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사론 / 박상천

2017. 11. 30. 21:52시,좋은글/詩






통사론(統辭論) / 박상천 
 
주어와 서술어만 있으면 문장은 성립되지만 
그것은 위기와 절정이 빠져버린 플롯같다. 
‘그는 우두커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라는 문장에서 
부사어 ‘우두커니’와 목적어 ‘그녀를’ 제외해버려도 
‘그는 바라보았다.’는 문장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그는 바라보았다.’는 행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나 서술어가 아니라 
차라리 부사어가 아닐까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에는 
눈물도 보이지 않고 
가슴 설레임도 없고 
한바탕 웃음도 없고 
고뇌도 없다. 
우리 삶은 그처럼 
결말만 있는 플롯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힘없이 밥을 먹었다.’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밥을 먹은 사실이 아니라 
‘힘없이’ 먹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1997), 문학아카데미.




박상천(朴相泉)
1955년 전남 여수 출생. 시인, 극작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ERICA 부총장(전)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 수상 -
1998년 한국시협상 수상.
2005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 시집 -

『사랑을 찾기까지』(1984)

『말없이 보낸 겨울 하루』(1988)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1997)

선시집 『한일 대역 박상천 시집』(2001)

『낮술 한잔을 권하다』(2013)








'시,좋은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침표 하나 / 황규관  (0) 2017.12.28
서울 크리스마스 / 김광섭  (0) 2017.12.24
톰 웨이츠를 듣는 좌파적 저녁 / 박정태  (0) 2017.11.09
가는 길 / 이문재  (0) 2017.10.16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0) 2017.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