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에비타(EVITA)

2009. 7. 12. 21:18여백/살아가는이야기

 


에비타(EVITA) / Don't Cry For Me Argentina

 

 



 

 


꿈을 위해 사랑하고, 욕망을 위해 운명을 거부한
거룩한 악녀, 비천한 성녀! 에바 페론 <에비타>!
아르헨티나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의 부인으로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린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뮤지컬
지난해 11.17일 막을 올린 후 3개월간 서울공연을 마치고 드디어 울산에 왔다.
명성황후 이후 정말 오랫만에 뮤지컬 <에비타>를 보기 위해
지난 주말 와이프와 현대예술회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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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페론의 실제 모습)




아르헨티나의 살아있는 역사

뮤지컬 <에비타>는 팀 라이스 작사,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곡, 해럴드 프린스 연출로 1978년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에서 막을 올려 2,900회를 공연했으며, 1979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 1,567회 장기 공연한 작품으로 공연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작품상, 음악상, 극본상, 연출상 등 주요 7개 부문을 휩쓴 명작이다.
<아이다> <라이온 킹> 등을 작사한 라이스는 작곡가 웨버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함께 만들었으며, 작곡가 웨버와 연출가 프린스 콤비는 이 작품 후 뮤지컬의 걸작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함께 했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정세가 혼란하여 구데타가 연속으로 일어나던 시절에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퍼스트레이디까지 오른 야심찬 비운의 여인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시차는 있지만 혼란한 정세로 임오군란과 동학 등 많은 난들이 일어났던 시절의 <명성황후>와 시대적 배경이 아주 비슷한 것 같다.

사실 <에비타> 29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국내에 초연되는 작품으로 1996년 <명성황후>가 초연할 당시 마돈나 뿐 아니라 <미스 사이공>에서 엔지니어 역을 했던 천재적인 배우 조나단 프라이스와 존 트라볼타 등이 출연하여 좋은 연기를 펼쳤다.
<에비타>에서 주연한 마돈나는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휩쓸었지만 국내에서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은 그 당시는 뮤지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가 그만큼 낮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에비타>는 요즘 DVD로 볼 수 있는데 <킬링 필드>와 같은 대작을 만들었던 알란 파커 감독은 <에비타>가 가질 수 있는 영화적 아름다움을 최대한 이끌어 내고 있다. 영화제작시 추가해서 만든 마돈나의 'You Must Love Me'가 오스카상을 받기도 했다.

마스터피스 <에비타>는 세계적인 음악가와 환상을 호흡하는 작품으로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벅찬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캐릭터 & 개스트

에바(Eva) 아르헨티나 한 시골의 가난한 사생아로 태어나 아르헨티나 퍼스트레이디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는 여인.
미모가 뛰어나 이를 이용하여 남자들을 성공의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당시 촉망받는 군부 지도자였던 후안 페론을 만난 후 그를 뒷바라지하여 대통령에 당선되게 하고, 단순한 퍼스트레이디가 아닌 권력 2인자로서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강한 의지와 행동력을 보여주는 야심찬 여성, 뮤지컬에서는 에바를 어느 한 쪽에 취우친 시각이 아닌, 어느정도 양면적인 시각으로 평가하고 있다.


'탱고를 추면서 가는 동화 속 로맨스로부터 인간적인 비극에 다다르는' 주인공 에비타 역에는 폭발적인 노래와 춤, 연기가 일품인 뮤지컬 스타 배해선(사진), 김선영씨가 더블 캐스팅됐다. 동갑내기인 이들은 에비타의 전성시대 나이와도 같아 더욱 실감연기를 펼친다.


체(Che) 아르헨티나 출신의 쿠바 혁명지도자로 19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적 인물. 후안 페론이 권좌에 올랐을 당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젊은 의학도로 페론 정권에 반대했던 인물이다. 뮤지컬에서 극을 진행하는 해설자이자 관찰자의 입장에서 에바를 비판하는 역할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혁명가 체 게바라 역은 춤과 연기, 노래 3박자를 갖춘 뮤지컬 스타 남경주씨가 맡아 무대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삶의 절반을 무대에서 보낸 뮤지컬의 전령. 체 게바라로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후안페론(Juan Peron) 에바의 남편. 군인 출신으로 아르헨티나의 격변기에 결국 대통령까지 당선되어 페론주의를 펼친 인물. 정치적 야심이 상당한 에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페론 대통령의 강인한 이미지를 녹여내는 묵직한 연기와 목소리가 매력. 어느 장르에서나 캐릭터를 빛내는 송영창


마갈디(Magaldi) 에바가 15세때에 고향 후닌의 클럽에서 만나게 된 탱고가수. 에바의 간절한 요청으로 그녀를 데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게 되나 곧바로 그녀에게 버림받는다.


