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

2019. 3. 1. 21:03山情無限/한라산




한라산,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



2018. 2. 20, 홀로

 어리목 입구 - 어리목탐방안내소 - 윗세오름대피소 - 남벽분기점 -

윗세오름대피소 - 웃세누운오름 - 영실탐방안내소 - 영실입구







이번에는 아무 계획도 없이 출발했다.

보름 동안 고생하다 겨우 일어났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 

쉬고 싶으면서도 떠나고 싶어 하는 엇갈리는 두 가지 생각,

결정적인 것은 취소가 안 되는 최저가 항공권. 그래 제주도에서 쉬자.

집을 나서는데 비 예보가 없던 울산에도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섰는데 제주에는 더 강한 비가 내리고 있다.

이 우중에 어디를 갈까 하다 성산가는 212번 버스를 탔다. 1시간 40분을 달린

버스에서 내릴 즈음 비가 그쳤다. 우도를 한 번 가볼까 하고 선착장으로 갔더니

풍랑이 심해 배가 뜨지 않는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 잘 되었다. 일출봉을

올라보자. 다리는 무겁고 진땀이 났지만 걸으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무거운 걸음으로 오른 일출봉에서 보는 하늘은 온통 구름 천지.

일출봉에서 내려온 후론 물 빠진 광치기 해변에서 놀멍쉬멍찍고

계획도 없던 첫날은 그렇게 보냈다.





어제 일출봉을 오른 것이 워밍업이 되어

어리목 - 영실 코스는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7시 30분 발 240번 버스를 타고 어리목으로 향했다.

40분을 달려 도착한  어리목 입구에서 어리목 탐방안내소로 가는 길

숲속 청아한 기운이 몸을 휘감는다, 상쾌하다.





어리목 입구에서 15분가량 걸어 올라간 어리목탐방안내소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오늘 비는 오지 않겠지?

어제 내륙지방에는 폭설 주의보까지 내렸다는데 제주는 비가 왔다.

제주의 설경을 보려고 때맞춰 왔는데 오라는 눈은 안 오고 비가 왔다.

결과적으로는 눈을 피해 온 셈이 되었다.

8시 30분 윗세오름을 향하여 출발.







설경을 기대하고 왔지만, 한라산에 눈이 없다.

어제 내린 비로 있던 눈도 다 녹여 버린 것 같다.

5분 정도 오르니 나온 어리목 목교

어리목 목교를 건너자 나온 탐방로 안내판





응달에 드문드문 눈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완전한 눈은 아니고 눈이 녹아 얼은 얼음.

등산로도 빙판길이 되었다.





물품 운반용 모노레일,

짐보다 사람이 더 많이 타고 올라간다.

모노레일이 약해 보였는데 성인 4명과 짐을 제법 싣고도 잘 올라간다.

사람의 걸음보다 2배는 더 빠르게 올라가는 것 같다.





사제비 약수, 샘터에서 시원한 생수 한 바가지.

땀이 날 정도는 아니지만 열이 난 몸이 냉각되는 기분이다.

숲속 기운도 상쾌했는데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마시니

찌든 몸과 마음이 청결해지는 느낌이다.





구름이 옅어지면서 푸른 하늘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한다.

세 모녀가 사진을 찍다가 핸드폰을 데크 틈새에 빠뜨려 그것을 꺼내려

애쓰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건질 수 없을 것 같아, 데크 옆 얼어붙은 돌을

떼어내고 핸드폰을 숨기고 있는 큰 돌을 들어내니 핸드폰이 물에 잠겨 있다.

겨우 건져내어 물을 닦고 핸드폰을 껐다 켜보니 이상이 없는 것 같다.

세 모녀..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하며, 간식을 한 봉지 내민다.

사양하다 사탕 하나만 꺼내 입에 넣고는 갈 길을 가는데, 조금 전

사제비 샘터 오기 직전 스틱을 손봐준 산객들이 가고 있다.

오늘은 또 다르게 산에 오른 보람을 느낀다.






몸 상태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데

기분이 좋으니 발걸음도 한층 가벼워졌다.

오늘 부드러운 이 코스로 오기 정말 잘했다.






만세동산 전망대에서 백록담을 배경으로


제주도 오기를, 한라산 오르기를 정말 잘했다.

쉬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갈등할 때

취소가 안 되는 저가 항공권 6700원짜리(공항세 유류세 포함하면

11100원)가 좌우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나비 한 마리가 앉는 바람에

한쪽으로 기운 것 같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어떻게 구한 항공권인데..

이쯤에서는 몸 상태도, 돈 계산도 아니었다. 단지 어떻게 하여 기념비적으로

구한 값나가지 않는 골동품 같은 초저가 항공권을 버리는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합리적인 생각이 아니라 감정적인 판단을 내린 결과지만

떠나 오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갑자기 구름이 일더니 중공군 밀려오듯 올라온다.






윗세오름, 눈 없는 겨울 한라산을 오르기는 처음인 것 같다.

하긴 2월이라고는 해도 입춘 지나고 우수까지 지났으니 봄이다.

