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13구간 (수랑재에서 쉰고개까지)

2010. 5. 13. 18:09山情無限/금북정맥(完)

 

 

 

금북정맥 13구간 (수랑재에서 쉰고개까지)







○ 산행일자 : 2010. 4. 17(토) 07:10 ~ 16:25 (9시간 15분)
○ 산행날씨 : 맑으나 연무현상, 오전은 쌀쌀하고 오후 더움
○ 참석인원 : 홀로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26.7km         누적거리 : 272.65km
○ 산행코스 : 수랑재-물래산-팔봉중교-오기리-오석산-백화산-모래기재-퇴비산-유득재-쉰고개
○ 소 재 지 : 충남 서산시 인지면, 팔봉면 / 태안군 태안읍, 원북면, 소원면, 근흥면


구간 진행시간

① 접근

07:20~40      이동 (서산터미널-수랑재) / 버스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7:05         수랑재(32번 도로) 출발

07:29         물래산(149m)

08:30         팔봉중교(32번 도로)

09:28         오기리

10:08         오석산(169m)

11:21         241.7봉

12:10~20      백화산(284m)

13:03         모래기재(634번 도로)

14:00~07      퇴비산(159.7m)

15:06         구수산(145.5m)

15:27         유득재

16:25         쉰고개(32번 도로)

③ 복귀

16:30~40      이동 (쉰고개-태안버스터미널)         / 시내버스

16:50~17:15   이동 (태안버스터미널-서산공용터미널) / 시내버스

18:00~23:15   이동 (서산-울산)                     / 승용차



어제 생긴 새끼발가락의 물집 때문에 27km나 되는
오늘 구간을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아침부터 신경이 쓰인다.
왼쪽 새끼발가락에 생겼던 물집은 이미 터졌고 오른쪽은 아직 터지지
않았지만 물집 주위가 벌겋다. 얼마나 오래 갈까만 양 발가락에 1회용
밴드를 붙히고 양말을 신으니 그래도 좀 낫다. 이 정도 가지고 오늘
산행을 포기할 수는 없고 누가 대신 가줄 것도 아니기에 짐을 챙겨
일찍 사우나를 나선다. 다행인 것은 오늘 거리가 멀긴해도 산세도
부드러워 진데다 약 7km 정도는 마을길을 따라 평지를 걷는다.

어제 아침은 음식 맛이 별로고 불친절하서 다른 집을 찾다가
터미널 근처에서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훨씬 좋은 식당을 찾았다.
식당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위치는 터미널 들어 오는 길 맞은편
(큰 길건너) 골목 안으로 50m쯤 들어가면 두번째 블록 모퉁이에
있는 집으로 24시간 하는데다 맛도 좋고 종업원도 친절하다.

오늘 구간은 32번 도로와 숨박꼭질하듯 5번이나 넘나드는데
팔봉중학교를 지나면서 금북정맥 날머리 안흥진이 있는 태안군에
들어서고, 2/3를 넘어 진행하면 안흥진이 있는 근흥면에 들어선다.
그러나 태안군에 들어서면서도 썩 기분이 좋지만 않은 것은 3년전
태안기름유출사고 후유증이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나, 사고낸
기업이나 책임지는 자세로 하루빨리 상처가 아물도록 노력했으면
좋으련만 피해어민들의 고통은 아랑곳않고 무책임하기는 똑 같다.
태안군에 들어서면 우리나라 최초 운하공사를 시도하다 실패한
굴포운하지도 지나고 또 태안읍과 서해가 훤히 조망되는 백화산도
지나니 기대되는 구간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금북정맥 날머리
안흥진 턱밑까지 간다는게 더 의미가 클 것 같다.





(32번 국도, 수랑재에 내려)

오늘 들머리에서 멀지않은 차1리 정류소에서 내렸다.
어제는 굴다리로 32번 도로를 건넜지만 오늘은 차량통행이
많지않아 또 무단횡단을 하여 32번 국도와 나란히 가는
샛길로 고갯마루에 가니 왼쪽 절개지에 시그널이 달려 있고
희미한 길이 열린다. 비탈을 올라서면 넓은 평지가 나오고
마루금은 곧 숲속으로 이어간다.




