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가을은 영남알프스 억새꽃도 날려 보내고.. / 시나브로
2010. 11. 8. 00:55ㆍ山情無限/영남알프스
○ 언제 : 2010. 10. 30 ~ 31 / 흐림
○ 누구와 : 홀로 나섰다가 고리뫼 비박꾼들과
○ 어디로 : 영남알프스(간월재-신불산-신불대피소-단조샘-영축산-간월재)
○ 위치는 : 울산 울주군 삼남면, 상북면 / 양산시 원동면
대간과 정맥길 가면서 새벽에 일어나던 것이 습관이 되어
산에 가든 안가든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는데 1+9를 졸업하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인지 6시 넘겨서 눈을 떴다. 아마 몇 년만의 기록이 될 듯하다.
컴퓨터 켜서 메일확인하고 밀린 답글 몇 개 달고 나니 두어 시간 훌쩍..
아침 챙겨 먹고.. 큰 배낭 챙기느라 1시간.. 유유자적 10시가 지난 시간 영알에서
원점회귀를 할 수 있으면서도 아침에 제일 빨리 내려올 수 있는 곳으로
단풍철, 설악 지리로 단풍구경 다 떠난줄 알았는데 역시
가을의 진객 영알의 억새를 보러 이곳으로 온 유산객도 만만찮다.
청수골쪽은 주차할 곳도 마땅찮아 핸들을 돌려 간월재로 향했는데..
(간월재 억새와 구절초)
해마다 억새꽃이 절정일 때 영알에 들어 억새와 노닐었는데
올해는 보름 정도 늦어 버렸다. 늦더라도.. 억새가 꽃술을 날려 버린
많이 늦었다 싶었는데 간월재에 오르니 기다리다 지친듯한
억새와 구절초가 반갑게 맞는다. 그래, 다음엔 때 맞춰 오마.
(주차장같은 간월재 모습..)
내일 아침 간월재까지 돌아 오려면 좀 바쁘긴 하겠지만
그래도 영알의 억새는.. 신불산에서 영축산에 이르는 유장한 능선과
단조샘 주변 광활한 평원에 핀 억새가 일품 아니겠는가!
(보름 전쯤 영알의 억새꽃이 절정이었을테지..)
과년한 딸 시집보내듯.. 벌써
꽃술을 거의 다 날려 버린 영알의 억새밭.
지난 주는 가지북릉과 쌍두봉 단풍만나러 가느라 못 들렸고..
그 전 주말에는 지리산에 신고하러 가느라.. 그러는 사이
영알 가을의 진객 억새꽃은 거의 다 떠나 버렸다.
(간월공룡능, 그 너머로 보이는 고헌산 줄기)
(신불서릉을 타고 넘어 오는 산객)
(995봉 너머.. 멀리 재약산, 수미봉, 향로산도.. )
(장쾌한 영알 주릉, 영축산 너머 천성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마치 개미떼같이 신불산으로 향하는 유산객들..)
간월재까지 자동차가 올라 올 수 있는 바람에 간월산이나 신불산을 찾는
유산객이 줄을 잇는다. 아마 간월재에서 신불재에 이르는 구간은 영남알프스를 통들어
산행객이 가장 많은 구간이 아닐까 싶다. 억새의 계절인 요즘은 인산인해다.
(신불 칼바위능선 방향, 산 아래 언양시가지)
(신불산 정상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
(신불재, 사방으로 고속도로 같은 목책 계단이..)
(신불대피소 가는 길에서 바라본 신불산 방향)
(신불대피소)
작년 8월 말경에 들렸으니 벌써 1년 하고도 두 달이 더 되었다.
오랫만인데도 신불대피소지기 최천식님이 바로 알아보고 반갑게 맞는다.
대피소에서 간단하게 라면으로 요기를 하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데
찾는 사람들이 많아 성업중(?)이다. 그 사이 대피소는 1층 침상을 들어내고
탁자를 놓았는데 대피소 기능을 잘 해 주었으면 좋겠다.
(목책계단을 오르다 뒤돌아 본 신불칼바위능선과 우측 밀양방향의 산너울)
(키 큰 억새에 파묻혀 걷는 이 길이 참 좋다)
(좀 늦은 계절에 찾은데다 하늘까지 잔뜩 찌푸려있지만.. 그래도 좋다)
(에베로릿지 방향, 금강계곡 중턱까지 단풍이 내려가고 있다)
(억새밭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억새밭 길은 산을 탄다기 보다 가을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영남알프스 억새밭 길은 가을을 타는 길이다.
(능선 좌측의 아리랑릿지와 스리랑릿지는 단풍과 조화를 이루고..)
영남의 병풍, 또는 영남의 지붕이라 불리는 영남알프스는
능선과 평원에 펼쳐진 억새밭과 더불어, 험준한 계곡과 칼바위와 같은
암릉과 병풍같은 암벽들로 이루어져 있어 능선의 유장한 부드러움과
암릉의 강렬하고 단호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어 산군이다.
