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낙엽길을 따라 청도 학일산~대왕산 산행

2009. 6. 26. 01:56山情無限/산행기(일반)



 


만추의 낙엽길을 따라 청도 학일산~대왕산 산행




○ 일시 : 2007. 11. 24(토) / 날씨 : 맑음, 박무
○ 산행코스 : 동곡재-학일산-507봉-돈치재-641봉-대왕산-448봉-갈림길-갈지리 삼성마을
○ 거리 : 13.2km, 선두 : 5시간 40분, 후미 : 6시간 10분






세월님들을 만난지도 오래되어 동행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마침 낙남정맥을 집안 일에 맞추어 가려다 보니 기회가 닿았다.
산행을 신청하러 카페에 들렸더니 태풍대장이 "등로 가득히 쌓여있는 낙엽을
마음껏 밟으면서 잠시 구르몽이 되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며
제법 분위기를 잡으며 올린 "산행 방(榜)" 에 댓글들로 시끌벅적하다.
아목동님부터 시작하여 벌써 19번, 무제님 바로 뒤 20번째로 신청을 했는데
얼마있지 않아 박하님은 입석이라도 좋다며 막차를 탄다고 했는데...
그 뒤에 또 한 명 더 신청했으니 바로 간첩이다.

여느 때 처럼 문수고에서 길가는 사람(도사)님을 비롯하여 반가운 님들을 만나고
이어 온 차를 타고 막 출발하려는데 요즘은 간첩도 비행기 타고 다닌다더니
군기가 많이 빠졌는지 8시 반에 출발하는 줄 알고 아직도 집에 있단다.
20여 분 후 택시를 타고 나타난 간첩을 태우고 정원을 초과하여 장도에 오른다.
세월따라 세월산방도 많이 변한 것 같다.




(동곡재휴게소에서 고갯마루로 향하고 있는 세월산객들...)

동곡재휴게소에서 10여 분 산행채비와 청학님의 구령에 맞춰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동곡재로 향하고 있는 세월산객들




(도로변에서 반기는 철없는 개나리가 왜 그렇게 처량해 보이는지...)




(동곡재휴게소에서 100m 고개를 오르다 우측길로 들머리로 들어섰다)

원래 계획은 갈고개에서 대왕산으로 올라 학일산을 거쳐
동곡재로 내려 가려던 것을 역방향으로 코스를 변경했다.
국제신문에 소개된 코스는 금전리에서 갈고개 갈림길로 오르고,
날머리도 학일산에서 학일온천쪽으로 잡아 원점회귀 산행을 염두에 두고
코스를 잡은듯 하다. 개인이 가면 그 코스도 좋을듯 하다




(처음부터 제법 된비알이다. 길도 희미한데다 낙엽까지 두텁게 쌓여 오르기가 힘들다)




(552.6봉 오르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운문호 방향, 골안개가 자욱하다)




(오늘 특별히 모신 후미대장 도사님)




(청미래덩굴 열매, 갱상도에서는 망개라하는데, 멧대싸리라고도 하는 망개나무는 따로있다)




(학일산 정상의 선두, 후미가 오기를 기다렸다는듯 얼른 방을 빼 주었다)




(학일산(697m), 비스듬히 눕긴 했지만 공동묘지 비석같은 정상석보다야 정겹다)

동곡재에서 1시간 반만에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넘고 오른 학일산(692.9m)은
청도군 매전면과 금천면 경계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산세도 험하지 않은데다
사람의 흔적이 적어 등산로가 깨끗하고 수더분한 맛이 나는 산이다.
특히, 참나무 잎이 발목이 빠질정도로 수북이 내려앉은
낙엽길이 만추의 산행 맛을 더하였다.




