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시] 섣달 그믐날 / 김남조

2017. 12. 29. 23:57시,좋은글/詩






섣달 그믐날 / 김남조



새해 와서 앉으라고
의자를 비워주고 떠나는
허리 아픈 섣달 그믐날을
당신이라 부르련다
제야의 고갯마루에서
당신이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길
뚫어서 구멍내는 눈짓으로
나는 바라봐야겠어
 
세상은
새해맞이 흥분으로 출렁이는데
당신은 눈 침침, 귀도 멍멍하니
나와 잘 어울리는
내 사랑 어찌 아니겠는가
 
마지막이란
심오한 사상이다
 
누구라도 그의 생의
섣달 그믐날을 향해 달려가거늘
이야말로
평등의 완성이다
 
조금 남은 시간을
시금처럼 귀하게 나누어주고
여윈 몸 훠이훠이 가고 있는 당신은
가장 정직한 청빈이다
 
하여 나는
가난한 예배를 바치노라.






김남조(金南祚)


1927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서
여학교를 마치고 1944년 돌아와 경성여자전문학교(이화전문)에 입학.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이후 마산고등학교와
여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 성균관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4년부터 1993년까지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0년 연합신문에 『성숙』,『잔상』으로 등단하였고,
1953년 첫시집 『목숨』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초기에는 인간성과 생명력을 표현하는 시풍을,
이후에는 로마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사랑의 세계와 윤리 의식을 표현하였다.


-작품목록-
『겨울꽃』,『겨울나무』,『고독보다 깊은 사랑』,
『그리움처럼 빛처럼』,『김남조 시선』,『김남조 시전집』,
『김남조 시집』,『깨어나소서 주여』,『나무와 바람』,『목숨』,
『나아드의 향유』,『너를 위하여』,『둘의 마음에 산울림이』,
『마음 안의 마음』,『말하지 않은 말』,『문 앞에 계신 손님』,
『동행』,『믿음을 위하여』,『바람세례』,『빛과 고요』,『설일』,
『사랑을 위한 낭송시집 1~2』,『시로 쓴 김대건 신부』,『영혼과 빵』,
『요람의 노래』,『외롭거든 나의 사랑이소서』,『수정과 장미』,
『우리들 시대의 여류시인 신작시 45』,『정념의 기』,『희망학습』,
『저무는 날에』,『평안을 위하여』,『잠시, 그리고 영원히』,
『풍림의 음악』,『겨울바다』,『생명』등


-수상-
자유문인협회상(1958)
오월문예상(1963)
삼일문화상(1992)
국민훈장 모란장(1993)
대한민국예술원 예술원상(1996)
은관문화훈장(1998)
만해대상(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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