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동북부 7암자터를 찾아서 / 시나브로

2011. 1. 12. 00:14山情無限/지리산

 
 

지리산 동북부 7암자터를 찾아서 
(김종직의 '유두류록'을 역으로)

 
 

 

 



2011. 1. 8(토) 쌀쌀하였으나 맑고 산행하기 좋은 날 09:02~17:32까지
다물종주클럽 26명의 산우들과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 산청군 금서면에 걸쳐있는
벽송사-와불산-함양독바위-신열암-고열암-선녀굴-유슬이굴-선열암-금낭굴-지장사터-박쥐굴-운서리
코스 눈길을 걷다. 거리는 약 15km


 
이번 코스는 '지리산 동북부 칠암자터 산행'이기도 하지만
'지리구구'의 가객님이 탐구산행으로 되살린 점필재 김종직의 '유두류록'
일부구간으로 오래 전부터 다녀오고 싶었던 코스.. 그동안 정맥길에 매진하느라
숙제같이 밀려있는 몇 코스중 하나인데 마침 무제님이 산행계획을 올렸다.
내심 쾌재를 부르긴했어도 시한폭탄같은 일을 앞두고 있는터라 장담할 순 없었지만
 일단 꼬리를 잡았고.. 감사하게도 일이 잘 풀려 동행할 수 있게 되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유두류록'류 70여 건중
최초의 지리산 탐승기로 1472년 8월 4박5일 동안 지리산을 직접 오른 경험과
감상을 그의 '점필재문집'에 남겨 놓은 500여 년전의 지리산 산행기이다.

언제나 그렇듯 지리산 가는 날은 바쁘다.새벽 4시반에 일어나
준비하고 버스를 타러 나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여
드는데 모르는 얼굴도 있어 인사를 하니 닉은 그리 낯설지 않다.
버스를 타니 반가운 얼굴들이.. 모두 26명.. 지리산은 인기가 좋다.
5시 반 어둠속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지리산으로 향한다.





(인월사거리, 기사식당에서 아침 먹고.. 벽송사로..)





(가까스로 벽송사 바로 아래 주차장까지 올라가서.. 9시 5분경 출발..)

점필재의 '유두류록'을 따라 운서리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기대했는데
무제 대장은 등로가 위험할 것 같아 벽송사에서 운서리로 거꾸로 탄다고 한다.
일순 아쉬운 생각도 들었지만 인원이 많은데다 산행에서는 산행대장의 뜻을
존중할 수 밖에는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덕분에 다음에 한 번 더
이 길에 들어 점필재의 '유두류록' 길을 걸어봐야 할 것 같다.





(등로입구에 서 있는 공비토벌루트 안내판.. 오랫만에 만난 산적님)





(숲속을 비추는 햇살이 정겹다)





(이정표는 계속 선녀굴을 가르키고 있다)

산행시작 35분이 지난 후 만난 선녀굴 이정표. 5.5km를 가르키고 있다





(전면에 봉우리 하나가 우뚝 일어선다)

오랫만에 산에 든데다 오름길에 힘이 부치는데
준족의 선두를 따르려니 사진 한 장 제대로 담을 틈이 없다.
후미나 보면서 내 스타일의 여유로운 산행을 해야겠다.





(좋다! 능선과 응달에는 밟기 좋을만큼의 눈이..)





(어쩔 수 없이 금선을 넘어..)







(고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이 쌓인 눈.. 이제 발목이 빠질 정도까지..)





(비트를 찾아 가는 길..)





(탐스런 눈.. 모두 백설같이 깨끗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곳은 천국일테지)





(비트(비밀아지트)의 마네킹.. 그러나 처절했던 동족상잔의 현장)





(호젓한 눈길..)





(그러나, 오늘 산행이 녹녹치 않을 것이라는 전조인듯..)





(저 응집된 차가운 열망.. 고드름!)





(제법 심설산행 기분이 나지만.. 선두는 러셀하느라 제법 힘들겠다 싶다)





(와불산에서 보는 와불능선)





(와불산 정상에서 단체사진)

충전을 시킨 배터리인데도 날씨 탓인지 초반부터 눈금이 1칸을
가르켜 오늘 일행의 인물사진은 이 단체사진으로 끝내고 배터리를 아껴야
역사의 현장을 한 장이라도 더 담을 수 있겠다는 계산..





(벽송사에서 함께 따라나선 백구와 함께.. 무제님 감사)







(이제 눈이 많이 쌓인 곳은 종아리까지 빠진다)





(상내봉 삼거리 지나 갈림길에서 능선을 버리고..)





(S라인 테스트.. 날씬한 사람은 굴을 통과하고..)





(갈림길, 좌측은 송대마을.. 함양독바위는 직진.)





