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농사 그리고 농업에 대한 斷想
2009. 7. 12. 21:31ㆍ여백/살아가는이야기
추수, 농사 그리고 농업에 대한 斷想
출장 갔다가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는데 시골에 계시는 어머님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하여 전화를 드렸더니 토요일 날 하려던 추수를 주말에 비가 올 것 같아 벌써 끝내시고 나락을 건조기에서 넣어 건조시키고 있다고 하셨다.
추수가 옛날같이 힘들게 논의 벼를 일일이 낫으로 베어 볏단을 묶고 탈곡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콤바인으로 바로 탈곡까지 논에서 바로 끝낸다해도 힘쓸 일이 많은데... 그렇게 힘드는 일은 하시지 말라고 해도 동네에서 농사를 제일 잘 지으시는 어머님의 부지런함과 열심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추수를 끝내시고 자식들을 부르신 것이다.
(황금빛으로 물든 벌판)
(피땀흘린 결실, 황금들녘은 보는 것만으도 배 부를 것 같은데)
이제 추수할 때 제일 힘드는 일은 건조기에서 내려 부대에 담아 집으로 옮기는 일인데 아침 일찍 건조기에서 벼(나락)을 꺼낸다고 하셔 새벽에 일어나서 서둘러 가는 것보다 늦었지만 지금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옷만 갈아입고 곧바로 시골로 차를 몰았다. 요즘은 시골가는 것이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당장은 연로하신 어머님이 농사를 계속 지으시겠다고 하시니까 그렇고, 멀게는 고령화, FTA, 기로에 선 한국의 농업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탐탁한 것이 없어 마음이 무겁다.
이전에 지지리도 가난하고 못살던 시절, 남의 집 농사지으러 다니시던 한맺힌 시절을 생각하면 어떻게 마련한 땅인데 팔고 싶기야 하실까만, 날로 연로해 가시는 어머님은 땅을 파는 것은 고사하고 남에게 맡겨 지으시라고 말씀드려도 아랑곳없이 그렇게 농삿일에 매달리시니 자식들은 마음이 무겁다.
농사철이 되면 모든 일에 우선하여 시골로 가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런 일로 한번이라도 더 시골 갈 일이 생기니 다행이긴 하지만...
(이제 추수는 콤바인으로 논에서 직접 탈곡까지 해 버린다)
(젊은이들이 떠난 고향마을을 지키는 상구씨, 상구씨가 고맙다)
쌀 농사!
씨나락을 준비하여 모판을 만드는데 요즘은 모판에 쓸 흙도 사서 사용한다. 파종기로 프라스틱 모판에 흙을 올리고 다음에 볍씨를 일정하게 뿌린 후 다시 얇게 흙으로 덮고, 물을 뿌린후 모판을 차곡차곡 쌓은 다음 비닐로 덮어 싹을 틔운다. 그 후 못자리를 만들어 모판을 다시 못자리에 가지런히 놓아 모를 키운 후 거름과 비료를 낸 논에 이앙기로 모내기를 한다. 이전에는 허리구부려 일일이 심었는데...
이후 김매기와 농약을 몇 번 뿌리며 비료를 낸다. 여름동안 적당한 물을 대주어 작열하는 햇살을 받고 자란 벼가 가을이 되어 나락이 영글면 추수를 하는데 추수는 동네에 1대밖에 없는 콤파인으로 논에서 바로 탈곡을 하여 일부는 물매상을 하고, 남은 벼는 곧바로 건조기에 넣어 건조를 한 후 곳간에 들인다.
이전에 비해 일 손이 많이 줄긴 줄었다. 그러나 태풍이 불어 벼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아무리 콤바인으로 한다고 해도 논바닥에 쓰러진 벼를 일일이 세워 묶어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농사는 말 그대로 뿌린대로 거두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하늘이 도와야 제대로 수확을 할 수 있는 것이 농사이다.
그런데, 세상물가는 다 오르는데 정부의 벼 수매가는 해마다 떨어진다.
농민들은 안 올려도 좋으니 작년만큼만이라도 달라고 절규를 해도 해마다 떨어진다.
올해도 또, 작년보다 벼 1가마에 5,000원이 더 떨어져
벼 1가마(동진1호, 1등급, 40kg) 수매가는 48,000원.
환산하면 1kg에 고작 1,200원,
논 1마지기(200평)에 400kg 정도 생산되니 1평에 2kg, 금액으로 환산하면 2,400원 정도.
즉, 논 10마지기(2,000평) 1년 농사지어 수확한 것을 전부 매상하면 480만원.
그동안 농사짓느라 든 농약 값, 비료값, 경운기, 이앙기, 콤바인 사용료, 일꾼삯, 벼 건조비용, 하다못해 모판흙값까지 주고 나면 뼈 빠지게 일한 노동의 댓가는 어디가고... 남은 것은...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농사일 도우러 시골갈 때 든 기름값, 고속도로 통행료, 일당은 부모형제를 만나 효도하러 간 셈 치더라도 말이다.
