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 캠핑장, 갑작스럽게 고급스러운 야영을 하다

2018. 12. 6. 22:14山情無限/산행기(일반)





갑작스럽게 대왕암 오토 캠핑장에서 고급스러운 야영을 하다


18. 11. 29 ~ 30

대왕암 오토 캠핑장에서

산마거사, 종봉, 영탁, 나





막 산에 들자마자 한 형이 전화를 했는데 전화벨 소리를

죽여 놓아 텐트를 치고 나서야 확인을 했다. 전화를 하니 29일 목요일 후배 2명과

대왕암 오토 캠핑장에서 캠핑을 할 계획이라며, 시간 내어 숟가락 하나만 들고 오란다.

또 무슨 오토 캠핑까지.. 지금도 재악산 꼭대기에 텐트 치고 야영 중인데.. 이번 주에

2번이나 야영을 하라고? 어쩌면 수요일까지 산행을 계속할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경주와 대구에서 울산까지 온다는데 손님은 맞아야지..

오후에 들어갔다가 오전에 나오니까 시간을 만들어 봐야 겠다.






오후 늦게 대왕암 캠핑장으로 가니 그 너른 캠핑장에

덩그러니 텐트 한 동만 구축되어 있다. 12월 31일은 경쟁률이 무려

40대 1이나 되어 3명이 신청했지만 모두 떨어졌다는 오토 캠핑장인데..

밤 늦게 서너 팀이 더 들어와 전체 다섯팀 정도는 되긴 했지만 거의 전세 낸 기분.

도착하자 마자 만찬이 시작되었다. 하여간 어울려 야영을 하러 가거나 캠핑을 하러 가면

이건 완전 먹방이 대세.. 아니나 다를까 준비한 먹거리도 많은데 산지에서 직송해 온

조개관자까지.. 그렇게 밤늦도록 굽고, 지지고.. 11시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만찬을 끝내고 취침. 포식했지만 먹방 장면은 한 장만..


전기열선까지 갖춰진 매트라니.. 이건 완전 호텔 수준이다.

그제 밤에는 재악산정에서 추위에 떨며 고독을 즐겼는데.. 야영도 야영 나름이다.

이래서 오토캠핑을 하는 사람들은 알파인 야영을 힘들어하는 것 같구나. 따뜻한 매트

위에서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도 밤새 파도 소리가 들렸다.

새벽녘에는 기차 불통 삶아 먹은 듯한 예인선이 배를 끌고 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일찍 잠에서 깨어 대왕암 일출을 찍으러 가려 했는데 늑장을 부리다 늦었다.

일출 시각 5분 전, 다행히(?) 오늘은 황사로 하늘이 아침부터 뿌옇다. 해가 바다에서

바로 솟지는 않을 것 같아 시간을 조금 벌었다. 부랴부랴 카메라를 챙겨 대왕암으로

향하는데 짙은 황사와 구름속에서 벌써 해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일출의 장관은 덜 했지만 한 뼘이나 위에서 얼굴을 들어내는 바람에

구름 속 일출을 맞았다. 대왕암 일출.. 체면치레는 했다.






꼭 달 같은 태양을 보고 셔트를 누르다가 대왕암으로 향했다.





대왕암 난간 와이어에도 자물통이 달려 있다.

서로 약속하며 자물통을 여기에 채운 열쇠를 바다에 던지면 그 열쇠로

이 자물통을 열 수 없는 것처럼 서로 간의 약속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

파리 센강은 너무 많은 자물통의 무게로 다리 난간이 위험해서 이제는 자물통 채우는 것을

금지했다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구 곳곳에 이런 모습이다.

그만큼 깨지기 쉬운 세태의 반증이기도 하리라.





대왕암에서 보는 슬도 하얀 등대가 개미보다 작게 보인다.

아침 먹고 오랜만에 슬도까지 산책이나 해 볼까..





바위틈 한 줌 흙을 움켜잡고 핀 해국

너희들이 바위섬을 살리고 있구나..






몽돌해변, 몽돌해변에서 본 대왕암

이 풍경도 참 좋다!






대왕암 캠핑장은 우리나라 캠핑장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모든 것을 다 갖춘

캠핑장일 것이다. 지난여름 둘째 내외가 양가 부모를 초청하여 한 번 다녀간 곳이다.

캠핑장은 주변 산책길은 숲길도 좋고, 해안을 따라 대왕암에서 슬도까지 이어지는

해안 길도 정겹다. 주변 경관도 좋을뿐더러 싱크대도 잘 되어있고 온수도 나오는 등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환경도 깨끗하다. 물론, 샤워장도 갖춰져 있다.





지난밤 포식하고 아침에 산책 조금 했다고 효과가 있을까마는

대왕암 공원까지 땀이 날 정도로 바쁘게 돌아 다녔다. 이렇게 좋은 산책코스를

아침부터 제일 바쁘게 다니는 것 같다. 한 시간 동안 달 같은 해와 노닐다가

  돌아와 아침을 준비하는데 용탁 씨는 밥을 준비하고, 라면은 내가 끊이는데..

라면 2개에 송이버섯 4개를 썰어 넣고 고추도 잘라 넣으니 그 맛이 기가 차다.

난생 이렇게 시원한 라면은 처음 먹어 보는 것 같다.

손 맛 보다는 재료 맛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조촐하지만

근사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슬도까지 산책을 나섰다.