(물탱크)





(풍전저수지가 있는 화수리 방향, 골안개가 피어난다)





(물래산 / 145m)

숲을 뚫고 내려온 햇살에 얼굴 붉히는 진달래가 반기는
비탈을 잠시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고 높게달린 명패가 물래산임을
알리지만 봉우리 같지않은 능선상이다. 직진하면 역마산.





(어제에 이어 진달래가 반긴다)

물래산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리는데 송림이 울창하다.
길이 간간히 갈래를 치지만 마루금은 비교적 뚜렷하다.
호젓한 길, 숲을 뚫고 진달래에 내려앉은 햇살이 정겹다.
얼굴 붉힌 진달래의 반김을 받으며 호젓한 길을 따르는데
머지 않은 곳에서 자동차 소리가 정적을 깬다.





(흔적, 깨알만하게 '울산 시나브로 지나가다')

산에 들어도 쉬이 흔적을 남기지 않았는데..
어떤 님이 메모판을 준비해 놓았다. 그냥 가려다 깨알만하게
'2010. 4/17 08:35분, 울산 시나브로 지나가다'라고 써 본다.
수성펜으로 썼으니 비 한번 오면 지워지겠지..





(32번국도, 길 찾느라 한참 헤메다가 양지편쪽 굴다리로 32번 국도 통과)

시그널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우측으로 지나는 능선이
마루금 같아 다시 올라가 보니 시그널이 간간이 달려있다.
능선을 타고 내려서니 나온 작은 도랑이 나오고 도랑을 피해
밭을 지나 직진하면 마루금일 것 같은데 도로에 내려서도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다. 차가 쌩쌩 달리는 32번 도로를 횡단할
수 없어 이리저리 한참동안 헤매다 오른쪽으로 올라가 양지편쪽
굴다리로 도로를 건너 팔봉중학교쪽으로 내려오니
처음 내려왔던 길과 연결된 또다른 지하차도가 나오는 것 아닌가.
대부분의 이 굴다리를 지나온 것 같다. 선답자의 산행기을
읽지않고 딸랑 지도 한 장들고 진행하려니 다리가 고생이다.

오늘은 32번 도로를 5번이나 건너는데 벌써 2번 건넜다.
수랑재에서 1시간 25분이나 걸려 여기까지 왔는데,
32번 도로로는 2km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





(팔봉중학교 가는 길에 본 팔봉산)

어제부터 보였던 팔봉산이 오른쪽에서 우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오늘도 한동안 팔봉산과 동행한다.





(저 앞이 팔봉중학교)

왼쪽 전방에 보이는 학교가 팔봉중학교.
정문에서 운동장을 가로 질러 가야하는데 운동장에 학생들이 많아
지나가기가 미안하다 생각되는데 선생님 한 분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 아닌가.. 이른 아침 배낭메고 학교를 지나가는 모습을
어떻게 볼까. 눈이라도 마주치면 인사라도 하려했더만..
재빨리 운동장을 지나니 뒷쪽은 그냥 트여 있다.
금남정맥도 부여여고 교정을 가로질러 가긴했다.







(웬 철조망.. 휴전선도 아닌데 원형철조망이..)

학교 사진도 한 장 못담고 재빠르게 뒷문을 빠져 나와
밭으로 들어섰는데 왠 철조망이.. 그만 안에 갇힌 꼴이 되어
다시 뒤돌아 가서 철조망이 낮은 곳을 넘어 밖으로 나온다.
여기서 부터 어디가 마루금이고 어디가 길인지 분간이 안되는
'굴포운하지'를 지나는데 1:6만 지형도로는 등고선 하나도 차이가
나지않아 마루금이 구분 안된다. 일단, 오석산 방향을 확인하고
그중 가장 높은 곳으로 진행하는데 도중에 푹 꺼진다.





(이제부터 어디가 마루금인지..)