(이제 나락을 건조 시켰으니 곳간으로 이동만 하면 된다)
(가을의 한복판에서 햇살을 즐기는 강아지풀)
그래도 미국쌀 값과 비교도 안된다며 농사를 포기하라면서 땅을 묵히면 보상해 주는 그런 것도 농업정책이라고... 국민의 혈세로 월급받는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나라 사람들인가?
쌀농사를 포기하고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고소득 작물을 재배하라는 말이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어보이나 그건 일부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나라 농업이 쌀을 포기하고 그렇게 간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없는 짓이다. 화초를 먹고 특용작물을 주식으로 할 수도 없는 짓이고 그걸 팔아 쌀을 수입한다 하더라도 지금도 우리의 식탁은 미국 카길을 비롯한 곡물메이저들의 손에 놀아나고 있으니 말이다.
한미FTA에 이어 중국과의 FTA에 들어가면 쌀농사를 얼마나 지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나마 옛날 보릿고개 시절을 생각하며 농심을 천심으로 알고 농사를 짓고 있는 70세가 청년에 속하는 농촌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나면 농촌은 어떻게 바뀔까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선이야 싸니까 중국쌀 미국쌀을 먹는게 나아보일지 모르지만, 올해 호주의 밀 생산량 격감이 예상되자 국제 밀 가격이 몇 달새 80%나 오른 것을 보지않았는가? 작황이 좋지않아 수급에 문제가 있거나, 곡물메이저들이 장난이라도 친다면 무슨 수로 감당할 것인가?
조물주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여 모든 사람들이 나누어 오손도손 살도록 하였지만 인간의 죄스런 무한 욕심은 한쪽은 일용할 양식조차 해결하지 못해 굶어서 죽고있는 판에, 한쪽은 너무 많이 먹어 감당하기 어렵게 찐 뱃살을 빼느라 안달이고, 먹다남은 음식쓰레기는 이제 버릴 곳이 없을 정도다.
또한 곡물메이저들이 곡물값을 올리기 위해 수급을 조절하느라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에 쏟아붓는 행위도 서슴치 않으니 이게 죄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지구의 온갖 자원을 2중 3중으로 과소비하며 지구를 좀 먹고 있지 있다.
또한, 식생활 변화도 곡물부족의 원인이다. 고기 1kg을 얻기 위해선 곡물 7kg이 필요하다는데 개도국들의 경제성장에 따른 식생활 변화로 전 세계적인 고기수요 증가도 곡물부족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되고,
근래에는 화석연료의 고갈과 가속화되는 지구 온난화로 곡물을 이용한 대체에너지 개발이 복병으로 나타났고,
산업화로 인해 경작지가 줄어들어 이미 세계곡물생산증가율은 식량의 소비증가율을 따르지 못해 머지않은 장래에 식량난이 닥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는 상황아닌가? 이런 때에 농업을 포기하고 농지를 묵히는 정책을 펴고 있다니... 가당찮은 일이다.
(이런데도 농사가 수지안맞는 것은...)
FTA을 피할 수 없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영어라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간교하게 숨겨놓은 함정을 피해 국익을 챙길 수 있는 협상을 해야할 것이고, FTA로 득을 보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의 이익을 과감하게 농업에 투자하여 생산성을 높혀 식량을 무기화하고, 식량으로 무한이익을 챙기려는 곡물메이저들에 맞설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무책임하게 FTA는 대세고, 농업을 포기하더라고 공산품을 수출하면 FTA로 얻는 것이 더 많다며 앞으로 식량주권을 곡물메이저들한테 다 넘기고 곧 닥칠 식량위기에 안일한 자세로 대하며 농업을 농민의 문제로 국한하려 하려는 자세는 적진에서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것같은 위험하기 짝이없는 짓이다.
(양식으로 쓸 곡식을 곳간에 들이는 것으로 한해 농사가 끝났다)
각설하고, 일부는 논에서 물매상을 하고 양식으로 쓸 곡식들은 잘 건조하여 곳간으로 들인다.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힘들여 지으신 한 해의 결실을 자식들에게 나눠주시는게 큰 낙인 것 같으시다. 자식들이 가면 손수 쌀을 찧으셔서 부대에 담아 갈 때 가져가라 챙겨 주신다.
어머님! 가난하던 시절 그렇게 갖고 싶었던 논이지만 열마지기 논은 어머님한테 너무 버겁고, 자식들에게 양식을 대 주시는 것이 어머님의 낙이시라지만 힘드는 일은 이제 그만 두시고 다른 낙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어려운 시절을 지나면서 그만큼 고생하셨으면 됐지 고생을 얼마나 더 하시렵니까? 저희들이 모실테니 다리 쭉펴고 남은 여생 편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
(손바닥만한 남새밭에도 채소를 심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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