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한라산, 수줍은듯 열어준 그 비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2009. 6. 25. 19:00山情無限/한라산

 

 


 


순백의 한라산, 수줍은듯 열어준 그 비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관음사 코스로 올라 성판악 코스로)






         ○ 일 시 : 2007. 1.27 (토) 05:55 ~ 13:55 (짙은 구름, 눈)
         ○ 동 행 : 위겸씨와 둘이서
         ○ 코 스 : 관음사안내소-용진각대피소-동릉정상(백록담)-진달래대피소-성판악안내소
         ○ 거 리 : 18.3km (8시간 / 휴식, 식사시간 포함)

         ○ 구간별 시간
                  05:55        들머리, 관음사 안내소
                  06:35        숯 가마터
                  06:54        탐라계곡 대피소
                  07:29        적송 지대
                  08:23        삼각봉
                  08:40~09:10  용진각 대피소
                  10:10~10:35  동릉정상 (백록담)
                  11:20~12:20  진달래 대피소 (점심)
                  12:35        구상나무 군락지
                  13:55        날머리, 성판악 안내소
                 


눈 덮힌 겨울 한라산을 가 보고 싶었다. 마침 A산악회에서 간다기에
신청을 하였는데 이 일을 어쩌나! 항공편을 확보하지 못해 산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우리끼리 가게 되었다. 이럴 때 쓰라고 전화위복이란 단어가 생긴걸까...

제주지역 기상악화로 30분이나 늦게 출발한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20분. 우선 제주에서 흑돼지 맛이 좋다는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고
내일 새벽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24시간 영업하는 식당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마치, 초등학생 때 소풍가기 전날 밤 잠을 제대로 못잔 것같이
몇 번이나 잠을 깨며 선잠을 자다가 4시에 일어나 부산을 떤다.
아침을 먹고, 택시비 15,000원을 내고 관음사 안내소에 도착하니 05:45분





(정적만이 감도는 관음사 안내소, 공단직원이 반갑게 맞는다)


새벽 찬 공기가 상쾌하다. 정신이 맑아진다.
왠지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산행채비를 하고 있는데 공단직원이 우리를 보며 한라산 정상에는
지금 번개가 치고 눈보라가 심하다며 조금은 걱정스런 눈빛이다.
아무렴 어떠랴! 통과시켜 주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
8번이나 왔지만 한번도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돌아섰다는
위겸씨도 사뭇 상기된 표정이다.





(조릿대는 이불인양 눈을 뒤집어 쓰고 아직 잠들어 있는듯...)


채비를 마치고 05:55분 한라산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일반 산객들과 역순으로 코스를 잡았다.
관음사 코스로 올라 성판악 코스로 하산하기로 했다.
오르기는 힘들어도 오를 때도 사람이 없으니 좋고,
내려갈 때도 진달래 대피소부터는 오를 사람이 없을테니.

오름길 관음사 코스는 절에서도 많이 떨어져 있어
실제 관음사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백록담 북벽에서 발원하는 탐라계곡 언저리 길이므로
탐라계곡 코스가 정확한 표현이겠으나 통상 관음사코스로 불린다.

산길에 들어서자 마자 울퉁 불퉁한 길에 돌이 얼어 있어
걷기가 힘들었는데 이내 눈길로 바뀌어 걷기가 편해진다.
우리가 첫 손님일줄 알았는데
희미한 발자국 몇 개가 눈위를 흔적을 남기며 앞서 가고 있다.

1시간 가까이 올랐을까 길이 거칠어지고 험해질 즈음
되돌아 오는 산객 몇 명을 만났다. 발자국의 주인들인가 보다.





(검은베레 60여 명이 유명을 달리한 곳, 원점비)


1980년대까지 사용했다는 숯 가마터와 위험하다는 구린굴,
한라산 계곡 대부분이 그렇듯 평소에는 물이 없는 건천이지만
여름 비올 때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한다는 탐라계곡 합수부 지점을 지나
무인 휴게소 탐라계곡 대피소에 도착하니 07:54.

탐라계곡 대피소에서 조금 더 오르자 나타난 원점비,
1982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하기 몇 일전,
경호 목적으로 제주에 선발대로 파견된 공수부대원 60여 명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여 전원사망했다는 지점이다.





(날이 밝아지자 늘씬하게 자란 적송들이 반기며 맞는다.)


육송 또는 흑송과 대비해 적송이라고 부르는데
이 붉은 소나무는 곧게 자라는데다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적송은 예로부터 배를 만들거나 건축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서 많이 생산되어
춘양목으로 부르기도 하며 금강송으로도 불렸다.
적송은 송진이 골고루 배어 잘 썩지 않아 고급목재로 쓰였는데
오죽하면 대궐 목재로 쓰이는 적송이 나오는 산을 황장산이라 부르며
국유화시켜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시키기까지 했을까.

