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15코스 (호미곶~흥환보건소) 폭염경보, 설마가 사람 잡는다.

2019. 8. 25. 21:23길따라 바람따라/해파랑길




폭염경보, 설마가 사람잡는다.

해파랑길

15코스

호미곶-대동배2리항-발산2리항-흥환보건소


12.6km / 7.31 14:00~17:00                

                          8.  1 07:40~08:20 (이틀간 이어, 3:40)


2019. 7.31 ~ 8.1 쾌청 폭염, 37







혹서기는 피해서 걸으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이 정도쯤이야 했다.
해파랑길이 산길보다는 쉽겠다고 생각하지만, 방심하다

혼이 나기도 한다. 지난번에는 평범한 길에서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피할 수도 있었던 폭염과 

동행하느라 또 생고생한다. 설마, 그 정도까지야 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

대충해도 될 일은 없다. 언제나 최선을 다할 일이다.


15코스는 호랑이 꼬리 부분 일출명소

호미곶에서 흥환보건소까지. 줄곧 북쪽을 향하던 길이

되돌아 가기라도 할 듯 방향을 틀어 남남서로 향한다.

절경인 호미 반도 해파랑길은 해안을 따르다 산으로

오르기도 하고, 바다 위에 설치한 데크로 이어 가기도 하는

수더분한 길. 기대한 풍광을 즐기는 것은 뒷전이 되고

 극기훈련을 하듯 걷는데 급급해야 했으니..





호미곶 등대


높이가 26m나 되지만 철근 없이 벽돌로 건축된

8각형 6층 규모의 등탑으로, 각 층의 천장에는 당시

건립 주체였던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이 조각되어 있다.

이 등대의 건립 배경은, 1901년 일본이 대륙침탈의 기반을 다질 시기
일본수산실업 전문대학교 실습선이 지금의 대보항 앞바다에서 항해 중
태풍에 좌초되어 승무원과 학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자 일본은 이 사고의 원인이 한국 연안의 해안시설 미비로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대한제국에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당시 힘이 없던 대한제국은 1908년 등대를 건립하게 되었는데
 설계는 프랑스인이 맡고, 건축은 중국 기술자가 맡았다고 한다.

등대의 이름은 동외곶 등대(1908), 장기갑 등대(1918), 장기곶 등대

(1988)를 거쳐 2001년부터 호미곶 등대로 불리고 있다.






바다에 있는 상생의 손을 다시 한 장 담고

좌측으로 돌아 15코스를 출발하는데 햇볕이 정말 따갑다.





여기에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詩碑)가..

의열단에 입단하여 활동하면서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2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민족시인 이육사. 그의 시비가 호미곶

한쪽에 있는 연유를 찾아보니 1937년 포항 송도에 왔을 때,

당시 오천 포도원을 방문하여 청포도의 시상을 얻었다는 것.

시「청포도」는 1939년『문장』지에 발표되었다.











대보항(호미곶항)을 지난다.


갓 배에서 내린 물고기를 경매하기도 하고,

어구 손질을 하기도 하고, 또 한 곳에서는 성게 껍질

작업이 한창이다. 아침 구룡포를 출발하여 오는 도중

성게껍질 까는 작업을 하는 모습이 가끔 보였는데,

호미곶의 수출 효자상품 1호로 단연 성게(운단. 앙겡이)를

꼽는다고 한다. 3월~8월까지는 보라성게(일명 구시).

10월~2월까지는 말똥성게(일명 앙겡이)를 각 마을

어촌계 소속 해녀들이 적기에 채취한다.





사라져 가는 돌담집을 지나





오후 2시 반, 36.5℃로 폭염 경보가 내렸는데

그늘도 없는 아스팔트 길을 걸으려니 이마와 등에서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숨이 막힌다. 전방에 반가운 정자가 보인다.

쉬어 가야겠다. 아래쪽 바닷가에 서 있는 바위를 독수리 바위라

우기는 안내판 옆 정자에는 인근 주민인듯한 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자에 먼저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지나쳤지만, 이번에는 그럴 계제가 아니다. 양해를 구하고

비집고 들어갔다. 형색이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정자 옆에 있는 '일본 쾌응환 호(快鷹丸 號) 조난 기념비'


일본의 한반도 침략 야욕이 본격화되던 1907년 9월 9일

일본 수산강습소 실습선 쾌응환호(快應丸, 가이요마루)가 수산실험 중

이 교석초에 좌초하여 승선 인원 36명 중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조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를 빌미로 일본은 교석초 해상에

등대를 세울 것을 요구하여 호미곶 등대와 교석초 등표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후 목조 기념비가 세워졌다가 조난된 지 20년이 지난 1926년 9월 9일

당시 승조원과 졸업생, 가족들이 해당 지점에 석조로 된 조난기념비를

세우고 후손들이 해마다 위령제를 여는 등 참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비석도 원래 위치에서 도로변으로 옮겨 단장 관리하고 있는데

일부에서 이 비석을 일본인 관광객이 접근하기 쉽게 호미곶 광장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침략 목적으로 들어왔다 사고가 것을

기념하는 '쾌응환 조난 기념비'를 광장에 설치한다는 것은

돈벌이를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일자 없던 일이 되었다고 한다.





