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함산에서 마지막 단풍같이 물들다.

2018. 11. 21. 01:16山情無限/산행기(일반)






토함산에서 마지막 단풍같이 물들다


2018. 11. 14(수)

岳男岳女山岳會 22명








봄은 강에서 올라오고, 가을은 산에서 내려오는 것.

가을의 전령은 구절초, 가을의 마술사는 단풍.. 단풍은 가을 산을 처절하게 한다.

단풍은 올해도 설악산 대청봉에서 9월 말에 물들기 시작하여 10월 중순 절정을 이루었다.

산을 울긋불긋 물들이며 하루에 20~25km씩 남쪽으로 내달려 오대산, 치악산, 월악산, 북한산,

속리산, 태백산, 계룡산, 가야산, 지리산을.. 11월 상순 내장산에서 가을의 절정을 이루었다.

절정기 1주일 전.후까지는 표준편차(?)가 그리 클 것 같지 않았는데.. 피아골 단풍은 얼마나

길이 바빴는지 절정일 나흘 후에 갔는데도 이미 산모퉁이를 돌고 있는 꼬리만 겨우 보았다.

이제 다 끝났구나 했는데 토함산 늦단풍은 지금이 절정이라 하여 막 나서려는데

오늘따라 동해안 지방에 비가 예보되었다. 동해안에 가까운 경주도 12시부터

  비 온다는 예보피아골 단풍을 보러 간 지리산에서도 비를 만났는데.. 





마동마을 코오롱호텔 후문 쪽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마동삼층석탑이 있는 탑골로 토함산 정상에 올라 석굴암 일주문,

단풍터널, 불국사 입구를 지나 원점 회귀하는 하는 코스다.





경주 마동삼층석탑

불국사 서북쪽 골짜기 언덕에 있는 이 탑은,

2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몸돌과 지붕돌은 3층 모두 별석이며, 지붕돌 층급받침은

각 층 모두 5단이고 반전이 심한 편이다.

아무런 장식도 없고 꾸미지도 않아서

소박하고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탑이 있어서 이 골짜기를 탑골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마을 길을 지나 산으로 든다.

키 큰 감나무에는 일손이 딸려 따지 못한 듯 감이 그대로 달려 있다.

이정표는 토함산 정상까지 2.8km라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빨간 청미래덩굴의 열매, 망개.)


중부지방에서는 청미래덩굴, 전라도에서는 맹감나무

또는 명감나무로 부르고, 경상도에서는 망개나무라고 부른다.

문제는 진짜 주인 노릇하는 망개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모이대싸리라고도 하는 망개나무는 한국의 충북 속리산, 일본,

중국 중부 등지에 분포하는데 대한민국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귀한 식물이다. 물론 위 사진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청미래덩굴로 나온다.

청미래덩굴의 열매를 망개라 부르기도 한다. 의령지방의 특산물로 유명한

망개떡은 망개나무(청미래덩굴) 잎으로 쌀가루를 싸서 찐 떡으로 풋풋한

청미래덩굴의 향이 밴 맛이 일품이다. 의령에서 누구도 청미래덩굴이라

부르지 않고 망개나무라 부르니 가만히 있는 식물도

사람들이 싸움을 붙이는 것 같다.





겉옷은 벗어 배낭에 챙겨 넣고 본격적으로 걷는다.

선두는 천천히 간다지만 후미는 늘 바쁘고 힘들다.





어서 가라 불을 밝히는 듯, 피눈물을 흘리는 듯..

이 시기 갈 길 바쁜 산의 심사가 복잡한 것 같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 소리가

습도가 높아 낙엽의 비명이 크지 않아 다행이다.





탑골갈림길, 주 능선에 올라섰다.

토함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덕동호 방향 갈림길이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500m, 바로 턱밑까지 왔다.





무려 7년 동안이나 유충으로 있다가 이렇게 허물을 벗고,

한 달 정도 죽을힘을 다해 노래하다 이렇게 흔적을 남겼다.

절규하던 소리는 내 귓속에서 아직도 맴~맴 한다.






낙엽으로 포장된 길로 정상을 향해..

경주국립공원내 일부 장소 음주 행위 금지라는 안내판을 지나니

토함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산 방향 안내판이 나타났다.

날씨가 흐려 썩 선명하지는 않지만 벌판 너머 우뚝한

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봄을 맞으려면, 겨울을 지나야 하는데

겨울은 또 이 어중간한 시절을 지나가야 온다.

가을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겨울도 아니면서..

철학자이자 시인 같은 인디언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한다지..





토함산은 신라 시대 5악 가운데 동악(東岳)이라 하여

호국의 진산으로 신성시하였다고 한다. 신라 오악은 동악 토함산을

비롯하여, 서악 선도산, 남악 함월산, 북악 금강산, 중악 단석산이었다가

그 뒤 신라의 영토가 확대되고 통일을 성취한 뒤에는 동악 토함산, 서악 계룡산,

남악 지리산, 북악 태백산, 중악 부악(팔공산)으로 변경되었다.