(14)





(드디어 태안군에 들어섰다)

팔봉중학교에서 300m만 진행하면
금북정맥 날머리 안흥진이 있는 태안군이다.
여기서 부터 날머리까지는 도상거리 46.8km.
백리 조금 넘는 거리.. 오늘 쉰고개까지 가면 22.8km.
한 구간 남는데.. 졸업은 날 잡아 해야겠다.







(굴포운하지(堀捕運河址), 실패한 운하)

'굴포마을안내도'와 '굴포운하지' 안내도가 있다.
마루금은 바로 북쪽에 보이는 나지막한 능선이나 능선은
운하를 만드느라 흙은 파낸 곳이라 마루금이 끊겨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운하로 알려진 굴포운하는
천수만으로 흘러드는 흥인천과 가로림만과의 약 3km에 달하는
지역을 연결하는 운하로 삼남지방의 세곡미를 서울로 운송할 때
배가 태안반도의 안흥량 관장항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는데
안흥량은 해중에 암초가 있고, 급격한 조류로 인해 빈번히
배가 전복되거나 파손되어 국가적인 손실이 컸다.
하여 세곡미의 안전수송과 운송기간 단축을 위해
이 곳 굴포에 운하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고려 인종 때(1123~46)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임진왜란 직전까지 비록 단속적이기는 하였지만 400여 년간
수 많은 인부를 동원하여 운하공사를 계속하였으나 운하 건설지의
지질이 화강암층이라 당시의 기술로는 암석을 뚫는데 어려움을
겪은데다 높은 간조의 차를 극복하지 못해 성공치 못했다.
이후로도 국가의 재원이 되는 세곡미 운송을 위해 조선 현종 때에는
운하 건설지 주변에 많은 조창(漕倉)들을 설치하였으나 그 마저도
행정상의 문제들로 인해 결국 폐창되고 운하건설은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조창과 관련하여 천수만과 가로림만의 해로를 따라
많은 촌락이 형성되고 발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평3리 다목적회관)

너른 벌판 한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길을 끈다
주변의 지명들이 하창, 상창, 북창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는 이전 굴포운하지의 창고마을에서 유래한다.





(마루금은 마을도로를 따라)







(때로는 전면 섰다가 때로는 우측에서 따라오는 팔봉산)





(마을길을 버리고 숲으로 들었는데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개인주택 뒷담(절개지) 위를 타고 내려와 마당을 지난다)







(북창 사거리 수퍼(?)와 버스정류장)

마을길을 계속 따라가니 버스정류장 사거리에 조그만
상점이 나왔다. 어제부터 새끼 발가락에 생겼다 터진 물집부위가
아리기도 하고 목도 마르고 하여 음료수나 한 병 마시고 가려고
문을 두드리니 기척이 없다. 주인은 들일 나간 것 같다.





(원형 반사경 앞에서 증명사진 한 장 남기고..)





(붉은재 가는 길)

음료수 한 잔 하려 했던 탓에 목이 더 말라 생수로
목을 축인다. 매점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 붉은재를
향하여 마을 길을 따르다 보면 전방으로는 오석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팔봉산이 계속 따라오고 있다.

32번도로에서 약 5km 진행하여 나타난 붉은재에서
그동안 벌판과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던 시멘트 포장길과
작별하고 왼쪽 숲으로 들면 호젓한 산길이 열린다.





(오석산 오름길에도 진달래가 단체로 마중하며 반긴다)





(오석산 정상의 산불감시초소)







(오석산(烏石山 △169m) 정상)

잡목에 가려 조망도 없는 봉우리에 있는
산불감시초소는 이미 오래전에 용도폐기된듯 하고
삼각점은 글씨 한 자 식별할 수 없다.







(울창한 송림길, 간간히 진달래도 반겨주고..)





(호젓한 송림길을 오르내리던 마루금은 시멘트 포장된 ?고개 지나..)





(인삼밭 가장자리로 이어간다)





(펑퍼짐한 길로 조그만 봉우리에 오르니 전방이 훤히 트이는 벌목지)





(가슴에 못을 박아놓고는.. 이런 이름표는 없는 것만 못하지 않을까?)

이름표 단다고 여기에 못질한 분은
자기 가슴에 이름표 단다고 옷핀으로 살까지 꿰매지는 않겠지?