덩굴 식물의 습격.

폐가가 완전 초소를 은폐 시켜 놓은 것 같다.

우리나라도 기후가 아열대로 변하면서 칡덩굴과

외래종 가시박 등 생태계를 교란하는 식물들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세 번째로 만난 반가운 동지 해파랑 꾼


창원에서 오셨다는 부부로

오늘은 호미곶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로드킬은 아닌 것 같은데 길에 죽어 있는 고양이를

치우는 중이시다. 혹시 열사병으로 죽은 건 아닌지?

오늘이 수요일인데 주말까지 걸을 계획이라는데 괜히

 내가 걱정된다. 같은 뜻을 품고 걷는 동지라서 그런가?

걸음의 속도가 달라 동행하지 못해 아쉽다.








어쩜 이렇게도 바람 한 점 없을까?









엎친 데 덮친 격.

대동배2리에서는 바닷길을 버리고 산으로 간다.

산을 넘어야 하다니.. 그다지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라 조금의 오르막에도 다리는 천근만근.

조금 쉬어 가려니 모기떼가 새까맣게 몰려들어 기겁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긴다. 산꼭대기 양지바른 곳,

다행히 모기가 없어 배낭을 베고 누웠다. 잠깐 졸았던 것 같다.

그사이 뒤따르던 부부 중 부인이 먼저 올라왔다. 아저씨는

힘이 많이 드는지 불러도 대답이 없다.






힘이 없을 때는 산을 오르기도 어렵고

내려오는 것도 힘들지만 오르는 것보다는 조금 낫다.

산길이 왜 이리 긴지 끝이 없다. 그래도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기 마련. 터덜터덜 내려오니 날머리 대동배1리 우물이 보인다.

시원한 우물물을 한 두레박 퍼서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으나

두레박은 없고, 우물에 파이프가 내려져 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다 승천했다는 구룡소 안내판.

그럼 구룡포 지명의 유래가 되는 구룡포 용주리에 살았다는 

아홉 마리 용은? 그 용이 이곳의 용은 아닌가?








산길도 힘들고 해안 길도 힘들다.

바람 한 점 없는 영일만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오늘 흥환리까지 가려 했는데 도저히 더 못 갈것 같다.

죽고 살 일도 아닌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벌써 생수를 두 병이나 비웠다.







발산2리, 오늘 걸으려고 했던 15코스 종착점

흥환리까지 약 3km 정도 남았는데 더 걷기가 힘들다.

내일 조금 더 걷기로 하고 발산2리에서 끝내고 애마가 있는

호미곶가는 버스를 타려는데 아뿔싸! 21시 버스밖에 없다.

택시 연락처를 알려준 식당 주인은 친절(?)하게도 포항시에 전화해서

북한에 다 퍼주지 말고 버스나 좀 증차 시켜 달라고 전화를 하란다.

나 참, 그래 여기가 포항이구나. 무슨 소리를 듣고 하는 이야긴지는

모르겠으나 겉으로 그렇게 친절해 보이는 사람들도

이렇게 세뇌가 되어있으니.. 참 정치가 무섭다.








택시비 25,000원을 내었더니 기사님은

2,000원을 되돌려 주며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으라 한다.

이온 음료 한 병을 단숨에 마시고 애마를 몰고 가면서 봐뒀던

야영할 장소로 이동했다. 작열하던 태양은 아직도 열기가

식지 않아 온몸이 꼭 화로 옆에 있는 것 같이 후끈거린다.

바람 한 점 없다.





낚시 금지라는 팻말이 무색하게 낚시꾼들

악어 바위 부근에서 낚시하는데 올라오는 물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저 사람들은 언제 가려나..







이글거리던 태양은 성이 차지 않는 듯

구름도 태울 기세다. 사진 몇 장 찍고 의자에 앉아

넋 놓고 일몰을 즐긴다. 오늘 폭염 속을 치열하게 걸었다.

그때는 나를 넘기 위해 나와 싸웠지만, 지금은 휴식하며

비울 것은 비우고 채울 것은 채우는 시간이다. 어느새

영일만 건너 어둠이 내린 포항 시내에 하나둘 불이 켜진다.

저녁 먹을 시간을 놓쳤지만, 배가 고프지 않다.

초코파이 하나로 저녁을 때웠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다, 호수같이 잠잠하다.

마음이 편안하다.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쾌재를 부르며 텐트를 친 곳이었는데 호사다마랄까

낚시 금지 구역에 낮에 왔던 낚시꾼들이 가고 나니 밤이 되자 

교대하듯 다른 낚시꾼이 또 왔다. 텐트에 들었지만, 열대야의

밤은 쉽게 잠들게 하지 않는다. 하늘에는 별똥별까지 떨어진다.

