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알에 억새꽃 피고 안개비가 내리는 날의 山情

2009. 9. 7. 01:13山情無限/영남알프스


 

 


영알에 억새꽃 피고 안개비가 내리는 날의 山情

2009. 8.29 ~ 30





몇 일 전까지 대지를 달구던 태양도
때 맞춰 찾아온 계절앞에 기세가 많이 꺾였다.
자연의 질서는 인간의 질서보다 더 진실하다.
가을은 매미의 애절한 울음과 함께 오고
아침 저녁 서늘한 바람을 앞세우며 오고,
영남알프스에 구절초, 억새꽃을 피우며 온다.

여름 꼬리가 아직 산 모퉁이를 돌지도 않은 것
같은데 가을의 척후병은 코 앞에까지 왔다.
벌써 신불평원에, 사자평에 억새가 핀다는 전갈이다.
가을만 되면, 영남알프스를 찾아오는 억새꽃 같이
무에 바람들듯 주체할 수없는 허한 가슴은
또 큰 배낭꾸려 영남알프스로 향하게 하는데

마침 오늘은 고리뫼 산꾼들이 영알에 든단다.
그래, 지리산 비박은 시간 못맞춰 동행하기 어렵지만
영남알프스는 주일 아침 일찍 내려올 수 있으니
겸사겸사 얼굴이라도 보고와야 겠다





(배내재 조망, 신불평원쪽 산정은 구름이 짙게 나려와 있었다)









(간월재에 오르자 안개가 자욱하고, 안개비까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사실 오늘은 아니다.
막 피어나는 풋풋한 억새도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억새는 호호백발한 꽃술을 바람결에
과년할 딸 시집보내듯 날려 보낼 때 그 때의 억새다.

그렇다고 어찌 그 때에 영남알프스에 들어
좋아하는 모습만 딸랑 보고 가는 건
너무 속보일 것 같지 않은가?








(신불산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구름은 더 짙어지고...)

점점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낮익은 길이지만 안개에 가려진 풍경은 사뭇 다르다.
어제가 오늘일 수 없듯
어제의 산도 오늘의 산일 수 없어
같은 산을 올라도 느낌은 다르다.





(전망대에 서 보지만 보이는 것은 회색 안개뿐)







(막 피기 시작한 억새꽃과 철 지난 산오이풀)





(신불산 정상 모습, 목재데크가 부자연스럽다)











(억새가 가을 영알을 대표한다고 해도 야생화들도 영알의 주인이다)







(아직은 풋풋하지만... 몇 일지나지 않아 하얀꽃술로 영남알프스를 수놓을 억새)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해...)





(오며 가며 들리는 쉼터 신불대피소)







(산에는 만나면 이내 십년지기같이...)

신불산대피소는 또 젊은 대피소지기를 새로 맞았다.
신불산 정상에서 만났던 서울서 온 한 사장님 일행을 다시 만났는데
큰 맘 먹고 들린 영남알프스가 온통 안개로 뒤덮혀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아마 한번 더 영알에 들리라고 그런 것 아닐까?

아래 사진 우측이 새 대피소지기 최천식 님





(신불재 데크에 텐트를 치고 있는 지리산 일행)





(마치 인생길 같은 안개속 길, 그러나 분명한 목적지가 있기에...)

알 수 없는 미래, 인간의 이성은 곤충의 더듬이에 불과할지라도
믿음이 있기에... 목적지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정겨운 길, 억새가 있어 더 정겨운 길을 따라...)







(머지않아 불붙듯 활활타오르다 꽃술을 시집보내듯 날려보내겠지)







(억새가 막 피어나는 풋풋한 모습도 좋다)





(술패랭이꽃)

서양의 카네이션과 같은 줄기에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어
석죽과에 속한다. 쌍떡잎식물의 여러해살이풀로 술패랭이
또는 장통구맥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조선시대 장돌뱅이들이 머리에 썼던
패랭이를 닮았고 끝부분이 술처럼 찢어져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다.

꽃이나 열매가 달린 식물체를 그늘에 말려서
이뇨제·통경제(通經劑)의 약재로 사용하며 관상용으로도 심는다.
우리나라와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 분포하는데 꽃 중심 부분에
가느다란 털이 있으면 술패랭이, 털이 없으면 구름패랭이로 구분된다.







(다니던 길인데도 안개속 억새밭에서 한참 에둘러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 야영을 주선한 고리뫼 주빈들... 좌로부터 자유인님, 선달님, 자우님)







(그저 좋다. 산이 좋고... 산사람이 좋고...)







(한편에서는 오토캠핑에 대한 열강이 이어지고...)







(어떤 모임이던지 뒤에서 희생하며 묵묵히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야...)









(분위기에 취해 시간가는줄 모르고...)











(안개비도 촉촉히 내리고 산꾼들의 산정도 깊어 간다)





(한평 안되는 공간만으로도 족하다. 화려한 별장이 부러운가?)

도시 한가운데에서 혼란한 생각들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며 기장시키지만
산에만 들면, 욕심이 사라지니
이내 평정심을 찾고 제정신을 찾는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욕심아닌가?





(거의 20여 동은 되는 것 같다)





(제일 일찍 일어나는 권은아빠님, 좋은 집 편안한 침대도 마다하고...)









