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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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 오세영
12월 /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2019.12.02 -
11월 / 오세영
11월 / 오세영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선택한 그의 인동(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
2019.11.02 -
2월 / 오세영
2월 / 오세영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2016.02.02 -
바닷가에서 / 오세영
바닷가에서 / 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
2015.12.22 -
팔월의 시 / 오세영
팔월의 시 / 오세영 8월은 오르던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
2014.08.15 -
휴가, 지리산에서
올 여름휴가는 오랫만에 2박 3일을 지리산에서 보냈다. 이틀동안 폭우로 산에 들지 못했으나 마지막 날, 도장골로 올라 청학굴, 청학연못에도 들리고 음양수를 거쳐 거림옛길로 하산하며 휴가의 대미를 장식했다. 오늘이 입추인데 청학연못도 곧 추색으로 물들겠지.. A Little Rain Tom Waits
201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