(오늘 선두는 길 찾느라 러셀하느라 수고가 많다)







(현재까지 알려진 지리산 석문 중에서 길이가 가장 길고 크다는 안락문(통락문))





(함양독바위 입구의 노장대 이정표)

동일한 지자체(함양군)에서 세운듯한데 이정표는 노장대로 되어있고
안내판은 함양독바위.. 왜 각각인지..? 통일시키는게 좋지 않을까?





(함양독바위 입구에 있는 안내판)

.."함양독바위에서 생성한 상대날등과 황새날등을 좌우로 거느린
음달골이 오죽 깊고 험했으면 “그곳에 가면 사흘 안으로 나오기 힘들다”는
말까지 전해져 올 지경이다. 한국동란 지리산 전사에도 등재되어 있는
노장동 전투에서는 골짝의 요새 같은 지형 탓에 피아간에 혈전이 수 없이
이루어져 아군의 피해가 막심했었다고 한다.".. (안내판 내용중)





(함양독바위의 위용)

함양독바위는 동부 능선 쑥밭재 북쪽에 있는 산청독바위와
삼신봉(청학동)독바위와 함께 지리산에 3개의 독바위중 하나.
바위 정상에 오르면 일망무제 조망이 가히 일품이다.

함양독바위에서 고열암을 거쳐 주능선으로 오르는 산길은
1472년에 함양군수로 재임한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
제자인 유호인, 조위, 한인효 등과 함께 올랐던 길이기도 하다.
점필재는 산행기로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남겼다.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1464~1498)도 1489년(성종 20년) 4월
지리산의 동부능선을 유람하고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을 남겼다.





(함양독바위에서 돌아나와 신열암터를 향하여..)





(신열암터)





(신열암터를 다시 돌아나와 고열암터로..)





(고열암터, 유두류록에서 김종직이 4박5일의 여정중 첫째날 밤을 보낸 곳)

그 당시 암자는 지금의 대피소 역할을 한듯..





(고열암에서 자다[宿古涅庵])

병든 몸을 지탱하고자 하여 / 病骨欲支撐
잠시 포단을 빌려 깔고 자는데 / 暫借蒲團宿
소나무 파도가 달빛 아래 들끓으니 / 松濤明月
구곡에 노니는 듯 착각케 하네 / 誤擬遊句曲
뜬구름은 또한 무슨 뜻인고 / 浮雲復何意
한밤중엔 바위 골짜기 닫혀 있구나 / 半夜巖谷
오직 정직한 마음을 가진다면 / 唯將正直心
혹 산신령의 비록(備綠)을 얻을는지 / 得山靈錄

(김종직의 “유두류록” 중에서)

점필재 김종직이 함양군수를 역임하던(1470년~1475년) 시절인
1472년(성종 3) 함양관아를 출발하여 첫날 지장사, 선열암, 신열암 등
세 암자를 거쳐 하룻밤 숙박한 고열암에서 지은 시다.

위 안내판의 잘못 옮겨 적은 拂은 로, 閑은 로, 尙은 으로
하루 빨리 바로 잡았으면 좋겠군요




(전망바위에서 보는 함양독바위)









(전망바위에서.. 현정님 감사)

반야봉과 삼도봉 사이 뱀사골에서 발원한 계류와
반야봉 북서쪽 얼음골에서 발원하여 달궁계곡을 거쳐온 계류가
반선에서 만나 만수천이 되고 산내에서 인월쪽에서 내려온 광천과
삼정리 광대골 계류와 칠선골 계류와 백무동 계류까지 합류시켜
임천(엄천)강이 되었는데..(이후로 산청을 지나면서 경호강이 되었다가
진주에선 남강이 되었다가 낙동강이 되어 남해로 스며든다.)

함양군이 2009년 1월 5천억원을 들여 저 아래 휴천면 문정ㆍ송전리 일원
임천(남강 제1지류)에 길이 400m, 높이 103m, 유역면적 370㎢, 총 저수량
9천700만t 규모로 건설해 줄 것을 국토해양부와 한국수자원공사에 건의했고
정부는 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리산댐이 건설되면
엄천강변의 저 아래 다랭이 마을들도 물에 잠길 것이다.
시간도 삶도 문화도 역사도 다함께 댐에 잠겨버릴테고
생태계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은 불을보듯 뻔한 일 아닌가!
4대강을 난도질하는 삽질도 지리산댐도 반대한다.





(법화산과 그 뒤로 삼봉산이..)





(함양독바위, 그 아래로 엄천강이 흐르고..)





(무제..)





(지나온 벽송사 능선과 그 너머 창암산, 그리고 아스라한 반야봉까지..)