토함산이라는 이름의 뜻은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토하는 산'으로

바다 가까이 있어서 바다 쪽에서 끼어 밀려오는 안개를 들이마시고 토해낸다는 뜻.

유래는 탈해왕이 죽어 토함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탈해왕은『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토해(吐解)"라고 했다.
특히『삼국유사』券第一 第二 奇異上 第四 脫解王에서 "吐解登東岳.. " 이

나오는 등 吐解라고 많이 쓰고 있다. 


단체 인증사진 한 장 남긴다.





허우대 좋은 정상석보다는 오래전부터 토함산 정상을

지키고 있던 산악인들이 세운 정상석이 정감이 간다. 우리나라 산 정상에는

이전에는 산악인들이 정성 들여 세운 아담한 정상표석들이 자리를 지켰다. 어느 날부터

산이 지자체와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넘어가면서 부터 산정상에 산과 어울리지 않는

공무원스럽게 잘 다듬은 커다랗고 허연 화강암 정상석을 세우기 시작했다.

백두대간에도 그런 곳이 몇 곳 있고, 영남알프스 1000m 넘는 산에는 마치 무슨

열병식이나 하는 듯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주변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공미가 철철 넘치는 정상석들을 세워 놓았다. 그러면

산이 위대해지는 걸까? 돈도 많이 들텐데..





억새도 이제 과년한 딸 시집보내듯 꽃술을 훨훨 날려 보내고 있다.

가거라, 이제 가거라, 뒤돌아 보지 말고 가거라.

뿌리내리고 서면 그곳이 네 세상이 될 것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추령 가는 길과 석굴암 가는 길이 갈리는 곳에

교통순경같이 보초를 서고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토함산 성화대(聖火臺)

경북 도민체육대회 성화를 이곳에서 채화하는 듯..






양같이 순한 길을 따라 내려가면 토함산 석굴암 일주문이 나온다.






석굴암 일주문 앞마당에는..





화장실 옆에는 낙락장송 한 그루가





일주문 앞마당에서의 조망. 감포 앞바다가 손에 잡힐 듯하다.

바로 앞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건물도 보인다.





석굴암 일주문 앞마당의 단풍나무가 붉게 타고 있다.

불 안 들어오는 가로등보다 단풍나무가 더 밝다.







울긋불긋..

여기는 아직도 단풍이 햇살을 받은 단풍이 불 붙은 듯 붉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서리맞은 단풍잎이 이월 봄꽃보다 붉어라

(霜葉紅於二月花)"라고 노래했다지..










단풍의 이유  / 이원규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






이 가을 이곳에서 단풍다운 단풍을 만났다.

오늘 비 예보가 있어 조마조마했는데 이렇게 햇살이 비춰

단풍이 본색을 드러내게 하다니.. 감사한 일이다.






단풍이 아름답다 하지만 어디 사람만 할까!

아름다운 데다 단풍에 물들기까지 했으니..






어디서 이 고운 빛깔이 나타났을까?

바람에 실려 왔을까 빗물에 녹아 있었을까?

자세히 보면 세상은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다.

모두가 기적이다.

살아 있는 이 자체마저..







구름이 하늘을 덮고 태양을 가렸다.

그래서 빛을 잃은 단풍터널을 지나야 했다.

그래도 이게 어디랴!







Now and Here!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겠는가?

지금 여기에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기와지붕에도 눈이 쌓이듯 단풍 낙엽이 쌓이고..

가을은 겨울과 자리바꿈을 하려 한다.



불국사 정문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의 '십일월'이라는 시의

'장미 한 송이'에 '빨간 단풍'으로 대치해 음미해 본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호수도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오늘 비가 예보되었지만.. 비는 만나지 않았다.

매번 헛발질하는 기상청 체면을 세워 주려는 듯 검은 구름이

빠르게 하늘을 덮으며 곧 비를 뿌리려 할 즈음 우리는 산행을 끝냈다.

마지막 단풍터널의 숨넘어갈 듯 절규하며 정념을 태우는 단풍의 본색을 마주했다면

그들더욱 얼굴을 붉혔겠지.. 오늘 그런 비밀한 모습까지 보려 했다면 그건 욕심.

빛.. 참 고마운 존재다. 물, 공기도 마찬가지다. 거저 값없이 주어진 것들이기에

고마움을 잊고 있다. 항상 함께하기에 가치를 잊고, 고마움을 잊고 있는 것들을 

챙겨 봐야 할 것 같다. 정말 귀한 것들은 값없이 주어졌고 없어질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마치 오늘 조명이 꺼지듯.. 단풍터널에서 구름에 가린 태양같이..

오늘의 태양은 나를 좀 더 귀히 여기라며 감발하는 것이리라.

토함산에서 마지막 단풍같이 물들 수 있어 감사하고,

가진 것들에 자족하라는 깨우침을 얻어 더 감사하다.

범사에 감사할 일이다.





(오늘의 산행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