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8. 23:56ㆍ시,좋은글/詩
새해에는 뉘우치게 하소서.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과, 남의 가슴을 향해 날아가던 불끈 쥔 주먹을 부끄럽게 하소서. 남을 위해 한 번도 기분 좋게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을 참으로 부끄럽게 하소서. 무심코 내뱉은 침 한 방울, 말 한 마디가 세상을 얼마나 더럽히는지, 까맣게 몰랐던 것을 부끄럽게 하소서. 그리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새해에는 부디 뉘우치게 하소서. 새해에는 스스로 깨우치게 하소서. 내 배부를 때 누군가 허기져 굶고 있다는 것을, 내 등 따뜻할 때 누군가 웅크리고 떨고 있다는 것을, 내 이마에 햇살이 닿을 때 누군가의 등에는 그늘이 지고 있다는 것을 새해에는 알게 하소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길 때 내 발 밑에 밟혀 죽는 작은 벌레와 풀잎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이 좋다는 것을, 많은 것보다는 적은 것이 좋다는 것을, 높은 것보다는 낮은 것이 좋다는 것을, 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이 좋다는 것을 새해에는 분명히 깨우치게 하소서. 새해에는 연약한 것들을 아끼고 쓰다듬을 수 있는 손길을 주소서. 빛나지 않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외롭고 쓸쓸한 것들의 옆에다 내 몸을 세워 주소서. 그리하여 새해에는 장미의 화려한 빛깔 대신에 제비꽃의 소담한 빛깔에 취하게 하시고, 백합의 강렬한 향기 대신에 진달래의 향기 없는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울긋불긋한 네온사인 아래 부초처럼 떠돌게 하지 마시고, 고요한 촛불 하나에 마음을 단단히 기대게 하소서. 새해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하소서.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 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새해에는 기어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하지만 사랑해요, 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오고가는 눈빛으로 사랑을 확인하게 하소서. 사랑 때문에 헤어져 아프게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새해에는 다시 사랑의 연둣빛 싹을 틔울 수 있게 하소서. 저 실업과 노숙의 거리, 젊은이들이 방황하는 골목길의 어둠을 새해에는 물리치게 하소서. 사람 사이의 반목과 지역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우레와 같은 호통을 내려 정신이 번쩍 들게 하소서. 그리고 무엇보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세월 동안 잘 먹고 잘 입으며 살아온 사람들을 깊이 참회하게 하소서. 그들이 통일로 가는 기관차를 가로막으려거든 크게크게 기적을 울려 화해와 상생의 길을 함께 걷도록 꾸짖어 주소서. 새날은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니라 발벗고 찾아 나서야 오는 거라고, 새해에는 자신 있게 말하게 하소서. 썩은 물은 나가고, 맑은 물은 들어오게 하소서. 새해에는 떨림과 설렘과 감격을 잊어버린,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은 몸에도 물이 차 오르게 하소서. 꽃이 활짝 피게 하소서. 북소리가 둥둥둥 들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새해에는 얼음장을 뚫고 바다에 당도한 저 푸른 강물과 같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그때까지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당신에게 닿기 위해서라는 것을 한시라도 잊지 않게 하소서.
출처 : 경향신문 2001년 1월 1일. |
안도현(1961~ )
작가 연보
1961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동 523번지 소망실의 '까치구멍집'
건넌방에서 아버지 안오성과 어머니 임홍교의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남.
1973 경북 안동 풍산국민학교를 다니다가 6학년 3월에 대구 아양국민학교로 전학을 감.
사촌형, 사촌누나와 자취 생활.
1974 가족들은 경기도 여주군으로 농사를 지으러 이주함.
대구 자취방에서 라면을 자주 끓여 먹었으며, 학교에서는 미술반 활동을 함.
1977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졸업.
교지 {무궁}에 투고한 시가 실리지 않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문예반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음.
대구 대건고등학교 문예반 <태동기문학동인회>에 가입하여 현재 문단에서 활동중인
홍승우, 서정윤, 박덕규, 권태현, 하응백, 이정하, 김완준 등의 선후배들을 알게 됨.
