
포위하고 3개월 동안 포격할 때 파괴된 집터로 아직도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무자비한 폭탄세례에서 두브로브니크를 구하기 위하여
프랑의 저명한 작가 도르메송은 아카데미 프랑세스의 동료회원들과 함께
몸으로 포격을 막겠다고 '인간사슬'을 자청하고 나섰다.
지식인들의 평화와 문화의 위대한 운동이 확산되면서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빛바랜 지붕들..)

성안에는 진한 주홍색 지붕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색창연한 건물들과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빛바랜 기와지붕들도 보인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길이지만..)

눈이 시리도록 시원하게 펼쳐진 아드리아 바다와
가끔씩 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까지 식혀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른쪽으로는 파란 망망대해 아드리아 바다를 끼고
왼쪽 고성 안에 그림같이 펼쳐진 빨간 지붕들..
더 아름다운 모습이 또 있을까.
아!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











(코발트색 아드리아 바다)

두브로브니크의 바다는 특별하다.
코발트색! 너무 푸르러서 슬프기까지 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바위 위에서 일광욕을..)

아하! 저기가 바로 거기..
부자 문을 나서면 나온다는 부자카페가 있는 곳.
부자는 富者가 아니고 Buza. 구시가 성벽 밖 아드리아 해와
맞닿은 절벽에 위치한 카페.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좋은 전망을
자랑하는 카페가 있다고 한다. 절벽에 있다는 덕에 무더운
여름날엔 아드리아 해에 뛰어들어 해수욕을 한다고..









(그런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 또한 풍경이 되고..)











(99)













(구항구)

이곳은 관광객들을 태우려는 유람선이거나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부들의 고기잡이 배이거나
저 넓은 바다로 물살을 가르고 나갈 백조같은 배들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어촌의 항구.
백조의 호수 같다.





(성벽 길을 걷다보면 그 시대의 대포도 만난다)

천년동안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를 향한 신념이 강했을 것이다. 철옹성 같은 요새에
무기로 무장한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주홍색 지붕과 종탑들이..)

주홍색 기와 지붕위로 Bell Tower도 보이고
그 뒤로 도미니크수도원의 종탑도 보인다.
이제 반환점을 돌아선 것 같다.











(여행은..)

돈이 많다고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돈이 없다고 떠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많다고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시간이 없다고 떠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 있다 한들
아무리 돈과 시간이 넘쳐난다고 한들
내가 가고자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











(뒤돌아 본 구항구 방향)













(119)







(민세타 요새가 전면에 나타났다)









(126)







(민세타 요새)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에서
가장 크고 높은 곳에 있으며 아름다운 요새라 불린다.
1319년에 건축가 니치포르리니나에 의해 건축되고
그 후로 피렌체의 건축가 미켈로조 미켈로지,
르네상스 조각가 유라이 달마티나체의 손을 거쳐
1464년에 완공되었다.







(민세타 요새에서의 조망)













(주홍색, 주홍색 지붕들..)

아 이 주홍색 지붕들은 어디서 시작했을까?
주홍색 지붕이 유럽을 상징한다고는 하지만 이만한 곳
또 있을까? 어느 여행객이 이 주홍색 기와지붕에 이끌려
두브로브니크까지 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싶다.
주홍색이 이렇게 아름답게 보인 적이 있었던가!











(풍경에 도취되어 걷다보니 어느새..)

처음 올라왔던 필레 문 쪽 계단이다.
한 시간 반쯤 그렇게 걸은 것 같다.





(활기찬 플라차 대로)

성벽을 내려오니 명동거리 같은 플라차 대로다.
구시가 길이라는 길은 온통 잘 익은 사과같이
반질반질 빛나는 대리석길이다.





(KARAKA 해적선 선장(?)하고..)









(유람선에서 와인 한 잔!)









(유람선을 타야만 볼 수 있는 풍경)

캐러비안 해적선 흉내낸 유람선을 타고
로크룸 섬(Otok Lokrum)을 한 바퀴 돌아온다.
누드비치답게 누드로 일광욕을 즐기는 이들도 보이고..
동굴 위에는 집, 동굴에는 피서객?





(바다 가운데서 본 두브로브니크 고성)

그 시절엔 완전 철옹성이었을 듯.. 위용이 대단하다.









(유람선, 해적선을 2% 정도 흉내 냈다고나 할까?)





(점심을 먹은 레스토랑.. 왁자지껄)

점심으로 노천 식당에서 리조또(오징어 먹물 비빔밥)을
먹었는데 어떻게 먹었는지..?









(이제 떠나야 할 시간)

길은 떠나는 자의 몫이요
문화는 사랑하는 자의 것이라 듯 여행은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선한 마음으로 떠나 미지의
문화를 만나 듣고 보고 느끼면서 즐기는 것이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지상의 낙원'이라고 했고,
바이런은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찬사를 한 두브로브니크!
많은 문인들이 최상의 수식어로 찬사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전쟁광들이 포격하며 도시를 파괴할 때 목숨 걸고 인간띠로
도시를 지켜낸 인간승리의 역사가 녹아있어 더 값진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감동은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뜨거웠는데,
코발트빛 아드리아 해는 왜 그렇게 슬프게 느껴졌는지!
언젠가 꼭 한번 다시 와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여행은 떠나는 자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