지리구구 "유두류록" 탐구산행팀 자료에 '의론대'라고 하는 조망대에 서니
우측으론 독바위도 보이고 좌측으로는 벽송능선과 그 너머 칠선계곡의 창암능과
두지터를 품고 있는 우뚝한 창암산, 두류능선 뒤로 아스라히 반야봉도 보이고
전면으로는 서북능선, 법화산과 삼봉산이 훤하게 보인다.







(선녀가 목욕을 하던 아름다운 전설이 서려있는 선녀굴도..)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송대마을 뒤 해발 약 1000m에 위치한
선녀굴은 바위틈 우물에서 선녀가 목욕을 하던 전설이 서려있는
천년동굴로서 동굴 옆에는 아무리 가뭄이 심하여도 물이 마르지 않는
샘이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지만 그렇게 낭만스런 곳 만은 아니었다.
바위 속 2층으로 된 굴은 비트로서는 천혜의 요새여서..

.. "휴전협정 이후 지리산에서는 1953년 8월 병단장인 이현상이 사살된
이후까지 수 년간에 걸쳐 토벌대와 빨치산간의 격전이 벌어졌으며,
이로 인해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피로 물들었던 민족비국의 사건이 있었다.
이 곳 선녀굴은 이은조가 정순덕과 함께 마지막 빨치산 3인중 위원장
직책으로 싸우다 1963년 2월경에 토벌대에 의해 사살된 지역"..으로
민족의 비극을 그대로안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그 역사의 현장에서 때늦은 점심을 먹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비극을 전하는 선녀굴 안내판)







(선녀굴 비트, 이제 동족의 가슴을 겨누는 총부리는 그만 거두어 들이자!!)

전쟁광들이 아무리 괘변을 늘어 놓아도 평화가 전쟁보다 백배 천배 낫다..









(유슬이굴을 향하여..)







(무슨 의미인지 이름이 궁금하기만 한 유슬이굴)

유슬이굴도 비박지로는 안성맞춤. 오늘 지나는 암자터와
굴은 하룻밤 비바람과 눈보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곳들..
물론 경치좋고 터 좋은 곳에 절과 암자가 들어섰겠지..





(유슬이굴에서 솔봉, 솔봉 능선, 문정리 방향)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솔봉. 이어진 능선이 송대마을에서
올라오는 솔봉능선이고, 저 멀리 희미한 산이 삼봉산(?)인듯...





(선열암 가는 길 산세가 험하다. 옛 선조들은 이런 곳을 어떻게 찾아 나섰을까?)





(때로는 부드러운 길도 만나지만.. 잠깐도 방심할 수 없는 길)





(바위가 병풍같이 둘러쳐져 있는 선열암터)







(험한 등로.. 급기야는 로프를 타고 내려서야 하는 곳도..)

비탈에서 미끄러져 하마터면 큰 일 날뻔한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
크게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이후 로프를 설치하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무사히 내려섰는데.. 산행 출발하면서 부터 동행했던 백구만 남았다.
스스로 내려오거나 아니면 혼자 돌아 갈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가는데
백구는 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구슬프게 낑낑댄다. 마음 약해진
무제님이 되돌아 가서 백구를 내려주니 달려와 또 앞에서 길을 끈다.







(뒤돌아 보니 아찔하다 / 덤바꾸님 작품)





(가파른데다 결빙이 되어 위험한 길을 가까스로 내려섰다)





(68)





(눈쌓인 비탈길도.. 너덜길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









(금낭굴, 여기도 굴의 추녀부분에 큰 낙석이 생긴듯..)

5년 전인 2006년 겨울, 인명사고가 난 지리산 말바우 산막 사고가 연상되는지..
산길도 조심하고.. 동굴에 들어갈 때는 머리 위도 항상 신경쓰고 조심해야..





(눈쌓인 비탈의 산죽길도 조심조심.. 아차하면..)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잠시 휴식..)





(오늘 길을 잘 안내해준 시그널, 방향이 바뀌는 지점은 2개나 매어 강조!!)





(조릿대 숲을 헤치고 지장사터로..)





(기왓장이 나온다는 넓은 지장사터는 눈에 덮혀있어 구분도 잘 안되었다)

아직 배터리가 남아 있어 단체사진 한 장 더..
인물사진 못찍어 줘서 미안하기만 하다.





(박쥐굴 직전.. 바위를 돌아서니 마지막 굴 박쥐굴이)





(박쥐굴, 박쥐는 없었지만..)

입구는 좁지만 굴 안으로 들어가니 30~40여 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고 큰 공간이었다. 주위에 작은 개울도 있으니
한 눈에 봐도 비박지로는 딱이긴 한데.. 얼마 걷지않고 마을 가까운
여기서 비박하면.. 다음 날은 어디까지 가야하나..







(눈 쌓인 계곡풍경)





(산죽비트에서.. 정말 오랫만에 산길에서 만난 시골공주님..)

