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7코스 (태화강전망대~염포삼거리) 울산으로 간 해파랑길은

2019. 7. 7. 23:54길따라 바람따라/해파랑길



울산으로 간 해파랑길은 싱그런 십리대숲 속으로

해파랑길

7코스

태화강전망대-십리대숲-태화루-내황교-염포삼거리

17.1km / 14:00~17:30 (3:30)


2019. 6. 28(금) 흐렸다 갬, 27







해파랑길 6코스는 도심을 산길로 통과하는

솔마루길을 걸으며 힐링이 되었다. 이번 7코스는 울산의

허파라 불리는 십리대숲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가끔 걷는 길이지만

십리대숲 속으로 해파랑길이 이어진다니 더 친근하고 새로운 감동이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 해파랑길일진대 공장들이 해안을 차지하고

있어서 도심을 통과할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울산이 자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명품길로 울산을 지나가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솔마루길과 십리대숲길은 해파랑꾼이 아니더라도 꼭 다녀가시기를

추천할 수 있는 멋진 길이다. 이번 7코스와 다음 일산해변까지 걷는

8코스도 울산 시내를 통과하는 코스여서 출발점 접근시간도 짧고,

또 아는 길이어서 두 코스를 한꺼번에 걸을 수도 있지만,

 사는 지역을 이번 기회에 새로운 눈으로 살펴보기 위해

나누어 느긋하게 걸어 보려 한다.





7코스 출발점 태화강전망대에 서 있는 해파랑길 안내판







철없는 꽃들은 계절을 건너뛰려나

벌써.. 태화강변에는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활짝 피었다.






시작부터 이게 뭡니까?

함께 산책을 나왔으면 배설물을 치우고

수거한 배설물을 가져가라고 하지 않아도 가져가는 것이 상식 아닌가

안내판에 붉은 글씨로 반드시 가져가라 강조하고 있는데  배변봉투함에

넣어 두고 가는 사람은 정말 개 만큼도 못 한 사람 아닐지?

이 지역에 산다는 것이 참 부끄럽게 여겨지는 순간이다.

또, 낚시 금지 구역에서 낚시하려는 사람들은 뭐지?

 카메라를 봤는지 자리를 피하긴 한다만..






구 삼호교와 인도교,

해파랑길은 태화강전망대에서 태화강 상류 쪽으로

2km 정도 올라 왔다가 삼호 인도교로 태화강을 건넌 다음 

십리대숲을 지나 태화강 하류를 지나 현대차 선적부두를 지나

성내삼거리에서 염포삼거리로 향한다.










잘 정돈된 태화강변

보행자 산책로와 자전거전용도로, 길옆으로는 운동장,

끝없이 펼쳐지는 대숲과 정원






강 건너 대숲에는 쇠백로가 노닐고 있다.

태화강변에는 겨울 화려한 군무로 장관을 연출하는 떼까마귀를 비롯하여

부부 금실 좋기로 이름난 텃새 멧비둘기, 꽃바람에 신명 난 먹성 좋은 새

직박구리 등 철새와 텃새 등 120여 종이나 서식하고 있다.


특히 겨울이면 10만 마리가 넘는 떼까마귀가 울산으로 모여드는 것은

편안한 잠자리와 풍부한 먹이, 포식자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 등이

고루 잘 갖춰져 있기 때문. 태화강을 따라 4㎞에 걸쳐 이어져 있는 십리대숲은

까마귀들이 규모가 크고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빽빽하게 우거진 대숲에는

사람과 위험한 맹금류가 들어가지 않으니 더할 수 없이 안전한 휴식처가 된다.
울산은 겨울 추위도 심하지 않지만, 대숲이 차가운 바람까지 막아주니

포근하기까지 하여 겨울을 나기에 안성맞춤이다.




또 태화강을 건너는 다리가 건설되고 있다.

옥동-농소간 도로가 개설되면서 태화강을 지나는 다리다.

북부순환도로 삼호교부터 하류 울산대교까지 인도교와 철교까지

포함하면 다리가 11개가 되는데 울산대교를 제외하면 모두 특색 없이

강을 건널 수 있는 기능만 갖춘 것 같다. 새로 건설하는 다리는

도시미관을 고려한 디자인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쉽다.






