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39코스 (솔바람다리~사천진해변) 끝없이 펼쳐진 해변과 송림, 솔향 가득한 길

2019. 11. 29. 23:07길따라 바람따라/해파랑길


끝없이 펼쳐진 해변과 송림, 솔향 가득한 길 

해파랑길

39코스

솔바람다리-허균.허난설헌기념관-경포대-사천진해변


15.9km (4:30) /  11.14 (수) 13:30~16:10 맑음 / 6

                                    15 (목) 08:30~10:20 비,구름 /10℃ 




이번 39코스는

강릉 바우길 5구간으로 솔바람다리를

건너 안목해변에서부터 경포호까지 해송숲길을

어어간다. 경포호반으로 들어간 길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과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사상과 문학세계를

보여주는 허균_허난설헌 기념관을 들린 후, 고려 시대

문화유적이자 관동팔경의 하나로 절경을 자랑하는

경포대로 향한다. 이후 해변으로 나온 해파랑길은

다시 해송숲을 걸으며 사천진 해변에 이른다.
문화 유적지와 함께 전 구간에 펼쳐진 해송

숲길과 호수길, 해안길로 구성되어 있다.







솔바람다리를 건너 강릉항 가는 길.

낚싯바늘 손질하는 주인 옆에서 편안하게

지켜보고 있는 강아지 모습이 재미있다.








안목해변, 강릉커피 거리

생각보다 거리에 사람과 차가 많고, 줄지어 선 카페에

든 사람들.. 파도치는 해변에도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이전에 자판기가 50대 넘었던 시절도 있었다는 커피 거리.

지금은 자판기 대신 멋스러운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빈에 가서 비엔나커피를 맛보지 못했는데

커피 거리에 와서도 그냥 지나간다.







해변에 솔밭이 잘 조성되어 있고

해송 숲 사이로 난 길 중간중간 쉼터도 있고

조형물도 많이 설치되어 있다. 솔향 가득한 숲을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파도 소리 들으며 해변을 따르던 길은

차도를 건너 딴봉마을 산책로로 들어선다. 딴봉은 예로부터

강문 가는 곳으로 외따로 떨어져 있는 봉으로 소나무 숲이

우거졌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소나무 잎이 떨어져 푹신한 융단 같은

길이다. 숲도 좋고 길도 좋다. 숲을 뚫고 내려온

환한 햇볕이 반갑다





이런 길을 막 지나쳐 가기가 아쉬워

걷는 게 재미있지만 그래도 잠시 쉬어 가야겠다.

밀려오는 하얀 파도, 파도 소리가 꼭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 같다.








딴봉마을 산책길에서 다시 도로를 건너

해변 숲으로 나왔다. 계속 이어지는 숲길이 정겹다.

세인트존스 호텔 앞에 오니 날씨도 추운데 왜 그렇게

벗고 있는 사람들, 동해로 쳐들어오는 왜구를 감시하는

장수, 그리고 벤치에서 기다리는 친구까지..

여기는 호텔 사유지인 것 같다.






이쁘다 했더니 남자친구가 더 좋아한다.

사진 찍어 주겠다며 핸드폰을 받아 포즈 잡으라 하니

힘들게 방향을 돌려 나란히 선다. 모습이 보기 좋다.

물론 찍어 준 사진은 이보다 더 이쁜 모습.







해변에는 젊은이 들이 많다.

포토존에서 인생 최고 장면을 찍으려는 듯..,

경포천을 가로지르는 강문솟대다리를 건넌다.






강문솟대다리를 지나면 경포해변이 시작된다.

안목해변부터 길게 펼쳐진 백사장이 계속 이어진다.

포말을 일으키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하늘까지 시원하다.

강릉에서 제일 비싸다는 씨마크 호텔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그 앞으로 스카이베이 경포 가족호텔도 우뚝하다.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주문진인 것 같다.






허균-허난설헌기념관을 가기 위해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지점. 어찌 여기는 이정표도

서 있고 방향 안내판도 제대로 붙여 놓았다.








식당 독도야와 편의점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경포호가 나타난다.







