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과 텐트를 날릴듯한 칼바람 속 배고픈 야영이었지만..
2013. 1. 15. 00:13ㆍ山情無限/영남알프스
혹한과 텐트를 날릴듯한 칼바람 속 배고픈 야영이었지만..
, ○ 2013. 1. 5 ~ 6 날씨 : 흐림, 혹한 밤엔 강풍
○ 울산광역시 상북면 신불산 / 홀로
올 겨울 제일 춥다는 날 영알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한 해의 마지막날과 시작하는 날을 지리산에서 보낸 것이 영알에게는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한다 하였던가?
(들머리, 건암사 쪽에서 신불재 오르는 길)
토요일 시간이 나면 먼길을 갈 수 있지만
시간이 없으면 박짐 지고 이 길로 영알에 든다.
(고도가 높아지자 눈이 비치기 시작하고..)
파랗던 하늘에 구름이 덮히기 시작한다
늦게 출발하느라 시간도 빠듯한데 구름까지..
오늘 해넘이를 볼 수 있으려나..
(삼봉능선도 흰옷으로 갈아 입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색동옷을 자랑하는듯 하더니
울긋불긋 했는데 삼봉능선은 이제 한복으로 갈아 입은듯..
산은 가만히 있는듯 하면서도 변하고 변한다.
(등로에도 제법 눈이 두텁게 쌓였다)
(드디어 신불대피소가 보이고..)
대피소 데크에는 텐트가 3동이나 쳐져 있다.
수낭에 물을 채우고 있는데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한다.
그런데.. 상대방은 나를 알아보는데 나는 알아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이름을 물어봤으나 또 까먹었다.
더 미안한 마음이다.
(신불재 모습)
바람은 매섭기만 한데..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태양은 따뜻한 느낌.
정상에서 해넘이를 볼 수 있으려나..
(정상까지는 0.7Km)
일몰시간이 20분 정도밖에 안 남았다.
무거운 박배낭을 메고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려니
걸음이 더딘데.. 마음은 훨씬 앞서간다.
(해야 조금만 기다려 줄래..)
정상에 오를 때까지 천천히 넘어 가기를 바라며
곁눈질하면서 중간 중간 한 컷씩 담아본다.
(드디어 정상이 코 앞에 나타났다)
(넘어가는 태양을 겨우 잡았다)
황홀하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석양을 보면서 하는 생각
나의 인생도 저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애써 오른 보람을 느낀다!
(영축산 방향)
올 겨울들어 제일 추운 날
신불산 정상은 바람까지 세차다.
영알 주능선엔 산꾼이 한 명도 안보인다.
이 시간쯤 꽉 들어 차 있어야할 정상 앞뒤 데크에는
텐트가 한 동도 쳐지지 않아 을씨년스럽고
나뭇가지의 비명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린다.
나같은 사람 또 어디 있을라구
전에는 재약산 먼당에서 야영을 했었다.
전용 박터가 있을 정도였으니.. 재약산에서 밤을 새우고
샘물산장으로 내려가면 샘물산장 주인장은 추운 밤에
재약산 지킨다고 고생했다며 따끈한 차를 내어주곤 했다.
재약산 먼당의 야영은 밀양쪽으로 지는 해넘이가 일품이고,
가지산 터널 뚫리기 전의 일이긴 하지만 꼬리를 물고
석남고개를 넘어가는 차량의 불빛 담으면 멋있었다.
얼음골 케이블카가 설치된 후로는 그곳을 가고
싶은 맘이 사라져 신불산으로 아지터를 옮겼다.
(사실, 이 때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 줄도 모르고..)
(낭패, 낭패다!)
휘몰아 치는 바람과 사투하면서
30분 넘게 걸려 텐트를 겨우 쳤다.
네 방향에 스트링까지 튼튼하게 매고는
텐트안에 들어가니 텐트가 날아갈듯 요동치는데
폴대는 휠대로 휘고.. 바닥까지 펄럭거린다.
마치 폭풍우속의 돛단배같은 형국
텐트를 걷어 대피소로 내려가야 하나
어쩌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텐트를 걷다가 바람에 날려 버릴 것만 같아
가는데까지 가 보자며 버텨보기로 했다.
(어째 이런 일이..)
바람이 좀 자길래 이 때다 싶어
저녁을 해결하려고 버너를 연결하여 펌핑을 하는데
아뿔싸! 연료통과 버너 연결부위에서 분수같이 쫙
뿜어져 나오는 휘발유! 연료통을 바꾸면서 생각도 못한 일.
연료통에 붙어있던 고무 패킹이 연료통 마개를 따라
가버린 것 아닌가! 이 일을 어떻게 해. 고스란히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은 굶게 생겼다.
비상식으로 간단하게 허기를 달래고는
밖으로 나와 적막공산에서 카메라와 놀았다.
에덴벨리 스키장은 불야성을 이루고..
부산쪽 불빛은 가물 거린다.
(언양과 울산방향의 야경)
초저녁보다는 불빛이 많이 줄어 들었지만
신불산 정상에서 보는 언양과 울산 도심 야경은
정말 아름답다. 다행히 바람이 많이 잔다.