오산(鰲山) 만회정(晩悔亭)


만회정은 조선 중기 부사(府使)를 역임한 만회 박취문(朴就文

1617~1690)이 말년에 휴식과 교우를 위하여 말응정(秣應亭) 마을 앞

오산 기슭에 세운 정자로 19세기에 소실된 것을 2011년 중건하였다.

박취문은 아버지 박계숙(朴繼叔)과 함께 부북일기를 남겼는데,

이 책은 2006년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만회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원래는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고, 앞면 전체에 툇마루를 둔 언양읍 집청정(集淸亭)과

유사산 형식이었다. 그러나 새롭게 중건한 만회정은 시민들이

두루 감상하기 편리하도록 하나의 마루로 구성하였다.

한편, 주변 바위에는 '관어대(觀魚臺)' 글자, 자라 그림,

시 등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산과 십리대숲이

이전부터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십리대숲의 유래


태화강 공원 서쪽에 솟은 오산을 중심으로

삼호에서 용금소(태화루)까지 10리(4km) 구간의

236,600㎡ 대나무군락지를 '태화강 십리대숲'이라 부른다.

십리대숲의 대나무는 고려중기 문장가인 김국기의 태화루

시에 그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1749년 울산 최초 읍지인

'학성지'에도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대나무가 자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나무 숲에는 공기 속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음이온이 발생하여 신경 안정과 피로 해소 등

면역력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철 푸르른 대나무는 어느 때 보아도 좋다.
봄에 자라는 죽순은 새 힘을 주고, 여름철에는

시원함을 선사한다. 또한, 가을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와 겨울에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대나무는 곧게 자라고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하여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 되어 예로부터

선비의 사랑을 받아왔다. '대쪽 같다'는 말은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굳게 지키는 의미.

지금은 대쪽같은 선비가 그리운 세상! 





대숲에서 보는 해파랑 표식을 따라

끝날 것 같지 않은 싱그런 대숲 속으로 난 길을 걸었다.

더운 날씨인데도 기분이 상쾌하다.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다.

녹색이 정말 눈도 시원하게 하는 것 같다.





태화강변은 대숲과 철 따라 피는 꽃,

각종 나무로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아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울산시에서는 태화강변을 '태화강국가정원'으로 신청해 놓았는데

최근 '산림청 자문위원회'를 통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십리대밭교, 그 아래도 보이는 태화루

해파랑길은 태화루 정원에도 들리고 

돌담을 따라간다.







태화교 끝지점 전망 좋은 곳에 있는 태화루(太和樓)


태화루는 고려 성종(成宗)이 울산에 행차했을 때 이곳에서

잔치를 열었을 정도로 유명한 누각이었다. 태화루의 기원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이 창건한 태화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태화루는 조선 시대에 두 번 고쳐 지었는데, 그때마다 당대 최고 학자였던
권근과 서거정이 기문(記文)을 썼을 정도로 명성이 있었다. 서거정은 "경치가
내가 전에 보았던 누대들과 엇비슷한데, 앞이 멀리까지 넓게 트인 것은 이곳

태화루가 오히려 더 좋다"라고 했다.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고려시대부터

'울주팔경' 중 하나였으며, 정포·양희지·김종직·김시습·김안국 등

유명한 관리와 학자들이 태화루에 대한 시를 남겼다.
울산을 대표하던 태화루는 공무를 처리하거나 경치를 감상하는

장소 등으로 활용되었으나, 임진왜란 전·후에 없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2014년 4월 공사를 마쳤다.

태화루는 고려 시대 건축양식을 참조하여 정면 7칸,

측면 4칸의 주심포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태화강변 모습 1


태화교 아래 풍경

여름은 이렇게나마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겨울은 또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할까?






태화강변 모습 2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해로 오명이 높았던 울산.

역겨운 냄새로 진동하던 태화강도 이제 생태하천으로 거듭나

이렇게 강변을 산책할 수 있게 되다니.. 정말 다행이다.





태화강변 모습 3


이제 갈매기도 많이 길든 것 같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길든다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닌데..