경포호 둘레길이다.

안내표시를 따라 들어 오니생물 다양성의 보고

강릉가시연 습지인 석호가 나타났다.

이후 리본이나 방향안내판은 보이지 않는다.







돌아 나가려다 이쪽으로 걷고 있는 분들이 있어

허균·허난설헌 가는 길을 물으니 이쪽으로 쭉 가면

이정표가 나온다더니.. 멀리서 왔는데 입구까지 안내해

주겠다며 앞서간다. 이렇게 길 안내까지 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공무원들이 강릉에 대한 이미지에

먹칠하는 것하고는 상반된 모습.






강릉시 초당동 송림에 둘러싸인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은 조선 시대 만들어진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허난설헌, 이 두 남매를

기념하기 위한 문학 공원이다. 기념공원은

허난설헌 생가터,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전통차 체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릉 바닷가 사천과 이어진 교룡산 정기를 타고난

허균(1569~1618 자: 단보, 호:교산 성수)과 난초 향과 눈처럼

깨끗한 성품을 지닌 허초희(1563~1589 호: 난설헌 별호: 경번)는

강릉이 낳은 오누이 문인이다. 매천 황현은 이들과 허봉을 가리켜

 "초당 가문에 세 그루 보배로운 나무, 제일의 신선재주는 경번에

속하였네"라고 찬국조제가시에서 칭송했다. 특히 난설헌의

글재주가 가장 돋보여 신선 재주를 닮았다고 하였다.


오누이는 아버지 허엽과 장남 허성 그리고 허봉과

함께 허씨 5문장가를 이루어, 글 잘 짓고 학문하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강릉 땅 초당에서 살면서 경포호의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시를 읊고 문학성을 키워나갔다.

특히 막내 허균의 시 "경포호를 그리워하며”에서

"내 집은 경포호의 서쪽에 있으니 바윗돌 골짜기들이

회계명산과 같아라"라고 하는 등 여러 작품을 통해

강릉에 대한 애착을 표현했다.
<매천 황현의 찬국조제가시 중에서>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에는

단풍을 물들인 가을이 곱게 내려앉아 있는
허난설헌 생가터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사랑 마당이 있고, 그 안에 네모나게 지어진 본채가 있다.

본채는 두 개의 대문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갈리는데,

그 사이에 곳간이 있어 내외를 구분하고 있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기념관은 목조 한식 기와로 이루어진

단층 건물로 내부는 네모 난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안내 데스크가 나오고 주전시실과 소전시실로 이어진다.


 조선 중기 시·서화 삼절을 두루 걸쳐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난설헌 허초희와 학자 문인 · 정치가이자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교산 허균과 함께 당대 뛰어난 시재와 문재를 발휘하였던 "허씨 오문장"의

문학성을 소개하고 있다. 두 오누이의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영상자료와 하곡조천기, 광한전백옥구상량문, 난설헌집,

홍길동동. 국조시산 등을 전시하고 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조선왕조 광해군에 의해

형신도 하지 않고 결안 절차를 무시당한 채 역모의 누명을 쓰고

49세의 일기로 능지처참 되었다. 그의 진보적 사고가 놀랍다.

조선 중기는 폐쇄적 유교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홍길동전에서

 나타난 도교적 사상은 물론, 서양 종교에까지 관심을 두고

한글 소설 저술과 관직에 얽매이지 않은 삶은 평범치 않은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홍길동전' 저자 교산 허균의 인생사,

요절했던 조선 3대 여류 시인 난설헌을 포함한

허씨가문의 5문장가를 살펴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다음에 시간 내어 다시 한 번 들려야 겠다.







다시 돌아 나와 경포호반 길을 걷는다.

아직 오후 4시밖에 안 되었는데 그림자가 길어졌다.

낮 시간이 많이 짧아진 것 같다.


옷도 벗기고 낙원에서 쫓겨났나?

날도 추운데..