(38)





(241.7봉)

마루금은 삼각점봉 정상으로 가지않고 오른쪽
건너 우뚝한 백화산으로 향하는데 내림길이 가파르다.





(군사시설보호구역 시멘트 기둥이 곳곳에 보이고..)

까마득한 백화산 오름길이 힘들 것 같아
때도 되고 하여 내림길 중간쯤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이래야 빵 몇 조각이지만..

지난 여름 호남길을 가던 중 체력이 바닥나는 바람에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단체산행이라 빠지지도 못하고..
그 바람에 후유증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다. 그 때부터 점심은
거의 밥 대신 빵으로 때우는데 이제는 빵으로도 견딜 정도로
체질이 바뀐 것 같다. 대신 아침은 꼭 먹어야 하지만..





(임도고개)

백화산 직전 고개에 서 있는 이정표가 내려온 쪽은 '흥주사',
정면은 '백화산 정상 0.6km', 우측은 '산후리'를 가리키고 있다.
가파른 오름길에 침목이 깔려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도중 숨이 확 트이는 조망처가 나오니 그나마 다행이다.





(백화산 오름길엔 밧줄도 쳐져 있고..)





(잘못 자리잡은 녀석들..)





(못도 모자라.. 여기는 굵은 철사줄로..)

여기 철사줄로 묶은 사람들..
일주일 동안 넥타이 메고 먹고 자고 할 수 있겠냐 싶다.
'백화산등산로정비' 팻말이 잘 자라는 나무에 철사줄로 묶어
선전해대야할만큼 중요한 일인가? 그만큼 선전해야 할 일이라
손 치더라도 이렇게 나무를 상하게 하면서까지 할 일인가?
나무를 철사줄로 묶은 사람들.. 이해할 수 없다.





(능선에 올라서기 직전에도 또 밧줄이 걸려 있다.)







(백화산 정상을 약간 비껴나 들어서 있는 군부대)





(일산서 오셨다는 고마운 분들..)

백화산을 숨가쁘게 오르는데 정상 바로 아래 숲속에서
전을 벌리고 있던 분들이 시나브로에게 뭘 좀 들고 가라며
불러 세운다. 전 같으면 '감사합니다'하며 인사만 하고
그냥 지나쳤을텐데 요즘은 주제넘게 오라면 간다.
시원한 막걸리도 한 잔하고 문어회도 맛있게 먹었는데,
갈증에 좋다며 파프리카를 더 먹으라 자꾸 권한다.
조금 전에 점심을 먹은데다 갈 길도 멀고하여
일어 서려다 또 잡혀 회도 더 먹고..

일산서 오신 분들인데 고마운 마음에 뒷모습이라도
한 장 남기고 싶어 양해를 구했더니 모두 포즈까지
취해 주신다. 좋은 분들 복많이 받으이소..





(드디어 백화산 정상)







('희게 빛난다'는 뜻의 백화산(白華山 284m) 정상에서)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에 있는 산으로
금북정맥에서 서쪽으로 갈래친 능선에 팔봉산(326m)이
솟아있고, 다시 백화산으로 산줄기가 이어간다. 백화산은
작고 아담한 산이지만, 서해 바다를 끼고 있어 풍경이 아름답다.
산에는 기암괴석들이 많고, 바위들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특히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최고의 경관이다.

백화산 정상에 축조된 백화산성은 고려 충열왕(1275-1308)때
축성되었으며, 성의 규모는 길이 700m, 높이 3.5m로 성안에는
2개의 우물이 있고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어 동쪽으론
서산의 북주산, 남쪽으론 부석의 도비산과 연락을 취했다
지금은 폐성되어 700여m의 성곽만이 남아 있다.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자료 제212호

태안읍지(1872)에 의하면 축성한지 이미 오래되어
현재는 퇴락되었으나 지세가 사면이 절벽으로 되어있어
사람이 발붙이기 어려운 곳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봉화대지 표지석)





(백화산에서 태안시내 조망)

뒤쪽 군부대 방향만 빼고 모든 방향이 틔여
백화산은 태안 시가지뿐만 아니라 북쪽 가로림만과
남쪽의 천수만까지 조망되는 일급 조망처다.




