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꽃 얼레지가 수줍은듯 반겨준 순천 금전산 산행과 낙안읍성

2009. 6. 26. 01:30山情無限/산행기(일반)


 

 

바람꽃 얼레지가 수줍은듯 반겨준 순천 금전산 산행과 낙안읍성

( 07. 4. 6 / 맑음 )




얼마 전부터 위겸씨가 꼭 가봐야 한다던 금전산을 가는 날이다.
금전산(金錢山)은 말 그대로 돈과 관련된 지명인데다 얼마 전부터
전남 순천이 로또 명당이라는 소문까지 나면서 요즘 유명세를 타는 산이다.
낙안벌이 훤하게 내려다 보이는 조망이 좋은 산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금전산 산행을 결행한 것은 지명과 무관하지 않다.

산행시간은 넉넉잡아 3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출근하는 날보다 바쁘다. 서둘러 문수고 앞에 모이니
일행은 7명. 단촐하다. 명호씨와 김대장 차에 나누어 타고
남해안 고속도로를 3시간 넘게 달려 산행 들머리 불재에 도착했다.





(산행 들머리 불재에서...)

오늘 산행코스는 불재 - 구능수 - 궁굴재 - 정상 - 헬기장 - 낙안온천으로
산행거리가 고작 7km 정도밖에 안되어 오랫만에 널널한 산행이 될 것 같다.
불재는 순천시내에서 낙안읍성으로 넘어오는 58번 지방도 고갯마루다.





(진달래가 왜 그리 애달파보이는지...)

차가 다닐정도로 넓은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높은 산도 아닌데
오름길은 가파르다. 숨은 턱에 차고 스러져가는 진달래가 애잔스럽다.





(구능수 바위)

가파른 길로 능선에 오르니 조망이 좋다.
이어지는 오름길, 다시 5분 정도 숨 차게 오르니 집채만한 바위가 나타난다.
구능수 전설이 있는 바위 입구는 좁아도 그 안에 서너명은 들어 갈 수 있는 굴이다.
입구에는 가지산 쌀바위 전설과 비슷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르니 금전산과 주능선이 펼쳐진다)






(영근씨와 김대장, 멋진 산꾼들이다)






(얼레지에 마음을 뺏긴 사이 일행은 벌써 저만치 가 버렸다.)

산행시 카메라를 메고 다니니 고락(苦樂)이 많다.
우선은 카메라가 무겁고 거추장스러워 산행에 불편이 따르고
사진 한 장 제대로 담아 보려면 일행은 꼬리도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어디 사진 한 장만 찍고 마는 것도 아니니 산행하는 내내 바쁘고 힘이 든다.
산행 페이스를 잃고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대간의 경우는 정도가 더하지만
그렇다고 카메라를 벗고 산에 오른다는 것은 이제 상상할 수도 없다.
금수강산! 이 아름다운 산하를 직접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복이고 보람인지...
카메라를 메고 가는 어려움은 비할 바가 아니다.

달음질 하여 일행을 따라 잡아야 하는데
마침 내리막길이어서 다행이다.





(오름길 바위 전망대에 서니 낙안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얼레지 군락, 온 산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오는 길 내내 반겨주던 얼레지가 궁굴재에 이르니 지천이다.
여태 이렇게 얼레지가 많은 군락지는 처음본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않은 것은
천성산 얼레지같이 마구 캐고 훼손하여 쑥대밭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바람의 꽃 얼레지)

얼레지

봄 햇살이
단단하게 수직으로 꽂히는
호젓한 산길

앉은뱅이 양지꽃
봄볕바라기로
노곤노곤해 질 때

보랏빛 쓰개치마 곱게 쓴
얼레지, 두 송이
살포시 고개 떨구고
그리움으로 애끓는 마음
짐짓, 옹당그려 보지만

파랗게 날이선
따가운 봄 햇살에
그만, 더운 심장까지
데이고 말았다





(해발 500m의 궁굴재, 금전산 정상까지는 1.2km)






(노랑제비꽃)

노란색이 맑고 깨끗하다.
따뜻한 양지쪽에 봄을 즐기려는 듯
노란 병아리떼 마냥 옹기종기 모여 있다.
노란색은 평화와 평안함의 상징색 아닌가?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어 핀 노랑제비꽃이 반긴다.
노랗게 물들어 정겨운 노랑제비꽃을 바라보노라면
그 향기에 취하고 아름다운 자태에 이내 맘을 뺏긴다.
이른 봄 노랑제비꽃은 잎보다 꽃이 더 풍만하다.
대부분의 꽃들은 향기를 내 뿜으며
달콤한 꿀로 벌나비들을 유혹하여 수정을 하지만
제비꽃은 벌나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가수정을 한다고 한다.





(정상과 헬기장을 지나니 낙안읍성과 낙안벌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호남정맥 조계산의 지맥인 금전산은 낙안의 너른 벌판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큰 바위산으로 산 자체만으로도 좋은 산행지 중의 하나다.
낙안벌과 민속마을로 유명한 낙안읍성이 발 아래 보이고
요즘들어 이름에 연유하는지는 몰라도 순천이 로또 당첨율이
인구대비 최고라는 산행 외적인 매력도 있는 곳이다.

