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24. 23:58ㆍ길따라 바람따라/해파랑길
문무왕이 통곡하면서 동해를 지키고 있지 않을지..
해파랑길
11코스
나아해변-봉길해변(문무대왕릉)-감은사지-이견대-전촌항-감포항
18.8km / 10:30~15:30 (왔다리갔다리, 5:00)
2019. 7. 16(화) 구름 약간 뙤약볕, 30℃
이번 코스는 나아해변에서 감포항까지.
봉길 해변에는 동쪽에서 침입해오는 왜구를 막는
동해의 용이 되겠다고 대왕암에 묻힌 문무왕수중릉이 있다.
BC 5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 무려 33차례나 왜(倭)가
신라를 침범한 것이 확인된다. 그 후에도 왜구들이 얼마나
설쳤으면 문무왕이 죽어서 동해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고 했겠는까!
봉길 문무왕수중릉을 지나 감은사지, 가곡항을 이어가던 길은
모래가 고운 나정해수욕장을 지난다. 이후 물양장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꾸민 전촌항에 이르면 이번 코스 종점인 감포 턱밑이다.
이번 코스는 신라의 서울 경주가 인근인 구간으로
옛 신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지역이다.
나아해변, 바로 앞에 보이는 월성원자력발전소.
월성원자력발전소를 에둘러 봉길터널을
자동차로 통과한다. 여기는 전체 코스 중에 유이무삼한
차량으로 이동하는 구간 중 하나. 또 한 번은 마지막 50구간
제진검문소에서 통일전망대까지다
봉길 터널을 통과하여 봉길1리로 나오니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산업장 폐기물 매립장 반대' 현수막..
아무리 핵발전을 옹호하더라도 핵은 절대 안전하지는 않다는 것.
핵발전소 관련 폐기물이 안전하다면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곳에 설치할 것이 아니라 원자력안전위 위원들이나
찬핵론자들 앞마당에 설치하면 될 일 아닌가!
사적 158호 신라 문무대왕릉(수중릉)
문무왕(재위 626~681)은 삼국통일을 이룬 뒤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동쪽에서
침입해 오는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하고는 재위 21년(681)에 사망했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화장하여 대왕암에 장사하였다.
대왕암은 오랫동안 왕이 묻힌 '대왕바위'라 하여 해녀들도 이 근처를
신성시해서 가지 않았다고 한다.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를 세우고 수로까지 파 놓았는데 이 수로가
대왕암으로 직결된다. 신문왕이 만든 전망대(이견대)
역시 대왕암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있다.
BC 5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 무려 33차례나
왜구(倭寇)가 신라를 침범한 것이 확인된다. 그 후에도
왜구들이 얼마나 설쳤으면 문무왕이 동해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는
유언까지 했겠는까? 고려 시대에도 왜구의 침략이 극심하여
고려 말기 약 40년간은 피해가 컸다. 고려가 멸망한 요인 중
하나로 왜구의 침략으로 인한 피해를 꼽히기도 한다.
왜는 이후에도 조선 시대 임진왜란, 근대 제국주의 시대에는
강점하는 등 이 땅을 호시탐탐 노려왔다. 과거만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지금이다. 일본은 작금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헌법을 개정하려 하고, 한국이 앞서는 것을 막기 위해 야비한
방법으로 수출을 규제하여 첨단산업의 발전을 막겠다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총만 안 들었지 전쟁이다.
지난 2000년간 왜에 침략당해 왔지만,
이제 분연히 일어나 倭의 야욕을 꺾고
당당하게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저 칸막이 시설들은?
예전부터 영험한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인지
오늘날에도 이곳에 가면 제를 올리는 무속인들이나
대왕암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적잖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몰상식한 관광객이나 치성을 올리고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고 가는 무개념 무속인들 때문에 비판이 많다.
계룡산처럼 쓰레기 무단투기를 단속하면 안 되나?
지저분하고 막걸리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숨이 막혀
사진 서너 장만 찍고 빨리 빠져나왔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주춧돌을 잘못 놓은 탓이다.