요즘 산행하면서 계곡을 건너면 마치 길을 잘못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아마 5년 동안 계곡을 피해 마루금만 타다 보니 본능적으로
잘못된 신호로 받아 들이는 것 같다. 정맥길에서 개울을 만나면 거의 모두
왔던 길이 얼마가 되었던 되돌아 가야 했으니 그럴만하기도 하다.

작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다시 산죽비트가 나왔다.
함양군에선 '빨치산루트'를 만들어 '산죽비트', '바위비트'라는 안내판에다
마네킹까지 설치해 놓고는 그 옆에 또 "유두류록" 탐방코스 안내판까지
세워 놓았으나 그렇게 둘이 썩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점필재가 숲속에서 전쟁놀이 한 것도 아니고..







(산죽비트 안내판과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방코스 안내판)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이며 문신으로 공의 자는 계온(系溫),
호는 점필재(占畢齎)이고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며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경남 밀양이 고향인분이며, 함양군수(1470. 12.28~1475.12.28)를 지냈을 당시
유두류록을 남겼다. 조선초 도학의 거유로 영남학파의 종조이다.

산행일자:1472년(성종3년) 8월14일~18일
산행코스:함양관아-엄천-화암-지장사-선열암-신열암-고열암(1박)-청이당-영랑재-
해유령-중봉-천왕봉-성모사(2박)-통천문-향적사(3박)-통천문-천왕봉-제석봉-
세석-창불대-영신사(4박)-영신봉-직지봉-실덕리-등구재-함양관아(산행종료)

'유두류록'은 1472년(성종3년)에 쓴 김종직의 지리산 기행문이며
함께 대동한 사람은 유호인(兪好仁), 임대동(林大仝), 한인효(韓仁孝),
조위(曺褘), 승려해공, 법종, 아전옥곤과 용상 그리고 노비들 몇 명이었다.
유람도중 현실적 갈등과 모순이 없는 무릉도원을 희구하였으며,
선생은 사림파 지식인과 목민관으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산행도중 만나
매를 잡는 사람들의 움막을 보고 민생의 어려움을 걱정하였고, 당시의
숭유억불정책과도 상통하는 승려들의 혹세무민적 행적도 비판을 한다.
한편 천왕봉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며 주위의 명산들을 열거하여 설명하는
지리적인 혜안에서는 선생의 국토산하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선생의 단촐한 유람단 구성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여느 지리산 행적과
비교가 되어 존경심까지 불러 일으키며, 선생의 등로는 지금의 의식으로
볼 때에 하나의 개척산행으로 탐구가치가 있는 지리산 기행록이다.

..'유두류록 탐승로'는 산악인 가객(유정자, 지리구구 운영자)님이 '유두류록'
등정코스를 확인하기 위해 2004년 봄부터 2년 6개월간 고문헌 연구와 수 많은
지역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구전으로 내려오는 지명에 대한 고찰, 향토지 연구,
현장 확인 답사를 통하여 이룬 탐구산행의 성과로서 그 답사과정을 '지리산
아흔아홉골'에 연재를 하였고, 2006년 11월 '유두류록 탐승로 공동답사를
주선하여 동료 산악인과 향토사학자, 공무원 지역주민이 동참하였다
답사를 마친 뒤 함양군청은 탐승로 안내간판 설치를 해당 읍면에
지시했다고 한다...(부산일보 2006. 11. 22일자 인용)





(드디어 운암마을)





(고목 높다란 곳에는 가치집이.. 해동검도 수련관 인근)





(아직도 큰 도로까지는 갈 길이 멀다)





(멀리 보이는 ~능선)





(운서 쉼터, 문정리와 운서리를 가르키는 이정표)





(91)





(92)





(운서마을)





(한남교 위에서 임천(엄천)강)

이 엄천(임천)강을 막아 지리산댐을 만들겠다는 발상을 하다니..
샛강도 큰 강도 물은 흘러야 한다.





(빼꼼히 고개를 내민 삼정산?)





(드디어.. 문정리 한남동, 산행 종료)





(오늘의 산행코스)

일부 구간이나마 500여 년전 점필재의 발자취 '유두류록'의 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었지만 사정상 벽송사에서 출발하는 바람에 아쉽긴했어도
의미있는 길을 걸을 수 있어 감사하다. 언제 시간내어 쑥밭재로 올라
중봉, 천왕봉을 거쳐 세석, 백무동까지 연결하여 걸어 봐야겠다.
가능하면 고열암 쯤에서 비박도 해 보면서..

눈이 쌓인
데다 위험한 암릉과 너덜길 산행을 큰 사고없이
마칠 수 있어 감사하다. 의미있는 산행을 준비하고 수고한 무제님과
선두에서 눈길을 터느라 수고한 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반가운 님들과 함께한 산행 즐거웠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늘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이어가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