'학원문학상'을 비롯하여 전국의 각종 백일장과 문예 현상 공모에서 수십 차례 상을 받음.
부산의 이산하, 대전의 윤대녕 등도 이 무렵부터 사귀게 됨.
1980 대구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 국문과 입학.
대구에서 발간되던 통신문학지 <국시> 동인으로 박기영, 박상봉, 장정일 등과 함께 활동.
1981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 당선. 그 해 부친 작고.
1984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당선.
대학 시절 최정주, 최문수, 권강주, 정영길, 김영춘, 강태형, 김경은, 백학기,
이진영, 이요섭, 이정하 등 선후배들을 알게 됨. 이들과 <원광문학회>를 결성함.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뒤 경북 안동에서 육군 방위병 2개월 간 복무함.
박성란과 결혼, 딸 유경 태어남.
1985 2월에 이리중학교 국어 교사로 부임.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민음사) 출간.
김백겸, 고형렬, 양애경, 김경미, 고운기 등과 <시힘> 동인 활동 시작.
1988 이광웅, 정양, 김용택, 이병천, 박남준 등과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결성에 참여.
1989 두 번째 시집 <모닥불>(창작과비평사) 출간.
그 해 8월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이리중학교에서 해직.
그 이후 1989년 봄까지 전교조 이리익산지회에서 상근함.
김진경, 도종환, 배창환, 조재도, 정영상, 조성순, 조현설 등과 함께 <교육문예창작회> 활동.
1990 아들 민석 태어남.
1991 세 번째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푸른숲) 출간.
1994 3월에 전북 장수 산서고등학교로 복직.
네 번째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출간.
1996 제1회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문학동네) 출간.
1997 2월에 교사직을 그만 두고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함.
다섯 번째 시집 <그리운 여우>(창작과비평사) 출간.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문학동네에서 재출간.
민족문학작가회의 전북지회 결성에 참여.
1998 제13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어른을 위한 동화 <관계>(문학동네), 사진첩(거리문학제),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샘터) 출간.
9월에 전주 근교인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에 작업실을 마련함.
1999 여섯 번째 시집 <바닷가 우체국>(문학동네) 출간.
애송시집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나무생각) 엮음.
2000 어른을 위한 동화 <짜장면>(열림원) 출간.
어른을 위한 동화 <사진첩>을 이룸에서 재출간.
2001 어른을 위한 동화 <증기기관차 미카>(문학동네) 출간.
일곱 번째 시집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 출간.
시선집 <바람난 살구꽃처럼> 엮음.
제1회 노작문학상 수상.
2002 산문집 <사람>(이레) 출간.
그림동화책 <만복이는 풀잎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곳>,
<만복이는 왜 벌에 쏘였을까}, <얼레꼴레 결혼한대요>(태동출판사) 출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
대만 신성출판에서 <자장면>과 <연어> 번역 출간.
제10회 모악문학상 수상.
서일본신문에 산문 50회 연재.
2003 일본 청수사에서 21c 세계 시인선으로 시선집 <빙선> 번역 출간.
2004 산문집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 (태동출판사) 1.2권 출간.
어른을 위한 동화 <나비> (리즈앤북) 출간.
9월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 출간.
2005 제 21회 이수문학상 수상.
시집 <아무것도 아닌것에 대하여>를 (문학동네) 재 출간.
일본에서 에세이 모음 <작게, 낮게, 느리게> 출간.
2007 윤동주 문학상 <고니의 詩作>으로 수상.
정호승, 장석남과 함께 쓴 동화 <비목어> (예담) 출간.
2008 산문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 출간.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문학동네) 출간.
2008 시집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창비) 출간.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23인의 문인들이 함께 쓴 <괜찮아 네가 있으니까> (마음의숲) 출간.
시작법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한겨레출판사) 출간.
2010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이야기 (연어 그 두 번째 이야기)> (문학동네) 출간.
2013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발표하지 않겠다'며 절필 선언 .
2015 트위트에 올린 글을 모은 <잡문> (이야기가 있는 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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