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크리스마스 / 김광섭

2017. 12. 24. 00:03시,좋은글/詩






Timothy P. Schmalz의 "노숙자 예수"





서울 크리스마스 / 김광섭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다


고요가 흔들리며
바람이 불어
風潮가 인다


먹구름이 초생달빛에 찢기며
한조각 푸른 하늘이
면류관을 쓴
예수의 얼굴로 번진다


서울길
人波에 밀려
예수는 전신주 꼭대기에 섰고
성탄의 환락에 취한 무리들
붐비고 안고 돈다
번화가의 전등은 장사치들의
속임과 탐욕이 내놓이지 않도록
경축의 광선을
조심스레 상품 거죽에 던진다


모든 나무들은 벌거벗었는데
성탄수만은 솜으로
눈오는 밤을 가장했다


예수는 군중 속에서 발등을 밟히다 못해
그만 어둠을 남겨두고
새벽 창조의 시간을 향해
서울을 떠났다
가로수들만이 예수를 따라갔다


어디선가 맨발로 뛰라는 소리가 났다
그날 밤 서울서는
한 放火犯이 탈주했다
성탄야의 종소리가 잉잉 울었다


서울은
테두리만 퍼져나가는
속이 텡 빈 종소리였다
산 등성이에서 빈대처럼 기는
오막살이 지붕들만이 모여서
이마를 맞대고 예배를 올렸다
이튿날 아침 서울거리에는
예수의 헌 짚세기
한 켤레가 굴러다니는 것을
맨발로 가던 거기가 끄을고
세계의 새아침으로 갔다

 

『초판본 김광섭 시선』(2012), 지식을만드는지식.


김광섭(金珖燮)

1905.9.21 ~ 1977.5.23, 시인, 호는 이산(怡山)
1905년 함북 경성에서 출생. 중동학교 및 와세다대학 영문학과 졸업.

1933년 중동학교의 교사로 재직 중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하여,

1941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3년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문화 및 정치의 표면에서 활동하였다. 중앙문화협회의 창립,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민주일보 사회부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출판부장,

민중일보 편집국장,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거쳐,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 이승만의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이후에는 주로 경희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자유문학가협회를 만들어 위원장직을 맡고,

자유문학 自由文學지를 발행하는 등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했다.

- 시집 -

『憧憬』(1938),

 『마음』(1949),

 번역시 抒情詩集』(1958)

『성북동 비둘기』(1969),

『反膺』(1971)

『김광섭시전집』(1974),

시선집 『겨울날』(1975),

자전문집 『나의 獄中記』(1976) 등.

<문학> <자유문학>을 간행.

- 수상 -

1957년 서울특별시문화상,

1970년 문화공보부예술상,

1970 국민훈장모란장,

1974년에는 예술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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