맨하튼 음대 출신의 당찬 신예 뛰어난 노래 실력과 패기로 국내 무대에 도전한 박상진


페론의 정부(Mistress) 후안 페론의 어린 전 애인. 새로운 연인이 된 에바로 인해 쫓겨난다.
짧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높혀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김소향 (우금지 더블 캐스팅)




남미의 파리로 불리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재현한 화려한 무대와 의상, 관능적인 탱고춤, 18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기대를 모은다.


에바 페론, 성녀인가 악녀인가?

이 작품은 마치 브레히트의 연극을 보듯 해설자가 등장하여 극의 상황을 상기시키면서 진행해 나간다.
역시 <명성황후>처럼 시절을 거슬러 그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시간을 역추적 해 온다.
막이 오르면 아르헨티나 대통령 페론의 영부인 에바의 사망소식이 알려지고 국민들은 애도한다.
많은 군중들이 모여든 진혼곡이 울러 퍼지는 슬픈 장례식으로부터 이 뮤지컬은 시작된다.

다시 장면은 오래 전 과거로 돌아가 시골 카페가 나타난다. 첩의 자식이라는 출신 때문에 아버지 장례식에도 제대로 참석치 못하고 좌절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에비타는 항상 사회에 대한 냉담함을 기억하고 성공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녀는 도시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항상 가고 싶어 한다. 그곳에 가면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 시골에서 제일 잘 나가는 탱고가수 마갈디의 정부 노릇을 하며 성공의 꿈을 키운다. 하지만 도시에는 마갈디의 부인과 아이들이 있었고, 마갈디가 그 녀를 버려 그녀는 홀로 자립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던 중 사진작가를 만나 잡지에 얼굴이 오르내리게 되고 라디오 방송에서도 활동하면서 유명 여배우가 된다.



1943년 6월, 마침 아르헨티나는 군사 구데타가 일어나고 정권이 혼란스런 시국이다. 그 때 마침 대지진이 일어나고 국민들의 원성을 샀던 정부를 뒤로하고 배후에서 일하던 페론장교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급부상한다.
에바는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만나자마자 페론을 사로잡고 서로 사랑에 빠지면서 그녀는 원래 있던 페론의 정부를 내쫓는다.

귀족들에게 눈총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디오방송을 통해 국가정세를 조심스럽게 거론하면서 에바는 민심을 얻기 시작한다.
음모자들 때문에 페론은 복잡한 정치 사회 속에서 떠나 망명하고 싶어 하지만 에바는 그를 독려하여 정치에 자신을 가지라고 이야기하고 그가 감옥에 가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민중의 수호신으로 등극하여 페론을 영웅으로 만들고 그를 석방시킨다.

쇄국정치를 하던 조선에서 고종이 어찌할 줄 몰라 자신 없어하고 섭정하는 것이 편하다고 하지만 명성황후의 설득으로 결국 친정을 선포하는 그 과정과 아주 비슷하다.
남편을 구한 에바는 두터운 신뢰 속에서 결혼을 치른다. 페론은 에바의 적극적인 내조로 국민에 대한 지지가 더욱 치솟고 마침내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되고 에바는 하루아침에 영부인이 된다. 그녀의 나이 스물여섯이다.




에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들끓는 욕망을 감추지 못하고 조금씩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유럽 각국을 순회하는 등 외교에도 성과를 이루며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너무나 지나치게 자신을 과신하던 에바는 결국 향락에 빠지고 귀족들을 착취하기 시작한다.
가난한 서민을 돕겠다며 에바 재단을 만들어 영웅이 되지만 귀족들은 그녀를 미워한다. 각료들의 불만이 극심해지자 페론을 여론을 의식해 물러서려 하지만 에바는 오히려 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마지막 힘을 다해 국민의 지지를 얻고자 하지만 결국 쓰러지고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 대국민 방송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삶이 헛된 욕망이 아닌 진실이었다고 고백한다. 마지막 방송을 끝내고 그녀는 병이 악화되어 죽게되고 국민들은 찬사와 질타를 동시에 보낸다.




