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5코스 (진하해변~덕하역)

2019. 6. 29. 23:05길따라 바람따라/해파랑길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 770km

해파랑길

5코스

진하해변-덕신대교-청량운동장-덕하역

17.6km / 09:00~13:50 (유유자적 4:50)


2019. 6. 13(목) 쾌청, 30







오늘 일출 시각을 맞추어 일어나려고

어제 일찍 자리에 들었는데 밤새 선잠을 자다 늦게 일어났다.

여명을 지나 파란 하늘에 붉은 띠가 번져가는 햇귀가 일품인데

벌써 오늘 하루를 달구려는 듯 적도의 일출같이 구름을 붉게 태우며

밝아오고 있다. 바쁜 마음이 몸을 채근한다. 진하 해변 남쪽 캠프장에서

강양항까지 바쁘게 걷지만, 오늘따라 길이 멀다. 오메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강양항에 도착하고 숨 고를 여유까지 준 후

수평선에서 한 뼘이나 위쪽에서 바라볼 수 없는 광채를 발산한다.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될 수 있기를 다짐하며

오늘은 12시 전에 덕하역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김칫국을 마셨지만..







강양항 일출.


명선도는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을 때가 좋았다.

지금은 토끼가 방아 찢던 달나라의 신화를 잃은 모습이다.

강양항으로 가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화합의 다리 명선교 위에서

회야강변을 담아 본다. 오늘은 이 강변을 따라 걷는다.






저기 조그만 녹색 A형 텐트가 보인다. 초라하지만

지난 밤 이슬과 바람을 피해 잘 수 있게 한 나의 안식처다.

강양항에서 뒤늦게 뜬 해를 잡고 씨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늘 햇살이 강해지기 전에 일찍 출발하려던 생각은 생각으로 끝났다.

아침이라야 라면과 햇반 반쪽에 일찬이지만 마음만은 진수성찬

부럽잖다. 커피 한잔하고 짐을 챙겨 길을 나선다.






먼바다 섬 같은 배들과 명선도.

아폴로가 달에 살던 토끼를 쫓아 버렸듯

육지가 된 명선도는 모세의 기적도 사라지고,

명선도(名仙島)에 내려와 놀던 신선도 도망가 버렸다.


사진 작가들에 인기 있는 출사지인

명선도(名仙島)의 본래 이름은 명선도(鳴蟬島),

매미가 많이 울어 유래한 지명이라고 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불모(不毛)의 섬을 뜻하는 맨섬이

매미로 변하면서 훈차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진하 해변 풍경






오늘 몫의 길을 가기 위해 출발점에 섰다.

저 앞에 진하해수욕장의 상징적인 다리 명선교가 보인다.

회야강을 사이에 둔 강양마을과 진하마을을 연결하는 다리인 명선교는

두 마을의 화합을 상징으로 학을 형상화했다. 형상도 특이한데

야경이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진하에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도 있다.

이전에 하얀 건물이었던 것 같은데, 사람이나 건물이다

옷이 날개인 것 같다.






고난의 서곡(序曲),

구름 한 점, 그늘 한 점 없이 끝없는 시멘트 포장길이 펼쳐진다.

길옆 이름 모를 꽃도 더워진 탓에 향기마저 떨떠름하다.







계속 회야강을 따라 진행한다.






한하운 님은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라고 자신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었다.

내리쬐는 햇볕과 불그스레한 시멘트 길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복사열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고 신발은 발을 조여 온다.

물론 천형의 병을 고치러 가는 길과 비교할 수 있을까만..

끝날 것 같지 않은 시멘트 포장길, 바람마저 잠잠한데

강변에 노랗게 핀 금계국마저 더위에 지친 모습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시멘트 길이 끝나면서

한길까지 나왔던 해파랑길은 도로를 버리고 비포장 둑길로 이어간다.

간간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그늘도 만난다.





날아가는 백로를 찍으려 셔트를 눌렀는데

강에 내려앉는 백로가 찍혔다. 백로는 좋겠다.

강물에 발을 담근 백로가 부럽다.







