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에 대하여 / 나희덕

2018. 8. 31. 22:52시,좋은글/詩






빗방울에 대하여 / 나희덕  
 


   1
빗방울이 구름의 죽음이라는 것을 인디언 마을에 가서 알았다
빗방울이 풀줄기를 타고 땅에 스며들어
죽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2
인디언의 무덤은
동물이나 새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멀리서도 빗방울이 길을 찾아올 수 있도록


    3
새 형상의 무덤은 흙에서 날고
사슴 형상의 무덤은 아직 풀을 뜯고 있다
이 비에 풀이 다시 돋아날 것이다


    4
나무들은 빗방울에게 냄새로 이야기 한다
숲은 향기로 소란스럽고
오래된 나무들은 빗방울의 기억을 털고 있다


    5
쓰러진 나무들은 비로소 쓰러진 나무들이다
오랜 직립의 삶으로부터 벗어난
나무들의 맨발을 빗방울이 천천히 씻기고 있다


   6
빗방울은 구름의 기억을 버리고 이 숲에 왔다
그러나 누운 뼈를 적시고
다시 구름과 천둥의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7
구름이 강물의 죽음이라는 것을  인디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죽은 영혼을 어루만진 강물이
햇빛을 따라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야생사과』(2009), 창작과비평사.




            

나희덕


1966년 2월 8일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


- 시집 -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 시론집 -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 한 접시의 시>

- 산문집 -

<반 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 수상 -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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