마두희 곶나무


울산의 큰 줄다리기 "마두희"는

풍수지리에 대한 비보 개념으로, “땅의 모양에 따라 정기가

약하거나 소멸되어 가는 기운을 잡아두자”는 의미가 있다는 것.

조선 시대 영조 때의 울산읍지에 구체적 기록되어 있다.

울산 마두희의 기원은 울산읍지의 하나인 “학성지”는

당나라의 “발하”를 본뜬 것으로 밝히고 있으며,

울산의 지형이 “동대산과 무룡산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달려 내려오다가 방어진 앞바다에서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지형”

으로 “울산의 정기가 바다에 함몰하므로 여기에 줄을 걸어서

당김으로써 정기를 잡아오자는 뜻”이라고 한다.
 

“단오에 병영과 울산부에 사는 사람들이 미리 칡을 준비하고

하짓날에 객사 종루 앞에 모여 길을 갈라 동서로 편을 짜서

각자 꼬아 줄목을 만든 후, 자물쇠로 거는 것과 같이 암줄과

수줄로 줄목거리 후, 두 사람을 남복과 여복을 입혀 남자는 동쪽,

여자는 서쪽 줄목에 올려세워 양편 사람들이 줄을 메고 어루며 놀다가

재빨리 줄을 연결하면 곧 남녀는 땅에 내려서고 바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무리가 단결하여 서로 당기는 놀이“의 의미로

이후 칡 줄과 비녀목을 태화나루 배를 매는 말뚝과 줄로 사용,

서편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 하여 지역안녕을 기원하는 대동놀이의

풍속 중 하나로 전해져 오고 있다. 마두희 놀이는 줄 드리기, 고사,

줄 어루기 줄다리기 뒤풀이 순으로 진행되는데 올해는

지난 6.7~9일까지 중구 원도심에서 열렸다.






울산의 마천루들.. 거의 모두 주거시설이다.







울산교(인도교)와 번영교

번영교는 울산의 번영을 바라는 의미에서 조성된 번영로를

연결하는 다리로 1990년 구 번영교가, 2003년 신번영교가

건설된 후 두 다리가 합쳐졌다. 중구 옥교동과 남구 달동을 잇는

길이 333m 폭 33m 왕복 10차선 다리이다.





태화강변 풍경 4


휴식시간인가 보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똑 같다.

지금은 휴대폰 타임





태화강변 풍경 6


그라운드 골프?

골프와 게이트볼의 장점을 딴 신종 스포츠라는데..

처음 보는 풍경이다.





오늘 몫의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

성내삼거리까지 7.9km 남았다. 반쯤 걸은 것 같다.

성내삼거리 직전까지 태화강변을 걷는다.

찬찬히 보며 걸으려는데도 진도가 빠르다.





왼쪽으로 보이는 학성공원


한말에 창간된 경남일보 사장을 지낸 김홍조(金弘祚)가

1913년 23,141㎡의 땅을 울산면에 기증함으로써 공원이 생겼다.

천신(天神)이 학을 타고 이곳에 내려와 학성이라 불렸다 하며

신라의 계변성을 이르는 명칭이기도 했다.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읍성과 병영성을

헐어낸 돌로 울산왜성(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을 쌓았는데

그때만 해도 학성의 남쪽은 바다와 접했다 한다. 낮은 동산인

공원에는 울산왜성 터를 비롯해 태화사지 십이지상부도,

봄 편지 노래비, 충혼비 등이 있다. 봄이 되면 공원이

벚꽃으로 하얗게 뒤덮이는 모습이 좀 그렇긴 하다.






태화강변 풍경 7


선바위교부터 학성교 구간(12.6km)은

낚시를 금지하고 있지만, 하류는 낚시할 수 있다.

태화강 상류 지역에도 배스와 블루길, 붉은귀거북 등

생태계 교란종 퇴치를 위한 낚시대회를

자주 열면 어떨지..





동천

경주 진전산에서 발원하여 울산광역시 북구와 중구를 관통하는

태화강 지류인 동천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어연천으로 불렀고 한다. 어연천은 어이내의 한자표기로 냇물이

길게 이어 흐른다는 의미이다. 어제 내린 비로 수량이 많이 분 

동천을 내황교로 건너서 해파랑길을 이어간다.