강둑을 따라서 오던 길은 잠수교로 남창강을 건넌다.

이 부근은 고인 강물이 심하게 오염되어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다리를 건넌 길은 오른쪽으로 꺾어 회야강 본류 강둑을 이어간다.

조금 비릿한 냄새가 난다. 저 앞에 밤나무에서 나는 밤꽃 향기다.

 너른 벌판 가운데로 남창 시내의 삐쭉삐쭉한 고층 아파트들..

그 뒤로 보이는 산이 정족산 같다.







상회2교로 다시 회야강을 건넜다.






회야강을 건넌 길은 도로를 따라간다.

간간이 보이는 해파랑길 표식이 정감있게 다가온다.

평소에는 가로수가 많은 것 같은데 가로수 그늘 덕을 좀 보려니

가로수가 없는 길도 참 많은 것을 실감한다.







멀리 온산교와 한길교회, 온산공단 배후도시 덕신.

벌써 오늘 길을 거의 반쯤 걸은 것 같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걸어왔는데.. 발이 불편하다. 신발이 발을 조여 오면서 

발바닥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작로같이 쭉 뻗은 남창 강변길.

금계국이 지천이다. 꽃양귀비도 드문드문 보인다.

근래 도로변이나 공터에 금계국이 많이 보이는 것은

생명력이 강해 떨어진 씨가 다음 해 발아가 되기 때문에

씨를 한 번 뿌려놓으면 저절로 번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금계국도 개망초와 같이 고향이 아메리카라고 한다.


뙤약볕 아래 다리 난간에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은 뭐고, 한 마리도 못 낚은 낙시꾼을 구경하는 사람은 뭐며

그들을 지켜보다 이야기를 건넨 난 뭐지?

"고기가 좀 잡힙니까?"

"저기 저기 보세요. 물고기가 천지삐까림미더"

우문현답, 그림 속의 떡 같다.

 




발이 탈이 난 모양이다.

원래 발에  꽉끼는 신발이어서 산행할 적에는 안 신고

인근 문수산 오를 때만 신던 경등산화를 신고 나선 것이 화근이 되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야영 채비를 한 무거운 배낭을 멘 데다 오늘은 특히

시멘트와 아스팔트 포장 길을 걸었으니 발에 무리가 갈 수밖에..

아치교 건너 정자에서 양말을 벗어보니 왼발은 물집이 생겼고

오른발은 굳은살 진 부분이 닿기만 해도 아플정도로  성이 나 있다.

아직도 8km 정도 더 가야 하는데..






자꾸 뒤돌아본다.

뒤돌아보지만 지나온 길이 크게 불어나지 않는다.

걷는 속도도 느려지고 쉬어 갈 곳만 찾게 된다. 발이 불편하니 

온 정신이 발로 집중된다. 그러다 보니 발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오늘은 발에 참 미안한 날이 될 것 같다.








쭉 회야강변으로 이어가던 길은 망양에 이르러

도심으로 들어선다. 같은 태양이라 해도 강변에서 받던 열과 도심에서

받는 열이 다르다. 후끈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지열을 받으며 절뚝거리며

엘지하우시스 정문을 지나니 망양삼거리다.

자동차로 늘 오가던 눈에 익은 길.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여행은 낯선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면서도 이렇게 낯익은 곳이

반가울 줄이야!








망양삼거리 노변에 주차해 놓은 화물차 숲을 지나

동천1교로 솔발가든 앞 회야강을 건넌다. 그런데 이게 뭐람.

강바닥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고 이 황록색 수생식물들은?

부영양화가 심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회야강이 멀리서 보기에는

대체로 깨끗한 것 같았는데 남창강을 건널 때 오염이 심했고,

또 여기도..








동천1교에서 회야대교 밑까지 비슷한 모습이다.

바로 위에 회야호가 있을 텐데.. 이렇게 강을 오염시키는

오염원이 어딜까? 계속 오염된 강만 보고 걷는다. 이 순간은

발이 아픈 것도 잊고 해파랑길 걷는다는 것도 잊은 채..