거울 같은 경포 (강원도 기념물 제2호)


관동 8경의 하나로 호수 둘레는 8km, 호수 주변에는

누정이 많기로 유명하다. 경포대를 비롯하여 해운정, 경호정,

금란정, 방해정, 석란정, 창랑정, 취영정, 상영정 등의  정자가

남아 있으며 정자마다 시문이 남아 있다.


호수 수면이 거울같이 맑아 경포호라 부르게 되었으며,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 하여 군자호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수 한가운데 있는 바위는 각종 철새가 찾아오는 곳으로

새바위라고도 하며, 조선 숙종 때 우암 송시열이 쓴
조암(조암)이란 글씨가 남아 있다고 한다.







경포대(鏡浦臺), 유형문화재 제6호


관동팔경의 하나로 경포호수 북쪽 언덕에 있는 누각.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건립되었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를 하였다고 한다. 태조(재위 1392∼1398)와 세조(재위 1455∼1468)는

친히 이 경포대에 올라 사방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앞면 5칸·옆면 5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경포대는 마루의 높이를 달리하는 입체적 평면을 하고 있는데, 1899년 군수

정헌시에 의해 중수가 이루어지면서 남쪽과 북쪽에 누마루를 가설하고

득월헌(得月軒)과 후선함(候仙檻)이라 하였다. 이름인 ‘경포대’ 전자체

현판은 유한지의 글씨이고, 해서체 현판은 이익회의 글씨이다.

내부에는 숙종이 직접 지은 시와 율곡 이이가 10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글이 걸려있다. ‘제일강산’은

주지번의 글씨로 알려져 있는데 ‘제일’과 ‘강산’의 글씨체가 다른

것으로 볼 때 ‘강산’은 뒷날 다른 사람이 써넣은 것으로 보인다.

누각 주위에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알맞게 '

우거져 운치 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








사천진 해변에서 만난 오메가.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런 행운이 찾아왔다.

새벽에 일어났을 때는 무겁게 내려앉은 검은 구름이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았는데.. 동남쪽 하늘이

열리면서 햇귀가 돌더니 이렇게 멋진 오메가를

보여주고는 곧 구름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제 끊었던 경포대에서 다시 출발하기 위해

돌아왔더니 비가 흩날린다. 오늘 아침 장엄한 일출

오메가까지 보여 주었는데..







동쪽 방향 하늘은 조금 트였고,

동남쪽 하늘은 짙은 구름 아래로 붉은 구름과

약한 빛 내림이 있고, 남쪽과 서쪽은 지금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 구름이 산을 덮고 있다.





참소리축음기 & 에디슨과학박물관을 지난다.

들어가 보고 싶지만, 아직 문도 안 열었을 뿐더러 오늘은 

들어갈 시간이 없다. 담에 오면 꼭 들려봐야겠다. 발명할 것이

너무 많아 300살까지 살고 싶다고 했던 에디슨..

어릴 때 제일 동경하고 존경했던 위인이다.





강릉 방해정(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0호)


풍광이 좋은 터에 자리잡은 누마루가 있는

별당형식의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ㄱ'자형 홑처마 팔작지붕 정자.





경포호 가운데 있는 돌섬이 새바위(鳥岩)이고

정자는 월파정이라고 한다.





박신과 홍장의 조형물 중


강원도 안렴사 박신이 사랑하던 기생 홍장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슬퍼하던 중, 부사 조운흘과 함께 경포대에 놀이를

나갔다가 거기서  신선이 탔다고 생각했던 배에 홍장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비로소 자신이 속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남녀의 사랑과

사대부의 풍류를 서사적으로 표출하는 데 있어 ‘속임수’가

중요한 설화소로서 작용한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1420~1488)이

편찬한 시화집 '동인시화()'에 실린 자료로,

여말선초의 문신 혜숙공 박신과 강릉 기녀 홍장

사이에 얽힌 사연을 전하고 있다.





주변에서 경포 관광나이트클럽 건물이

제일 예술적(?)인 것 같다.







경포호를 돌아 경포해변으로 나가니

남쪽으로 강한 빛 내림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비가 잦아 들어 맞고 걸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카메라 때문에 우산을 쓰고 걷는다.