원나라 간섭기에는 한라산 적송을 베어
일본정벌에 쓸 배를 만들었다고도 하고,
조선시대에도 목재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다른 국립공원과는 달리 이정표가 250m마다 세워져 있다





젊잖은 아름드리 나무들도 눈꽃으로 단장을 하고...





우리는 백색공간 한라산 더 깊고 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내 심장으로 찾아와 그리움으로 핀 설화,
설화로 핀 나목의 하얀 그리움.





(조물주는 예술가, 누가 이렇게 조각할 수 있겠는가?)


순백의 눈꽃은 화려한 작품으로
봄을 잉태하기 위한 계절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둘러메고 갈 전사.





순백의 설원, 그냥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싶다.
누가 겨울산이 삭막하다 했는가?





화무십일홍이라는데 저 아름다운 눈꽃은 반나절이나 가려나





뾰족암봉 삼각봉도 구름과 눈꽃에 잠겼다





(용진각 샘터, 한 바가지 떠서 벌컥 벌컥 들이키니 이 청량감이란...)


하루 용출량이 4000톤에 달할 정도로 수량이 풍부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용진각 샘터.





동계훈련중인 산악인들이 삼각봉을 오르고 있다.





(용진각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눈발이 갈수록 굵어진다.)


장구목과 왕관릉 사이의 해발 1500m에 자리잡은 용진각 무인대피소
용진각 대피소는 한시적 유인대피소로 등반 성수기에는
입산통제를 위해 국립공원 직원이 나와 있다.

매점 같은 편의 시설은 없으나 제법 깨끗한 화장실이 있다.
겨울에는 3~4m씩 눈이 쌓여 히말라야 원정대들이
훈련하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하절기(5월~8월)에는 13시,
동절기(11월~이듬해 2월)에는 12시,
봄 가을에는 12시 30분이 넘으면 이 지점에서
더 이상 정상 쪽으로 등산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관음사 안내소에서 3시간 정도 걸리므로 오전 9시 전에 통과하면 된다.

용진각 대피소에서 정상까진 2km 정도 되는데
여기서부터 1.5km 구간이 가장 경사가 심한 난코스다.





(비경을 즐기기에 맘 편치않은 것은 토끼와 노루들도 즐거워 할까 다 어디로 갔는지?)


눈꽃을 피운 나무 가지, 흰빛도 무거운가?
휘어지고 시리게 찬 겨울
얼은 땅밑으로 뿌리는 세차게 뻗고 있겠지.





한라산 그 넓고 깊은 품에 빠져든다. 無我之境!





(너의 고통이 우리의 행복이 될 순 없어... 짐을 조금만 내려 놓으렴)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구상나무 군락의 순도가 높아진다.
소나무과의 상록교목인 구상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세계에서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에서만 자생한다고 한다.
한라산에서는 1500미터가 넘는 북벽과 서벽 인근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대성 수종으로 지구온난화에 따라 수목한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또, 살을 에이는 바람을 맞으며
헐벗은 삶을 덮어 주고 눈부시도록 하얀 눈꽃을 피운다





그 곳에는, 온 천지 가득 신비를 간직한 채
눈꽃이 천상의 노래로 춤추고 있었다.





(거처에서 쫓겨난듯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어지럽다)


달라붙는 눈꽃들에 알몸둥이로 맞서보지만
비상의 꿈은 한결 무겁기만 하다.
간절하게 바람이 불기만을 빌었었는데
칼 바람이 파고들수록 오히려 얼어붙기만 한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가? 무엇이 나무고 어느 것이 눈인가?





깃대도 잠시 외도를 하고..., 언제 저렇게 멋부려 볼 때가 있기나 했던가!





행복한 산객들, 한라산은 우리를 최상의 모습으로 맞이해 주었)





천국으로 통하는 계단인가?





(드뎌 동릉 정상, 바로 뒤가 백록담인데...)


한라산은 대동강 이남에서 가장 높은 1950고지의 산이다.

삼신산(방장산=지리산, 봉래산=금강산)의 하나로
영주산이라고도 불리며, 정상부가 움푹패여 머리가 없다고
무두악 혹은 두무악, 분화구가 솥을 닮았다고 부악(釜岳)이라거나
태풍을 막아주어 호남의 곡창을 지켜준다고 '진산' 등
20여 가지 이름이 있으나 오늘날 한라산과
대표적 이명으로 영주산만 기억 될 뿐 이다.
한라산은 '은하수 "漢"에 잡을 "拏"로
은하수를 잡을 만큼 높은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백록담이 열리려나 25분 동안이나 세찬 눈보라와 맞서 보지만
가득담긴 하얀 구름은 걷힐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 백록담까지 보려하면 그건 욕심이지...
정상까지 오르는 것도 몇 번이나 헛걸음질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정도도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지...