(청랑!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움이 트고,
온 몸 불사르던 열정도
세월의 무게를
감당 못해
겨울문턱에서
어느새 스러진 낙엽

주검을
지르밟고 걷는다
바스락 바스락
(이 소리는
귀로 들을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야 할 소리)
시간의 비명소리
영혼을 울리는 소리

결코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말며,
끝까지 사랑으로 보듬어리라
가슴속 깊은 곳에
불씨 하나 품고
먹구름 장대비
태풍과 천둥번개도 버텼건만
사랑이 이별을 연습하듯
구겨진 사연
지우지 못한 미련
짓밟힌 서러움
땅의 시간은 가고
시간은 나이테 속에 잠이든다





(후미도 거의 식사가 끝났지만...(성천님 작품))

선두는 이미 식사를 끝내고 배낭을 꾸렸는데
후미조는 전을 벌린채 된장찌게가 끓기를 기다리며 느긋하다.
밥을 거의 다 먹고 난 뒤에 끓은 코펠 가득한 찌게를 어떻게 다 먹을까 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다.
선두조도 합세하여 맨 입에 한 컵씩 후루룩 마셨으니...
밥도 없이 먹었지만 과연 별미 된장찌게였다.




(오늘... 구르몽이 되고 시몬이 되어 원없이 낙엽길을 걷는다)

후미가 왜 그렇게 늦었느냐구요?
그건 이렇게 멋진 낙엽길을 그냥 달리듯 가기가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서 그랬지요




(후미대장 도사님, 후미부대장 유수님)




(1착으로 신청하여 만차가 되었다고 기분이 대단히 좋으신 아목동님)




(어디 단풍나무가 따로있나 단풍이 들면 다 단풍나무지...)




(이런 곳에서는 한번 누웠다 가야하는데 후미라 민폐를 끼칠 수도 없고...)

시인은
"성큼 다가선
나이 앞에
낙엽이 지면
새처럼 구름처럼 노래하던
내 젊은 날의 자유같은 꿈,
그 퍼득이던 날개짓은
허공으로 나부끼는 갈잎 한 장에
실려오는 바람이련가..."
라며 슬픔을 노래하지만
자연스럽게 왔다 자연스럽게 가는 것이 우주의 순리이거늘
떨어진 낙엽은 다시 거름이 되고 흙이 되어
새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리라...




(무슨 열매(?))




(연리지락은 못누리고...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또 잇대어 살아가는 인생같은 나무)




(황무지에서도 장미꽃이 피고, 잘린 밑둥에서도 억센 생명이 돋아난다)




(가진 것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단촐하게 겨울과 맞설 준비를 하는 나무들)

...

버릴 것은 다 버리고
보낼 것은 다 보내고
운명(殞命)하는 순간에 몸을 한번 뒤채듯
몰아치는 바람에 마지막 잎도 놓고
나무들은 견고한 골격으로 서서
부활하는 봄을 위해 겨울을 맞는가.




(448.1봉에 있는 삼각점, 동곡 412)




(오늘 이곳(641.2봉)에서 대왕산, 448.1봉까지는 비슬지맥 구간)

낙동정맥 사룡산에서 분기되어 대왕산을 거쳐 이어온 비슬지맥.
좌측길로 내려서면 선의산, 용각산을 지나 삼원산 직전부터 상원산, 비슬산을 거쳐
조화봉을 지난 후 나타나는 989.7봉까지는 대구와 경북의 경계를 타고가다
이후 경북과 경남의 경계를 타고 수봉산, 묘봉산, 화악산을 이어가다
다시 경남 밀양으로 접어들어 상남면 붕어등에서 마지막 힘을 내어
솟구쳤다 낙동강으로 스며드는 비슬지맥




(대왕산을 향하여...)




앉아 있기 보다 서 있을 때가 많았고
아침의 기쁨보다 저녁의 슬픔이 많았어도
앞만 보고 무작정 걸어 온 꿈만 같은 세월
가을산 노을빛에 저물어가는 내 청춘아
무슨 재주로 오는 밤의 어둠을 막을 수 있겠는가




(대왕산, 선두조 (성천님 사진을 빌려왔음))




(대왕산, 후미조. 청랑과 찍사가 빠졌음)




(항일 대왕산 죽창의거 전적비)

일제말기인 1944년 7월 경북 경산시 남산면 대왕산에서 안창률 등 29인이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일제의 압정을 성토하고 징용을 반대할 목적으로 모여
돌과 죽창으로 일제 총칼에 맞서 항거한 것을 기념하여 건립한 전적비.