산갈치..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세 사람이 그냥 지나갔다.

뒤따르다 전경이 좋아 일행을 넣어 사진을 담는데 일행들이 나를 찾다 산갈치를

발견하고는 되돌아왔다. 산갈치를 못 보았는데 내가 산갈치를 발견한 줄 안 모양이다.

전경 사진을 찍었는데 찍힌 사진 한쪽 귀퉁이에 똑하니 산갈치가 있는 것 아닌가?

사진을 찍다 보면 유령이 들어있기도 하고, UFO가 찍혀 있기도 하다만 완전 우연이다.

골목길로 가려다 바닷길로 들어섰는데 이런 호재를 만나다니.. 이것도 횡재다.

죽어 매달려 있는 산갈치와 파안대소하며 한참을 노닥거렸다.







바닷길이 정겹다.

바닷물결에 부서져 반짝이는 햇살이 눈 부시다.

마치 진주 가루를 뿌려 놓은 듯하다.





소리박물관 앞 조형물.

주변에 아기자기하게 꾸민 예쁜 펜션도 들어서고, 소리박물관도 들어서고..

이 주변도 한참 변신을 하고 있다. 소리가 들려 조형물 스피커에서 나는 줄 알았는데

옆에 스피커가 따로 있다. 스피커가 안 보였으면 더 좋을 텐데..

갑자기 큰 나팔이 엉거주춤 해 보인다.





슬도 등대를 배경으로..

멋쟁이 영탁 씨 포스가 가히 영화배우 저리 가라 한다.





개와 함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등대에 기대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

평화로워 보인다.





낚시를 구경하는 사람들..

젊은 조사들이 힘겨루기를 한다. 잠시 후 덩치 큰 삼치가 올라왔다.

잠깐 사이에 몇 마리나 잡았다. 좀 떨어진 곳에는 나이 많은 조사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손때 묻은 낚시 가방을 보고 30년도 넘었겠다 했더니 낚시를 50년 넘게 했다고 한다.

하여, '저쪽에 삼치가 심심찮게 올라오던데 삼치 낚시 하시죠' 했더니 '삼치 그 아무나 못 낚아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힘들어서 못 해요. 하면서 삼치 낚싯대를 보여 주며 조금 전까지

삼치 낚시를 했지만 한 마리도 못 낚았다고 한다. 조력 50년 경력자도 힘이 달려

못 낚는다는 삼치를 연신 낚아 올리는 조사들이 대단해 보였다.

역시 젊음도 능력인 것 같다.





햇살 부서지는 바다를 구경하는 사람들..

오토바이 타고 이 바다를 보러 온 모양이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어도,

자유가 누리는 자들의 것이듯,

이 바다도 찾는 이들의 것.





캠핑장 퇴소 시각이 11시. 지금은 돌아갈 시간.

식사도 조금 모자란 듯할 때 수저를 놓아야 하듯

즐김도 조금 아쉬움을 남겨야 추억이 더 아름다워지는 것.

북쪽 하늘이 많이 맑아졌다.





테트라포드에 기어 다니는 꽃게..

경상도 남자 만큼이나 무뚝뚝한 시멘트 덩어리 테트라포드가 살아난다.

테트라포드뿐 아니라 슬도로 이어진 방파제에는 군데군데 자기로 모자이크로

형상화한 작품들이 많은데 특별히 바다의 운치를 더한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펜션과 소리박물관과

태양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남쪽 양지바른 잔잔한 은빛 바다.





조사는 낚시보다 햇살 부서지는 은빛 바다에 맘을 뺏긴 듯..

아무렴 어쩌랴! 지금 이 시각 행복하면 그만이지..






캠프장으로 돌아와 퇴소 준비

텐트 걷고, 설겆이 하고, 짐 챙기고.. 집 짓는 데는 30분, 걷는 데는 10분

핵발전소는 짓는데 5년, 해체하는데 30년, 사고라도 나면 회복하는 데는 까마득

뜬금없이 이렇게 쾌적한 오토 캠프장에 핵사고를.. 왜냐하면 월성 핵발전소가

여기서 직선거리 25km. 울산 시내는 더 가깝다. 좋은 곳에 오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무심코 지내지만 우리는 핵폭탄 수십 개를 안고 사는 셈이다.


생각지도 않은 때
동지들(?)의 초대로 대왕암 오토 캠핑장에서
멋지고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
절대적인 것 같은 시간도 상대적인 것 같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아쉽지만, 아쉬움은 다시 만날 여지를 만들어 준다.
산해진미가 부럽잖은 맛난 식탁, 만찬은 끝 모를 이야기들로 밤 깊도록 이어졌고,
파도 소리 들으며 잔 잠, 일어나자마자 심호흡을 하게 한 바닷냄새와 솔향 물씬

하면서도 상쾌한 공기하며, 가린 구름을 뚫고 어김없이 솟아오른 대왕암 일출, 

슬도까지 펼쳐진 아름다운 바닷길, 그 바닷길을 산책하며 이어간 이야기들,
 멋쟁이 동지들과 함께여서, 생각지 않은 때 이뤄져서 더 좋았던 대왕암 캠핑.
공원에서 커피 마시고, 점심을 먹으며 다음 또 어디로 갈지는
숙제로 남기고 그렇게 멋진 캠핑을 마쳤다.
이러다 오토 캠핑에 맛 들이면 어쩌지..





Nothing Else Matters

- Lucie Sil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