눈 없는 한라산에 실망한 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가끔 빙판길이 나와 가는 겨울 기분을 느끼게 한다.






윗세오름 대피소

점심은 빵과 생수, 우유도 샀지만,

우유는 지금 호텔 냉장고에 들어있다.

머무는 동안 하늘의 구름이 걷히면서 많이 파래졌다.

구름은 하늘을 화폭 삼아 그림을 그린다. 멋있다.

구름이 걷히면서 조망도 트이기 시작한다.





11시 5분, 1700m를 알리는 윗세오름 표지석을 찍고 

남벽분기점을 향해 출발한다. 대부분 영실 방향으로 내려가지만

그중 일부는 이 길로 가고 있다. 







하늘의 구름은 시시각각으로 모습을 바꾼다.

남벽분기점이 가까워지자 서귀포가 발아래 희미하게 보인다.






이런 한라산의 설경을 기대했으나,

오늘은 대신 조망을 열어 주었다.






남벽분기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이 걷힌 하늘이

가을 하늘같이 청명하다.





한라산 남벽 모습

전통 기와집 추녀마루 잡상 같다.





이 길이 돈내코 가는 길이 맞냐고 묻는다.

맞다며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고 하니 얼마냐 머냐고 한다.

여기서 3시간 정도 내려가야 한다고 했더니 그렇게 뭐냐는 표정이다.

날머리에서는 대중교통 연결도 잘 안 된다고 해도 그래도 간단다.

도전하는 젊음이 아름답다. 몇 년 전 이 길로 내려갔는데 대중교통이

불편하여 고생했다. 기다리다 그냥 걸었는데 마음씨 좋은 부부가

포터로 태워 주면서 건네 준 귤은 여태 먹어 본 것 중 제일

맛이 있었던 것 같다. 고마운 분들.. 이 아가씨들이

그때 좋았던 일을 추억하게 해 주었다.






남벽분기점까지 갔다 오는 사람들..






장구목 오름의 모습

아직 남아있는 잔설의 운명도 오늘까지, 길면 내일까지..

생명없는 것도 사라지면 죽는 것일까?





눈없는 한라산에서 눈의 사촌이라 생각되는 빙판마저 반갑다.





윗세오름 대피소가 바로 밑





까마귀의 날갯짓, 새는 모두 두 날개로 난다.

한라산에는 까마귀가 많고 크다.

그리고 겁이 없는 것 같다.





줄 서서 한참을 기다리다 찍은

윗세오름 표지목, 인기가 좋다.





영실방향으로..





1700고지가 평지 같다. 널찍한 길





웃세누운오름 전망대 가는 길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

오늘 한라산은 설경 대신 탁 트인 조망을 주었다.





영실 가는 길은 어리목 쪽과 또 분위기가 다르다.

식생도 많이 다른 것 같다.






어리목 코스와 또다른 풍경





여기도 추녀마루 잡상같은 모습이..






영실 오백나한과 병풍바위

이 코스를 언제 지났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늘 몇 번이나 만난다.

이번에는 남벽분기점까지 갔다 오느라고 뒤따라 온 셈이 됐다.

또 인사를 할까 봐 그냥 지나쳤다.

오늘 즐거운 산행이었기를..





입춘 우수도 지나니 물소리도 세차다.

봄은 강에서, 개울에서 소리 지르며 올라온다.

아래로 내려오니 봄기운이 완연하다.






영실 소나무 숲


제주에 흔한 곰솔과 달리
나무껍질이 얇으며 사계절 붉은 홍송으로
해발 900~1,300m 정도에서만 자생하는 해송.

영실 소나무 숲은 아름다운 숲에 어울리게
대한민국 아름다운 숲에 선정된 곳이라고..





해발 1280m를 알리는 영실 표지석

윗세오름이 1700m이니 고도차 겨우 400여 m

버스가 다니는 영실입구는 여기서 2.5km를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영실입구나 어리목 입구는 똑같이 해발 900m







30분 걸어서 내려온 영실입구


 오늘 이렇게 여유로운 산행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영실입구는 어리목 입구를 거쳐 오는 240번 버스가 다니는데

버스정류장이 한쪽에만 있어 어느 방향으로 가는 버스인지

확인하고 타야 한다. 잘못하면 반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마침 산악회에서 제주도에 오는 날이어서

산악회 대장에게 전화하니, 숙소를 빨리 해약하고 합류하란다.

이미 숙박비도 지급했고, 퇴실시간도 지났으니 호의는 고맙지만

방 빼서 합류할 형편은 아니지만, 하루 일찍 제주도에 들어온 선참으로

손님을 맞아야 할 것 같아 1시간 반을 달려 식사 장소인 모슬포로 갔다.

제주도에서 이렇게 만나니 더 반가웠다. 함께 웃고 즐기면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하고 제주 시내에 있는 숙소로 돌아오니 밤 10시.

제주는 지친 심신을 힐링하기에 정말 좋은 곳인 것 같다.

한라산 정기까지 받아 몸도 마음도 한결 가뿐해지는 것 같다.

제주를 가기 정말 잘했다!





김신우 / 귀거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