1944년 7월 15일 밤 자인면 원방보에서 안창률, 김명돌, 성상용, 송수답 등
29인이 모여 돌이 많고 산세가 험한 대왕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신축 중에 있는
남산주재소를 습격하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하고 준비에 착수.
7월 25일 밤 죽창으로 전원 무장하고 대왕산에 집결하여
26일 아침 안병률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7월 26일 무장한 일경 30명을 돌과 죽창으로 맞서 물리쳤고,
8월 5일에도 일경 30명을 격퇴하였으나 보급이 끊기고 식량이 바닥나
8월 10일에서 13일 사이에 전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8.15광복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안창률, 김경화은 옥중 순국하였다고 한다.

항일대왕산 죽창의거 공적비는 경북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에 있다




(이제 호젓한 길이 이어지는데다 계속 내림길이다.)




(산부추도 가을색으로 물들고...)




(떡깔나무 잎도 꽃보다 화려한 모습으로 마지막 정염을 태운다)




(당산목인듯..., 나무가지 사이 빨간 것은 아목동님 모자 ㅋㅋㅋ)




(청랑의 망중한, 나무와의 대화)




(선두에 서고싶은 마음을 자제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를 찍어주는 사람이 있어 좋다. 12시간 산행을 해도 증명사진 한장 없을 때도 있었다)




(햇살을 받고 미소를 짓는 국화가 아름다워...)




(드디어 갈지리 삼성마을에 도착)

당상목인듯한 느티나무 고목을 지나자
키 작은 솔밭 사이로 이어가는 길. 이건 간벌이 아니라 완전히 남벌이다.
갈고개와 금전마을 갈림길을 지나는데 난데없이 청랑이 태풍대장 같이
뒤걸음질을 한다. 조금 더 내려서니 산만한 부자연스런 묘가 나타나고
이어 오늘 산행의 날머리 갈지리 삼성마을에 도착하니 16:00.
이렇게 6시간 조금넘은 행복한 산행이 끝이났다.




(오늘 산행 마무리는 충무 해장국집에서...)

도로변 국수집을 찾다가 낙찰된 충무 해장국집.
아마 개업하고 한꺼번에 제일 손님많이 받은 날 아닐런지?
4인용 탁자 3개, 수용 적정인원 12명인데 26명이 들이닥쳤으니
방에서 쉬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는 혼비백산한다.
정신이 없어도 장사는 또 이런 맛이 있어야...




(하산주가 푸짐하다. 맛있다는 동곡막걸리가 1말이나 조달되었다)




(추억의 연탄난로, 난로위에 도시락 아닌 고구마가 익고 있으니...)




(술에 약한 무제님도 거나한 모습을 보이고...)

동곡막걸리 맛도 맛이지만, 별미는 역시 고디탕이었다.
주인 아주머니 정신을 홀랑 빼어버리고 문을 나서는데
얼마나 혼이 났는지... "다음에는 연락하고 오이소" 하신다.




(만차, 아목동님이 스타트를 잘 끊어서 그런것 맞죠?)


오는 길 백장미 대장을 비롯한 태풍대장과 쟁이대장의 인사가 있은 후
오늘 처음 참석한 민턴가이님과 친구분, 그리고 2번째 참석한 님들의 인사가 있었고,
12월 3째주 일요일 송년산행 후 송년회를 가진다는 안내도 덧붙히면서...




(처음오신 민턴가이님)






(처음오신 민턴가이님 친구분)




(산적님)




(고장난 시계님)




(산길따라종주산악회의 성천님)




(오늘이 10월 보름이군요. 고헌산 위로 떠오른 보름달)

오는 길, 지각한 간첩에게서 아이스크림을 헌납받는다.
명분은 우리가 아이스크림이 꼭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시 또 그럴까봐 경각심을 주기위해서라고 말을 살짝 비틀며...

오면서 내내 보름달을 가리키며 창밖을 보라던 태풍대장의 말을 따라
고헌산 위로 두둥실 떠 오른 보름달을 잡았다




(박하님이 작성한 오늘 산행 GPS 궤적)

오랫만에 반가운 얼굴 세월 산객들과 함께하였는데
차의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회원들이 참석한데다
만추의 호젓한 낙엽길을 님들과 정겹게 걸었기에
더 행복한 산행이 된 것 같다.

그냥 따라 다니는 것도 힘드는데 산행을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애쓴
백장미대장을 비롯한 태풍대장, 쟁이대장과 후미에서 수고한 도사님, 유수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무사히 산행을 마친 모든 님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모든 분들 수고 많았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