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산 정상에서 바람과 싸우며 불침번을..

2014. 7. 21. 10:44山情無限/영남알프스

 
 

 
신불산 정상에서 바람과 싸우며 불침번을..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 2014. 7. 18 ~ 19    날씨 : 비온 후 구름많음
○ 영남알프스 신불산, 홀로
 





오랫만에 박짐을 꾸렸다.
하긴 지난 주에도 박짐을 꾸려 집을 나섰지만
비와 천둥 번개 땜에 야영은 엄두도 못내고 돌아왔다.
사람이든 산이든 마음만 있다고 되는 것 아니지 않던가?
오랫동안 산을 생각한 만큼 찾지는 못했다. 더 이상 늦추면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기도 하고.. 근래 상념들로 머리도
복잡하여 산에 들어 쉼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졌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내 생각대로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의 생각대로 다 되지않는 것이 축복인 것을..
만약에 72억 세계 인구 모두가 생각하는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세상에 누가 살아 남겠으며, 이 지구인들 온전 하겠는가?
상상은 즐겁다!
비록 내 생각같지 않아 번민되고, 상념이 따르기는 하지만
그것은 내 마음을 다스리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누가 '외롭거든 산으로 가라' 했던가!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산문에서 1시간 반을 기다렸다)

오후들어 날씨가 갠다고 했지만
예보는 예보일 뿐. 계속 비가 내린다. 기상대 탓할 계제도 못된다.
한 길 사람 속도 감 잡을 수 없는데 어찌 하늘의 일을 예측하여 제대로
맞출 수 있겠는가? 이내 마음을 편하게 먹고 기다려 보지만 산문에
도착한지 한 시간이 넘도록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다.
구름이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하는 걸로 봐서는 곧 그칠 것 같기는 한데
일몰 시간을 생각하니 조급한 마음도 생기지만 카메라 때문에 우중산행을 감행할
형편도 못된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오랫만에.. 기상대 일기예보대로 된다면 
정말 안성맞춤일 것 같은데.. 오후들면 비가 그치고, 17시 경부터 해가 나오고,
 다음날 아침도 맑을 것이라 해서 부랴부랴 박짐을 꾸렸던 것이다.
이런 날은 구름과 어우러진 석양도 멋질테고, 장엄한 일출까지 예상되니
기대가 클 수 밖에.. 물론 지난 주 야영을 못하는 바람에
다시 나서려고 기회만 보고 있기도 했지만..





(신불재에 오르니 비는 그쳤으나..)

바람이 세차다.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다.
그래도 올라야 하기에 바람을 뚫고 구름속으로 들어간다.
내딛는 발걸음이 무겁다. 갈 길은 바쁜데 오랜만의 박짐이 진을 뺀다.
정상이 이렇게 멀었던 적이 있었던가? 납덩이를 넣은 것도 아닌데..
(산행만큼 진실한게 또 있을까? 한 발 한 발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는 것.
학문에 왕도가 없듯 산에도 장사가 없다. 오직 산을 자주 찾는 자가 장사다.)
의지의 한국인. 신불재에서 정상까지 가다 쉬다 가다 쉬다하며 올랐다.
기진맥진이었지만 숨돌릴 틈도 없는 것은 어둡기 전에 텐트를 치는 일.
뒷쪽 데크에 자리를 잡을까하다 혹시 야밤에 雲雨之情을 엿볼 수 있을까 싶어
남쪽 데크에 준태풍급 바람과 씨름하면서 하룻밤 유할
별장과도 바꾸지 않을 집 한 채를 완성했다.





(오늘은 혼자서 불침번을 서야할 것 같다)











(밤 2시가 넘었는데도 도시는 불야성)

나뿐만 아니구나, 도시도 번민에 잠 못들고 있구나.





(그래, 혼이 날만도 하지..)

도대체 이게 얼마만인가?
가끔씩 문안인사도 하고, 보초도 서 주고 해야지..
너무 무심하긴 무심했던 것 같다.

정말 오랫만에 왔다고 바람이 경을 친다.
텐트가 날아 갈듯 요동한다. 매달아 놓은 랜턴도 정신이 없다.
1초에 열 번도 더 흔들리는 것 같다. 노출을 딱 2초 주었는데
그사이 살쾡이 한 마리를 그려 놓았으니..





(寂寞空山)

고요함을 깨는 바람 소리와
인적없는 쓸쓸한 깊은 산중
번민을 날려 버리고 싶어라







(벌써 동이 텄다)

거의 4시가 다 되도록 이런 저런 생각과
잠시도 멈추지 않는 요란한 바람과 범벅이 되어
까만 밤을 하얗게 새울 기세였는데.. 그만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아차 큰 일났구나.. 했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참 편리(?)한 것.
햇귀도 별로였고.. 일출도 기대할 상황이 못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
뭐랄까 불난 집을 보고 거지가 자기 아들에게 '우리는 불 날 집이
없어서 다행이다'라고 하는 맘 같다고나 할까.

유유상종이라 해야겠지
이른 새벽 공룡능선으로 올라와
트라이포트를 세우고 일출을 기다리는 이 중에
 아는 얼굴이 있었으니..











(누가 뭐래도 태양은 태양이다)

햇귀가 별로였어도,
구름이 제 멋대로 놀고,
구름이 바지 가랭이를 잡고 늘어져도..
태양은 태양이었다.