(쌍괴대(雙槐臺))

마루금은.. 쌍괴대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가면 만나는 군부대 진입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백화산 샘터, 한바가지 떠서 벌컥벌컥 마신다. 맛이 좋다)





(태을동천)





(백조암, 아무 설명도 없고 표지석만 하나 서 있다)





(60)





(낙조봉)

백화산 중턱에 위치한 매모양의 낙조봉은 소성팔경의
하나로 낙지봉 또는 동경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어 진다.
화창한 날 이곳에 오르면 서해를 감싸안고 도는 저녁노을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보듯 장관이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갈 방향을 가늠해 보고.. 일단은 바로 앞 태안여고 쪽으로..)





(603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모래기재)

숲속에서는 내려서니 햇살이 따갑다.
도로를 따라 태안여고 정문쪽으로 오른다.





(태안여고 정문에서 우측으로 돌아 왼쪽 능선을 탄다.)





(조릿대 숲으로 들어)







(15분 정도 숲길을 걷다 내려와 마을길로..)





(인삼절도단을 잡는다는 현수막이 왜 그리 서글퍼 보이는지..)







(안말 들판 모습)





(마을길로 예비군훈련장 있는 쪽으로 곧장..)





(예비군훈련장 우측길을 따르다가..)

모래기재에서 태안여고 뒷산으로 올라 15분 정도 숲길을 걷다
마을로 내려서서는 2km 넘게 시멘트길로 예비군훈련장까지 왔다.

이후로는 예비군 훈련장 담장 우측으로 난 길을 따르다가
왼쪽으로 철조망을 넘은 흔적이 있는 곳에서 산으로 든다.





(철조망을 통과하여 예비군 훈련장 안으로 들고..)





(예비군 훈련장을 지나 다시 철조망을 넘어 밖으로 나온다)







(퇴비산 / 159.7봉, △401복구)

금북정맥 159.7봉 이라고 쓴 명패가 땅에 떨어져 있다.
누가 왜 명패를 떼어 저렇게 바닥에 내동댕이 쳐 버렸을까?
봉우리에는 근래에 세운듯한 오석으로된 공적비 비슷한 표석이 있는데
무슨 개인 무덤 비석도 아니고.. 산봉우리 정상석을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잠시 휴식하다 가파른 길로 내려선다.

159.7봉을 조금 지나면서 태안군에 들어섰지만
3년전 태안 앞바다를 비롯한 서해안을 뒤덮은 기름유출사고와
그 후유증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곳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무슨 꽃?)





(수룡저수지 방향, 앞을 지나는 32번 도로)





(좌측 숲속에서는 '서해산업' 레미콘공장에서는 돌깨는 소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는 레미콘 공장을 좌측으로 끼고 능선 숲길을
이어가면 이내 레미콘 공장 진입로가 나오고, 진입로를 따라
내려가면 오늘 3번째 만나는 32번 도로가 나온다.





(32번 국도, 유득재가 빤히 보인다. )

' 유득재까지 직선거리 500m 남짓, 5분 거리인데
왼쪽에 우뚝솟은 구수산 가까이 올랐다가 내려와야 한다.
태안 근흥면과 소원면의 경계인 고개에는 '노을 그리고 바다'라는
멋진 표석이 서 있다. 32번 도로 시발점인 서쪽끝 소원면에는
만리포해수욕장과 천리포 해수욕장이 있고, 연포해수욕장과
금북정맥 종점이 있는 안흥진은 근흥면이다.





(길을 건너 구수산 방향으로 오르는데.. 길이 가파르고 험하다.)





(힘들게 오르다 이 녀석을 보고 눈이 번쩍뜨여.. 무슨 꽃?)

카메라를 갖다 대니 춤을 추기 시작한다.
3분 넘게 씨름해 보지만 춤은 멈추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이쁘게 찍어 줄텐데.. 아쉽다.





(산자고, 에구 오늘 요 녀석도 가만있지를 않구나)

바람불어 좋은 날, 이쁜 야생화는 눈으로 담아야겠다.