이제는 김문수 같은 인간도 대 놓고 친일을 해야 한다며 목에
핏대를 올린다. 지난번 OECD 정상회담이 열린 일본 도쿄에
한국의 보수라는 자가 한 손에 일장기를 들고 일본극우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매도하고 있는 장면을 봤다. 도대체 어쩌자는 걸까?
국가를 비판하는 단체면 반국가단체다.
감은사지에 도착하여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는데.. 아뿔싸! 휴대폰을 자동차에 두고 온 것이다.
생각의 여지가 없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수 밖에는..
멀지 않은 곳에서 알았으니 다행이다 했는데..
두 번 걷는 길이지만 멋진 풍경도 담았으니
완전히 헛일한 것이 아니라고 자위해 본다.
여기는 초등학교 동문회까지 나섰다.
자동차는 봉길리 그늘 진 좋은 자리에 주차했는데
이번에는 또.. 조금 전 휴대폰을 가져오면서 자동차 문을 어떻게
했는지 생각이 긴가민가 한다. 차 안에는 카메라 렌즈도 하나 있는데..
마침 대종천 건너편에서도 차가 잘 보였다. 화상 크기를 최대로 늘리고
300mm 줌을 최대로 당겨 찍어서 아웃사이더 미러 상태를 확인해
보려는데 하필이면 결정적인 부분이 소나무에 가린다.
또다시 갔다 오려니 왜 그렇게 귀찮게 여겨지는지..
사실, 오늘은 시작부터 일이 꼬였다.
8시에 집을 나설 계획이었는데 늦게 잤는데도 일찍 깨었다.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난다는 게 늦잠이 되어 9시 반에 집을
나서게 되었다. 대중교통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예정에 없던
자동차를 가지고 오는 바람에 생긴 일들..
그래도 그렇다. 오늘 내가 왜 이러지..
시냇물과 바다가 만나는 순간이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향하던 냇물은 가장 낮은 곳
여기까지 왔다. 그래 시냇물의 꿈은 바다가 되는 것.
먼 길을 오느라 애쓴 강물을 바다답게 거리낌 없이 수용해
주는 것 같다. 이렇게 포용해 주니 바다라 하겠지.
자연은 좁쌀만 한 아량도 없는 인간보다 위대하다.
아담한 대본항과 잘 간추려 놓은 낚시 바늘
어부의 정성만큼 물고기가 많이 잡혔으면 좋겠다.
바닷길에서 다시 31번 도로로 올라왔다.
큰 소나무 그늘 수돗가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는 옛날 시골의 우물가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참나리 한 무더기가 반긴다.
참나리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토종식물로,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자생 나리의 명칭도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하다.
고려 시대에는 견내리화(犬乃里花), 대각나리(大角那里)로, 조선 시대에는
견이일(犬伊日), 개이일이(介伊日伊). 동의보감에는 '개나리불휘'로,
물명고(物名攷)에는 흰 꽃을 '휘날이'로, 하늘나리(산단, 山丹)를 '산날이'로,
붉은 꽃에 검은 반점이 있는 권단(卷丹. 참나리)을 '개날이'로 부르다가
지금의 '나리'가 되었다고 한다.
대본1리 해변의 햇볕은 정말 따가웠다.
구름도 그늘도 한 점 없고, 바람도 없다.
올해 양파가 처치 곤란할 정도로 풍년이라고 한다.
농부들은 농작물이 풍년이면 풍년이 들어서 제대로 돈을 못 받고
흉작이 되면 흉작이어서 어렵다. 정부가 수급조절을 해 주면 안 될까?
원래 농협이 이런 기능을 해야 하지만, 농협은 무늬만 농협이고
이름만 농협이지 그런 기능은 전혀 없다. 오히려 농민을 담보 잡고
농민들에게 장사만 하는 것 같다. 농협은 이름만 빌려 쓰지 말고
네덜란드의 협동조합을 배워 농민을 위하면 얼마나 좋을까!
대본1리 가곡항 모습
이 모습은 항구에서 낚시하는 일반적인 풍경은 아니다.