길이 옆으로 새는 줄도 모르고..

아픈 발은 절뚝거렸겠지..





샛길에서 나와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양천마을회관.

뭔가 이상하여 주변을 돌아보니 해파랑 표식이 안 보인다. 

버스정류장에서 확인하니.. 아뿔싸 한참 지나쳐 온 것이다.

잠시 환경감시원이 되는 바람에 해파랑길을 걷는다는 걸 망각했다.

 할 수 없다. 되돌아 나갈 수밖에는.. 아픈 발로 이렇게 헛고생까지

하다니 곧장 갔으면 덕하역이 한참 가까워져 있을 텐데, 

엉뚱하게 걸어온 길이 얼마나 아깝게 여겨지는지..

발이 더 아파져 오는 것 같다.






약 1km 정도 되돌아 나오니 회야정수사업소

맞은편 샛길 입구 전봇대에 반갑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한 

해파랑 표식이 붙어 있다. 순간 야속한 생각도 들었지만 돌이켜 보니

야속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내가 살피지 않은 것이지 해파랑 표식이

나를 속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왕복 2km, 샛길을 300~400m로 잡아도

1.5km를 헛수고한 셈이다. 평소 같으면 1.5km야 15분이면 걸을 수 있는

길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30분 이상 지체된 시간보다

발에 더 미안한 마음이다.







양동회관 앞 굴다리를 통과하여

왼쪽으로 꺾어 나가니 양동마을 버스정류장.

그 앞으로 한없이 길고 덥게만 느껴지는 적색으로 포장된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덕하역까지는 아직도 4.5km. 버스정류장 5곳.

'버스를 타고 갈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내 속의 또 다른 내가

'그러려면 뭐하려고 나서서 생고생해'한다

그렇다. 누가 가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원해서 나선 길..

자신과의 약속도 못 지키면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가자! 가자! 끝까지 가는 거야.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아니면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지나가던 택시가 두 대나

멈칫 멈칫거리며 간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가는

버스를 대신하여 버스정류장마다 쉬어 가며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무르고는 다시 간다.





청량교를 지난다.

무의식적으로 청량천변에도 셔터를 눌러본다.







덕하버스정류장, 그럼 다음이 덕하시장,

그다음이 덕하역.. 오늘 덕하역까지만 가면 된다.

정상 바로 코 앞이다. 하지만 산행도 정상 직전이 제일 가파르고

험준하여 힘들지 않던가. 덕하시장에서 점심을 해결하고도 싶었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식당이 없다. 시장에 가서 식당을 찾을 형편도 못 된다.

덕하역까지 가는 동안 도로변에 맘에 드는 식당이 있으면

들어가려 했는데 맘에 드는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인생 일대 최고의 목표는 다른 아무것도 아닌

무사히 덕하역까지 가는 것.





13:50, 드디어 덕하역.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고난의 여정이 끝났다.

힘들었던 만큼 성취감도 있긴 하다. 1935년 문을 열고

1941년 5월에 신축하여 한때는 소금 장수들로 붐볐다는 덕하역.

타려는 사람이 없는지 대합실에는 아무도 없다. 활짝 열린 문으로

통과하는 바람이 선풍기 바람보다 시원하다. 전세 낸 듯 홀로

대합실에서 쉬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등산 장비 중 제일 신경 써야 할 것이 등산화다.

옷이야 더우면 벗고, 추우면 껴입으면 되지만 신발은 걷는 내내

몸에 붙어 있어야 하니 말이다. 이틀동안 박짐을 지고  거의 100리 가까운

 길을 걸으려 나서면서 불편한 신발을 신고 나선 바람에 쓰러지지 않을

만큼의 고생을 했다. 사실, 오늘 길은 해파랑길 50개 코스 중 제일 쉬운

코스에 속한다. 난이도가 제일 낮고 거리도 짧은데 기진맥진하다니.

안이하게 생각했다가 혹독한 댓가를 치뤘다. 일격을 당한 느낌이다.

앞으로 갈 길에 좋은 약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