11시경 낚시를 감시하는 사람이 나타나 불빛을 이리저리 비추면서

"거기 나오세요" 하며 3~4분 씨름하더니 포기한 듯 그냥 간다.

살짝 들려던 잠이 도망가 버렸다. 

1시를 넘겨 잠이 든 것 같았는데 2시에

감시꾼이 와서 낚시꾼을 쫓지 못하고 잠만 쫓고 간다.

낚시꾼은 3시가 넘어서야 유유히 철수한다.












제대로 든 잠을 이번엔 알람이 깨운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철수하기 위해 텐트를 걷고,

짐을 챙기는데 하늘은 햇귀가 돌며 점점 벌겋게

달아오른다. 마음이 바빠진다. 얼른 두어 장 찍어 보는데

여기는 별로다. 하여 호미곶 광장으로 곧장 차를 몰았다.

벌써 많은 사람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갈 길을 가로막을 태양을 그렇게

 서둘러 만나려 하다니..






어제 끊은 발산2리에서 다시 시작한다.

오늘도 아침부터 달구며 푹푹 찌는 것이 심상치 않다.

공터에 애마를 주차해 놓고 출발한다. 버스 승강장 위치를

알려주는 팻말은 서 있는데 버스에 대한 정보는 백지다.

버스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버스는 오겠지만,

몇 번 안 다닐수록 시간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외지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란 말인가?

아니면 미리 다 알고 오란 말인가!







날씨도 더운데 사서 고생을 했다.

문제는 항상 방심할 때 일어나기 쉬운 것.

발산2리에서 출발하면서 아스팔트 길로 걸었다.

그늘 없는 오르막길이 힘들었다. 드문드문 나타난 가로수 

그늘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바람이 고마울 정도로 바람이 그리웠다. 고개를

넘어 발산1리가 보일 즈음, 해안에 길이 있는 것 같아

샛길로 내려가니 해파랑 표지기가 달려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왜 이러지.. 그러고 보니 이 코스 들어

지도를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고, 표지기도

 살피지 않고 오직 걷는 데만 신경 쓴 탓이다.

왜 걷지?







빨간등대, 하얀등대가 있는

흥환리 아름다운 포구를 지난다.

아귀 한 마리 2천 원부터라는 안내판이 정겹다.

모든 물고기를 송두리째 끌어 올릴 것 같은

그물코가 저렇게 촘촘한 그물의 정체는?

고기 잡을 때만 저런 그물을 쓸 것이 아니라

사회지도층도 저런 그물로 걸러내면 어떨까?

그러면 모르긴 몰라도 통과할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






장기목장성비도 지나고..





이 더운 날씨에도 고생하는 분들..

무장한다고 둘러쓴 것 같지만 역부족일 것 같다.

내 코가 석 자지만, 얼마나 버틸까 걱정된다.

일기예보는 오늘 포항지방 37℃. 폭염경보다.

어제 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지난밤 잠까지 설쳐

몸이 찌부등하다. 태양은 쇠라도 녹일 기세로 강렬하다

아침부터 땀이 줄줄 흐른다. 정신 집중이 안 된다.

더 걸을 자신이 없어진다.






드디어 15코스 종착점

오른쪽으로 흥환보건소가 보인다.

오늘은 여기서 끊어야겠다. 반가운 해파랑 가게에 들러

 파워에이드 한 병을 사는데, 친절한 주인아주머니..

16코스 스탬프가 바로 문 옆에 있다고 알려 주신다.

지금 시간 8시 20분. 오늘은 30km가 아닌

3km만 걷고 끊어야겠다.







흥환해수욕장 앞 솔밭 벤치에 앉아

정말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어제는 일몰을 보며

넋 놓았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갈매기를 보며

무심한 시간을 보낸다.






동해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릴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애인을 기다리는 시간같이

느리게 가는 것 같다. 살수차는 벌써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며

 물로 성난 도로를 달래고 있는데 버스는 올 생각을 잊었는지..

9시 40분에야 도착한 버스로 돌아가 애마를 회수하여

도망치듯 집으로 직행. 중단하기를 정말 잘 한 것 같다.

더위 먹은 몸은 며칠이 지난 후에야 정상이 되었다.

그분들은 어떻게 했을까?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폭염경보까지 내리게 하며 대지를 달구던 태양.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위도 한풀 꺾였다. 미루다 때를 놓쳐

뒷전으로 밀려났던 그 날의 일을 밀린 숙제하듯 끌적거리는 이 시간,

그게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는 밤기운이 차서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다. 여름이 다 가지 않았지만 벌써 여름이 그리워지려 한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순환할 뿐인데, 자연 앞의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

좀 더 겸허해져야겠다.




해파랑길 15코스 (청색)






Conquest of Paradise

Dana Wi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