땡볕에서 그물을 준비하는 어부의 손길은 아주 힘들어 보인다.
방파제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만파식적은 신라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감은사를 짓고 추모하는데, 죽어서 바다 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적의 군사는 물러가고, 병은 낫고, 물결은 평온해졌다고 한다.
이 설화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흩어져 있던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 했던 호국 사상과 모든 정치적 불안이
진정되고 평화가 오기를 소망하는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신라의 서울 경주가 가까운 지역이니..
시간이 갈수록 자동차 문이 잠기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짙어지면서 신경이 쓰인다. 햇볕까지 따가워서
정자에서 좀 쉬어갈까 했는데 완전 전세 낸 모습이다.
다리도 무거운데 모래 밭길이라 발이 푹푹 빠진다.
해녀들은 시원하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다가
남의 사정도 모르고.. 하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로 올라왔는데 다행히
길 가에 늘어선 소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아스팔트가 아닌 나무 데크 길이어서 걸을 만하다. 저 앞쪽에
유럽식 주황색 기와지붕을 한 지중해 레스토랑이 보인다.
다시 해변이 훤히 열린다.
나정2리를 지나 나정항으로 향한다.
안 되겠다. 자동차를 보러 가야겠다.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시내버스 운행 시각표를 확인했다.
현재 시각 12시 45분, 13시 05분에 나정에 버스가 지나가니
한 정류장은 더 걸어도 되겠다.
곱게 차려입으신 할머니가 오시길래
'더운데 어디 가세요?'하니
'으응, 니가 누고?'
골목을 빠져나가니 나정해수욕장이 펼쳐진다.
고운 모래 나정해수욕장은 오토캠핑장으로도 유명하다.
나정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로 다시 봉길로 왔다.
오늘 세 번째다. 걷는 내내 그렇게 신경 쓰이게 했던 자동차 문은
다행히도 잘 잠겨있다. 차 안의 물건도 이상이 없다. 애마를 몰고
감포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차는 식당 앞에 주차해 두고
감포에서 다시 버스로 나정해수욕장으로 왔다.
오늘은 정말 복잡하게 해파랑길을 가고 있다.
나정해수욕장도 개장 준비에 한창이다.
조미미가 부른 바다가 육지라면의 작사가가
이곳 출신이라면서 큼직한 노래비를 세워 놓았다.
그러나 이건 아닌 것 같다.
화장실 입구에서 모래를 씻고 가라는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 물을 계속 틀어 놓으면 어떻게 하지..
물을 물 쓰듯 하지만 물도 유한하고 다 돈이다.
나정해수욕장 모습
전촌항으로..
전촌항.. 저 하늘을 나는 말은 뭐지?
전촌항은 물양장을 공원화하여 아름다운 조경을 이루고 있다.
근사한 건물은 공중화장실. 우리나라같이 화장실 잘 지은 곳이 있을까?
유럽을 여행하면서 화장실 사용에 애로를 겪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화장실이 유료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화장실이 흔치 않고,
이렇게 깨끗하고 시설좋은 화장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화장실이 많이 개선된 것 같다.
대한민국은 '한국화장실협회'라는 특수법인까지 두고 있는
화장실 선진국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감포항 직전에서 길은 다시 산으로 향했다.
지진 해일 대피장 간판있는 곳까지 오르니 길은 풀숲에 잠겼다.
누구를 위리안치했는지 키 큰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가니
바로 앞에 감포항이 나타났다.
포항이 가까워지니 과메기 간판도 보이고..
감포가 어항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생선을 건조하는 풍경이 많이 보인다.
어느 식당 앞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조각상만 보고 식당 이름은 보지도 못했다.
조각상이 너무 강렬했나?
11코스 종점에 있는 해파랑 안내판.
현재 시각 15시 30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른 시간에 감포항까지 왔다. 오늘 좀 더 걸으면
내일 12코스인 양포를 지나, 13코스인 구룡포까지 갈 수
있겠다. 인근에 주차해 둔 자동차를 확인하고
12코스 양포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해파랑길 11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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