(가파른 길로 능선에 올라서니 넓은 길이 열리고.. )

가파르게 올랐듯 내려서는 길 또한 가파르다





(유득재, 5분 거리를 땀 뻘뻘흘리며 40분이나 걸렸는데)

여기서부터 쉰고개까지 4.6km는 또 마을길을 따라 걷는다.







(유득재 등나무 슈퍼, 마치 백두대간 매요리 휴게실 분위가가..)





(다시 마을 안길을 따라)







(장대리 벌판 모습, 장대1리 마을 표지석을 지나)





(지나가는 트럭은 먼지를 일으키고.. 어릴적 풍경이 떠오른다.)







(우렁각시탑에도 들려보고..)

호남지방과 충청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우렁각시 전설.
여기 이 무덤은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탑까지 세월는지..
우렁각시는 현대적으로는 '마니또' 같은 존재.





(32번 도로를 만나 조금 따라 내려가니 날머리 쉰재)

장재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아주머니께
차 시간을 묻고 있는데 버스가 달려오고 있다.
마지막 구간은 여기서부터.. 여기서 안흥진까지는 22.8km







(태안버스터미널, 버스시간표)

10 여분만에 태안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서산으로 가려니
방금 차가 갔는지 없다. 학생에게 다음 차가 언제 있느냐고
물었더니 친절한 학생은 시내버스보다는 직행이 낫다며
차 타는 곳까지 안내를 한다. 금북길에서는 이래저래
참 친절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태안관광안내도, 이렇게 아름다운 태안을..)

2007년 12월 7일 태안 만리포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와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이 충돌하여 1997년 이후 10년동안 3915건의
사고로 유출된 량보다도 훨씬 많은 1만 2547㎘에 이르는 원유가
유출되어 만리포, 천리포, 가로림만, 천수만, 안면도까지 서산과
태안앞바다는 물론이고 전남 진도와 해남, 심지어는 제주도
추자도까지 기름띠로 덮은 환경재앙을 일으켰다.

사고발생 한 달 만에 피해를 입은 양식장 면적만 서산시 3개
읍 면의 112개소 1071㏊, 태안군 8개 읍 면의 361개소 4088㏊에
이르렀으며, 해수욕장 어장 및 증양식 시설에 많은 피해를 입은
태안 서산 보령 서천 홍성 당진군 등 6개 시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고 '태안특별법'도 제정되었지만 피해어민들은 아직까지
한 푼도 보상받지 못하여 생계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지금도 각종
공해병에 시달리고, 홧병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죽어가고 있다.

기상악화 예보를 무시하고 지역 해양청의 충돌위험 무선경고까지
무시하며 무리하게 예인선을 운항하다 사고를 내고는 무선경고를
받은 사실마저도 항해일지를 조작하여 숨기려한 부도덕한 집단에게
무슨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의 윤리를 요구하겠냐마는, 의당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 하겠거늘 이런 대재앙을 일으켜 놓고도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기업들이 이 땅에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
입만 열면 국민 국민 하는 위정자들은 태안은 딴나라인듯 하고,
언론도 꿀먹은 벙어리니 이 상처가 치유되기나 하겠는가.





(태안읍 풍경, 다음에 한 번 더 올 걸 기약하며..)



어제 오늘 발에 물집이 생기고 터진 상태로
제법 먼 길을 걸었다. 그렇다고 물집이 생길 정도로 어려운
길도 아니었는데.. 아마 조금 쉬어가라는 신호인 것 같다.
이틀동안 무사히 금북길을 이어놓을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늘 고생하는 발에게도 미안한 맘과 고마움을 전한다.

오늘도 날머리에 내리자마자 버스가 바로 도착한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태안터미널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서산까지도 쉽게 이동하여 빠른 시간에 애마를 회수할 수 있어
좋았다. 아침 먹은 식당에 들려 이른 저녁을 먹고 집으로 향한다.
태안은 10여년 전 연포해수욕장까지 왔던 기억이 있다.
이제 남은 마지막 구간은 좋은 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