(단조샘 근처 억새밭을 수놓은 텐트들...,)





(일행들을 두고..., 오늘은 주일 혼자 아침도 먹기전 일찍 출발한다)







(101)







(곧 자취를 감출 참취와 막 피기 시작하는 싸리꽃)





(풀숲에서 눈에 확띈 고고한 자태의 흰비비추)

대부분의 동식물에서 가끔 흰색의 변이가 나타나는데
흰비비추도 비비추 꽃의 색의 변이라고 한다.
학명을 보면 'Hosta longipes for. alba (Nakai) T.B.Lee'인데,
마지막 발견자 앞에 alba는 라틴어로 '흰색의'라는 뜻을 가지며,
생물종에 등장하는 백색 변이를 보통 'albino'라고 한다.











(길)

바람의 길이 있고
짐승들의 길이 있고
사람들의 길도 있다
가끔 사람도 짐승들의 길을 가기도 한다

큰 길도 있고, 샛길도 있다.
길이 갈려 목적지가 달라지기도 하고
갈렸던 길이 되돌아 와 만나기도 하지만
길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





(다시 신불재, 아직 지리산 일행은 한밤중인지...)





(산에 들어서 같이 마음을 비우고 살 수만 있으면...)

이렇게 바위벽에 붙어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끼들을 보면서
조망좋다고 맨날 맑은 날만 되라고 억지부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이 곳의 주인은 이끼며, 풀이며, 꽃이며, 나무며, 억새며,
개미며, 나비며, 심지어는 바위, 안개까지도 주인인데...
난 그저 맘 내키면 들었다가 내려가는 나그네일뿐이고...

어제 산에 들때부터 산을 내려서려는 지금까지
안개비까지 뿌리는 산정을 덮은 짙은 안개가
조망을 즐기려 한 기대를 앗아갔지만
풀 한포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안개비도 받아들여야 할 것 아닌가?
이 모습이 영남알프스의 제 모습일지니...







(신불산을 오르는데 가야님이 뒤따라 왔다)

일찍 출발하여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도 했지만
왠지 오늘따라 안개속에서 가다가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는
풀숲 속의 길이 인생길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몇 발짝 가다 메모하고, 사진찍고 단조샘터에서 여기까지 오는동안
안개속에서는 시간도 정지된듯 느리게 가는 것 같았는데
부지런한 시계는 이미, 갈 시간을 다 가고 있었다.





(산은 오르기 위해 내려오고, 내려오기 위해서 오른다)







(신불산 정상, 데크에는 텐트 2동이 쳐져있다.)

지난밤 날씨가 좋았더라면 이곳으로 넘어와
저 데크에 텐트를 치고 일출을 기다렸을덴데
밤도 늦은데다 비가 내려 단조샘터에서 밤을 새웠다.
이웃이 되었을 저 텐트의 주인들이 누구일까?





(바람이 살랑살랑 불지만 산정은 오늘도 종일 안개속에 가두어 둘 모양이다)





(이 시간에 키만한 배낭을 메고 오르는 산꾼이 눈에 들어왔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어제 단조샘터 야영장에서 만났던 일행아닌가?)

그 밤에 어딜갔다 이 시간 또 집채만한 배낭을 메고 이 길을 오른단 말인가?









(안개비로 말갛게 세수하고 반기는 쑥부쟁이와 산오이풀, 원추리)





(또 한무리의 산객들도 안개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이내 모습을 감춘다)





(무슨꽃?)







(구절초와 뚝갈)

구절초는 아직 이른 것 같다.
귀공자 같이 뽀얀얼굴, 달걀같이 잘 생긴 모습은 찾지를 못하겠다.
기름나물과 비슷한 뚝갈(뚜깔),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한방에서 뿌리를 약재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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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받고...)

손에 쥐면 쥔 것만 내 것이지만,
손을 펴면 전부가 내 것이 되듯
화원에서 만든 꽃다발보다 훨씬 아름다운 꽃다발.
그대로 두면 나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보는 이 모두의 꽃다발

우리 담장도 허물고, 손에 움켜 쥔 것도 다 폄이...





(간월재에 내려섰는데 안개가 삼켜 버렸는지 간월산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도 아직, 안개가 가려주기 다행이다.)





(안개속으로 사라졌던 간월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용도가 뭘까? 영알에도 다른 건 몰라도 화장실은 있어야한다)





(맞은편 운문지맥 능선은 하늘이 조금 열려있다)

안개가 걷히면 또 뙤약볕이 억새밭을 달굴테고
그러면 꽃술은 어느새 호호백발이 되어
마치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 같이 바람결을 기다릴테지
오늘 이렇게 억새가 피는 날 안개로 장막을 치고
마치 인간이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들려주며 태교하듯
바람이 일렁이는 것은 새땅을 향해 날아갈 꽃술이
바람의 길과 습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이겠지.

어제 오늘 비록 짧은 시간 영알에 머물다 내려가지만
그동안 만나지 못한 산꾼들과 진한 산정을 나누며
억새가 어떻게 가을을 맞이하는지 보지않았는가.
막 피어난 억새꽃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다시 찾아
나도 나의 계절을 제대로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