내황교를 건넌 해파랑길은 명촌대교 부근

태화강 억새군락지 사이로 난 길을 간다. 가을이 되면 이

부근은 하얀 억새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보통 갈대는 물가에

자라고 억새는 산 능선이나 고지에 자라지만 억새 중에서도

물가에 자라는 억새가 있으니 그 녀석이 바로 이 녀석 물억새다.

물론, 울산에서 영남알프스 신불평원과 사자평의 억새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이곳의 억새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억새밭에 칡넝쿨이 침범하고 있다.






억새밭을 빠져나온 해파랑길은

아산로 변 인도를 따라 이어간다. 아산로는 울산 북구

명촌동 명촌교 북단 사거리에서 북구 염포동 성내삼거리를

연결하는 총연장 4.8Km, 너비 30m(왕복 6차선)로 현대자동차가

326억을 투입하여 건설 후, 울산광역시에 기부채납하여

1996년 12월 28일 개통된 도로. 이전에는 이곳이 바다였지만

매립하여 도로를 내었다. 길 이름은 아산 정주영 회장의 호를 딴

아산로가 되었다. 소위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구 현대그룹의

공장들이 들어서 있어서 현대왕국으로 불렸다.

이제는 예전 같지 않지만..





돋질산.. 낙동정맥 정족산에서 갈래를 친 남암지맥은

남암산, 문수산을 거쳐 바로 여기까지 와서 맥을 다한다.


울산의 구시가지에서 이 산을 볼 때 돼지의 주둥이가

북쪽으로 튀어나온 것 같아 마치 돼지머리 같이 생겼다고

돼지의 옛말 ‘돋’과 울산지방에서 머리를 뜻하는

방언 ‘질’을 써 돋질산(猪頭山)이라 하는데

여기서 보는 모습은 무슨 모습?






울산대교 아래로 보이는 

현대미포조선에 수리를 위해 들어와 있는 배들..

그리고, 현대자동차 수출 자동차 전용부두에서 수출 차를

 싣고 가기 위해 정박해  있는 거대한 자동차 운반선들..






선적을 기다리는 자동차들..





성내고가교

염포산 터널을 통하여 동구청까지 곧바로 갈 수 있다.





지금 울산은 비상이다.

특히 현대중공업이 있는 동구는 더 그렇다.

현대중공업이 기업승계를 위해 노조와 울산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를 열어 '물적분할'을 

5분 만에 기습적으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물적분할로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9코스 현대중공업 지날 때 살펴볼까 한다.)







염포삼거리에 서 있는 삼포 개항지 표지석


삼포 개항(三浦開港)은 1426년(세종 8년) 대마도주

사다모리(宗貞盛)의 청에 따라 기존에 개방하였던,

웅천(진해)의 내이포(乃而浦), 부산포 이외에도울산의

염포(鹽浦)를 추가로 개항하고 일본인에게 교역을 허락한 일.

1418년 세종 초년 제3차 대마도 정벌 이후 대마도주 사다모리는

단절된 조선과의 정상적 교역을 누차 청하여 왔기 때문에

조정에서도 그들에 대한 유화책의 하나로 3포를 세종 8년 개항했다.

그래서 웅천(熊川, 현재 진해)의 내이포(乃而浦, 제포[薺浦]라고도 함),

동래(현재의 부산)의 부산포(富山浦), 울산의 염포(鹽浦) 등 3포를

열어 무역할 것을 허락하였다. 3포에는 각각 왜관을 두어

왜인 60명에 대하여 거주를 허락하였다. (위키백과)


염포라는 지명은 예로부터 소금밭이 많아

'소금 나는 갯가'에서 유래되었다. 지형상으로 서북쪽에

하얀 평야가 있었을 뿐 갯가와 산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실제로 조선 시대에는 상업 도시로 물물교환이 잦았고,

해방 전후로 소금이 많이 생산되었다. 태화강 하류와 통해안이

교차하는 이곳은 재첩과 장어 파래 등 해산물도 풍부했다.

울산이 광역시가 되는 과정에서 1997년 동구 염포동으로,

1998년에는 북구에 편입되었다.




해파랑길 7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