해발 668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7~8부 능선 위로 펼쳐진
기암괴석이 마치 작은 설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 멀리 호남정맥 마루금이 한 눈에 들어오고...)






(벽화, 숨은 그림 찾기)






(암릉구간, 육산과 골산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타고 오른 바위벽을 곧 되돌아 내려 올테지만...)

山은
내려 오기 위해 오르고,
오르기 위해 또 내려온다.





(오르고자 하는 의지는 바위보다 높다.)






(양지바른 텃밭에도 봄이 살포시 내려 앉았다.)






(조망바위에서 날머리 온천방향을 가늠하며...)

저 아래 낙안온천 빨간 지붕이 보인다.
금전산을 정기를 받았으니 로또를 한 장씩 사야겠지!
그 전에 물 좋기로 소문난 낙안온천에서 목욕재계하고...

꿈도 다부지다.
1등에 당첨되면 해외원정비는 무조건 떼기로 하는 등
어디 엘부르즈로 갈까 에베레스트로 갈까~
그건 김 대장이 알아서 검토하겠지만





(하산길은 석문을 지나 다시 대밭숲 속으로 들어 선다.)






(하산하면서 뒤돌아 본 능선)






(암봉이 나타나자 일단 오르고 본다.)






(울산이었다면 바위벽에 자일이 몇 개나 쳐지지 않았을까?)






(낙안벌과 낙안읍성을 배경으로 하여)












(봄이나 산이나 꽃이 있어 더 아름답다.)






(오늘의 산행 날머리 낙안온천 앞)









(수 없는 돌로 만든 조형물. 아직 작업중이었다.)

불재로 가면서 지나갔던 길을 산행마치고 다시 찾았다.
고만고만한 돌 들은 어디서 구했으며, 또 어떻게 쌓았을까?
그동안 얼마나 애쓰고 노력했을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라고 하던가? )






( 낙안읍성 / 樂安邑城 )

낙안읍성은 사적 제302호인 민속마을로 여느 민속촌과는 달리
이 속에서 조선시대의 옛 삶을 재현하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낙안읍성안에는 실제 108 세대가 실제로 생활하고 있으며
남부지방의 독특한 주거양식과 부엌 토방 등을 만날 수 있다

낙안읍성의 현재 모습은 석성(石城)이지만
1397년에 처음 성을 만들 당시에는 흙을 사용하였다.
고려시대 말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주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절도사였던 김빈길(金贇吉)이 사람들을 모아 낙안읍성을 쌓았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그 후 1424년 9월부터 여러 해에 걸쳐 토성이었던
낙안읍성을 석성으로 바꾸면서 그 규모도 넓혔다고 한다.
또한 1450년 성이 마무리될 당시에 '낙안읍성의 둘레는 2,865척,
성벽의 높이는 9.5척이었다'라는 기록이 전한다.

현재의 모습은 1984년부터 시행된 정비 사업으로
3개의 성문과 낙안 객사, 여러 가옥들이 복원 정비된 것이라고 한다.





( 동문인 낙풍루 / 樂豊樓 )

왜구를 막기 위해 평지에 쌓은 낙안읍성은
둘레 1.4㎞, 높이 4m이며 동.서.남문이 있다.
낙풍루 안쪽의 고만고만한 초가집들이 참 정겨워 보인다.





( 석구 / 石狗 )

우리나라에서는 개를 수호신으로 삼는 일이 흔하지 않으나
일본에서는 새로 짓는 신사나 절 정문밖에 돌로 만든 개를 앉히고
'고마이누'(犬, 高麗犬)라고 부른다. 고마이누는 고려개라는 뜻이다.

낙안읍성 동문밖에 있는 석구는 이것을 뒷받침 해주는
유물로 원래 세 마리였는데, 지금은 두 마리만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곳 낙안에 있는 석구가 유일하다고 한다.





(성곽 위에는 깃발이 나부끼고...)









(낙안읍성내 모습)






(소문듣고 찾아간 음식점)

옛날 이 충무공이 찾았을때 대접하였다는 8진미를 맛 보려고
산에서 미리 준비까지 시켰는데 소문만큼 별미는 아닌 것 같다.
1인당 거금 10,000원, 주위에 유명한 5000원짜리 보리밥집으로 갈껄..





(왠 대장군에 '必生卽死 必死卽生')

이 충무공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글귀가 수난이다.
'必生卽死 必死卽生'이 아니고 '必死則生 必生則死'이다.

9월15일[계묘/10월25일] 맑다.
수가 적은 수군으로써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다.
그래서 진을 우수영 앞바다로 옮겼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면서 이르되,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
(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했으며,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고 했음은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살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면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이날 밤 신인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일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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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길 순천시내에 들러 로또 1등이 당첨된 집을 찾아 단체로 1장씩 샀다.
오늘 금전산 산행이 효험이 있으려나... 누가 돈벼락을 맞더라도
지금같이 사이좋게 좋은 산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