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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자작 시

산은 바다가 되고

by 시나브로@ 2026. 10. 24.

산은 바다가 되고

- 구름바다에 빠지다

 

 

안개비 피해 잠시

텐트 속에 들었다 나오니

그새 구름이 점령군처럼 밀려온다

 

신불재를 살금살금 넘는 한 부대

간월재를 파도처럼 덮치는 또 한 부대

 

조망 터진 바위 끝에 서자

공룡의 등을 타고

새벽을 거슬러 오는 두 작가

 

대체 무엇이

저들을 이 높은 산정까지 밀어 올렸을까

 

마침내 운해가 공룡능선을 휘감자

웅크린 능선 하나

등뼈를 세우며 공룡으로 깨어난다

 

사방으로 번져가는 흰 물결

산은 지워지고 바다만 남는다

 

나는 그 황홀 속으로

대책 없이 풍덩, 빠져버린다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2026. 두손컴> 37p 에서

 

 

 

 

그 특별한 날, 영남알프스 풍경

 

 

 

시작 노트 :

 

“산이 부르고 있으니, 나는 가야 한다.”라고 존 뮤어가 말했던가.

산에 오르는 데 늘 뚜렷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마음이 동하고, 그저 산이 부르는 것 같아 길을 나선다.

 

지리산을 가려고 했는데 큰비로 입산이 통제되었다. 박 배낭에 카메라 한 짐을 더 얹고, 언제나 기별 없이 찾아가도 편안하게 반겨주는 영남알프스로 향했다. 산정에는 밤새 안개비가 촉촉이 내렸다.

 

새벽, 텐트 밖으로 나오니 산을 둘러싼 풍경이 평소와 사뭇 달랐다.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산정, 산과 산, 능선과 하늘 사이로 흘러드는 구름, 서서히 흐려지는 풍경의 경계. 오늘은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장막까지 쳐놓은 모양이다.

 

감탄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얼른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얹고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담고 또 담았다. 그래도 사진에는 들어오지 않는 것이 있었다. 눈앞의 풍경만이 아니라 그때의 공기와 움직임, 바라보는 마음까지는 아무리 담아도 남겨지지 않았다.

 

산을 내려온 뒤에도 그 장면은 오래 남았다. 사진으로 붙잡은 풍경 너머에 끝내 담아내지 못한 것들이 있었고, 어쩌면 그 남은 것들이 한 편의 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Yiruma / Kiss the 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