분기점,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는 성판악 코스로 내려간다.





(치열하게 달라붙은 순백의 그대는
한라산을 넘어 다가서는 하얀 설렘이어라)


둘레가 1720m, 분화구의 지름이 동서 700m, 남북 500m며
내부면적은 21ha에 달한다는 백록담은 구름으로 가득차 있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되어 이 너머가 백록담이다 짐작될 뿐이다. .





정녕 오르고 또 오르며 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늘과 땅이 경계되지 않는 저 곳이 신선들이 사는 곳 아닐까?





여기 또 의지의 한국인들이..., 순례객의 행렬같이...





모든 산객님들 이 기상으로 세상에서도 좋은 뜻 다 이루시길...





올라오는 산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교행이 어렵다





눈 속에 푸른 꿈이 묻혔는지, 꿈위에 눈이 덮혔는지...
설화 속에서 부활의 푸른 꿈을 꾸고 있겠지...





눈은 공평하다. 땅이나 하늘이나..., 큰 나무에나 작은 나무에나





장미에만 가시가 있는게 아냐, 아름다운 눈꽃에도 가시가 있어





따갑기 그지없는 열정의 껍질을 깨고
휘감아 돌듯 순백의 사랑을 그려본다
텅 빈 그리움 가지마다 흩날리는데
이별 아닌 이별, 무엇으로 잡을 수 있겠는가?





(진달래 대피소, 봄철엔 진달래가 붉은 색을 토해내는 진달래 군락지)


정상 바로 아래서 진달래 대피소까지는 구상나무 군락,
고사목과 구상나무와 설화가 어우러진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 지는데 여기는 또 진달래 군락지다.

겨울철에는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12시까지는
통과해야 한다는데 우리가 그곳을 떠나올 때, 이미
통제하는 공단직원과 실강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서 2시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비료부대까지 준비해 온 개구장이들, 저리도 신날까?





호젓한 산행길, 이건 국립공원 등산로를 통채로 전세낸 기분이다.





(조릿대 숲의 평화, 눈은 참 공평하다.)


등로 양옆은 물론 숲 하단부를 거의 조릿대가 덮고 있다.
한라산의 조릿대는 잎 가장자리가 흰무늬가 있는 얼룩조릿로
관상용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정겨운 조릿대도 너무 번성하여,
조릿대 넝쿨뿌리가 다른 식물의 식생에 피해를 주어
조릿대 퇴치방법을 연구할 정도라고 한다.
조릿대가 사라지면 다른 수종이 그 자리를 채우겠지만
조릿대가 사라지면 그렇게 정겹지는 않을듯...





(겨우살이, 모든 산의 겨우살이도 이처럼 보호되었으면...)


겨우살이가 기생하는 나무와 마과목 나무 등이
수난당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왜들 그러는지...
산객들이 그러는 것은 아닐테지만...

재선충이나 송충이가 몸에 좋다는 것을 연구한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재선충 잡고,
송충이 잡는 모습이 들불처럼 번져가는 상상을 해 본다.





(키 큰 삼나무 숲, 간벌로 숲이 잘 가꾸어지고 있었다)


탐라계곡을 오르면서 적송군락을 만난 것처럼,
하산길인 성판악 코스에서는 삼나무숲을 만났다.
수령이 40년 정도 된 것으로 통나무집을 짓거나
건축, 보도용 데크를 만드는 데 쓰인다.

일본 규슈지역에 많이 나는데 일본에서는 스기나무,
제주에선 쑥대낭(쑥쑥 크고 대나무처럼 곧아서)으로 불린다.
천연살충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가 가장 많이 나오기에
삼림욕에 가장 적합한 수종이라고 한다.





(눈이 참 소담하게도 쌓였구나)


남은 것이 기다림뿐이라고 우는데
찬 서리 눈바람이 다 데려가고
빈 자리가 무겁다고 주저앉는 적막
녹아야 하기에 얼기부터 하는 겨울
이제 다시 봄이 오면 헛것 다 버리더라도
깊은 속은 놓치지 말아야지.





(산행 날머리 성판악 안내소, 정확하게 8시간만에 산행이 끝났다.)


성판악 안내소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펑펑 쏟아진다.
40분 정도 머물다가 택시를 타고 제주시로 돌아오는데
성판악에 내리던 눈은 비로 바뀌더니 제주시에는 하늘이 푸르다.
한라산 날씨는 산신도 모른다지만 제주의 날씨가 이렇게 딴판이니...

해수탕에 들렸다가 갈치찜을 잘한다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부산을 거쳐 울산에 도착하니 21:30.
이렇게 한라산을 다녀왔다.

한라산! 갑자기 가 보고 싶었던 곳
가장 좋은 모습으로 맞아주어 얼마나 감사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