다시 숲길을 걸으며 만나는 해변의 포토존들..





해안사구식물의 생태에 대한 안내판도 있고..





오늘 하늘은 천지개벽하는 듯 변화가 심하다.

하늘을 받아 안은 바다도 따라 한다.





집 마당 쪽은 줄을 쳐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좁은 골목으로 내몰더니..

이 골목에 주차해 놓은 차들은 뭔지?

내 땅도 내 땅, 네 땅도 내 땅이란 말인가?

손을 펼치면 모두가 내 것이 되지만

움켜쥐면 자기 것은 한 줌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펜션도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사업 아닐까?







순긋해변, 순긋이 무슨 뜻일까?

캠핑장과 길 건너 펜션이 이국적인 분위기다.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구름. 여기는 가는

비가 뿌리지만 저기는 아마 눈이 내리고 있겠지.








사천진 마을 직전까지 펼쳐진 해송 숲.

숲길만으로도 족한데 왜 숲에 고무칩 탄성포장재를

덫입혔을까? 흙길이 더 좋은데..

돈도 안 들고..





잠을 설친 날 다음에는 꼭 이렇게 

텐트를 펼칠 장소가 나온다니까.. '머피의 법칙'일까?

 난 '샐리의 법칙'을 믿는 편인데..





알 수 없는 일이다.

청소하는  세 분이 청소를 하면서 지나갔다.

아마 인도만 청소하는 것 같다. 인도에서 한 뼘도 안 떨어진 

솔밭에 있는 쓰레기는 두고 간다. 해파랑길이 나 있는 것을 보니

솔밭이 사유지는 아닌 것 같은데 엉망인 솔밭은 누가 청소할까.

바람이 불면 도로로 다 날려 갈 것 같은데..






사천진 입구에서 해안 쪽으로 걷는데

마을 분이 '그쪽은 길 없어요. 있던 다리도 다

철거해서 갈 수가 없어요. 돌아 나가세요.'하신다.

묻지도 않았는데.. 말씀 하시는 뉘앙스가 다리를 철거하여

불만이 있는 것 같다. '다리를 왜 철거했대요?'하고 물었더니

군부대 철조망을 철거하면서 멀쩡한 다리도 철거하는 바람에

여기서 바로 옆 마을로 가려면 엄청 불편해졌다는 내용.

나에게 일러바치는 것 같다.








다리 철거 현장 부근에서 또 다른 마을 분을 만났는데

이번에 만난 분은 다리를 철거하여 화가 단단히 나신 모양이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주민들의 의견은 전혀 듣지 않고 철거를 한

모양이다. 자초지종을 듣고 있는데 마침 담당 공무원이 오길래

'다리를 왜 철거했어요, 언제 다시 놓을 것인가요?'하고 물으니

'다리가 낡아서 철거했고 다시 놓을 계획은 없습니다.'라고 하여

마을 분과 합세하여 주민 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어딨냐며 한참을 따졌더니 '면에 가서 의견을 들어보겠다.' 며

타고 왔던 공사업체 사장 차를 타고 빠져나간다.


여기에 출장 나온 것은 아닐까?

출장 나왔으면 왜 업체 사장차를 타고 다닐까?

주민들 말은 잘 안 들어도 업체 사장말은

들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다시 도로까지 한참을 돌아 나와

하평교를 건너면서 본 사천천 하류와 사천진항.

여기서 봐도 인도교가 없으면 주민들이 불편할

것 같다. 나야 다시 갈 일이 있겠냐만 그래도

다리는 다시 놓는게 좋을 것 같다.










베이스캠프 가라반을 지나 사천항으로 향한다.






원래 계획은 오늘 주문진 해변까지 걷고

이곳 사천진으로 와서 환승하여 승용차가 있는

경포대로 가려고 했는데.. 주문진-사천진 간 버스는

 주말에만 다니고 그것도 하루에 3번밖에 안 다닌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승용차를 회수하지?했는데,

알고 보니 오히려 잘 된 게 주문진해변에서

강릉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많았다.





해파랑길 39-40 종합안내판




해파랑길 39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