(태양과 눈을 맞추다)

오늘 일출은..
그것도 삼대 구 년 만에 산에 한 번 들어 영알의
장엄한 일출을 탐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그게 욕심이지..
그나마 주변을 의식않고 태양과 눈을 맞추니
태양은 이글거리는 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늘은 전쟁중)

일진일퇴,
구름이 걷혔다 덮혔다
시시각각으로
형세가 바뀐다.





(돈으로 칠갑한 케룬(?)은 벼락을 맞았는지..)

무참이 무너져 내렸다.
무너져 내린 모습을 자세히 보니
무너질 만하게 쌓았더라..









(그 얼굴에 햇살을..)





(번민과 상념들은 훨훨 날려 보내고..)

역시 혼자 오길 잘 했구나!
불어 오는 바람결에, 피어 오르는 구름 위로
상념들을 쫓으니 어느새 산은 온통 내 안에서 숨을 쉰다.
나만의 산은 어느 후미진 골짜기의 들꽃처럼 소리없이
내 안에서 그 봉오리를 벙그는 일이다.





(오늘 또 브로켄 현상을 만났다)

영알에서 2번째 맞는 브로켄 현상.
지금까지 브로켄 현상을 4번이나 만났다.
2006. 6.18 대만 출장갔다 오는 비행기에서
2007. 9.26 영남알프스 신불평원 억새밭에서
2009.10.31 한남금북정맥 출발지 속리산 천왕봉에서
2014. 7.19 오늘 또 이렇게 신불산 정상에서..
일단은 만나기 쉽지않은 귀한 현상이니
행운으로 여겨도 되겠지?





(신불공룡능선)





(동고동락한 텐트도 방수 기능이..)

하긴..
주인 잘못 만난 탓에 맨날 맞바람 치는데만 자리를 잡으니
나름 고생도 많았고 탈도 날만 하지.. 밤새 거센 비바람을
막아 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야 어디 고급 별장이 부럽겠는가!
일단은 좀 말리고 봐야겠다.









(부질없는 생각들..)

情이 저기 산을 감싸는 구름 같은 것이라할지라도
인간에 대한 믿음은 저 듬직한 산과 같은 것 아니겠는가!
두부 모 자르듯 뒤도 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애초부터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겠지 
어림 서푼도 없었다는 것인가?









(새벽도 아닌 것이.. 낮도 아닌 것 같이..)







(얼굴 모습 같기도 하고..)





(자유로운 나의 동반자)





(머지않아 억새밭에는 억새꽃이 만발하겠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산에서 품 냄새를 맡게 해다오.
목마른 자가 샘물에 엎드려 그러듯이
우거진 풀숲에 내 얼굴을 함뿍 적시게 해다오.
그리움을 허공에 대어 놓고 헹궈내기 위하여,
향기로운 손수건 같이 내 손으로 그것을 뒤흔들게 해다오.
풀숲에 엎드려 내가 보는 모든 것, 
 내가 느끼는 모든 것,
내가 듣는 모든 것을
너도 함께 보고 느끼고 들어주었으면!
아아, 남들의 영혼이 음악을 타고 여행을 하듯,
내 영혼은 산의 풀 냄새에 실리어 나그네 길을 떠난다.

보들레르의 '머리카락 속의 지구 저편'中















(영알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들..)

꿀풀, ?, 원추리, 잔대, ?, 돌양지





(구름은 억새밭을 애무하듯..)





(이른 시간 신불산 정상으로 향하는 박꾼들..)





(신불산 정상은 다시 五里霧中..)





(영알의 여름은 이렇게 영글어 가고 있었다)





(신불대피소는 지붕공사중..)

주인이 바뀔 때마다 대피소 기능은 점점 사라지고
매점 기능만 더해 지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











(여기도 구석진 곳에도..)

붓꽃, 싸리꽃, 가는장구채, 까치수영
맞아, 영남알프스에 억새꽃만 꽃이 아니지
남이 보든 보지않든 있는 그 자리에서 묵묵히
주변을 밝히는 너들이 영알의 주인이지





(대대적인 공사를 하는데..)

근래 주인이 자주 바뀐다.
투자를 하면 투자비도 회수 해야하고,
그러다 보니 수익 낼 방법을 생각해야 하고..
대피소의 앞날이 걱정되는 부분이다.





(신불재 샘터)

몇 년전 태풍으로 물길이 끊겨
이전 대피소지기가 수고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물길이 제대로 잡힌듯..







(말나리와 나비가 내려앉은 듯한 산수국)





(여름.. 싱그러움이 좋다)













(인간은 위로 위로만 오르려 하지만..)

계류는
 겸손은 이런 것이라 교훈하는듯..
낮추고 낮추어 어떻게 바닥까지 낮출수 있을까?
 한 번도 고개 치들지 않고..





(산문을 나서다)

인생을 날마다 축제같이 보내고 싶지만
밀린 숙제를 하듯 쫓기는 현실. 맘을 편하게 먹어 보려 하지만
번민은 쉴날없다. 나무가 잠잠히 있고 싶어해도 바람이 가만두지
않은 것 같이.. 내 맘 하나 추스리기 어려운데 하물며 남의 마음이야.
세상 다 그런거라고 말 해도 속이 편해지지는 않으니 별 도리없는 것 아닌가.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것들..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상책이지.
톱니바퀴 돌듯한 궤도에서 한 발만 비켜서면 얼마나 여유로운가!
이제 시간 만들어 그동안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던 산을 자주 찾아야겠다.
인간들이야 팥죽쑤듯 변덕을 부리지만 산은 한 번도 실망시킨적 없다.
그래도 우리 곁에 산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영남알프스가 가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