실제로 그녀는 척수백혈병에다 자궁암까지 겹쳐 34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한 달간 성대히 치러졌다. 그러나 작품에서 병명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쓰러져 '죽어가고 있다'는 말만 나온다. 또한 국가 내에서 영국인 세력들을 몰아내는 장면이나 기부재단을 설립하는 과정도 노래 하나에 실어 설명하기 때문에 바쁘게 진행된다.

작품의 말미에 원성이 높던 귀족계층 사람들, 그러니까 그녀를 미워하던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좋아하던 사람들 모두 그녀를 애도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신데렐라처럼 성장하여 권력을 누리다가 허무하게 세상을 등지는 그녀는 강위로 떨어져 흐르는 꽃잎과도 같이 아름답게 보인다.
에비타의 기구한 인생 역정과 사랑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예술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에비타>는 독특한 장르와 분위기를 갖고 있는 명작이고 관객들이 원하는 한 우리 곁에 계속 부활하여 머물 것이다. 뮤지컬 넘버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라(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캣츠>의 'Memory'와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무지컬 넘버 중 하나로국내 뮤지컬 콘서트나 행사에서도 가장 많이 불리는 곡 중 하나다.
웨버가 만든 이 노래는 거친 줄거리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잘 포장되어 음악적 감미로움을 선사한다.
살아서는 드라마, 죽어서는 신화가 된 에비타의 삶에 걸맞게 웨버의 노래는 절절한 드라마와 어울려 감동을 한층 증폭시킨다.


꿈을 위해 사랑하고, 욕망을 위해 운명을 거부한 거룩한 악녀, 비천한 성녀! 에비타


'Don't cry for me Argentina(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마라)'


<에비타>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3번 대통령에 당선된 페론 전 대통령의 두번째 부인. 페론의 세 번째 부인 이사벨은 현재 스페인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으며, 짧은 결혼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페론에겐 에비타가 사실상의 '정실부인'으로 통한다. 페론은 1974년 75세로, 에비타는 1952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각각 숨졌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노동, 자선, 보건 분야에 뛰어들어 노동자들의 천국을 만들고자 했던 '페론주의 창시자'란 평가도 있다.
물론 육체를 무기로 정권을 얻어 포퓰리즘을 만연시킨 부도덕한 여인이라는 평가도 함께 있다.

어린 시절 가난과 사생아란 두 굴레를 짊어졌던 에비타는 무명배우에서 일약 퍼스트레이디로 변신하지만 여배우 시절 육체를 함부로 팔았다는 이유로 창녀라는 비난을 받고, 무지하고 오만하다는 이유로 엘리트 계층으로부터 멸시 당하고, 지나치게 사치와 인기영합으로 아르헨티나를 망친 포퓰리즘의 대명사라 악평을 받기도 한다.

평가야 어떻든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뿌리깊은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부(富)의 재분배'라는 명체를 자기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았고, 노동자들의 진정한 벗이 되고자 그들의 고난한 삶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간 인물이다. 그가 설립한 에바 페론 재단은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 캠페인의 핵으로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사회운동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 최초의 대중운동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을 쟁취시키는 등 아르헨티나 최고 권력자의 반열에 올랐다.

페론은 에비타가 숨지자 사람들이 자신을 잊지 않도록 해달라는 유언대로 시신을 박제하고 똑같은 모조품을 세 개나 제작했다. 하지만 1955년 쿠데타로 페론을 몰아낸 군부 정권은 에비타의 시신이 하층민의 봉기에 이용될 것을 우려, 1957년 이탈리아 로마 근처 공동묘지에 매장했다. 그러나 에비타의 시신은 우여곡절 끝에 1971년 스페인에 망명 중이던 페론에게 돌아갔다.

페론은 1973년 선거에서 승리,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 에비타의 시신과 대통령궁으로 돌아왔지만 취임 10개월 만에 숨졌다. 세번째 부인 이사벨이 대통령직을 승계, 페론과 에비타의 시신을 대통령궁에 나란히 전시하며 이들의 사랑과 영광은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이사벨이 또 쿠데타로 실각, 이들은 따로따로 묻혔다가 최근 페론의 이장을 계기로 합장이 다시 추진되고 있는 것.

<에비타>가 한국 무대에서 막이 오른 가운데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에비타와 페론의 합장이 거론되면서 에비타는 드라마같은 삶을 사후에도 이어가고 있다.