(여기가 멋진 포인트.. 찍고 또 찍어보지만 은빛 물결은 썰물처럼 빠져 나간터라..)
이미 날려버린 꽃술이야 되돌릴 수 없더라도
하늘의 두터운 구름이라도 엷어져 햇살이라도 비춰주었으면..
사진은 빛의 미학이라하지 않는가?
(단조성, 한참 하늘의 구름을 보다가 단조성터까지 한 바퀴돌아..)
취서산(영축산) 아래 넓은 억새평원을 가로지르는 돌담이 단조성(丹鳥城)이다.
옛 문헌에는 단조성에 관해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단조성을
취서산고성(鷲栖山古城)이라고 하였고, <증보문헌비고>에는 언양의 남쪽 13리에 있는 취서산에
이 성이 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전설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한 장수가 "조선에 성이 많지만
이 성을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얘기를 했고, 영조 3년(1727년)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영남을 시찰하는 도중 이 산성에 올라 "산성의 험준함이 한 명의 장부가 만명의 적을
당해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해 이곳이 천연의 요새임을 알려주고 있다.
단조성의 축성연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홍의승람> 충의(忠義)편
신광윤(辛光胤)조 등 기록으로 보아 임란때 의병이 쌓은 것으로 보이며, 임란 단조성 전투에 관한
야담과 전설도 무성한데 그 중 하나가, 임란때 함락이 쉽지않은 단조성을 공략하기 위해 아군으로
위장하고 영취산 아래 바위굴에서 벼를 짜고 있던 여천각시에게 접근한 왜군이 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묻자 의심없이 영취산을 돌아 서편에 있는 백발등으로 들어가면 입성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바람에 성은 함락되고 의병들은 한꺼번에 전사를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취서산 아래 광활한 억새밭에는 가을이면 억새가 흡사 나이든 사람의 백발처럼
흰 모습으로 흔들리기 때문에 억새풀이 휘날리는 이 언덕을 백발등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전설을 더 들여다보면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던 우리 조상들이 엄청나게
희생되자 그 안타까운 사연이 인근 마을사람들 사이에 설화로 전해 내려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지금도 인근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등이 원수로다" 하는 노래와 함께
"원수로다 원수로다 인간 백발 원수로다"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어 억새풀이 휘날리는
취서산 언덕의 백발등을 인생의 무상과 함께 원망스러운 어조로 노래를 부르곤 한다.
<삼남면지> 참조
(단조샘의 단풍나무도 곱게 물들고..)
(붙던자리 붙던 잠자리같이 다시 돌아와서..)
(구름이 엷어지고 구름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가 했는데..)
(구름은 다시 밀물처럼 밀려왔다)
(하늘에도 자리다툼이 심한듯.. 기상의 변화가 심하다.)
(이 쯤이 그 자린데.. )
파노라마 카메라로 병풍처럼 드리운 영축산 채이등 죽바우등
시살등을 배경삼아 억새꽃밭을 담던 작가가 삼발이 세웠던 곳이 이 쯤인데..
진사들이 자리다툼하며 몰리던 이곳에도 오늘은 아무도 안보이니
(등로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 자리잡고 앉아 철지난 억새밭을 관조(觀照)한다)
억새밭을 한 바퀴 빙 둘러 보고 애용하는 내 자리에 앉았다.
서둘러 가야할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있는 것은 시간뿐이니.. 悠悠自適!.. 얼마만에 가지는 여유인가?
무거운 배낭도 옆에 내려놓고, 마음의 짐도 산정에 편안하게 내려놓고
조용한 심삼으로 삶의 모습을 관조(觀照)하듯 눈 앞에 펼쳐진 장관,
억새밭, 유장한 능선을 바라본다. 시들지 않는 꽃, 호호백발 꽃술의
억새꽃은 떠나갔지만 억새밭은 그대로이고 가을이 억새밭을
가로질러가듯 사람들이 억새밭을 지나간다.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는다 했는데
갑자기 반가운 얼굴들이 떼지어 나타났다.
(아니.. 지리산 간다던 산꾼들이 영알에 나타나다니..)
2주전 지리산 갔을적에 자유인님이
"10월의 마지막 밤을 지리산에서.."라며 산행계획을 말할 때
참 구미가 당겼지만 주일을 끼고 가는 산행이라 참석할 수 없어
아쉽지만 멋진 산행이 되기를 바라며 산행공지 꼬리를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15명이나 나선다 하여 부럽기까지했는데..
사정이 여의치않아 모두 영알로 방향을 틀었다 한다.
오랫만에 쭈니님도 만나고.., 자우님, 선달님도 만나고,
카메라맨 포대기님을 여기서 만나다니..
(홀로 고독한 밤을 보내겠다 싶었는데.. 일행이 스무명도 더 생겼으니.. )
합류하여 얼른 텐트를 치고 일몰을 찍으러
멀더님, 포대기님과 영축산을 오르려다 그 보다
일몰이 더 멋질 것 같은 앞 능선으로 향한다.