(세찬바람과 고군분투한 텐트..)
텐트야 고맙다!
힘들지만 내일 아침까지 잘 버텨주렴
지금 내려가면 내일 아침에 해돋이 담으러
다시 올라와야 되잖니..
(바람이 그린 정말 그림같이 야경)
바람이 자는 것 같았지만..
노출을 길게 주니 카메라가 흔들린다.
태풍같던 조금 전 바람과는 비교도 안되는
미풍(?)이었는데도 이런 그림이..
(아직도 에덴벨리 스키장은 불야성)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삼각대를 쓸 수 없어
카메라를 그냥 데크바닥에 놓고
쏟아지는 하늘의 별들을 담아본다.
오늘따라 별도 많이
추워 보인다.
(내가 반달로 떠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손 시린 나목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 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워라
맑고 높이 사는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이해인 /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그렇게 춥고 긴 밤이 가고 새날이 밝아온다)
밤새 바람은 잦아 들었지만
추위는 정말 대단했다. 다른 것은 참을 수 있는데
발이 얼마나 시린지.. 장갑을 양말 위에 껴도 안되어
우모복으로 발을 감싸고 자켓으로 침낭을 덮고 잤다.
버너만 사용할 수 있었어도 물을 끓여 날진통에
담아 침낭안에 넣기만 해도 해결되었을텐데..
그렇게 터널같이 긴긴 겨울밤을 지나
황홀한 노란 띠를 앞세우고 먼동이 튼다.
이렇게 또 하루가 선물로 주어졌다.
(노란 띠가 점점 진해지고 넓어지더니..)
(온 세상을 황홀한 빛으로 물들이려는듯..)
아~ 좋다!
그냥 여기 이대로가 좋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그렇게 울어야 했고,
이렇게 새날 이렇게 아름다운 먼동을 틔우기 위해
칼바람은 그렇게 몰아쳐야 했나보다.
(점점 짙어지는 구름이 태양은 가리웠지만)
오히려 더 진한 색깔로 하늘을 물들인다.
(새해는 / 조병화)
새해는
근심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근심 걱정해 가며 사는
그러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났으면
새해는
탐내지 않아도 좋을 일을
탐내 가며 사는
그러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났으면
새해는
남의 이야길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남의 이야길 하며 사는
그러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났으면
새해는
시기 질투를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시기 질투를 하며 사는
그러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났으면
새해는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을
자기 자랑을 하며 사는
그러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났으면
아, 그리하여
어둠에서 솟아오르는 둥근 태양처럼
멀리 맑게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그렇게 둥글게
온 천하를 살아갔으면
(산들도 눈 비비고 일어난다)
(가지산 방향)
신불산에서 간월산, 배내봉, 능동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장쾌한 능선 겨울산 골격미가 멋있다.
(와우! 구름바다 위로 지리산이..)
오늘 여기서 지리산을 만나다니..
날이 맑은 날 가끔 볼 수 있는 지리산인데..
이건 행운이다. 행운!
(영축산 너머로 보이는 천성산)
아래는 무룡산과 삼태지맥
(겨울산!)
말의 갈퀴같기도 하고, 고슴도치 같기도 한..
(산들이 어깨걸고 일어서니 산맥이 되고..)
(신불산 정상)
(밤새 태풍같은 바람에도 잘 버텨준 텐트)
그동안 달팽이 집같이 나와 동행하며
안식처가 되어 준 나의 텐트, 나의 별장
이제 거의 퇴역할 때가 되었는데도 어제밤 만큼
고마웠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山들..)
공룡능선 너머로 문수산이 우뚝하고,
영축산 너머로 고개 내민 천성산
(이제는 하산할 시간)
여름에는 해돋이를 보고 하산하여도 여유로운데
겨울은 많이 바쁘다. 예배시간에 늦지않으려면
서둘러 내려가야겠다.
(다행히.. 구름이 짙어 바쁜 발걸음을 잡히지 않았다)
(지난 밤 신불대피소 데크에는 3동의 텐트가..)
(온통 겨울이다. 눈길에 폭포도 얼음기둥이 되었고..)
(대단한 골격미를 자랑하는 신불공룡능선)
(상단 계곡은 물이 말랐다)
(드디어 날머리.. 늦지않게 내려왔다)
언제든지 찾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영알자락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역설적이게도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먼 곳으로 가고
짜투리된 토요일은 오후 늦게 박짐을 메고 영알에 들었다가
아침 일찍 내려갈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근래 박짐도 1시간만에 챙기는 준비성없는 타성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이어져 저녁부터 아침까지 쫄쫄 굶고..
꽁꽁 얼어 비우지 못한 2kg이 넘는 얼음덩이가 된
수낭을 집에까지 지고 오는 수고를 했지만
감격스런 해넘이와 해돋이.. 금가루를 뿌려놓은듯한 야경,
머리위로 쏟아질듯 찬란한 별빛들과 어찌 비할 수 있겠는가!
살을 에일듯이 추웠지만 겨울을 즐길 수 있어 좋았고
무사히 시간맞춰 내려 올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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