저항과 자유의 상징 지금도 추앙받고 있는 전설의 혁명가 '체 게바라'

 



"체 게바라(Che Guevara)'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뒤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박차고 남미의 게릴라 지도자로 전장에서 숨진 혁명가이다.
1928년 하르헨티나 중류가정에서 태어나 20대 초반까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학을 전공하는 엘리트 코스를 거친다.
두번에 걸친 남미 여행을 통해 민중들의 비참한 현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면서 빈곤에 대한 해결책은 혁명밖에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1953년 졸업 후 과테말라 혁명에 참가하였고, 1954년 멕시코로 망명한 후, 피델 카스트로와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쿠바 혁명을 통해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자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 등을 역임했고 공산권과 제3세계를 돌며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펼친다(그 때부터 검은 베레모와 구겨진 군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쿠바를 해방시킨뒤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 하던 그의 모습은 가난한 민중들에게 성자로 추앙받기에 충분하다.

1965년 제2인자의 자리를 버리고 당시 내전 중이던 콩고로 가서 콩고혁명을 위해 노력했으며, 볼리비아 게릴라 부대를 통솔하던 중 1967년에 정부군에 의해 체포당한다.
미국 CIA 동의 하에 총살되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 39세였다. 그의 유해는 볼리비아의 한 공동묘지에서 1997년 쿠바의 묘지로 이장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그를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평했다.


체 게바라 신드롬


체 게바라 신드롬은 그의 사후 30주기였던 1997년경부터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전기, 사진첩, 추모음반이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출시되고 그의 얼굴을 담은 대형 포스터와 티셔츠, 우표, 캐릭터 인형이 유행되었다.

'체 게바라' 열풍은, 그의 정치적인 입장에 이끌려서라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가장 완전하게 구현한 인간상으로서, 그리고 전례없이 행동과 사상을 통일시킨 특별한 인간으로 체 게바라를 받아들인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상(異象)적인 열기는 그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는 단지 그의 '이미지'에 의존하는 점이 더 크다는 비판도 있다.

검은 베레모, 아무렇게나 기른 긴 머리, 텁수룩한 턱수염, 열정적인 눈빛, 굳게 다문 입술 등 그의 저항 이미지를 좋아하며 많은 젊은이들이체 티서츠를 입기도 했다. 이러한 이상 열풍에 높은 상품가치를 발견한 자본의 결합으로 서구 기업의 광고에 체가 등장하고, 체 시계(스위스)와 체 맥주(영국)를 만들어 냈으며, 그를 처형한 후 두 팔을 잘라 전리품으로 보냈던 볼리비아는 '체 게바라 성지 순례' 상품을 기획하는 등 60년대 대중문화 중 약탈되지 않은 마지막 상징이었던 체가 서서히 현대 상업주의의 약탈 대상이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체 게바라' 평전이 발간 1개월 만에 1만부가 판매되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체 게바라 티셔츠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뮤지컬 속에서의 체(Che)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체(Che)'라는 표현을 영어서 누군가의 관심을 끌 때 'Hey'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용한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인들은 자주 "체(Che)! 잘 지냈어?"라는 식으로 인사를 건네거나, 대화를 시작할 때 '체(Che)'를 붙이곤 하는데, 이는 친밀한 애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친구나 동료들에게 사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뮤지컬 <에비타>의 나레이터가 '체(Che)'로 불리는 것은 적합한 표현이라 하겠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는 1974년 뮤지컬 <에비타> 작업을 시작하면서, 서술자를 다양한 상황에서 국민의 편도 또는 그 반대편을 대표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의 캐릭터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리지널 공연에서는 체를 어떤 모습으로 표현할 지에 대한 많은 토론 끝에 그의 캐릭터를 좀 더 혁명적인 체 게바라의 모습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알란 파커 감독의 1996년작 영화 <에비타>에서는 웨버와 팀 라이스가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체'의 역할이 익명의 어떤 누군가로 표현됨으로써 역사적인 선입견 없이 사건을 진술할 수 있었다. 지난 2006년 6월 막을 올린 영국 리바이벌 버젼과 한국공연에서의 '체' 또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상황을 관조(觀照)하는 서술자의 입장으로 등장한다.

※ 주) 내용중 포스터와 장면 사진(스틸)들은 영화 <에비타> 에서 가져온 것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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