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산, 만만한 산은 없다

2019. 2. 2. 21:01山情無限/산행기(일반)




문수산, 만만한 산은 없다.

2019. 2. 2 (토)





올해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중, 일주일에 문수산을 3번 오르기로 한 것도 있다.

하루에 만 보를 걷기로 했는데 문수산을 갔다 오면 16,000보 정도 되니

약 5일분이다. 이게 어딘가 일거양득이다. 나에게는 문수산 깔딱고개가 몸 상태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 깔딱고개 오르는 시간이 나의 몸 상태를 판단할 수 있으니

말이다. 종주하고 정맥 탈 때는 깔딱고개를 16분대에 올랐다. 지금이야 20분대를

목표로 하지만 말이다. 그 정도면 컨디션이 좋은 상태다. 물론 몸속의 상태는 모르지만..

지난 주는 시골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고, 일본 사시는 외삼촌이 나오셔서 이모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고, 이번 주는 나아가던 감기가 다시 도져 힘들었다.

설날 고향 가는 길에 지리산에도 가려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문수산을 찾았다.

시간이 나면 멀리 있는 한라산이나 지리산을 가고, 시간이 조금 나면 영알을 가고,

시간이 없으면 문수산을 간다. 근래는 시간이 날 때도 컨디션이 안 좋아

문수산도 못 갈 때가 있으니 오늘은 무조건 문수산이다.

그 무조건이 사람 잡는 줄도 모르고..





내가 제일 많이 오른 산이 문수산이다.

문수산은 동네 한 바퀴 돌듯 오르는 산이지만, 운동하듯이 오르고,

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오르고, 다른 산 가기 전 준비운동을하느라 오른다.

그래서 딸랑 생수병 하나 들고 부담 없이 오른다. 일주일에 두 번도 오르고,

세 번도 오른다. 물론 지난주 같이 한 번도 못 오르는 때도 있지만

평균 두 번 정도 오른다. 그래서 참 만만하게 여기는 산이다.





그렇게 만만하게 오르던 산인데.. 오늘은 낭패다.

그저께 울산에 눈이 내렸지만, 아직도 눈이 이렇게 많이 있을 줄

전혀 생각도 못 하고 평소에 오르듯 생수 한 병 들고 문수산에 들었다.

감기로 부실해진 몸 상태가 어떤지? 바닥난 체력으로 설날 시골 갔다 오는 길에

고산을 가려는데 워밍업도 할 겸.. 평소같이 등산화도 바닥이 만질만질하도록

닳아 발 스키를 타면 좋을 스파이크 하나 없는 그 등산화를 신고서.. 수난은

이미 예고되었던 것. 영축산 허릿길을 걷다가 쿠당탕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수난이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갈 수록 태산이라더니..

영축산 허릿길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고, 눈이 없는 문수봉은 잘 지나왔는데

이제는 마의 깔딱고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쌓이고 등로는 빙판이다.

돌아설까 말까 하다 가는 데까지 가 보자며 처음 걸음을 배우는 아이마처럼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다 보니 정상이 바로 앞에 나타났다.

휴~ 살았다!도 잠깐,. 세상사 오르기보다 어려운 것이

내려가는 것. 내려가려니 이제 죽었다.





문수산은 정상석 사진도 잘 찍지 않는데

사진을 찍어 준 분이 하도 권유를 하기에 한 장!

문수산 정상석 인증사진으로 유일할 듯..





정상에도 응달에는 눈이 두껍게 쌓여있다.





문수산이 정상에서 보는 울산 시내..

울산의 남쪽에 있다 보니 시가지는 왼쪽에 잘려 보인다.





모래 머물 수 없는 곳이 정상.

벼슬자리가 아닌 산도 마찬가지.. 그리고 잘 내려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 600m 중 500m는 로프 줄을 잡고 아슬아슬하게

무사히 내려왔다. 이마에 땀이 나는 것이 아니라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깔딱고개를 거의 다 내려 갔을 때, 바이커가 MTB를 잡고 서 있길래..

'위에는 눈과 얼음으로 미끄러워 올라가면 안 될 것 같은데요..' 했더니

내려오는 사람 모두가 그런 말을 한다며.. 인증사진 한 장 찍고

내려가야겠다더니.. 나를 앞질러 휑하니 내려간다.

MTB로 백두대간을 마친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안전이 먼저 아닐까!






문수봉에서 뒤돌아본 문수산(위)과 남암산(아래)

지금 걷고 있는 길은 남암지맥에 해당하는 산줄기로,


남암지맥(南巖枝脈)은  

 낙동정맥의 정족산(鼎足山, 솥발산 700.1m)에서 분기하여 

운암산(418.6), 남암산(543.5), 문수산(600), 영축산(353), 함월산, 신선산,

돗질산을 거쳐 태화강으로 스며드는 37.5km의 산줄기로 태화강의 남쪽 울이 된다.

 현재 남암지맥은, 함월산까지는 산줄기가 그런대로 살아 있으나,
울산공단이 들어서면서 함월산 이후는 공단과 도시 주거지의 개발로
산줄기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더군다나 돗질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판 여천천이라는 개울을 건너야 할 지경이다.





앞에 보이는 산이 영축산

울산에는 이 외도 영축산이 두 개나 더 있다.





영축산 둘레도 길이 나뉜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영축산을 오르는 길은 이정표에 없다.

오늘은 영축산 허릿길을 걷는다.





갈수기에는 샘이 말라 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 샘의 물을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는데, 이 샘물은 

거의 지표수에 가까운데도 수질검사는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샘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할 것 같다.





깔딱고개 마의 구간은 무사히 통과했는데..

여기서 세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다니.. 올라갈 때 한 번,

내려오면서 연거푸 두 번.. 그것도 배낭도 메지 않은 맨몸으로,

동네 뒷산에서 길 잃는다더니 눈에 훤한 이 길에서 당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넘어지면서도, 잘 넘어진 것 같다.


눈과 빙판이 있는 줄 모르고 산에 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평소같이, 문수산 다니다 바닥이 다 닳은

문수산 전용(?) 등산화를 신고 올랐으니 눈 위에서 감당이 안 된 것이고,

넘어질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집중을 안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동네 뒷산이라 해도 산은 이렇게 돌변할 수 있으니

산행 대상산에 대한 사전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동네뒷산이라도 무심코 다닐 것은 아니라는

몸소 깨친 깨달음!





호젓하고 편안한 길..


문수산은 동네 뒷산으로 시도 때도 없이 만만하게 다니는 산이지만,

정말 매력적인 산이다. 사방에서 오르는 코스도 많고, 거리와 난이도도

각자 수준에 맞게 산행을 할 수 있다. 문수산의 백미는 정상까지 곧추서

 고도 300m를 가파르게 올리는 깔딱고개와 부드럽고 호젓한 송림길이다.

이 길을 걸을 때는 정말 심호흡을 하면서 걷는다. 힘이 들 때 가쁜 숨을 몰아

쉬지만 실제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은 심호흡이 더 효과적이다.

이 길은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더 좋다.


맨날 다니는 산이라고 만만하게 여겼는데

만만하니까 소홀했는데 섭섭함을 폭발한 것 같다고 할까?

하여간, 동네 뒷산에서 길을 잃듯, 문수산에서 낭패를 당했다.

만만한 산은 어디에도 없다. 문수산도 해발 고도가 600m나 되는

산으로, 어린아이 대하듯 할 것이 아니라, 어른 대하듯 하고,

다른 산들과 같은 격으로 인정하고 대해야 할 것 같다.

먼저 다른 산 가듯 등산화부터 신경 써야겠다.




Joan Baez

The River In The Pines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