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9. 13:07ㆍ이래서야/4대강 난도질
[시론]4대강과 바벨탑
수경 | 화계사 주지
이명박 대통령께서 집착하는 ‘4대강 사업’은 ‘바벨탑 쌓기’와 참 많이도 닮았습니다. 바벨탑이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욕망과 오만을 상징한다면, 4대강 사업은 오로지 ‘돈’만 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물신숭배의 상징입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무모함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에게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소통부재’의 형벌로 그 무모한 기도를 중지시켰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2조원이라는 돈의 힘으로 개발 이익에 대한 기대심리를 자극하여 여론을 호도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메랑이 될 것입니다. 국론 분열이라는 소통부재의 형벌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국민 간의 소통부재도 모자라 지역 대 지역, 국민 대 국민의 소통부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4대강 사업의 본질적인 문제는 실종되고 있습니다.
현재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논란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강의 본질인 ‘자연의 생명력’ 그 자체와 강에 목숨 줄을 달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국가재정법·하천법·환경정책기본법 등의 법률 위반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왜 우리가 이런 논란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주요 강의 수질은 ‘죽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어도 오염이 심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원인은 우리네 삶의 방식과 내용입니다. 삶이 오염됐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돈만 좇는 삶이 바뀌지 않는 한, 설사 4대강의 물이 옹달샘처럼 맑아졌다 해도 다시 오염되는 건 한순간입니다. 삶의 질적 변화 없이는 악순환만 거듭될 뿐입니다.
고가도로나 하천 복개 같은 개발 시대의 산물들이 속속 철거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봐도 현재의 4대강 사업 방식은 모순입니다. 삶의 질적 변화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오로지 양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 살리기의 측면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현재의 경기 침체나 실업, 빈부 양극화의 문제는 자본주의와 기술문명의 임계 상황에서 비롯된 필연입니다. 당연히 문명사적 전환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입니다.
토건국가로 치닫던 일본의 장기 불황이나 부동산 거품이 원인이 된 미국의 금융위기를 보면서도 4대강을 토건국가식 개발의 제물로 삼으려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수많은 수중보와 대규모 준설이 필요한 4대강 사업은 비록 가시적 효과가 확실시된다 할지라도 결코 강 살리기가 될 수 없습니다.
‘소통부재’ 형벌로 다스린 전례
그것은 개발이 아니라 자연 개조에 가깝습니다. 근본적으로 강의 자연성을 거세시킨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4대강은 자동차의 부품과 같은 하나의 소모품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국토 유린입니다. 감히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자연 개조입니다. 개발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집착은 광신적 물신주의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것을 용인했습니다. 삶의 보금자리인 집마저도 오직 재산 가치로만 따지는 우리의 벌거벗은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차원에서 강 정비 사업을 최적화·최소화하는 데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평화로이 공생하는 삶의 질적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돈’이 ‘메시아’로 군림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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