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지꽃, 천성산

2020. 3. 23. 00:59Photograph/photograph











..얼레지꽃이 몸을 감추고 있음이 분명하다.그의 시선은 누구도 향해 있지 않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시선을 내린 저 완고한 외면이 내 형이상학에 닿아 있다고, 꽃대에 손을 대면 금방 자결해 버리는 저 습지식물의 생리, 그 비밀을 아는 노을만이 그의 가계를 보랏빛으로 물들였을 터, 이규리 / 얼레지꽃, 그 형이상학









천성산에서 만난 얼레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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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내*사 주차장에서 만나자는 카톡이 왔다. 

올해는 때를 맞춘 것 같다. 야호 캘리그라피 작가 하샘도 오신단다. 

내*사에 주차비와 입장료를 강탈당하는 것 같아 주차비라도 좀 

아껴 볼 심산으로 2대는 밖에 주차하고 1대만 들어가려고 했는데 

도중에 엇갈려 작전은 반(?)만 성공했다. 먼저 와 있던 하샘과 

부산서 오셨다는 용민 작가 지인 두 분과 합류하여 용연천을 따라 

내원골로 든다. 얼레지와 함께 카메라를 멘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는가 싶더니 오를수록 얼레지 만큼이나 많은 사람..


종종걸음으로 포인트인 폭포를 향해 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미 자리를 잡고 죽치고 있는 작가(?)들.. 

자리를 비켜줄 것 같지 않아 더 위쪽 폭포까지 올라가 봤지만 

얼레지는 아직 피지 않았다. 덕분에 산행 한번 잘했다. 

다시 내려오니 폭포는 우리 일행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리저리 찍어보지만, 폭포와 얼레지를 함께 기에는 

렌즈도 맞지 않고, 실력도 부족하기만 하다.


얼레지도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정말 이쁜데

지천으로 피어 있으니 대접을 못 받기는 꼭 사람 같다.

고만고만 한데도 더 이쁜 꽃을 찾아 꽃만큼 많은 사람이

산자락을 누빈다. 곳곳에 무참히 짓밟힌 얼레지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 산에 들면 개미 한 마리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밟지 않으려 하지만 오늘 정말 큰 실수를 했다. 

찾고 찾았던 이쁜 얼레지의 목을 치고 말았다.

순간이었다. 얼굴을 가린 나뭇가지를 치우는데 

꽃대에서 꽃이 자결하듯 뚝 떨어진다. 

난감했다.


그리고 놀랐다.

비명횡사한 꽃에 먼저 용서를 빌어야 했지만

찾고 찾던 꽃을 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으니

 나도 꽃을 찍으러 다니기엔 너무 속물인 것 같다.

얼레지야 정말 정말 미안하다.




FLOWER SONG / GUSTAV LANGE
- Harry Vö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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