(일몰 찍으러 가다 발견한 샘터)
단조샘터는 조금 전 들렸던 그곳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 수량도 풍부하고, 샘터표석까지 있는 샘터가 있다니..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
저 꼿꼿한 노후(老後)여.
억새 / 임영조
(낮게 떠 있는 검은 구름이 걷혀 주기를 바라며..)
(구름이 조금만 엷어졌으면..)
(구름사이로 빛이 배어 나오자 빛을 내기 시작하는 억새꽃)
(가을이나, 석양이나 )
가을은 인간의 마음을 쓸쓸하게도 하지만 그 속에는 가슴을
꽉 채워주는 풍요로움이 있다. 여태까지의 그 왕성하던 생명활동이 잠시 멈추는
겨울이 되기 전에 자연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 석양에 불타는 노을이나 가을산 억새를 바라볼 때마다
순리에 따르는 자연의 법칙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빛을 받자마자 투명한 모습으로 빛나는 억새)
(바람이 불자 잎사귀끼리 비벼대며 내는 소리가 제법 서걱서걱한다)
(차가운 바람을 피하느라 억새밭에 자세낮춰 보는 일몰)
(억새는 지는 태양을 향해 예를 다하는듯..)
그리워도 그립다 말하지 않네
보고파도 아닌 체 먼 산만 보네
기다리다 돌아서면 등뒤에 서서
눈물처럼 하얗게 손짓만 하네
억새 / 홍 수 희
(일을 끝낸 태양은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내 인생의 마지막도 지는 태양같이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싶은데..)
(이렇게 산정(山情)은 깊어가고..)
울산에서, 대구에서, 부산에서, 김해에서, 마산에서 늦은 밤까지
속속 모여들어 모두 30명 가까이 된 것 같다.
(밤하늘 별은 쏟아질듯 초롱초롱하다)
9시 경에 잠자리에 들어 잠이 깨니 자정,
이렇게 멋진 밤 잠만 잘 수 없어 텐트를 열어 젖히니 까만 밤
카메라를 내어 ISO를 6400까지 올리고 조리개를 최대로 열고
30초까지 늘리니 초롱초롱한 모습은 아니어도 별이 찍힌다.
아쉽다. 담엔 멋진 별을 제대로 찍어 봐야겠다.
(별이 쏟아지는 밤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가)
초롱초롱한 별 때문인지 서걱거리는 억새 때문인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억새도 절정의 시기를 넘겼고.. 구름이 일출을 가로챘지만..
모든 일에 때가 있는 법, 다음에 다시 오라는 듯..
(멀더님과 영축산 표지석)
(포대기님에게 잡힌 시나브로)
(영남알프스는 육산과 골산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구름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새어 나왔다. 구름이 좀 걷히려나..)
(에베로릿지 건너 아리랑, 쓰리랑릿지)
(태양이 비친다. 미물에게나 사람에게나 태양은 생명의 빛)
(현재 상태 하늘..)
(텐트가 스무동은 넘는 것 같다)
아직 다 일어 나지도 않은 것 같아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빨리 챙겨 먼저 산을 내려가야 한다.
(억새밭 뒤로 보이는 함박등 채이등 죽바우등)
(112)
(집으로 가는 길, 갈 길이 멀다)
(어제 지날 때 텐트 한 동 쳐져더니.. 갈 길이 바빠 인사만 하고 지나간다)
(일찍 산에 든 산객들이 벌써 여기 저기서 보인다)
(오랫만에 멋쟁이 고향 후배 김상사도 만나고..)
(120)
(갑자기 안개가 몰려와 신불산 정상을 덮더니..)
(가천리 방향)
(안개가 점령군같이 몰려와 산정을 덮는다)
(간월재, 안개는 간월산도 삼키고)
(돌틈에서 자주빛 읏음으로 인사하는 벌개미취)
오랫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 같다.
간월재에서 영축산까지는 반나절 길도 안되는데 이틀에 다녀 왔으니 말이다.
깊어가는 가을 속에서 고독을 느껴보려 영알에 들었는데 뜻하지 않게
산 친구들을 만나는 바람에 고독한 밤을 보내는 것은 실패(?) 하였지만
동지들과 산정에 취하고 인정에 취해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톱니바퀴 돌듯한 일상에서 한 발짝만 비켜서면 이렇게 여유로운
멋진 별천지 속에서 마음도 부자가 되는데.. 끝없는 욕망과 마음속 전쟁도
산위에서 보면 개미보다도 더 작게 보이는 인간들 세상 아닌가?
산에 들어 산에게 주는 것은 없지만 언제나 말없는 가르침을 받는다.
인생도 자연의 일부, 빈 손으로 왔듯 빈 손으로, 흙으로 돌아 갈 것,
날 더러 물처럼, 유유히 떠가는 구름처럼 집착말고 비우며 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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